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반은 연결로 만들어지며 인프라는 건설된다”
똥을 치워 위생적으로 처리하여 자연에 내보내는 수세식화장실, 하수관로, 하수처리장 시스템은 우리 사회 ‘인프라Infrastructure’로 건설되었다. 똥, 오줌이 치워져 똥, 오줌을 눈 것 같지 않은 위생적인 결과를 우리는 원한다. 즉, 하수처리장과 같은 인프라는 그곳에서 일어나는 이후의 결과가 과정을 포함하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특징을 갖는다. 차를 타고 어떤 장소로 가고자 할 때 도로를 이용하는데, 가고자 하는 목적지로 빨리 가기를 원하지 도로 위 시간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도로는 인프라이다. 강과 바다를 건너 이동하고자 할 때 인프라인 교량을 이용해야 한다. 도로와 교량 위의 시간, 삶이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다. 도로와 교량 위에서 보내는 이동시간은 가능하면 짧게 하고 빠르게 어딘가를 가서 해야 할 일이 있다. 똥을 치우는 위생 처리 시스템 과정에서의 삶이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신속하게 이를 처리해서 부피와 질량을 줄이고 냄새를 없애야 한다. 이렇듯 인프라는 건설되어 우리 사회가 별 문제 없이 원하는 목적을 이루는데 역할을 한다.
‘기반Ground’은 인프라와 많이 닮아 있지만 분명 다르다. 사전에서는 인프라를 사회기반시설이라고 해석하지만, 인프라와 기반은 여러 면에서 차이점이 있다. 우선 인프라는 건설되고 기반은 형성된다. 기반은 오랜 기간 형성되지만 인프라는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건설된다. 인프라는 큰 계획을 결정한 이후에 세부 계획에 따라 실행되지만 기반은 형성되어 가면서 무수한 결정들이 상황변화에 따라 이루어진다. 머리카락이 자라는 것은 기반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으로, 이발하는 것은 인프라 건설로 볼 수 있다. 나이가 들어 얼굴에 생기는 주름살은 한 사람의 인생이 담긴 기반이다. 주름살을 의학적으로 폈다면 인프라를 만든 것이다. 숲이 우거진 산에서 옹달샘으로 가는 동물들의 길은 가파른 절벽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가다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길이므로 산에 사는 동물들 삶의 기반이 되었다. 마을과 마을을 걸어서 이동하던 시절 시장이 형성되고 서로 방문하기 위해 길이라는 기반이 만들어 졌을 것이다. 그래서 기반이라는 이름의 길은 구불구불하다. 만약 마차가 가기 위해 마을사이의 도로를 반듯하게 만들었다면 기반이라기보다는 인프라에 가까워진다. 기반은 연결로 만들어지며 인프라는 건설된다. 연결로 만들어지는 기반은 구석구석 흘러들어가며 인프라는 핵심적인 곳 위주로 건너뛴다. 기반은 진화하지만 인프라는 낡아간다. 그래서 기반은 존재를 드러내지 않지만 인프라는 차별됨으로써 존재감을 나타낸다. 기반은 우연이지만 인프라는 필연이기도 하다.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선택하여 건설되므로 불균형, 불평등을 피하기 힘들다. 기반은 마음들이 엮여서 만들어질 수 있지만 인프라는 돈과 자본을 투자해야 건설된다.
현대사회는 도시, 시골 구분 없이 인프라가 기반을 압도하는 현실이다. 인프라는 인공적으로 단기간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판단하여 자연스럽게 형성된 기반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도로가 아닌 길로만 걸어서 다는 사람을 난 본적이 없다. 우리가 마시고 여러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물도 기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대부분 인프라로부터 제공된다. 입는 옷, 먹는 음식, 사는 집, 에너지, 통신 등도 거의 인프라에 의존한다. 학교는 기반인가 인프라인가? 해석이 다를 수 있지만 인프라에 가깝다고 판단한다. 병원도 비슷하다. 넓게 보면 우리 사회의 법, 정치 등도 기반의 모습으로 형성되기 보다는 인프라처럼 만들어지는 것이 현대사회의 특징이다. 복잡해진 사회, 국가가 기반으로만 유지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해 보이며, 사회, 국가 자체가 인프라들의 집합체처럼 보인다.
“자연을 인간 반대 축에 놓고 가치 매기는 것 극복해야”
그럼 자연이라는 것은 기반인가, 인프라인가? 인간과 도시에게 자연은 기반인가 인프라인가? 이 질문을 하고 나니 자연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이 글의 초반 자연이라는 개념을 얘기한바 있다. 빽빽하게 나무들이 있는 숲, 아마존과 같은 늪지대, 광활한 빙하가 있는 북극, 푸른 하늘 아래 넓은 풀들이 펼쳐져 있고 버팔로 물소떼가 있는 초원 등을 자연이라고 우리는 대개 이해한다. 빌딩 숲 도시라 하더라도, 키 큰 나무가 들어서 있고 푸른 풀밭이 있는 공원이 있으면, 우리는 자연과 함께 하는 도시라고 한다.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연을 한 축으로 하는 다른 축을 떠 올려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인간이라는 축이 그것이다. 자연의 반대쪽에 인간이 있는 것이다. 양 극단이다. 인공적인 빌딩, 인공적인 구조물을 우리는 자연의 반대 편으로 받아들인다. 수업시간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옆자리 친구와 함께 지금부터 30분간 자연을 연구하여 발표해 보자고 제안하면, 거의 모든 학생들은 친구와 함께 교실 밖으로 나가 나무를 찾든지 연못가로 갈 것이다. 그곳에 자연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연nature은 “스스로 그렇게 되는 사물”인데 자연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따로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다’라고 믿지만 정작 자연을 연구할 때는 인간이 만든 것들을 자연이라고 보지 않는다. 물은 자기 스스로 아래로 흐르고 수증기가 되면 위로 증발한다. 자연이다. 사과가 익으면 사과나무 아래로 떨어지고 사과에 힘을 가하면 중력을 거슬러 위로 올라간다. 이것 역시 자연이다. 배고픈 사자는 기린을 사냥해서 굶주린 배를 채운다. 자연스럽지 못한 행동인가? 아니다. 지극한 자연이다. 사자가 기린을 필요이상으로 많이 사냥해서 시원한 동굴에 보관하면서 먹다가 일부를 다른 사자에게 팔지는 않지 않은가. 이렇게 자연을 이해하다 보면, 자연은 기반인가, 인프라인가 라는 질문에 답을 하는 것 자체에 의심을 하게 된다. 애당초 질문을 올바로 했었어야 한다. 즉, 어떤 기반이 형성되고 있다면 그 기반은 자연스러운가? 어떤 인프라가 계획되고 건설되고 있다면 그 인프라는 자연스러운가 라고 물어야 하는 것이다. 자연은 기반인가 혹은 인프라인가라고 질문하는 순간 자연은 인간의 반대편에 위치하게 되고 인간 사회를 위해 극복하고 이용되는 재료로 전락해 버린다. 근대사회로 나아갈 때, 자연이라는 개념이 개인과 인간 개념과 함께 큰 기여를 했다면, 현대사회는 자연을 인간의 반대 축에 놓고 모든 가치를 매기는 것을 극복해야만 새로운 시대를 갖게 된다.
“똥 처리 하수시스템 인프라에서 기반으로…”
이제 인프라, 기반 그리고 자연이라는 개념을 똥을 처리하는 시스템에 적용해 보았으면 한다. 똥을 처리하는 자연스러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하수처리율이라는 말이 있다. 발생하는 하수 중에서 하수처리시스템으로 처리되는 비율을 말한다. 하수처리율 90%라고 하면 발생하는 하수 중 90%는 처리되고 10%는 하수처리장 등에서 처리되지 않고 하수 그대로 버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선진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는 중앙집중식으로 운영되는 하수처리장을 이용하여 하수를 처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하수를 한 곳에 모아 처리하는 하수처리장 중심 하수처리시스템은 인프라이다. 하수처리비용을 매달 납부하는 시민들은 똥, 오줌을 포함하는 하수를 어렵지 않게 버림으로써 깨끗하고 위생적인 환경을 보장받는다. 하수처리장에 의해 하수가 처리되어 도시가 위생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면 시민들은 다른 것에는 대개 관심이 없다.
똥을 처리하는 하수처리시스템을 인프라에서 기반으로 바꿀 길은 과연 없는 것일까? 집집마다 나오는 하수와 화장실의 똥을 만약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기술이 가능하여 도시에 적용된다고 가정해 보자. 아파트와 빌딩 단위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도시의 가구들을 모아 블록단위로 이루어진다고 상상해 보자. 경제성, 사업성이라는 경제논리는 잠시 접어두고 다른 모습의 도시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똥은 바이오에너지로 바뀌고 다시 연료전지발전으로 전기가 생산될 수 있다. 하수는 과학적인 수(물)처리 기술로 정화되어 도시 속에서 재이용된다. 이제 하수의 흐름을 포함하는 도시 속선의 일부가 바뀌었다. 새로운 선들은 도시인들에게 다른 경험을 제공하고 다른 기억들을 남기게 된다. 에너지, 물 절약, 전기의 형태로 이제껏 없었던 가치가 생겨, 이를 그 지역 도시의 지역화폐로 만들어 주민들에게 기여한 만큼 나누어줄 수도 있다. 새로운 지역 경제가 생기게 된다. 아파트 주민들의 똥으로 만들어진 전기로 아파트 주민들은 전기자동차 충전을 할 수 있고 전기료는 지역화폐로 지불할 수도 있게 된다. 아파트 상가의 식당에서도 아파트에서 제공되는 전기를 이용하여 주방요리를 하고 식당 음식 값의 일부를 지역화폐로 받고 운영한다.
“반려동물 똥·음식물 쓰레기도 미생물에게 훌륭한 먹이”
“기반 중심 도시 흐름 만들어 가는 노력이 ‘똥본위화폐’”
아파트 단지 내 반려견들의 똥도 아파트 바이오에너지 발전시설에서 활용한다. 반려견들도 아파트단지 주민들과 그렇게 연결되게 된다. 이런 도시 지역화폐의 가치기준은 어디에 있는지 사람들은 궁금해 할 수도 있다. 인간노동인가? 시간인가? 정부가 정해준 여러 신용시스템 속의 가치인가? 의아해 하고 고민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기본적인 변화로 부터 가치를 생각하게 되고, 새로운 변화의 흐름이 그 도시의 선이 되고, 그러한 선으로 이루어진 도시만의 주름살, 즉, 도시의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믿게 된다. 생태이다. 이 생태 속에는 인간도 자연스런 흐름을 따라가면서 생활하게 되어 딱히 인간의 축과 자연의 축으로 분리할게 없어진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 아파트 주민들은 똥뿐만 아니라 음식물쓰레기도 바이오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미생물의 훌륭한 먹이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파트 주변 주민들에게도 음식물쓰레기를 함께 에너지와 전기로 만들자고 제안하게 된다. 가져온 음식물 쓰레기양만큼 지역화폐를 지불하고 인근 주변 주민들도 아파트 내 전기충전 시설을 지역화폐를 매개로 함께 사용하게 된다. 인근 주민들은 도시지역이지만 도시농업을 하는 주민들이 많아 아파트 주민들에게 지역화폐를 받고 자신들이 재배한 농산물 채소를 판매하기도 한다. 에너지를 만들고 남은 똥과 음식물쓰레기는 도시농업 퇴비로 만들어져 지역화폐로 거래된다. 아파트와 인근 지역의 은퇴한 선생님들은 지역 아동들의 방과 후 돌봄 교사로 일하고 지역화폐를 임금으로 받는다. 인근 카페에서도 메뉴의 일부를 지역화폐로 지불할 수 있게 사업모델을 바꾼다. 지역화폐를 받아주는 카페에는 일반 화폐(돈)를 이용하는 손님도 더 늘어났다. 마을에 있는 대형극장에서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기반으로 바뀐 도시 시스템 속 하수, 똥, 에너지의 흐름은 돈으로 연결되고, 연결은 도시민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준다. 도시는 덕분에 새로운 주름살이 생기고 그 도시의 보조개처럼 상징이 된다. 상징은 또 다른 출발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할 것이다. 이것이 도시와 자연을 양 극단에 두고 해결을 모색하던 방법에서 기반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도시 속 흐름을 만들어 가는 노력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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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원은
울산과학기술원(UNIST) 도시환경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법명은 원광(圓光).
과학예술융합 연구센터 사이언스월든 센터장을 2015년 이후 맡고 있다. 2016년, 2017년 씽크탱크 Edge 재단에 ‘똥본위화폐’, ‘중용의 비움’ 에세이를 발표했다.
통일부 (사)북한물문제연구회 창립멤버로서 북한주민이 겪고 있는 물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또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 물이 부족하고 수질이 나쁜 작은 마을에 전기없이도 안전한 물을 생산할 수 있는 ‘옹달샘’ 정수기 공급프로젝트를 2006년 이후 진행하고 있다.
저술로는 <이것은 변기가 아닙니다>(2021년, 개마고원)과 <금간 거울 산산조각 내기>(2020년, 파티)가 있다. 사이언스월든 센터 웹: ScienceWalde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