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렙] 지난 7일 단행된 검사장급 인사는 호남 출신 검사들을 정치적 목적으로 대거 발탁함으로써 공정성과 형평성을 잃은 망사(亡事)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밀어붙인 이번 검사장들 인사는 ‘호남의 자존심을 훼손한 폭거’에 다름 아니다. 채널A 취재기자 사건을 편파적으로 수사한 검사들과 위안부 할머니들의 성금을 유용한 의혹을 받으면서도 여당 몫의 비례 국회의원이 된 윤미향 씨 사건 수사를 미적거린 검사들, 추미애 장관 아들의 군 복무 시절 탈영 혐의 수사를 손놓아온 검사들, 조국 전 장관 일가의 각종 비리의혹 수사에 소극적인 서울중앙지검장 등이 대부분 호남출신들로서 이번 검사장급 인사 때 전원 승진 또는 영전되었다. 검찰의 4대 요직을 전남과 전북 출신 4명이 싹쓸이 하는 호남편중 인사가 이어지자 검찰 내부에서는 우려와 울분, 개탄과 눈치 보기가 날이 갈수록 퍼지고 있다. 검찰총장의 지휘를 거스르고 검사 본연의 엄정한 수사 임무에 소홀하였던 자들이 승진과 영전을 누리게 만든 권력을 향하여 호남 출신 검사장마저 항의성 사표를 던지는 사례까지 이어지는 상황은 분명 비정상이다. 대통령의 대학 후배를 서울중앙지검장 자리에 계속 눌러 앉힌 데에 더하여 여검사들을 배려한 여성 검사장에 법무장관의 대학후배를 승진시킨 것도 세상 사람들의 고개를 돌리게 한다.
<모래시계>라는 인기 드라마가 있었다. 1995년 1월초부터 SBS TV에서 방영된 24부작 드라마 <모래시계>는 권력비리를 소신 있게 수사하는 검사와 그 검사의 친구인 폭력배, 그리고 여자 친구를 설정하여 암울한 1980년대 상황을 현실적으로 그려 전국적 히트를 친 화제작이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처음으로 다룬 <모래시계>가 방영되는 시간에 맞춰서 사람들이 귀가시간을 서두르게 되어 ‘귀가시계’라는 별명까지 생겨날 정도로 인기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가 국민의 높은 관심을 끈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신군부 독재 하에서 온갖 인권탄압과 권력형 비리가 기승을 부리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나쁜 짓 한 권력자들과 그 하수인들이 법의 심판을 받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권선징악(勸善懲惡) 염원이 하늘을 찌를 듯한 시대 상황 때문이었다.
그런데 독재권력에 맞서고 있던 그 당시 김대중 야당 총재는 이 드라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다. 권력에 빌붙어 악한 짓 하는 조폭 역할을 왜 전라도 사람으로 설정하였느냐는 지적이었다. 드라마든 영화든 나쁜 짓 하는 비겁한 역할엔 으레 전라도 말투를 쓰는 배우로 설정하는 고정관념에 대하여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배려를 촉구한 일리 있는 문제 제기였다. 경상도 출신으로서 현직 기자였던 필자로서는 김대중 총재의 그 같은 문제제기를 접한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호남 사람들의 가슴속에 박힌 지역차별 박탈감과 5.18원한이 타 지역 사람들로서는 이해한다는 말도 감히 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고 깊음을 재확인하였고, 드라마의 배역 설정에 별문제의식 없이 재미있게 보던 자신이 기자이기 전에 같은 국민으로서 한편 미안하기도 하였다. 이번 검사장급 인사로 영전과 승진을 누린 특히 호남 출신 검사들에 대하여 온갖 비난과 손가락질이 난무하고 있다. 권력의 방패막이 역할에 착실한 충견(忠犬)이라는 비아냥거림에서부터 ‘애완(愛玩)용’ 검사라는 가히 모욕적인 표현은 동료 검사 출신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심지어 ‘ㅇㅇㅇ은 검사라고 보지 않는다’는 극언까지 튀어나오는 지경이다. 대구경북 출신 법무장관과 부산경남 출신 대통령이 호남출신 일부 검사들에게 요직을 몰아준 검찰 인사가 균형을 배려한 차원이라고 백번 주장한들 수긍할 국민이 몇이나 될까. 같은 호남 출신 검사장까지 사표를 내던지며 ‘옹졸하고 편향된’ 인사라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하여 검찰의 4대요직을 꿰어 찬 호남 출신 검사장들 중 누구 한사 람도 해명이든 항변이든, 아무런 입장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지금 앉은 자리가 떳떳하지 않으므로 비난 여론이 가라앉기만 기다리며 뭉개고 있는 것이라면 비겁한 처신이다.
대통령으로부터 ‘우리 총장님’이라는 찬사까지 들으며 임명장을 받은 뒤 권력의 핵심 인사인 조국 일가의 비리를 수사한 이유로 여당 의원들로부터 ‘주인을 문 개’라는 비난을 받게 된 윤석열 검찰총장은 더 이상 권력의 충견이 아니므로 토사구팽(兎死狗烹) 판정을 받았나 보다. 검찰총장을 견제하기 위해 권력의 말을 잘 듣는 일부 호남출신 검사들을 정권의 방패막이로 삼은 이번 추미애식 검찰 길들이기 인사는 묵묵하게 직무를 수행 중인 검사들의 반발을 샀고, 검사라는 공직에 대한 자괴감을 씹도록 만들었다. 이런 식의 인사는 결과적으로 호남을 타 지역으로부터 또다시 고립시키는 후유증을 낳게 되며, 결과적으로 독재권력에 맞서 목숨 걸고 항거한 ‘5ㆍ18광주민주화정신’을 모독한 몹쓸 인사로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시대요청을 거스른 추미애식 인사 분탕질은 두고두고 후유증을 낳을 수밖에 없다. 그러건 말건 추미애는 난폭하게 달리고 있다. 정권 차원의 엄호를 받으며. 최소한의 염치나 조심성도 없는 인사 하이킥에다 부장검사의 압수수색 플라잉 어택까지 보여주니 가히 드라마적 요소를 두루 갖췄다. ‘애완용’으로 발탁된 일부 정치검사들을 제외하고 호남 비호남 가릴 것 없이 다수 검사들의 누적된 반발과 울분은 결국은 끓어넘칠 것이다.
모래시계는 권력의 유한성을 상징한다. 처음엔 가득 찬 모래시계의 모래가 밑으로 다 빠지고 마는 머지않은 장래에 또다시 검찰의 적폐청산이라는 명목으로 포장된 보복인사 청구서가 날아드는 악순환을 부를게 뻔하다. 역대정권 때마다 신물 나도록 겪어온 역사교훈을 이 정권 사람들만 아직도 모르나. 알면서도 고집부리나. 헐~~.
/ 안봉모(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