코미디언을 울리는 법, 코미디언을 웃기는 법
코미디언을 울리는 법, 코미디언을 웃기는 법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0.07.21 1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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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이건 법이 아니다. 법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다. 박해다. 핍박이다.

대한민국 보수주의는 결코 자유주의자들이 못된다. 자유주의의 대표선수 하이에크가 생각하는 ‘법의 지배 (Rule of Law)’란 ‘인간의 지배’에 대한 대립항이다. 도저히 예측불가능한 인간의 지배가 싫다는 것이다. 인치(人治)를 하지말고, 법치(法治)를 하자는 것이다. 그래야만 인간의 최대한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 때 법은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는 필수요건이요, 자유에 대한 안전장치다.

법의 지배를 위장한, 사람의 지배

그런데 법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안전할 권리’를 침해한다면?
인간을 공포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공포로 몰고갈 자유의 한 수단으로서 법이라면?
이것은 법의 지배를 위장한 사람의 지배요, 힘의 지배요, 폭력의 지배다. 기득권의 또 다른 수단이요, 무기일 뿐이다. 본래적 의미의 보수주의자들이 꿈꾸는 진짜 자유주의의 정반대상황이다.

김미화씨의 말이다.
“그런데 어느날 KBS에 제가 출연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적어도 물어볼 수 있는 권리 정도는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 최소한 자신의 신상에 대해, 자신의 안전에 대해 물어볼 권리, 의문을 제기할 권리, 질문할 권리, 호기심을 가지고 의심할 권리, 이것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 권리다. 이런 원초적 본능에 가까운 인간의 권리를 법이라는 이름으로 경찰의 손에 맡겨 놓는다. 이것은 법이 아니다.

▲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김미화씨 ⓒ 오마이뉴스(남소연)

소송을 사랑하는 한나라당과 기득권세력

이 정부의 기득권자들은 소송을 사랑한다. 얼마전 한나라당 대표경선 과정에서 있었던 블랙코미디다.

“홍준표 후보는 KBS주최 후보 토론회에서 ‘안상수 후보는 이번 전대의 화두로 당내 화합·국민 통합을 내세웠는데, 지난 97년 <조선일보>-<중앙일보> 보도를 보면 안상수 후보가 신한국당 국회의원을 할 때 옆집 개가 짓는다고 2천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며 ‘자기 옆집과도 개 소리 때문에 화합을 못하는 분이 당내 국민 통합을 얘기할 수 있나?’라며 13년전 개 소송 문제를 끄집어냈다.”

이웃집과의 개 소리 문제조차도 해결하지 못하고 소송으로 가는 나라다. 어떠한 너그러움도 없다.

김미화씨의 말이다.
“저는 KBS측에 여러 차례 '이 일로 고소로 갈 일이 아니다, 확대되고 논란이 되는 걸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분명히 전달했으나, 이미 이 시점까지 왔습니다.”

그렇다. 이 정도다. 너그러움이란 없다. 화해가 없다. 조정이 없다. 협상이 없다. 일방적이다. 그저 고소고발이면 모든 것이 정당화된다. 법이라는 잣대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법은 만능이다. 법이 얼마나 위험하고 편파적이고 편향적이고 악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생각이 없다. 자신의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되는 문제를 경찰의 손에, 검찰의 손에, 법원의 손에, 헌법재판소의 손에 가져다 바친다. 신탁을 의뢰한다. 무서운 일이다.

모든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려는 위험 사회

우리 사회는 모든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려하는 ‘법위험사회’다. ‘정치의 사법화’는 이미 우리 사회의 거대한 트렌드다. 의회나 정당은 늘상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검찰로, 법원으로 쫓아다닌다. 의회주의의 핵심인 본회의나 상임위의 의결과정 조차도 경찰의 판단을 구하고, 검찰의 판단을 구하고, 법원의 판단을 구하고, 헌재의 판단을 구한다. 우리 모두는 법이란 신의 지배하에 놓여 있다.

이런 나라에서 김미화씨의 소소한 문제제기조차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법의 판단을 통해 해결하려는 방식은 어쩌면 지극히 정상적일 것이다.

웃음에도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나라, 웃음에도 색깔을 칠하려는 나라, 대한민국이다.

웃음에는 색깔이 없다

다시 김미화씨의 말이다.
“한나라당이 집권을 하든 민주당이 집권을 하든 이 나라의 코미디언으로 여러분들이 저를 필요로 했을 때 행사에 가서 대통령 모시고 웃겨드렸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께서 집권하시는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저를 필요로 했을 때 어떠한 행사에도 기꺼이 제 재능을 가지고 빛내 드리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 때마다 집권당의 사상과 이념을 따지고 선별적으로 응해 드렸습니까?”

지금 우리 사회의 법은 김미화씨를 울리는 법이다. 김미화씨를 블랙코미디로 웃기는 법이다. 법이 아니라 그저 방법의 하나다. 법을 폭력의 수단으로, 하나의 칼자루로 착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법은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무시당한 채 시민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시민들로부터 불신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법은 법이 아니요, 법의 지배가 아닌, 인간의 지배의 대용물일 뿐이다. 위험하다. 법의 지배가 위험하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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