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6. 마음 나누기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6. 마음 나누기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1.06.28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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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었어
잘 있는 거지

누군가 물어 봐 줄 이 있다면
잘 산거야

잘 계시죠.
 

#작가의 변
중학교 다닐 때 체육시간을 싫어했다. 체육시간에 비가 와서 체육을 그냥 교실에서 했으면 하고 간절하게 바라니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훈련병 시절 줄 타고 올라가고 줄 타고 건너고, 까마득한 곳을 기어오르는 유격훈련을 하기 싫어 마음속으로 눈이 오길 바랐다. 아침에 눈이 펑펑 쏟아 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쓸데없는 일에 나의 간절한 소망을 다 소비한 것만 같아 화가 난다.
금도끼 은도끼 우화처럼 어쩌면 나에게 있었을지도 모르는 기회를 그렇게 날려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밴쿠버는 요즘 낮 기온이 30도가 넘게 푹푹 쪄서 80년 만의 더위니 하는 보도가 있었다. 어제 밤에 잠잘 때 창문을 열어 놓고 잤더니 코가 맹맹하다. 누가 내가 잠든 사이에 창을 닫았는데도 아침 기온이 아주 뚝 떨어져서 춥다. 춥다는 말은 낮 기온에 비해 춥다는 말이다. 사실은 가장 알맞은 온도이다.
다운타운 길거리에서 늘 마주치는 노숙자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이 덥고 추운 날씨에 그들은 어찌 지낼지, 내가 그냥 푹푹 찌는 한낮에 겨울 잠바를 입고 열기를 내뿜는 콘크리트에 누워 있는 상상을 한다. 밤엔 추우니 옷을 벗어 놓을 수도 없고 벗어서 훔쳐 온 카터에 담아 놓으면 잃어버리기 십상이니 말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고 또한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부처님 가운데 토막, 예수처럼 한쪽 뺨을 맞고 다른 뺨을 내미는 사람이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란 사람이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산다면 어쩌면 바보소리 듣기 딱 좋은 세상 아닐까?
무식하고 용감하게 일하지 말고 스마트하게 일하라고 말한다. 때론 스마트 하게 일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스마트의 뜻은 ‘약삭빠르게’에 더 가깝다. 뺀질뺀질 자기가 해야 할 일도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다른 사람이 이루어 놓은 일은 내가 한 일처럼 포장을 잘한다. 윗사람들에게 아부를 잘하고 힘든 일은 다른 사람들이 하도록 한다.
어쩌다 보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 설자리가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고 예수가 돌아 와도 교회에서 이단으로 몰리기 딱 좋은 세상이 되어 버렸다.
신학대도 안 나오고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내가 예수라고 나사렛 예수처럼 소리 지르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이단이라고 거지라고 하지 않을까? 부처님처럼 다 헤어진 가사장삼을 걸친 거지같은 제자들을 데리고 탁발을 하러 다닌다면 가택 침입으로 신고 받지는 않을까? 그런 부처님을 알아보고 부처님의 제자가 될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질문은 꼬리를 문다. 쓸데없는 상상일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슬람 종교를 믿는 동료가 자기 남편은 자기가 번 돈은 가능하면 생활비로 쓰거나 건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냐면 이슬람에서 여자 돈을 쓰는 것은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한다.
BE a man!이라고 사람들이 손가락질 한다고 한다. 남자처럼 행동하라고 하면서. 이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는 종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여자가 번 돈은 깨끗하지 않은 돈이니 쓰면 안 된다는 소리로 들린다. 여자는 경제활동을 하지 말고 남자의 부속품처럼 살라는 소리처럼 들린다.
물론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그걸 들은 은퇴할 때도 지난 필리핀계 동료가 자긴 절대 남편에게 자기의 통장에 얼마가 들었는지 알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자녀인 딸에게도 남편에게 절대 네가 얼마를 가지고 있는지 말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차를 공동으로 사자고 남편이 말해서 “당신 돈으로 사. 난 필요 없어. 난 운전도 할 줄 모르거든.”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요즘 같은 힘든 시대에 같이 맞벌이를 하지만 딴 주머니를 차고 함께 도우며 생활하지 않는다면 그 결혼생활은 건조하고 남자의 희생이 바탕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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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살고 있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학원을 다니면서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 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 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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