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대법관, 퇴임 후 변호사 개업 않겠다
김영란 대법관, 퇴임 후 변호사 개업 않겠다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0.07.21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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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변호사 개업을 안 하기로 결심했어요. 퇴임한 대법관이 다른 일을 하는 모델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 조선일보 인터넷 기사 캡쳐

우리나라 여성 대법관 1호인 김영란 대법관이 다음달 퇴임합니다.
조선일보가 20일자로 인터뷰를 했더군요.(A29면 손진석 기자)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폐단 중 하나인 ‘전관예우’에 대한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는 중요한 발언이 있었습니다.
"단독 개업이든 법무법인이든 변호사 활동을 하지 않겠다."

워낙 전례가 없던 일이고, 자칫 조직이기주의가 강한 법조문화에서 이례적으로 비춰질까봐 염려스러웠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덧붙였습니다. 
“다른 대법관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조심스럽다.”

그렇다면 어떤 일을 하실지에 대한 계획을 물었던 모양입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겠다고 정하지는 않았지만 대법관 경험을 살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습니다.

김영란 대법관에 대한 평가는 어쩔 수 없이 첫 ‘여성’대법관이라는 점에 포인트가 맞춰질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분명한 소수자인 ‘여성’이 처음으로 대법관이 돼서 과연 여성이라는 관점, 사회적 소수자라는 관점, 사회적 약자라는 관점에서 어떤 식으로 기여했는지, 법원의 판례나 법 정책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사회적 영향력은 어떠했었는지가 평가의 핵심일 겁니다. 학자나 법조계를 연구하는 언론인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평가를 해나가야 하겠지요.

그런데 뜻밖에 김영란 대법관께서 우리 사회 법조문화의 가장 고질적 병폐라 할 수 있는 전관예우 금지에 대한 또 하나의 현실적 대안을 내놓고 가시는 것 같아 참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물론 단지 한 분의 대법관이 개업하지 않는 것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리고 자칫 개업하는 모든 변호사가 전관예우의 영향력 아래 깃들어 있다는, 예상할 수 있는 반론에 대해서도 받아들입니다. 그럼에도 이것이 출발이요, 논의의 중요한 방편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선 분명한 증거이지요.

부끄럽지만 우리나라는 대법원장을 마치고 나가서도 변호사로 개업하거나 대형 로펌에 고문으로 취업하는 나라입니다. 물론 국회의장 마치고도 다시 정치하는 분 계시죠. 현실 정치의 언저리에서 끊임없이 부유하는 분들 계십니다. 대법관들은 모르긴 몰라도 거의 100% 개업하셨을 겁니다. 딱 한 두 분 정도가 학계 석좌교수로 가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전관예우의 뿌리는 대법원에 있을 겁니다. 지금도 대법원 사건은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을 찾아갑니다. 첫째는 실력이겠지요. 둘째는 경험이겠지요. 셋째는 결코 검증된 바 없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의심해온 전관예우의 가능성입니다. 전관예우를 차단하기 위해서 수많은 논의가 진행돼 왔습니다. 판사가 최종적으로 일하던 관할지역에서 변호사를 개업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 등이 대표적이었지요.
임기를 마치고 은퇴하는 대법원장 등에게 별도의 예우를 만들자는 그런 논의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아직까지 그런 것들이 제도화되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첫 여성대법관으로 퇴임하는 김영란 대법관께서 아직까지 무슨 일을 해야될지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최소한 개업하지 않겠다, 법무법인으로 들어가지도 않겠다, 이런 말씀은 참으로 고맙게 느껴집니다. 물론 경제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을 겁니다. 대법관의 남편되시는 강지원 변호사가 설명을 보충했더군요. “연금으로 생활할 것이다. 수십억 원을 손해봤을지도 모르지만 아내의 어려운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 돈 문제가 아니라 박수를 보내는 다른 이유가 있겠지요. 세상은 이런 희생과 헌신을 통해 제도화로 이어지고 그 제도화를 통해서 문화의 변혁으로 이어질 겁니다.

그래서 퇴임 이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는 김영란 대법관의 의지와 숨은 의도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고 박수를 보냅니다. 소수파 대법관의 경험을 살려 우리사회에 좀 더 폭넓고 깊이 있는 사회적 스승이 되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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