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본위화폐] 6. 굿즈Goods와 뱃즈Bads의 경계
[똥본위화폐] 6. 굿즈Goods와 뱃즈Bads의 경계
  • 조재원 울산과기원 교수
  • 승인 2021.05.03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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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과기원에 설치된 과일집.



똥은 대표적인 뱃즈Bads이지만 굿즈Goods 또는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존재이다. 과학기술로 뱃즈를 굿즈로 바꾸는 것은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려운데 이는 굿즈라는 것은 사람과 문화에 따라 판단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똥은 아침에 누기 전에 우리 몸속에 있었다. 대장 안에서 똥과 살을 맞대고 있었다. 변기에 눈 후에는 빨리 치워야하는 더러운 존재가 돼버린다. 똥을 눈 이후에는 살을 맞대고 있던 나의 분신 같은 존재에서 치워 버려야할 애물단지가 돼버린다. 그런 면에서 보면, 똥은 보기 싫은 것, 냄새 나쁜 것, 듣기 싫은 소리, 만지기 싫은 것, 즉, 뱃즈Bads이다. 뱃즈는 가치롭지 못하다. 모두 피하기 때문이다. 굿즈Goods는 필요하고 쓰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것인 반면, 뱃즈는 나로부터 멀리 치워는 것이 필요하고, 가능하면 피해야 하는 괴로움이다.

“뱃즈인 똥이 지속가능 에너지원인 굿즈 가능성 열려”

굿즈가 가치를 가진다면 뱃즈는 가치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가치 없는 것이니 가격을 매길 수 없다. 하지만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보면 이상하고 생소한 가치가 생긴다. 사람들이 모여 살지 않으면 똥과 같은 뱃즈를 개인 차원에서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만큼 이동하여 이를 버리면 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다른 이웃에게 뱃즈 피해를 주면 안 되는 상황이 생겼다. 뱃즈는 누구도 원치 않는다. 싫어하고 피하고 싶어 한다. 뱃즈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참고 견딜 수 있는 것도 있겠지만 반드시 멀리해야 하는 꼭 피해야하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음식물 쓰레기는 수거용 봉지에 담아 며칠은 부엌에서 둘 수 있지만 똥을 눈 이후에 수거용 봉지, 별도의 용기에 담아 며칠 후 모아서 수거용 차가 왔을 때 버려야 한다면,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똥은 눈 즉시 흔적도 없이 치워버려야만 하는 존재이다. 즉, 새로운 필요가 생긴 것이다. 치워 버려야할 필요, 멀리할 필요가 이것이다. 필요는 가치가 될 수 있다. 가치에는 어김없이 가격이 매겨질 수 있다. 쓰레기를 치우고 똥, 오줌을 치우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뱃즈에도 가치가 생겨 가격이 매겨진 것이다.

굿즈의 가치도 늘 일정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생각하기에 따라, 사람에 따라, 문화에 따라 굿즈의 가치와 가격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솔로몬 왕의 우화를 하나 소개한다. 빵가게 냄새를 좋아한 노숙자가 빵 굽는 시간이면 빵가게 앞에 와서 매번 냄새를 맡았다고 한다. 빵을 사먹을 돈은 비록 없지만 노숙자는 갓 구운 빵 냄새 맡는 것은 무료로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였다. 장사에 방해될까봐 빵가게 주인은 노숙자에게 굿즈인 빵 냄새를 맡았으니 굿즈 가치에 대한 가격을 지불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노숙자를 빵가게 주위에 못 오게 하려는 주인의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노숙자는 이를 거부하고 결국 그들은 솔로몬 왕에게 가 해결을 구하게 되었다. 이때 솔로몬 왕은 노숙자에게 굿즈인 빵 냄새를 맡았으니 돈을 지불해야한다고 판결했다. 동시에 노숙자에게 노숙자의 주머니에든 몇 안 되는 동전의 딸랑 거리는 소리로 가격을 지불하라고 판결했다고 한다. 빵 냄새 가격을 동전이 아닌 동전의 소리로 지불하게 했다는 지혜로운 판결이었다. 이 이야기에 한 가지 반전을 더하고 싶다. 빵 냄새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빵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동전끼리 부딪치는, 쇳소리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노숙자가 빵가게 앞에 앉아 있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빵가게 주인도 있을 수 있다. 즉, 굿즈와 뱃즈의 가치 매김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주관적인 기준은 상황에 따라 굿즈와 뱃즈의 가치를 뒤바꾸기도 하고, 때로는 판단하기 힘든 가치 기준의 경계를 제시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똥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다. 수세식변기로 내려 버리지 않고, 똥, 오줌을 분리하면 에너지와 퇴비를 만들 수 있다. 똥은 혐기성 미생물 소화조로 보내 메탄 바이오에너지 생산에 활용하고, 부산물인 이산화탄소로는 미세조류를 키워 청정 바이오디젤을 생산할 수 있다. 바이오에너지 생산후 남은 똥은 호기성 과정을 거쳐 퇴비가 된다. 분리된 오줌은 토양산화를 막는 액비가 되며 한정된 자원인 "인"의 공급처가 된다. 똥, 오줌이 포함되지 않은 생활하수는 상대적으로 수질이 양호해서, 하수처리장이 아닌 처리형 인공습지로도 충분히 처리가 가능해진다.



“굿즈와 뱃즈의 경계, 굿즈였던 플라스틱 이제는 뱃즈”

굿즈, 뱃즈 모두에 대해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가치기준을 가져다주는 것이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과학기술이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것Normals을 굿즈로 만드는 과학기술이 있다. 가치 상승이 이루어진다. 이미 굿즈인 것을 더 좋은 것Betters으로 만드는 과학기술, 심지어 뱃즈를 굿즈로 만드는 과학기술도 있다. 변화시켜 만드는 원리, 이론은 과학이고 실재 그렇게 만드는 것은 기술이다. 특별한 예외가 없다면, 동일한 조건, 동일한 과정을 거쳐 예상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과학이다. 이번에도 반전은 있다. 명백하게 굿즈로 개발된 것이 꼭 그렇지 않게 되어버린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과학기술자가 일반적인 것 또는 뱃즈를 굿즈로 만드는 연구를 열심히 해서 성공하여 수많은 굿즈를 생산하여 세상에 내어 놓았는데 사실은 그것이 굿즈가 아니라 뱃즈 또는 더 나쁜 것Worses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는 굿즈인 플라스틱을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만들어 냈다. 플라스틱은 여전히 굿즈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뱃즈, Worses가 되기도 한다. 만약 과학기술의 결과 만들어진 것이 굿즈인지, 뱃즈인지 알아차리기 힘들고 가치를 판단하기 힘들어 혼돈스러운 경우 과학자는 길을 잃을 수도 있다. 또 다른 예로 모기살충제가 있다. 모기는 성가시고 병을 옮기기 때문에 죽여야 한다고 믿는다. 별반 반대가 없어 보인다. 이렇게 모기는 뱃즈로 많은 사람들에 의해 공인되니 과학자는 모기를 죽이는 약을 만들어 내었다. 모기살충제는 굿즈인 셈이다. 그런데 모기는 자연생태계에서 잠자리, 나비들의 먹이가 되고 잠자리와 나비와 같은 곤충들은 모기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면 그래도 여전히 모기를 죽이는 살충제는 굿즈인가? 이제 모기살충제는 굿즈인지 뱃즈인지 혼란이 생긴다. 빵을 만드는 과학기술만 발전시킨다고 배고픈 사람이 사라지지 않듯, 모기 살충제를 발명했다고

모든 문제가 풀리지는 않는다. 모기살충제로 각광을 받던 DDT가 강력한 발암물질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뱃즈를 굿즈를 변환시키는 과학기술을 적용하기 전에 굿즈 이면의 의미를 여러 각도에서 엄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과학기술자의 능력만으로는 힘들 때도 있다. 예술가와 인문학자들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 예민한 감각을 가진 예술가들이 굿즈인지 뱃즈인지 판단하고 사람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에게 대해 굿즈와 뱃즈를 나름의 주관으로 판단하는 미적 기준을 제공해야 한다. 인문학자들은 굿즈와 뱃즈 뒷면을 볼 수 있는 윤리적 판단능력을 가졌다. 우리는 과학이 예술과 인문학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많은 부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과학이라는 이름의 이론과 원리 속에 인간의 감각만이 눈치챌 수 있는 주관적인 생각이 없을 리 없다. 미의 조건 속에 과학원리가 빠져있지도 않다. 자연과 인간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이론화되고 합의된다고 해서 인간은 행복을 보장받는 것도 아니다. 행복과 불행, 만족과 불만 등의 경계도 굿즈와 뱃즈의 경계처럼 모호하기 때문이다. 혹은 애당초 그 경계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오래 전 한국을 포함한 농경사회에서 똥은 귀한 퇴비의 원료였으므로 굿즈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수세식화장실 발명이후 똥은 오랜 시간 치워버려야 하는 더러운 뱃즈였다. 대신 똥으로부터 위생을 지켜준 수세식화장실과 하수처리장은 굿즈가 되었다. 여전히 그렇다. 특정 과학기술이 만들어지면서, 똥은 바이오에너지 원료가 되면서 반전이 생겼다. 똥은 지속가능 에너지원으로써 굿즈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제 똥은 치워 버려야 할 더러운 존재로서의 뱃즈인 동시에 에너지원이므로 굿즈가 될 수 있다. 뱃즈인 똥을 위생적으로 처리하는 하수처리장이라는 굿즈와 에너지원으로서의 똥의 굿즈가 서로 경쟁할 수도 있다. 하수처리장이 꼭 굿즈인지에 대한 가치판단 기준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이렇듯 굿즈와 뱃즈의 경계가 모호해져 버렸다. 똥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고 어쩌면 똥은 굿즈와 뱃즈 가치의 충돌이 첨예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대사회 가장 대표적인 대상일 수도 있다.



볼일 볼 때마다 나무 껍데기, 말린 풀들을 뿌려준다. 변기 아래 똥이 쌓이면 바람이 잘 통하는 곳으로 옮겨 놔주기만 하면 된다. 한 두달 정도 지나면 똥은 퇴비로 변한다. 똥 속에 있던 미생물이 산소로 호흡하면서 퇴비화를 돕는다. 똥 퇴비는 텃밭의 흙과 섞여 땅심을 키운다. 똥 속 미생물과 흙 미생물이 만나는 순간이다.



“허물어진 가치 사이에서 새로운 가치들이 만들어지길”

똥에 대한 뱃즈, 굿즈 개별 개념과 경계까지도 경험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이 곳에는 생활하는 곳과 과학연구가 이루어지는 실험실이 유리벽 하나로 분리되어 있다. 부엌에서 실험실을 유리벽을 통해 볼 수 있다. 생활공간에는 비비(BeeVi)화장실 변기가 있는데 이 변기에서 용변을 보면 똥, 오줌이 분리되어 진공관을 통해 실험실로 순식간에 운반된다. 실험실에는 똥을 이용하여 바이오에너지를 만드는 시설이 있어 연속적으로 메탄가스를 생산한다. 메탄가스는 부엌, 보일러, 그리고, 전기발전용 연료전지에서 활용된다. 이곳이 과학이 일상으로 들어오는 집, 줄여서 과일집이다. 유니스트 캠퍼스 내 위치해 있다. 과일집 화장실은 수세식 화장실과 비교해서도 손색이 없고 어떤 면에서는 더 세련되었다. 사이언스 월든에서 디자인해서 제작되었기 때문에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변기이다. 여기에 똥을 눴다고 해서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고, 바이오에너지도 만들고 텃밭 퇴비도 만들어 진다고 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일면 뿌듯한 마음도 든다. 또 하나 재밌는 것은 오늘 아침 계란요리를 할 때 사용한 메탄연료가 30일 전 과일집을 방문한 사람들의 똥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과일집을 방문해서 오늘 아침 내 보낸 우리의 똥은 30일 이후 에너지가 되어, 그때 과일집을 방문할 누군가의 아침 요리와 샤워를 위해 쓰여 진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위해 한 일과는 다르게 똥 에너지를 통해 사회에 작은 기여를 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사람들과 똥을 통해, 즉, 똥으로 만들어진 에너지를 통해 연결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100가구가 사는 아파트가 이렇게 연결된다고 상상해 보자. 엘리베이터 안에서, 길을 오가며 만나는 이웃이 조금은 달라 보이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한 도시가 이렇게 운영된다면 시민들은 서로를 지금과는 조금은 다르게 바라보게 될 것 같다. 과일집에서는 의도적으로 무엇이 뱃즈인지 굿즈인지 그 경계가 허물어지도록 공간이 디자인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허물어진 가치들의 경계 사이에서 숨어있던 또는 존재하지 않았었던 가치들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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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과기원에 설치된 과일집.

똥은 대표적인 뱃즈Bads이지만 굿즈Goods 또는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존재이다. 과학기술로 뱃즈를 굿즈로 바꾸는 것은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려운데 이는 굿즈라는 것은 사람과 문화에 따라 판단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똥은 아침에 누기 전에 우리 몸속에 있었다. 대장 안에서 똥과 살을 맞대고 있었다. 변기에 눈 후에는 빨리 치워야하는 더러운 존재가 돼버린다. 똥을 눈 이후에는 살을 맞대고 있던 나의 분신 같은 존재에서 치워 버려야할 애물단지가 돼버린다. 그런 면에서 보면, 똥은 보기 싫은 것, 냄새 나쁜 것, 듣기 싫은 소리, 만지기 싫은 것, 즉, 뱃즈Bads이다. 뱃즈는 가치롭지 못하다. 모두 피하기 때문이다. 굿즈Goods는 필요하고 쓰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것인 반면, 뱃즈는 나로부터 멀리 치워는 것이 필요하고, 가능하면 피해야 하는 괴로움이다.

“뱃즈인 똥이 지속가능 에너지원인 굿즈 가능성 열려”

굿즈가 가치를 가진다면 뱃즈는 가치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가치 없는 것이니 가격을 매길 수 없다. 하지만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보면 이상하고 생소한 가치가 생긴다. 사람들이 모여 살지 않으면 똥과 같은 뱃즈를 개인 차원에서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만큼 이동하여 이를 버리면 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다른 이웃에게 뱃즈 피해를 주면 안 되는 상황이 생겼다. 뱃즈는 누구도 원치 않는다. 싫어하고 피하고 싶어 한다. 뱃즈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참고 견딜 수 있는 것도 있겠지만 반드시 멀리해야 하는 꼭 피해야하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음식물 쓰레기는 수거용 봉지에 담아 며칠은 부엌에서 둘 수 있지만 똥을 눈 이후에 수거용 봉지, 별도의 용기에 담아 며칠 후 모아서 수거용 차가 왔을 때 버려야 한다면,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똥은 눈 즉시 흔적도 없이 치워버려야만 하는 존재이다. 즉, 새로운 필요가 생긴 것이다. 치워 버려야할 필요, 멀리할 필요가 이것이다. 필요는 가치가 될 수 있다. 가치에는 어김없이 가격이 매겨질 수 있다. 쓰레기를 치우고 똥, 오줌을 치우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뱃즈에도 가치가 생겨 가격이 매겨진 것이다.

굿즈의 가치도 늘 일정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생각하기에 따라, 사람에 따라, 문화에 따라 굿즈의 가치와 가격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솔로몬 왕의 우화를 하나 소개한다. 빵가게 냄새를 좋아한 노숙자가 빵 굽는 시간이면 빵가게 앞에 와서 매번 냄새를 맡았다고 한다. 빵을 사먹을 돈은 비록 없지만 노숙자는 갓 구운 빵 냄새 맡는 것은 무료로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였다. 장사에 방해될까봐 빵가게 주인은 노숙자에게 굿즈인 빵 냄새를 맡았으니 굿즈 가치에 대한 가격을 지불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노숙자를 빵가게 주위에 못 오게 하려는 주인의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노숙자는 이를 거부하고 결국 그들은 솔로몬 왕에게 가 해결을 구하게 되었다. 이때 솔로몬 왕은 노숙자에게 굿즈인 빵 냄새를 맡았으니 돈을 지불해야한다고 판결했다. 동시에 노숙자에게 노숙자의 주머니에든 몇 안 되는 동전의 딸랑 거리는 소리로 가격을 지불하라고 판결했다고 한다. 빵 냄새 가격을 동전이 아닌 동전의 소리로 지불하게 했다는 지혜로운 판결이었다. 이 이야기에 한 가지 반전을 더하고 싶다. 빵 냄새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빵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동전끼리 부딪치는, 쇳소리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노숙자가 빵가게 앞에 앉아 있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빵가게 주인도 있을 수 있다. 즉, 굿즈와 뱃즈의 가치 매김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주관적인 기준은 상황에 따라 굿즈와 뱃즈의 가치를 뒤바꾸기도 하고, 때로는 판단하기 힘든 가치 기준의 경계를 제시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똥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다. 수세식변기로 내려 버리지 않고, 똥, 오줌을 분리하면 에너지와 퇴비를 만들 수 있다. 똥은 혐기성 미생물 소화조로 보내 메탄 바이오에너지 생산에 활용하고, 부산물인 이산화탄소로는 미세조류를 키워 청정 바이오디젤을 생산할 수 있다. 바이오에너지 생산후 남은 똥은 호기성 과정을 거쳐 퇴비가 된다. 분리된 오줌은 토양산화를 막는 액비가 되며 한정된 자원인 "인"의 공급처가 된다. 똥, 오줌이 포함되지 않은 생활하수는 상대적으로 수질이 양호해서, 하수처리장이 아닌 처리형 인공습지로도 충분히 처리가 가능해진다.
똥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다. 수세식변기로 내려 버리지 않고, 똥, 오줌을 분리하면 에너지와 퇴비를 만들 수 있다. 똥은 혐기성 미생물 소화조로 보내 메탄 바이오에너지 생산에 활용하고, 부산물인 이산화탄소로는 미세조류를 키워 청정 바이오디젤을 생산할 수 있다. 바이오에너지 생산후 남은 똥은 호기성 과정을 거쳐 퇴비가 된다. 분리된 오줌은 토양산화를 막는 액비가 되며 한정된 자원인 "인"의 공급처가 된다. 똥, 오줌이 포함되지 않은 생활하수는 상대적으로 수질이 양호해서, 하수처리장이 아닌 처리형 인공습지로도 충분히 처리가 가능해진다.

“굿즈와 뱃즈의 경계, 굿즈였던 플라스틱 이제는 뱃즈”

굿즈, 뱃즈 모두에 대해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가치기준을 가져다주는 것이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과학기술이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것Normals을 굿즈로 만드는 과학기술이 있다. 가치 상승이 이루어진다. 이미 굿즈인 것을 더 좋은 것Betters으로 만드는 과학기술, 심지어 뱃즈를 굿즈로 만드는 과학기술도 있다. 변화시켜 만드는 원리, 이론은 과학이고 실재 그렇게 만드는 것은 기술이다. 특별한 예외가 없다면, 동일한 조건, 동일한 과정을 거쳐 예상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과학이다. 이번에도 반전은 있다. 명백하게 굿즈로 개발된 것이 꼭 그렇지 않게 되어버린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과학기술자가 일반적인 것 또는 뱃즈를 굿즈로 만드는 연구를 열심히 해서 성공하여 수많은 굿즈를 생산하여 세상에 내어 놓았는데 사실은 그것이 굿즈가 아니라 뱃즈 또는 더 나쁜 것Worses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는 굿즈인 플라스틱을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만들어 냈다. 플라스틱은 여전히 굿즈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뱃즈, Worses가 되기도 한다. 만약 과학기술의 결과 만들어진 것이 굿즈인지, 뱃즈인지 알아차리기 힘들고 가치를 판단하기 힘들어 혼돈스러운 경우 과학자는 길을 잃을 수도 있다. 또 다른 예로 모기살충제가 있다. 모기는 성가시고 병을 옮기기 때문에 죽여야 한다고 믿는다. 별반 반대가 없어 보인다. 이렇게 모기는 뱃즈로 많은 사람들에 의해 공인되니 과학자는 모기를 죽이는 약을 만들어 내었다. 모기살충제는 굿즈인 셈이다. 그런데 모기는 자연생태계에서 잠자리, 나비들의 먹이가 되고 잠자리와 나비와 같은 곤충들은 모기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면 그래도 여전히 모기를 죽이는 살충제는 굿즈인가? 이제 모기살충제는 굿즈인지 뱃즈인지 혼란이 생긴다. 빵을 만드는 과학기술만 발전시킨다고 배고픈 사람이 사라지지 않듯, 모기 살충제를 발명했다고

모든 문제가 풀리지는 않는다. 모기살충제로 각광을 받던 DDT가 강력한 발암물질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뱃즈를 굿즈를 변환시키는 과학기술을 적용하기 전에 굿즈 이면의 의미를 여러 각도에서 엄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과학기술자의 능력만으로는 힘들 때도 있다. 예술가와 인문학자들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 예민한 감각을 가진 예술가들이 굿즈인지 뱃즈인지 판단하고 사람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에게 대해 굿즈와 뱃즈를 나름의 주관으로 판단하는 미적 기준을 제공해야 한다. 인문학자들은 굿즈와 뱃즈 뒷면을 볼 수 있는 윤리적 판단능력을 가졌다. 우리는 과학이 예술과 인문학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많은 부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과학이라는 이름의 이론과 원리 속에 인간의 감각만이 눈치챌 수 있는 주관적인 생각이 없을 리 없다. 미의 조건 속에 과학원리가 빠져있지도 않다. 자연과 인간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이론화되고 합의된다고 해서 인간은 행복을 보장받는 것도 아니다. 행복과 불행, 만족과 불만 등의 경계도 굿즈와 뱃즈의 경계처럼 모호하기 때문이다. 혹은 애당초 그 경계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오래 전 한국을 포함한 농경사회에서 똥은 귀한 퇴비의 원료였으므로 굿즈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수세식화장실 발명이후 똥은 오랜 시간 치워버려야 하는 더러운 뱃즈였다. 대신 똥으로부터 위생을 지켜준 수세식화장실과 하수처리장은 굿즈가 되었다. 여전히 그렇다. 특정 과학기술이 만들어지면서, 똥은 바이오에너지 원료가 되면서 반전이 생겼다. 똥은 지속가능 에너지원으로써 굿즈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제 똥은 치워 버려야 할 더러운 존재로서의 뱃즈인 동시에 에너지원이므로 굿즈가 될 수 있다. 뱃즈인 똥을 위생적으로 처리하는 하수처리장이라는 굿즈와 에너지원으로서의 똥의 굿즈가 서로 경쟁할 수도 있다. 하수처리장이 꼭 굿즈인지에 대한 가치판단 기준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이렇듯 굿즈와 뱃즈의 경계가 모호해져 버렸다. 똥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고 어쩌면 똥은 굿즈와 뱃즈 가치의 충돌이 첨예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대사회 가장 대표적인 대상일 수도 있다.

볼일 볼 때마다 나무 껍데기, 말린 풀들을 뿌려준다. 변기 아래 똥이 쌓이면 바람이 잘 통하는 곳으로 옮겨 놔주기만 하면 된다. 한 두달 정도 지나면 똥은 퇴비로 변한다. 똥 속에 있던 미생물이 산소로 호흡하면서 퇴비화를 돕는다. 똥 퇴비는 텃밭의 흙과 섞여 땅심을 키운다. 똥 속 미생물과 흙 미생물이 만나는 순간이다.

“허물어진 가치 사이에서 새로운 가치들이 만들어지길”

똥에 대한 뱃즈, 굿즈 개별 개념과 경계까지도 경험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이 곳에는 생활하는 곳과 과학연구가 이루어지는 실험실이 유리벽 하나로 분리되어 있다. 부엌에서 실험실을 유리벽을 통해 볼 수 있다. 생활공간에는 비비(BeeVi)화장실 변기가 있는데 이 변기에서 용변을 보면 똥, 오줌이 분리되어 진공관을 통해 실험실로 순식간에 운반된다. 실험실에는 똥을 이용하여 바이오에너지를 만드는 시설이 있어 연속적으로 메탄가스를 생산한다. 메탄가스는 부엌, 보일러, 그리고, 전기발전용 연료전지에서 활용된다. 이곳이 과학이 일상으로 들어오는 집, 줄여서 과일집이다. 유니스트 캠퍼스 내 위치해 있다. 과일집 화장실은 수세식 화장실과 비교해서도 손색이 없고 어떤 면에서는 더 세련되었다. 사이언스 월든에서 디자인해서 제작되었기 때문에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변기이다. 여기에 똥을 눴다고 해서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고, 바이오에너지도 만들고 텃밭 퇴비도 만들어 진다고 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일면 뿌듯한 마음도 든다. 또 하나 재밌는 것은 오늘 아침 계란요리를 할 때 사용한 메탄연료가 30일 전 과일집을 방문한 사람들의 똥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과일집을 방문해서 오늘 아침 내 보낸 우리의 똥은 30일 이후 에너지가 되어, 그때 과일집을 방문할 누군가의 아침 요리와 샤워를 위해 쓰여 진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위해 한 일과는 다르게 똥 에너지를 통해 사회에 작은 기여를 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사람들과 똥을 통해, 즉, 똥으로 만들어진 에너지를 통해 연결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100가구가 사는 아파트가 이렇게 연결된다고 상상해 보자. 엘리베이터 안에서, 길을 오가며 만나는 이웃이 조금은 달라 보이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한 도시가 이렇게 운영된다면 시민들은 서로를 지금과는 조금은 다르게 바라보게 될 것 같다. 과일집에서는 의도적으로 무엇이 뱃즈인지 굿즈인지 그 경계가 허물어지도록 공간이 디자인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허물어진 가치들의 경계 사이에서 숨어있던 또는 존재하지 않았었던 가치들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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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원
울산과학기술원(UNIST) 도시환경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법명은 원광(圓光).
과학예술융합 연구센터 사이언스월든 센터장을 2015년 이후 맡고 있다. 2016년, 2017년 씽크탱크 Edge 재단에 ‘똥본위화폐’, ‘중용의 비움’ 에세이를 발표했다.
통일부 (사)북한물문제연구회 창립멤버로서 북한주민이 겪고 있는 물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또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 물이 부족하고 수질이 나쁜 작은 마을에 전기없이도 안전한 물을 생산할 수 있는 ‘옹달샘’ 정수기 공급프로젝트를 2006년 이후 진행하고 있다.
저술로는 <이것은 변기가 아닙니다>(2021년, 개마고원)과 <금간 거울 산산조각 내기>(2020년, 파티)가 있다.사이언스월든 센터 웹: ScienceWalde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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