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본위화폐] 21. 장소화폐, 이벤트화폐
[똥본위화폐] 21. 장소화폐, 이벤트화폐
  • 조재원 울산과학기술원 교수
  • 승인 2021.08.17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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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전혀 다른 개념의 만남이 생겨났다. 팬데믹 이후 원래의 이동을 많은 부분 회복되겠지만 공간(空間)과 장소(場所)의 혼돈은 새로운 만남과 공간 개념 질서로 자리 잡을 것이다. 그야말로 빈(空) 스페이스 사이(間) 장소로서의 공간 말이다. 장소의 붕괴와 확장은 당분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코로나로 전혀 다른 개념의 만남이 생겨났다. 팬데믹 이후 원래의 이동을 많은 부분 회복되겠지만 공간(空間)과 장소(場所)의 혼돈은 새로운 만남과 공간 개념 질서로 자리 잡을 것이다. 그야말로 빈(空) 스페이스 사이(間) 장소로서의 공간 말이다. 장소의 붕괴와 확장은 당분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른 아침 지하철을 1시간 정도 타고 부산역으로 간다. 부산역 카페에서 30분을 보낸다. 고속열차 KTX 또는 SRT를 이용하면 서울역 또는 수서역까지 약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기차 안에서 이메일을 확인하면서 마감이 임박한 원고를 작성하기도 한다. 서울역, 수서역에서 내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미팅장소로 이동한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다시 카페에 들어가 오늘 미팅자료를 살펴본다. 미팅은 1시간 30분 정도 만에 끝났다. 지방인데도 불구하고 멀리서 미팅에 참석해 주어 고맙다는 얘기를 듣는다. 나도 전화나 이메일로 하지 않고 직접 와서 얼굴을 보면서 회의한 결과에 대체로 만족한다. 많은 일들이 왜 서울에 와야 해결되는지 잠시 의아해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고속열차가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서둘러 서울역으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여 고속열차로 부산으로 향한다. 집에 도착하니 저녁시간이 넘어있다. 늦은 저녁을 먹는다.

“규정·틀 이용한 관리는 결국 효율에 자리 내줄 것”

이런 패턴은 기업과 연구소 근무자, 공무원, 학자, 학생, 모두에게 비슷하다. 짧은 미팅을 위해 몇 일간의 해외출장을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미래사회로 갈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먼 곳으로 가서 목적을 해결하고는 빨리 제자리로 돌아오는 경쟁이라도 하는 듯하다. 전화, 이메일, 스카이프, 줌 등으로 하기 보단 직접 만나서 해야 할 일, 토론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며 때론 식사라도 함께해야 이루어지는 일도 있을 것이다. 긴 출장 여정에 비해 출장의 핵심 목적인 회의는 정작 몇 시간 되지 않는다. 서울 출장여정 12시간 중 회의는 겨우 1~2시간 정도이고, 해외출장의 경우는 숙박까지 포함되어야 하니 전체 여정에 비하면 출장의 목적인 업무시간은 상대적으로 더 짧아지게 된다.

효율을 엄청나게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에서 왜 이런 비효율적인 출장이 가능한 것일까? 시간낭비, 돈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동하는 교통수단이 초고속으로 변한 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비록 비율로는 출장 목적회의 시간이 짧지만 그래서 하루 안에 다녀올 수 있고, 해외의 경우에도 1박 2일, 2박 3일과 같이 비교적 짧은 출장이 가능하다. 다른 이유로는 이동 중에도 계속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무실, 연구실과 큰 차이 없이 노트북, 스마트폰 등을 이용하여 일을 할 수 있다. 어느 곳에 있던 전화, 이메일 등으로 연결된다. 사무실과 연구실에 굳이 출근하지 않더라도 일하고 연구할 수 있으므로 일을 하는 시간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기 힘들게 되었다. 오직 성과로만 판단하게 된다. 여전히 출·퇴근시간, 노동시간을 이용하여 평가하는 곳이 있을 수 있겠지만, 미래사회로 갈수록 규정과 틀을 이용하는 관리는 결국 효율이라는 것에 자리를 내줄 것이다.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공간은 있되 장소는 사라졌다”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시간은 변하지 않겠지만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장소는 계속 바뀔 수 있다. 일하는 공간space은 존재하지만 장소place는 고정하기 힘들게 되었다. 이동공간속에서 일할 수 있으나 그 공간은 일하는 장소는 아니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사무실에서, 지하철, 열차, 비행기 등 이동 공간 속에서 일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사무실도 한 곳에 고정시키지 않고 프로젝트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공유오피스를 일정기간 빌려 사용하기도 한다. 공간은 있되 장소는 사라졌다(마르크오제Marc Auge, 비장소성).

이런 변화는 갈수록 가속화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럼 이런 변화에 적응하면서 준비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적응해서 준비하는 것만으로는 생존하기 힘든 변화가 올 것 같다. 먼저 정규직이라는 것이 무색해지고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 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직장의 갈등이 문제가 아니라 정규직이라는 개념이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일의 장소가 특별하게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항상 그 장소에서 정해진 일을 하는 노동의 가치가 높을까, 아니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 이는 회의적이다. 정부의 역할이 계속 강력하다면 많은 공무원이 필요할 것이고 그 공무원들의 권한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분수 형태의 사회 구조가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디지털시대의 큰 변화 물결 속에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여 한시적으로는 유지될 수는 있지만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구조는 아닌 듯하다. 민간 경제활동, 사회적 활동의 엄청난 변화 속에서 여전히 거대한 정부가 필요할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 큰 변화는 사회기반의 사라짐이다. 이것은 정규직 개념의 사라짐보다 큰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다. 미래사회는 인프라 시설이 거대해지면서 사회의 기반이 사라지는 특징을 가진다. 모든 사회기반social grounds은 인프라 시설로 대체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국가, 도시계획에 의해 계획되고 건설될 수 있는 인프라 시설과는 달리 사회기반은 장소와 시간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일로 만나 회의하는 것을 돕는 인프라 시설은 넘쳐나지만 우연히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반은 우리 사회에서 계속 사라지고 있다. 고속도로, 고속열차 인프라는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도로가 아닌 길은 더 이상 찾기 힘들다. 길의 존재는 도심 빌딩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카페골목, 먹자골목 등에서 겨우 확인할 수 있다. 길가 흡연자, 노숙자를 통해 이곳이 도로가 아닌 길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골목길에서 공을 차는 어린이들을 만나기는 이제 힘들다. 우리 사회는 이제 시간과 공간만 남고 장소와 이벤트는 사라지고 있다.

사회 인프라는 필요하다. 다만 인프라는 그 특성상 정치성을 띨 수밖에 없다. 인프라에 절대 공정이 가능한가? 아쉽지만 아니다. 건설되고 나면 공간은 틀을 갖고 특정 장소가 된다. 인간관계로 만들어지는 공간 속 장소가 자연스럽지 못할 때 성장은 가능해도 인간의 “간(間)”은 결국 무너진다.
사회 인프라는 필요하다. 다만 인프라는 그 특성상 정치성을 띨 수밖에 없다. 인프라에 절대 공정이 가능한가? 아쉽지만 아니다. 건설되고 나면 공간은 틀을 갖고 특정 장소가 된다. 인간관계로 만들어지는 공간 속 장소가 자연스럽지 못할 때 성장은 가능해도 인간의 “간(間)”은 결국 무너진다.

되돌리는 것은 힘들 것이다.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기반의 붕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엄청난 속도로, 일하고 경제를 살림으로써 돈을 벌어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 끝을 미리 살펴야 한다. 은퇴하여 살 전원주택, 멋진 별장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속에서 갈 곳, 사람들을 우연히 만날 수 있는 곳, 나 자신과 만나 삶을 고민할 곳 말이다. 그 속에 일도 있고 삶도 있는 것이다. 그곳이 사회기반이라는 장소이며, 장소에서 일어나는 우연한 만남은 이벤트가 된다. 공간과 시간은 형식에 불과하다. 이 형식 속에 장소와 이벤트가 채워져 기억이 되고 사회를 지탱하는 문화가 되는 것이다. 이 기반이 사라지면 인간은 더 이상인 ”간(사이간間)”이 아니게 되며, 오직 사이보그 사람들이 사는 도시만 남게 된다.

“장소·이벤트 만들어 낼 때 도시는 생명·고유한 색깔 가져”

누군가 대안이 있냐고 반문한다면 그래도 아직 대안이 분명 있다고 대답하고 싶다. 그것은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앞으로 더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선, 도시 속에서 장소로 남아 있는 곳을 인프라 시설과 도로로 바꿔서는 안 된다. 그렇게 바꿔가다 보면 도시는 길 없는 빌딩과 자동차 도로와 주차장으로 변모해 버릴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들면, 서울 청계, 을지로 정밀기계상가이다. 이벤트와 장소가 살아 있는 우리 시대 마지막 산업생태계 기반인 이곳을 철거한다면 한때 존경 받았었던 그 정치인은 영혼 없는 인물로 우리에게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도시 속 아직 남아 있는 기반을 살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프라 시설과 빌딩, 도로, 지하철로 이미 채워진 공간 속에서 장소와 이벤트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때 도시는 생명을 가지고 그 도시만의 고유한 색깔을 갖게 된다.

가격 할인을 하는 백화점에 사람들은 몰린다. 저렇게까지 경쟁적으로 갈 만큼 매력 있나 싶지만, 특별할인이라도 하면 쇼핑몰 개장과 함께 사람들은 달려간다. 맛있다고 소문난 만두가게, 길거리 핫도그 가게에는 언제나 길게 줄을 서야 한다. 도시 속 이런 가게들이 도시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도시는 마치 소비로만 그 정체성을 나타내는 듯하다. 그 뜨거운 관심은 때론 차갑게 식어 다른 가게로 이동하기도 한다. 소비자는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이런 흐름을 읽어낸 사람들은 큰돈을 벌기도 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똥본위화폐도 도시 속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미국 콜로라도 보울더 브로드웨이 거리 어떤 커피 가게에 몇시 이후에 가면 커피를 똥본위화폐로 즐길 수 있고, 뉴욕 브로드웨이, 서울대학로 어떤 연극은 똥본위화폐로 결제가능하게 될 수 있다. 똥본위화폐로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강의를 듣고 책도 구입할 수 있으며 예술 전시회도 갈 수 있다. 이런 모습은 도시를 지금과는 사뭇 다른 색깔을 띠게 할 것이다.

똥본위화폐는 내러티브를 향해 있다. 인간관계, 삶 속에서 장소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 패딩턴 역 부근 똥본위화폐로 에일 맥주를 즐길 수 있는 펍이 있다면 이곳은 우리들만의 장소가 될 수 있다.
똥본위화폐는 내러티브를 향해 있다. 인간관계, 삶 속에서 장소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 패딩턴 역 부근 똥본위화폐로 에일 맥주를 즐길 수 있는 펍이 있다면 이곳은 우리들만의 장소가 될 수 있다.

“똥본위화폐, 언어, 디지털 기호로 이루어지는 도시의 이야기”

똥본위화폐는 디지털화폐이다. 스마트폰으로 거리를 비추면 꿀화폐를 받아 주는 가게가 뜨고 그 가게들을 옮겨 다니며 데이트를 할 수도 있다. 광주 금남로 길에는 금남로 길만의 똥본위화폐로 구입할 수 있는 가게 지도가 생기고, 영국 런던에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색깔을 가진 지도가 생길 수 있다. 똥본위화폐 지도에는 가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리에서 우연히, 즉흥적으로 만나 독서토론, 인문학강좌, 수학강의 등도 할 수 있도록 연결시켜 줄 수도 있다. 그 지도는 시시각각 바뀐다. 그곳 장소들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이벤트로 도시와 농촌을 살리는 똥본위화폐를 만드는 것이다. 디지털시대에는 얼마든지 이런 것들을 스마트폰 세상에 그릴 수 있다. 이 지도를 이용하여 국내여행 뿐만 아니라 세계여행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길 위에서 삶의 길을 찾는 것이다.

커피 한잔이 10꿀인 가게도있을 것이다. 20꿀인 카페, 50꿀, 5꿀인 카페도 생긴다. 시간마다 바뀔 수 있다. 똥본위화폐를 받아주는 가게 지도가 도시에 생기고, 시간별로 그 지도의 커피 한잔 가격이 바뀌는 디지털 지도 또한 생기게 될 것이다. 이 또한 그 거리의 이벤트다. 가게주인 입장에서는 카페의 여유있는 커피를 누군가에게 기부하고 나누 듯 똥본위화폐에 제공할 뿐만 아니라, 가게의 스토리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똥본위화폐 아닌 화폐로 이루어지는 비즈니스도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이익이 발생하는 것은 맹자에서 얘기한 당연한 이치 아닌가. 이것이 디지털 언어, 디지털 기호로 이루어지는 도시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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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원
울산과학기술원(UNIST) 도시환경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법명은 원광(圓光).
과학예술융합 연구센터 사이언스월든 센터장을 2015년 이후 맡고 있다. 2016년, 2017년 씽크탱크 Edge 재단에 ‘똥본위화폐’, ‘중용의 비움’ 에세이를 발표했다. 통일부 (사)북한물문제연구회 창립멤버로서 북한주민이 겪고 있는 물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또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 물이 부족하고 수질이 나쁜 작은 마을에 전기없이도 안전한 물을 생산할 수 있는 ‘옹달샘’ 정수기 공급프로젝트를 2006년 이후 진행하고 있다. 저술로는 <이것은 변기가 아닙니다>(2021년, 개마고원)과 <금간 거울 산산조각 내기>(2020년, 파티)가 있다. 사이언스월든 센터 웹: ScienceWalde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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