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 1. 지금 우리에게 동양철학은 무엇일까?
[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 1. 지금 우리에게 동양철학은 무엇일까?
  • 박병기 한국교원대 교수
  • 승인 2021.08.2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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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의 스승들: 석가와 노장, 공맹

사단법인 불교아카데미와 성평등불교연대가 ‘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를 주제로 비대면 온라인 특강을 25일과 9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갖는다. 강의는 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학과 교수이다. 박병기 교수(교원대)는 최근 역저《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를 펴냈다. 박병기 교수는 석가모니 노자 장자 공자 원효 지눌 휴정 등의 가르침을 통해서 '오늘 우리'의 성찰과 대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박 교수의 강의원고를 나눠 게재한다.

 

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1)
동양철학의 스승들: 석가와 노장, 공맹

지금 우리에게 동양철학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동양(東洋, orient)이라는 말은 친숙하면서도 낯선 개념이다. 우리가 서양인이 아닌 동양인이라는 사실에서 친숙함이 나오고, 그 동양 또는 동양인이라는 이름이 스스로 지은 것이 아니라 서양인들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지어준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낯설음과 만나게 된다. 동양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아마도 고대 그리스의 알렉산더 왕이 자신의 영토를 기준으로 삼아 동쪽으로 침략을 감행하면서부터일 것이다. 그 후 범위가 그들의 목적에 따라 지속적으로 넓혀졌고, 그런 점에서 동양이라는 개념은 서양을 전제로 해야만 성립할 수 있는 상대적이고 불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다.

동양철학은 어떤가? 이 개념은 동양이라는 상대적인 개념에 철학이라는 수입개념이 더해져 성립한 것으로 보다 복잡한 성격을 갖는다. 19세기 중반 서구를 먼저 받아들이고자 했던 일본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인 철학(哲學)은 필로소피(philosophy)의 번역어로 선택되어 동아시아 전반에 확산된 한자어이다. 주로 형식논리학을 기반으로 삼아 존재론과 인식론, 가치론 등을 하위 영역으로 거느린 서양철학은 근대 이후 인식론에 초점을 맞추다가, 20세기에는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을 분석하는 것으로 한 때 그 범위를 심하게 좁히기도 했다.

동양철학이 이처럼 불완전한 두 개념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서양철학에 대해 상시적인 열등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전통의 철학은 사상(思想)과 분리되기 어렵고 또 종교(宗敎)와도 특별히 구분될 필요가 없다. 종교가 절대적인 신을 전제하기보다는 보편적 하늘[天命]또는 진리[dharma] 개념을 토대로 성립하는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고, 삶과 사회가 직면하는 근원적인 물음들에 대한 답을 사상의 차원에서 찾아 제시하는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동양철학은 철학과 사상, 종교가 통합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고, 이런 통합성이 억지로 유일신 종교를 분리해내야만 했을 뿐만 아니라 사상과도 구별해내고자 했던 분석철학적 경향의 서양철학과의 비교 속에서 평가절하 될 이유는 없다.

일상의 삶 속에서 의미 물음과 문득 마주하게 될 때 우리는 철학이나 종교를 떠올린다. 그럴 때 마음을 내어 책방의 철학과 종교코너를 찾는다. 양으로는 동양철학책도 만만치 않지만, 그 중 많은 책들이 한문 투의 어법을 넘어서지 못해 제대로 읽기조차 어렵다는 또 다른 난관과 마주치게 된다. 아니면 점술이나 기복신앙 같은 것들을 부추기며 은근히 겁을 주는 수준의 것들일 가능성도 높다.

이 책(박병기·강수정, 《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 인간사랑, 2021)은 그런 동양철학의 현실을 직시하는 데서 출발한다. 사상과 종교, 철학 사이의 긴밀한 연계성에 주목하면서 동양철학에 대한 열등감과 우월감을 동시에 배제하는 것을 일차적인 전제 조건으로 삼고자 했다. 부제로 명시한 것처럼, 핵심 인물과 개념을 중심으로 노자에서 휴정에 이르는 동양과 한국사상가의 생각을 오늘 우리의 삶 속에 불러내는 방식의 체제를 택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오늘 우리 불교와도 맥이 닿아 있는 지눌을 호출해, 내 마음 속에 자리한 청정한 부처를 찾는 일이 어떤 의미로 재해석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우리 삶은 물론 전통적인 방식으로만 전개되지 않는다. 오히려 표면적으로는 서구적인 방식, 그 중에서도 미국적인 방식을 표준으로 삼는데 더 익숙해져 있기도 하다. 미국사람 보다 더 미국을 사랑하는 듯한 지식인을 주변에서 찾는 일이 어렵지 않을 정도다. 코로나19로 이른바 선진국의 맨얼굴을 충분히 볼 수 있게 되었음에도, 여전히 미국의 방역은 최고 수준이고 우리는 형편없다는 왜곡된 인식을 부끄럼 없이 드러내는 어떤 사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떠오르기도 한다. 문제는 더 이상 그런 삶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데서 생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삶의 내면에서 엄연히 작동하고 있는 사유와 실천의 습관을 형성하는 동양철학과 있는 그대로 만나야 하는 적기임을 확인해주는 근거 중 하나라고 할 만하다.(이 절은 강의자의 신간 소개 글,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하는 까닭>, <교수신문>, 2021년 7월 21일자에서 가져와 우리 강의에 맞게 약간만 수정한 것임을 밝혀둔다.)

동양철학의 스승들-석가와 노장, 공맹

그럼 동양철학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단 하나의 답은 없다. 각각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각자의 답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현실적 대안일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우리 각자가 이미 ‘동양인’으로 불리면서 ‘동양철학’의 직·간접적 영향 속에서 자라나 현재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것이 하나의 습관,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말을 빌리면 아비투스로 자리 잡아 스스로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체화되어 있어 제대로 인식할 수 없을 뿐인지 모른다.

우리 일상어와 대화를 잠깐 떠올려보자.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 자체보다는 그가 맺고 있는 관계나 나와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는데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관계에 집중하는 것은 주로 유교의 영향이고, 나와 맺고 있는 연결고리에 집중하는 것은 불교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대체로 나이가 들면 자연으로 돌아가 ‘전원생활’을 하고자 하는 귀소본능을 좀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는데 그것을 주로 도교의 영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재 우리의 삶 속에 유교와 불교, 도교가 살아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따지는데 더 익숙하고, 가능하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성과를 추구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로도 살아내고 있다. 오히려 표층적 차원에서는 이런 성향이 더 강하고, 본능과 대치되는 이성의 힘에 대한 믿음도 강하다. 본능적 경향성에 근거해서는 윤리를 세울 수 없다고 강변했던 서구 근대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영향력이 휴정이나 율곡 같은 우리 사상가들의 영향력을 월등하게 넘어서고 있다. 더 우려할 만한 사실은 100여년 이상을 이 두 전통 사이에 우열관계를 설정해놓고 바라보는데 익숙해져 있는 점이다. 서산이나 율곡은 주로 역사책에만 등장하거나, 윤리교과서에 등장해도 현재 우리의 삶과는 관련이 없거나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다보니 동양과 한국사상가들은 수능시험 문제 속에서 왜곡된 모습으로 등장하거나, 일상의 대화 속에서 극복의 대상 또는 일방적 찬양의 대상이 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21세기 초반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것이지만, 인간이 특정 공동체의 구성원이기 전에 관계적 또는 연기적 존재임을 천명한 것은 불교와 유교이다. 연기적으로 의존하지 않거나 관계를 맺지 않으면 생존과 실존 모두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석가와 공자가 먼저 다르마(dharma)와 천명(天命)이라는 개념을 사용해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그들 이전에도 유사한 사상과 사상가가 있었지만, 이들의 경우는 종합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냄으로써 이후 역사에서 불교와 유교라는 동양의 대표적인 사상을 상징하는 인물로 부각되었다. 그 중에서 석가는 불교사상과 철학은 물론 종교로서의 불교까지도 아우르는 인물이 되었고, 공자는 주로 사상과 윤리로서의 유교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공자의 사상은 맹자에 의해 완성되면서 공맹사상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그럼 노자는 어떤가? 역사적으로도 비교적 자취가 분명한 공자와 석가에 비해 노자는 실존인물인지 조차 분명치 않다. 여러 설이 있지만, 대체로 <도덕경(또는 노자)>은 집단창작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강하다. 그에 비해 장자는 좀 더 분명한 삶의 궤적이 있는 인물로 노자의 사상을 계승하여 동아시아적 의미의 자유의 사상으로 발전시킨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도교는 노자와 장자를 합한 노장사상과 그것을 종교적 차원으로 전환시킨 좁은 의미의 도교사상으로 나뉜다.

이들 노장이 우리에게 누구 또는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두 가지 차원으로 답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앞서 이야기한 자연과의 관계를 확고하게 인식시킨 사상가들이라는 답이고, 다른 하나는 동아시아적 의미의 자유 개념을 각인시켜준 사상가들이라는 답이다. 서구적 뿌리를 갖는 자유는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소극적 의미와 무엇을 할 수 있는 자유라는 적극적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우리 동아시아인들은 이 자유를 내면에 흐르고 있는 진리에의 충실이라는 개념으로 받아 들여왔다. 중도와 중용, 소요유(逍遙遊)가 이런 자유 개념을 상징하는 말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 중도나 중용은 중간이나 가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흐르고 있는 진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의미이고, 소요유는 인간세상에서 통용되는 기준과 분별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이 세 사상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영향을 주고받았고, 불교와 유교는 우리 역사에서 삼국시대에서 고려, 조선이라는 시기 동안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도적인 사상이나 이념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도교의 경우는 이념으로보다는 선(仙)과 풍수, 무속(巫俗) 등과 섞여 함께해왔고, 일상의 철학으로 자리 잡아 삶의 방향을 잡아가는데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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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기 교수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윤리학과 도덕교육학을 전공했고, 불교원전전문학림 삼학원에서 불교철학과 계율을 공부했다. 전주교육대학교 교수, 한국교원대 대학원장,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생명윤리교육평가전문위원회 위원,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한국도덕윤리과교육학회장으로 2015 초· 중·고 도덕과 교육과정 개정 연구를 총괄했다. 주요 저서로 《윤리학과 도덕교육 1·2》(공저)《우리 시대의 문화와 사회윤리》, 《직업과 윤리》. 《아동인격교육론》, 《도덕심리학의 전통과 새로운 동향》, 《동양 도덕교육론의 현대적 해석》(문광부우수학술도서),《의미의 시대와 불교윤리》《딸과 함께 철학자의 길을 걷다》,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등이 있다. 역서로 《철학의 과업》(공역), 《도덕철학과 도덕심리학》(공역), 《보살의 뇌》(공역), 《윤리적 자연주의》(공역), 《도덕적 감정과 직관》(공역) 등이 있다.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교수이자 종합교육연수원장을 맡고 있으며, 계간 <불교평론> 편집위원장, 정의평화불교연대 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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