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있을 땐 몰랐어
네가 그리 그리울 줄은
함께 있을 땐 몰랐어
그 대 있던 빈자리.
#작가의 변
만월일 땐 내 마음도 풍성한 가을처럼 부자가 된 느낌이다가 초승달이 뜨면 괜스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가슴에 찔려 피가 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마음이란 요사해서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손을 잡고 함께 걸으면 춥지 않고, 함께 있으면 냉동고에 있는 것처럼 추울 때가 있다.
사람들은 추운 겨울에 따뜻한 봄이 와서 꽃이 피고 새싹이 돋은 희망으로 살지만, 막상 봄이 오고 화려한 꽃이 피고 땅에 뚝뚝 떨어진 꽃잎을 보고는 센티해져서 봄이 원망스러운 것이다.
함께 있을 땐 용수철 튕기듯 퉁퉁 튕겨대다가 막상 떠나고 나서야 울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래서 더욱 서러운 감정이 생기게 되고 돌아 오지 않는 그 시간들을 위해 기꺼이 눈물을 흘려 주는 것이다.
빈자리는 눈에 보이는 빈자리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빈자리가 더 크다. 분명 떠난 사람인데 마음에서 불현듯이 그를 불러 세우고 뒤돌아 보면 없고 어깨에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껴 쳐다보면 바람만 부는 순간 갑작스레 설움이 파도처럼 밀려 들어 엉엉 울어 버리고 싶은 날도 있다.
날마다 오는 날, 해마다 오는 생일, 그 흔하던 날들이 어느 날은 내가 없는 봄이 될 수도 있고 당신이 없는 봄이 될 수 있다. 함께 밥상에서 밥을 먹던 부모 형제가 어느 날 불러도 대답이 없듯이 나도 불러도 대답 없이 비디오 영상에서, 빛바랜 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날도 있다.
그러니 있을 때 잘해. 함께 있을 때 잘해. 옆에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른다. 그리워 한다고 해도 20년 30년 후에 만난다고 해도 그 그리웠던 순간은 이미 지나간 시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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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은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살고 있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학원을 다니면서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 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 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