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집 피해자 지원활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나눔의 집 피해자 지원활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 이남재/전 나눔의 집 사무국장
  • 승인 2020.06.0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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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재/원폭2세 환우 쉼터 합천평화의집 원장
이남재 원폭2세 환우 쉼터 합천평화의집 원장, 전 나눔의 집 사무국장.
이남재 원폭2세 환우 쉼터 합천평화의집 원장, 전 나눔의 집 사무국장.

한때 일본군 위안부(성노예) 피해자 지원운동에 몸담아 90년대 중반 ‘나눔의 집’ 설립 초기에 이런저런 수발을 하고 2000년대 초에 직을 맡아 몸을 담았던 입장에서 요즈음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며 참으로 착잡하고 마음이 무겁다.

이십 수년 전으로 돌아가 회고해 본다.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셨지만 당시 1995년 끝자락에 혜화동에 계셨던 고 강덕경, 김순덕, 박두리, 박옥련, 김군자 할머니 등 다섯 분을 민가협 어머니들을 모시고 다니던 봉고차를 빌려 새로 지은 현재의 나눔의 집으로 모시고 갔다.

경기도 광주시 초입에서 낡은 봉고차 타이어가 펑크가 나서 1km 가량 떨어진 시내까지 뛰어가 차량정비업체 직원을 데리고 타이어를 수리하고 이제 막 완공된 나눔의 집에 다다르니 어느덧 해는 기울고 산자락에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할머니들은 새로운 보금자리가 낯설고 막막한지 박두리 할머니는 연신 담배를 태우시고 다른 할머니들은 연신 산을 쳐다보며 회상에 잠기시는 듯 다들 쓸쓸한 표정을 지으신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뒤에도 시간 날 때마다 나눔의 집을 방문해 할머니들 불편한 사항은 없으신지 이런저런 잡일을 하면서 경기도 광주시로부터 시설과 법인 허가를 받기 위해 일조하다가 2001년 봄에 법인 사무국장을 맡아 내부 문제를 수습했다. 당시 회계 투명화, 생활 지원, 성노예 트라우마 완화를 위한 미술, 한글 수업 등 심리치유프로그램 진행, 후원자 확보(당시는 150~200여명 수준) 등을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안정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금도 국가와 기관, 회사, 단체, 개인이 저지른 피해자들의 권리회복과 인권향상을 위해 많은 활동가들이 지원 노력을 하고 있다. 피해자 지원운동은 피해자를 주체로 내세우고 그들을 지지, 지원하며 권리회복의 주체가 되도록 견인하고 각성시키도록 하는데 있다.

지원 활동가들은 피해자들을 위한 보조, 지원, 권리회복을 위한 각성 활동을 통해 그들의 곁에서 자신을 낮추고 피해자들이 보편적 인권회복과 정신적 트라우마 회복을 하도록 서포터 하는 역할이다. 때로는 부모처럼, 형제처럼, 자식처럼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대변하고 권리회복을 위해 활동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피해자가 주체이고 지원자는 피해의 영역에서 주체가 될 수 없음을 알지만 대외적인 메시지나 실천영역에서 주체를 대변하여 언행을 하고, 때로는 뜻하지 않게 피해자들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한 보조 역할을 하면서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

피해자는 피해의식이 많은 분들이라 권리회복과 구제요청을 위해 투쟁할 때에는 같이 하다가도 지원자가 주체로써 행동하거나 피해자들의 지시적인 요구나 그 뜻을 따라주지 않을 때에는 언제든 감정을 드러낸다. 때로는 갈등하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아 지원자가 그만두거나 서로 입장 차이로 인해 운동이 퇴행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피해자는 피해의 주체이며 지원자는 피해자 권리회복 운동에서 해결해가는 운동의 한 주체라는 점이다. 피해의 문제가 개인적 차원이 아닌 사회적인 문제로 이슈화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는 서로 수평적인 관계에서 대등하고 협력적이고 소통하는 양 주체가 된다.

새가 한쪽 날개로 날 수 없듯이 동행하는 과정에서 서로 상의 상관관계가 되어 해결의 양 주체가 되는 것이다. 우리 불교계 입장에서 보면 승가와 재가가 수직적, 우열의 관계가 아닌 수평적, 상호 협력적 관계가 되어 사회적 역할과 위상을 높여가야 하듯이 피해자와 지원자의 관계도 권리회복과 피해자 문제를 알려 나가는데 서로 양 주체로써 소통하고 수평적 관계가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실천과정에서 만약 지원자가 피해자 지원을 약속한 초심을 버리고 피해자들을 대상화, 도구화하거나 피해자가 피해 주체의 위치를 내세워 지원자를 수직적 구조로 종속화, 사유화한다면 양 주체로써 사회적 해결의 경로가 이탈될 수 있음은 자명하다.

피해의 사회적 해결에서는 지원자 역할이 중요하므로 지원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들과 합의하고 함께하기로 약속한 사항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지키지 못하고 사유화하고 이용한다면 이는 피해자들을 두 번 가해하는 행위이며 반사회적인 행위이다. 이에 지원자 입장에 선다면 피해자들과의 약속을 훼손하거나 방기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종교계가 교리적, 인도적인 측면에서 지원자 역할을 많이 수행해 왔다. 종교인으로서 그 위치가 일반인이 범접하기 어려운 경우라면 백번 강조해도 필설로는 부족하리라 본다.

이번 정의연 사태의 본질과 나눔의 집 사태의 본질은 무엇인가!

정의연 사태는 피해자가 피해자의 독점적 위치와 권리를 나타내면서 그동안 피해자들을 지원해왔던 지원자가 피해자 주체의 대체자로 주체로써 나서려 하자 그 반감을 가진 피해자가 자신만이 피해와 해결의 주체임을 나타내며 지원자를 해결운동의 대등한 주체로써 인정치 않는 것과 지원자가 해결하는 여정에서 동행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예견된 결과였다.

나눔의 집 사태 요인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로 피해자 지원 운동의 기본원칙이며 대의인 피해 주체를 대상화, 수단화하면서 피해자와 약속한 사항을 이행치 않고 피해자 지원을 주변 요소로 격하시키고 본래 목적사업을 방기하고 주변화하면서 지원자가 대체자로써 우위적으로 기능하려 한 것이다.

둘째 피해자 지원에 있어서 운동의 역사적 인식이 미비하고 시설운영의 전문성과 서비스 체계가 갖춰지지 못하고 지원자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수직적 의사구조가 누적되어 절차적, 민주적 해결과정 없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지원자들의 역사 인식, 업무 수준이 판이하여 운동의 대의와 목적, 업무 목표달성에 대한 생각이 다르고, 시설 운영의 객관적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가 확보되지 못하면서 토론과 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수직적 의사구조가 관행화되어 소통과 해결의 완충역할이 없었기 때문이다.

셋째 지원 활동과 시설에 대한 내외 감시체계와 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운동의 목적과 목표가 지속되지 못하고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와 단체, 후원자들의 지원 활동과 후원금에 대한 감시와 제언, 지원 활동역량에 대한 내·외부 평가, 업무 업그레이드를 통한 목적의 지속성이 확보되지 못하다 보니 지원의 목적이 상실되고, 후원금 관리가 투명하지 못하고 일탈됨으로써 지원자 간, 피해자와 지원자 간의 불신감이 극도로 내재되어 결국 파국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강물은 흘러야 한다. 강물이 깨끗하지 못함은 흐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평생 성노예의 트라우마 속에 모질고 힘든 삶을 영위해왔던 피해자들의 삶을 보듬고 여생을 안정된 생활환경에서 평안히 모시고자 발원하고 보금자리를 확보하고 지원활동에 노력해왔던 30여 년 전 초창기 애쓰신 스님들과 재가 활동가들의 초심을 지금의 지원자(법인이사, 시설 운영자, 종사자)들은 이어가야 한다.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100~300여명의 후원자와 월 300만원도 안 되는 후원금으로 나눔의 집을 운영하면서 9~12명의 피해 할머니들께 1인당 10여만의 용돈을 드리고, 활동가들에게는 월 30~50만원을 지급하면서, 성노예 트라우마 완화를 위한 미술, 한글, 음악치료 활동, 매주 인근 식당 외식, 고향나들이, 평화나들이,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 일본의 사죄와 배상 요구를 위한 국내외 증언 활동 등 초창기 지원 활동이 더욱 계승 발전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활동과 역할이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 일본의 전쟁범죄로 인한 사죄와 배상 등 7가지 요구사항을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하여 끊임없이 요구하고 이를 알리는 국내외적 활동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둘째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을 잘 모시는 시설의 법적 근거인 법인 정관 사업조항의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생활시설 및 지원 사업 조항을 초창기대로 다시 환원시켜야 한다. 이는 나눔의 집 설립 목적이며 법인의 존재근거와 이유이기도 하다.

초기 법인 설립 시에는 관계기관으로부터 ‘혐오시설’이라는 이유로 ‘일본군위안부 생활시설’이라는 사업조항을 넣지 못하다 3년 만에야 노력한 끝에 넣었었다. 하지만 그 후 현 이사진은 가장 중요한 핵심조항을 왜 바꾸었는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피해자 할머니들 사후에 무의탁 등 일반적인 요양시설로 전환하기 위한 요양시설 운영 사업조항을 중심적으로 하면서 일본군위안부역사관 운영을 구색 맞추기 조항으로 넣어 목적과 사업을 변질시킨다면 나눔의 집 존재 이유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법인 정관의 목적 사업을 개정하고 변질시켰던 그 과정의 책임을 이사진은 분명히 지고 역사의식과 소명의식을 가져야 되는 지원자 입장의 본분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셋째 지원 활동의 체계를 전문적으로 갖추고 지원 활동과 후원금 등에 대한 내외적 감시체계, 시설 및 프로그램 운영 등 평가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역사의식과 사회복지 전문성을 갖춘 지원 활동가들을 확보하고 각 분야 업무역량의 전문화를 도모해야 한다. 지원 활동에 대한 시민사회와 전문가, 후원자들로부터의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조언, 후원금 목적과 용도를 분류하고 수입과 지출 내역에 대한 정기적 보고체계와 알림, 관리와 집행의 투명성과 적절성이 강화되어야 한다,

특히 생활지원, 추모, 기념사업, 시설물 건축 등 후원금 목적과 용도가 구분되지 않고 부적절함과 불명확성으로 인해 국민적 비난을 자초했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시설과 프로그램 운영에 대한 평가를 통해 지원 활동이 발전되고 목적 사업에 대한 지속성이 담보된다면 지금 일련의 불미스러운 사태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역할 수행을 위해 권리행사와 책임이 있는 법인 이사회와 시설 운영진은 숙의하여 조속히 청사진을 만들어 발표하고 피해자 지원 활동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되 함이 없는 동체대비와 자비행을 통해 지혜가 더욱 수승되고 내외가 명철한 지혜를 통해 걸림 없는 자비행이 깨어있는 종교인들로부터 솔선수범되고 우리 사회에 전파되길 발원하면서 지금의 아픔과 상처는 오히려 치유와 상생의 출발점이 되고 초심을 되새기는 좋은 계기가 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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