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택주가 푸는 평화 살림] ③ 판문점선언, 빛 잃지 않게 우리가 나서야
[변택주가 푸는 평화 살림] ③ 판문점선언, 빛 잃지 않게 우리가 나서야
  • 변택주
  • 승인 2021.04.2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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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을 가르는 금이 군사분계선이다. 군사분계선이란 전쟁을 멈추고 맞선 군대가 서로 넘지 않기로 한 금이다. 우리나라 군사분계선은 1953년 7월 27일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따라 뭍에 그은 금으로, 서쪽 예성강과 한강 어귀 교동도에서 판문점을 지나 철원·금화를 거쳐 동해안 고성 명호리까지다. 군사분계선 남북으로 2Km에 비무장지대(DMZ)를 세워 오늘에 이른다.

전쟁을 멈춘 지 70년 가까이 되어 군사분계선을 국경선이라고 여길 만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군사분계선을 국경선이라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군사분계선을 휴전선이라고 부른다. 짚어보면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니 군사분계선이라고 하지 않으려면 정전선, 전쟁을 멈춘 금이라고 해야 맞다. 어째서 군사분계선을 휴전선이라고 했을까? 갈등을 부추겨 마음 놓을 수 없도록 하려는 뜻인가? 이제라도 정전선, 싸움을 멈추는 금 또는 싸우지 않는 금이라고 해야 한다. 마침내 DMZ, 비무장지대가 서로 가슴을 열고 어울리는 곳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국군통수권은 대통령이
전작권은 주한미군사령관이 가져?

전쟁을 멈춘 뒤 북한을 도와 참전했던 중국군도 돌아가고 남한을 도와 참전했던 모든 연합군이 돌아갔다. 우리나라 전시작전권을 틀어쥔 미군은 70년 가까운 세월을 머물러 있다. 우리나라 전작권을 어째서 미군이 쥐고 있을까? 6·25가 터지고 얼마 되지 않은 1950년 7월 14일 대통령 이승만은 국회 승인은 말할 것도 없이, 외교 절차도 거치지 않고 미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에게 한국군 지휘권을 넘기겠다는 편지를 보낸다. 그 뒤로 한국군은 속절없이 한미연합사령관, 곧 주한미군사령관 지휘‧통제를 받는다.

우리나라 헌법 제74조 1항에,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군을 통수한다고 나와 있다. 국군 통수가 뭘까? 우리나라 군대를 아울러 이끄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통령에게는 전작권이 없다. 전쟁이 없을 때 우리나라 국군통수권은 우리나라 대통령이 쥐고 있다지만, 전쟁이 나면 미국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을 쥐고 있다는 말이다. 전쟁 때 전투명령을 내릴 수 없는 통수권이 무슨 힘이 있을까?

아울러 작전통제권을 전시와 평시로 나눈 군대는 우리나라 군대밖에 없단다. 평시작전통제권은 한국군 갖고 있다지만, 여느 때라도 연합작전계획을 세울 때나 한미군사훈련을 하거나 계획할 때, 군사정보관리와 정전협정을 이어갈 때에는 ‘연합권한위임사항(CODA)’이라 해서 한미연합사령관이 쥐고 있다. 말이 전작권일 뿐 아무 때나 휘두를 수 있다는 얘기다.

1973년 8월 초부터 1976년 10월 초까지 주한미군 사령관이던 리처드 스틸웰은 “지구에서 가장 놀랍게 주권을 넘긴 보기(the most remarkable concession of sovereignty in the entire world)”라고 할 만큼 문제가 많은 전작권, 하루빨리 돌려받아야 한다. 전작권이 싸움을 그만두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는 힘이기도 하는 까닭이다. 처지가 이런데 어떻게 다른 나라 억눌림에서 벗어나 독립했다고 할 수 있을까? 독립은 홀로 서는 힘이다. 스스로 저를 일으켜 세워 살아가는 일이다. 경제력이 세계 10위 국방력은 6위로, 국방비가 북한 한 해 예산을 넘어선 지 오래라는 한국 군대가 스스로 작전을 펼칠 힘도 갖추지 못했다면 차라리 군대를 없애라.

DMZ.(사진=행정안전부)



‘전쟁반대평화통일만세’ 외친 김낙중
남과 북에서 모두 간첩이라 떠밀어

그동안 우리는 평화협정을 미국과 북한이 해야 한다고만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라. 6·25는 남과 북이 싸웠던 터이고,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은 우리를 도우려고 왔을 뿐이다. 이 땅에서 평화롭게 지내야 할 이들은 남과 북 사람들이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아니라는 얘기다.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맺는다고 하면 말릴 까닭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을 멈추고 70년이 되도록 맺지 못한 북미평화협정을 마냥 기다리고만 있어야 할까. 그사이에 우리 겨레는 별별 아픔을 다 겪고 있다.

  “1931년 파주에서 태어난 청년 김낙중은 ‘전쟁반대 평화통일 만세’를 외치다 경찰서에 잡혀갔다. 1955년 6월 25일 이승만 대통령에게 청원서로 낸 평화통일 방안을 가지고 만우천을 거쳐 임진강을 건너 북으로 건너갔다. 북에서는 남한 간첩 취급을 받아 송환되고 남에서는 네 차례나 간첩 혐의로 복역했다. 반대로 북에서는 무장공비 김신조가 내려왔다. 1968년 1월 17일 개성 출발해 연천 고랑포에서 임진강을 건넜고, 파주 파평산을 지나 삼봉산에 도착해 1박을 했다. 북악산의 호경암과 1.21 소나무에는 그날의 교전 흔적이 뚜렷해 등산객들의 시선을 잡는다.”

대진대학교 DMZ연구원 객원교수 김효은이 프레시안에 연재한 ‘[접경지역 바로알기] ③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길 기약하며’에 나오는 말이다. 남과 북에서 모두 간첩이라고 내친 김낙중에서 안전보장과 평화는 무엇이었으며, 총과 수류탄을 들고 청와대를 치겠다고 사선을 넘은 김신조에게 안보와 평화는 무엇이었을까? 남과 북으로 흩어져 있는 부모, 형제를 만나지 못하고 숨을 거둔 사람에게 안보와 평화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우리가 아니면 다 적이라고 여기던 시대 생각에 매어서는 평화를 가져오기 어렵다. 냉전 시대란 20세기가 저문 지 스무 해가 넘었는데 여태 거기에 매여 있어선 안 된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머리를 녹여 가슴으로 다가서는 그사이에 평화가 깃든다.

임진강 어귀에서 강화도 끝섬, 중립지대
꼬마평화도서관 열어 평화풀씨 뿌리고파

지난 꼭지에서도 말했듯이 우리가 그토록 미워하는 일본과는 한 해에 많게는 팔백만 명이, 적어도 오백만 명이 오가는데 피를 나눈 겨레끼리는 오고 가지 못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은 흔히 남북이 오가지 못하는 까닭이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길을 틀어막아야 만이 안전이 보장된다는 말인가? 아니다. 공산주의 나라 중국과 러시아하고 국교를 트고 오갈 수 있어서 더 안전하고 평화로울 수 있었다. 일곱 해나 이어진 임진침략전쟁을 겪고 서른다섯 해 동안 이 땅을 짓밟아 우리를 억누르며 괴롭힌 일본하고도 이를 갈면서라도 사람과 물건이 서로 오가기에 아쉬운 평화라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남북을 가로막은 군사분계선은 뭍에 그어진 금이다. 한강 어귀에는 군사분계선이 없이 정전협정 1조 5항에 ‘쌍방 민간선박의 항행에 개방한다’라고 했다. 임진강 어귀에서 강화도 끝섬까지 강과 바다가 만나 어우러지는 두물머리는 민간선박이 서로 드나들 수 있는 중립지대라는 말이다. 그러나 말과는 달리 남과 북누리 어떤 배도 드나들지 못한다. 꼬마평화도서관을 나라 곳곳에 열고 다니는 나는, 이 강에 배를 띄우고 꼬마평화도서관을 열어 남누리 사람과 북누리 사람이 어울려 평화 그림책을 연주하며 저마다 가슴에 평화 풀씨를 품도록 하고 싶다.

4월 27일은 판문점선언 세 해째 되는 날이다. 판문점선언이 빛을 더 잃기 전에 우리가 나서야 한다. 그때 트인 숨통이 마침내 길이 되어 판문점에서 이산가족이 만나고 마침내 남과 북이 철책선을 걷어 젖히고 오갈 수 있도록 너나들이 “평화!”를 외치며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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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사진=행정안전부)

‘전쟁반대평화통일만세’ 외친 김낙중
남과 북에서 모두 간첩이라 떠밀어

그동안 우리는 평화협정을 미국과 북한이 해야 한다고만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라. 6·25는 남과 북이 싸웠던 터이고,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은 우리를 도우려고 왔을 뿐이다. 이 땅에서 평화롭게 지내야 할 이들은 남과 북 사람들이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아니라는 얘기다.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맺는다고 하면 말릴 까닭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을 멈추고 70년이 되도록 맺지 못한 북미평화협정을 마냥 기다리고만 있어야 할까. 그사이에 우리 겨레는 별별 아픔을 다 겪고 있다.

  “1931년 파주에서 태어난 청년 김낙중은 ‘전쟁반대 평화통일 만세’를 외치다 경찰서에 잡혀갔다. 1955년 6월 25일 이승만 대통령에게 청원서로 낸 평화통일 방안을 가지고 만우천을 거쳐 임진강을 건너 북으로 건너갔다. 북에서는 남한 간첩 취급을 받아 송환되고 남에서는 네 차례나 간첩 혐의로 복역했다. 반대로 북에서는 무장공비 김신조가 내려왔다. 1968년 1월 17일 개성 출발해 연천 고랑포에서 임진강을 건넜고, 파주 파평산을 지나 삼봉산에 도착해 1박을 했다. 북악산의 호경암과 1.21 소나무에는 그날의 교전 흔적이 뚜렷해 등산객들의 시선을 잡는다.”

대진대학교 DMZ연구원 객원교수 김효은이 프레시안에 연재한 ‘[접경지역 바로알기] ③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길 기약하며’에 나오는 말이다. 남과 북에서 모두 간첩이라고 내친 김낙중에게 안전보장과 평화는 무엇이었으며, 총과 수류탄을 들고 청와대를 치겠다고 사선을 넘은 김신조에게 안보와 평화는 무엇이었을까? 남과 북으로 흩어져 있는 부모, 형제를 만나지 못하고 숨을 거둔 사람에게 안보와 평화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우리가 아니면 다 적이라고 여기던 시대 생각에 매어서는 평화를 가져오기 어렵다. 냉전 시대란 20세기가 저문 지 스무 해가 넘었는데 여태 거기에 매여 있어선 안 된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머리를 녹여 가슴으로 다가서는 그사이에 평화가 깃든다.

임진강 어귀에서 강화도 끝섬, 중립지대
꼬마평화도서관 열어 평화풀씨 뿌리고파

지난 꼭지에서도 말했듯이 우리가 그토록 미워하는 일본과는 한 해에 많게는 팔백만 명이, 적어도 오백만 명이 오가는데 피를 나눈 겨레끼리는 오고 가지 못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은 흔히 남북이 오가지 못하는 까닭이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길을 틀어막아야 만이 안전이 보장된다는 말인가? 아니다. 공산주의 나라 중국과 러시아하고 국교를 트고 오갈 수 있어서 더 안전하고 평화로울 수 있었다. 일곱 해나 이어진 임진침략전쟁을 겪고 서른다섯 해 동안 이 땅을 짓밟아 우리를 억누르며 괴롭힌 일본하고도 이를 갈면서라도 사람과 물건이 서로 오가기에 아쉬운 평화라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남북을 가로막은 군사분계선은 뭍에 그어진 금이다. 한강 어귀에는 군사분계선이 없이 정전협정 1조 5항에 ‘쌍방 민간선박의 항행에 개방한다’라고 했다. 임진강 어귀에서 강화도 끝섬까지 강과 바다가 만나 어우러지는 두물머리는 민간선박이 서로 드나들 수 있는 중립지대라는 말이다. 그러나 말과는 달리 남과 북누리 어떤 배도 드나들지 못한다. 꼬마평화도서관을 나라 곳곳에 열고 다니는 나는, 이 강에 배를 띄우고 꼬마평화도서관을 열어 남누리 사람과 북누리 사람이 어울려 평화 그림책을 연주하며 저마다 가슴에 평화 풀씨를 품도록 하고 싶다.

4월 27일은 판문점선언 세 해째 되는 날이다. 판문점선언이 빛을 더 잃기 전에 우리가 나서야 한다. 그때 트인 숨통이 마침내 길이 되어 판문점에서 이산가족이 만나고 마침내 남과 북이 철책선을 걷어 젖히고 오갈 수 있도록 너나들이 “평화!”를 외치며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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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택주

“배운 걸 세상에 돌리지 않으면 제구실하지 않는 것”이란 법정 스님 말씀에 따라 이 땅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면서 ‘으라차차영세중립코리아’에 몸담고 있다. 나라 곳곳에 책이 서른 권 남짓한 꼬마평화도서관을 열고 있다. 평화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기 놀이하면서 쉬운 겨레말 쓰기 놀이도 한다. 법명은 지광(智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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