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본위화폐] 22. 기본소득똥본위화폐 Basic Income fSM
[똥본위화폐] 22. 기본소득똥본위화폐 Basic Income fSM
  • 조재원 울산과학기술원 교수
  • 승인 2021.08.24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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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와 같은 절박한 상황에서, 정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대중들끼리 서로 기본적인 삶을 서로에게 주기 위한 돈, 기본소득이 똥본위화폐로 가능하다. 어짜피 돈이란 믿음으로 작동되지 않는가? 정부와 은행이 그 믿음을 주듯이 대중도 해낼 수 있다.



“사람들 믿음과 연결로 만들어진 현금, 똥본위화폐”

똥본위화폐는 기본소득 역할도 할 수 있다. 매일 일정량 지불되고 똥본위화폐 시스템 속에 있는 사람 모두에게 조건 없이 지불된다. 똥본위화폐도 분명 현금이다. 사람들 간의 믿음과 연결로 만들어진 현금이다. 현재 통화로 지불되는 기본소득과 차이가 있다면, 정부의 세금에 기반 하지 않으며 똥본위화폐 기본소득의 일부는 동료와 나누고, 똥본위화폐이기 때문에 매일 조금씩 사라진다는 것이다. 한 가지가 더 있는데, 똥본위화폐의 성격이다. 가치의 기준을 인간노동이 아닌 인간 본연의 가치에 둔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10꿀이 나의 똥본위화폐 계좌에 입금되어 있고, 그중 3꿀은 나의 동료들에게 이미 나눠졌다. 비비화장실BeeVi toilet에 가지 않아도 매일 똥본위화폐 시스템이 모든 사람에게 10꿀을 지불한다. 이를 ‘기본소득 똥본위화폐’라고 한다. 이 돈은 매일 마이너스 7% 이율로 감소한다. 년 7% 마이너스 이율이 아니라 하루 이율이 –7%이다. 10일 후에는 반정도만남고 30일 후에는 약 10%만 남는다. 매일 감소하는 돈은 저장할 수 없다. 활용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빨리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영화를 예약하든 책을 주문하든지 미리 지불하면 할수록 유리하다. 똥본위화폐로 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그날 바로 사용하는 것이 그냥 사라지게 놔두는 것 보다 유리하다.

돈을 쓰지 않았는데도 계정에서 사라지는 경험을 우리는 한 적이 없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나무에서 사과를 수확하고 사과를 바로 먹지 않고 놔두면 사과는 하루가 다르게 시들어 결국 먹지 못한다. 물고기를 잡아도 마찬가지다. 온도를 맞추고 포장하여 오랫동안 싱싱한 사과와 물고기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인간이 찾아내었고 만들어낸 방법이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인위적인 방법으로 사라질 가치를 유지시키고 없던 가치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방법은 가치롭지만 부작용도 생긴다. 냉장고에 보관해둔 과일과 생선이 있어 시장에 자주가지 않아도 된다. 그 계절, 그 장소에서 형성 되었어야 할 시장의 패턴이 달라져 버렸다. 달라진 패턴이 잘못이라는 뜻이 아니라, 생산, 소비, 시장이 달라진 현실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인간노동이 가치 출발이라는 생각,
더 이상 합리적인 논리가 아니다”

동전과 지폐, 즉, 교환의 수단은 재화와는 달리 사라지지 않는다. 돈(동전, 지폐, 지금은 신용화폐)은 수단일 뿐이지만, 가치는 사라져도 돈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불어날 수 있다. 돈은 자본이 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때로는 실제의 돈보다 훨씬 큰 자본이 만들어 진다. 파생상품derivatives과 같은 새로운 자본이 탄생하기도 한다. 경이로운 논리이고 이론이 되었다. 자본capital은 사라질 수 있지만 돈money은 남는다. 남은 돈은 또 다른 자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가치, 자본 이전에 인간의 노동이 있었다. 아담 스미스는 노동이 가치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인간노동이 가치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자본으로 인해 생기는 이익도 인간노동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노동을 제공한 노동자에게 정당하게 지불되어야 한다. 이것이 당연한 주장인 것은 모든 가치는 노동으로부터 나왔다고 믿기 때문이다. 반면, 자본가는 노동이 만들어낸 가치와는 차원이 다른 가치를 자본이 만든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본이 만든 가치가 노동이 만든 가치에 비해 크다고 믿는다. 자본소득이 노동소득보다 훨씬 높아도 이상하지 않은 이유이다. 우리 사회가 그러하다. 하지만 자본가도 가치의 출발은 인간의 노동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최소한 지금은 그렇다. 가치에 대한 믿음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인간노동이 가치의 출발점이라는 논리다. 인간노동이 가치기준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신성한 인간노동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자본가의 믿음이다. 한정된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인간노동과는 달리 자본은 무한하기까지 한 가치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자본이 만들어 내는 무한한 가치에 대한 기준은 여전히 인간의 노동이다. 자본가도 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은 인간이 발명한 것이다. 돈도, 자본도 인간이 발명하였고, 인간노동이 가치의 출발점이라는 믿음도 인간이 만들었다. ‘인간노동은 신성하다’와 ‘인간노동이 가치의 출발점’이라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인간노동이 가치기준이 아니라고 하여 인간노동이 신성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자본이 만들어낸 재화에 대한 자본가의 몫이 크다는 믿음은 인간노동이 가치의 출발점이라는 믿음과 어쩔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물론 이 연결고리를 어느 정도는 끊어 버릴 수 있다. 그것이 사회주의 방법이다. 사회주의는 인간노동의 가치를 여전히 존중하지만 국가가 어느 정도는 가치의 분배를 공정하고 공평하게 할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 사회주의 역시 인간이 발명한 방법을 지닌 제도이다. 즉, 이 모든 것은 인간이 만들어 내었다. 이 말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라는 의미다. 선택은 또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인간의 노동이 가치의 출발점이 아닐 수 있다는 전혀 다른 개념을 우리는 선택할 수도 있다. 또한 돈이 자본을 만들고 자본은 또 다른 자본을 만든다는 것에 반대할 수도 있다. 인간의 노동이 아닌 인간 자체에 가치의 출발점을 두는 것, 자본의 출발이 된 돈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인간노동은 신성하다”와 “인간노동이 가치의 출발점이다”는 다르다. 인간노동이 가치의 기준이라는 오랜 믿음이 지금 자본의 가치와 부의 재분배 불공정에 관여했고 여전히 하고 있다면, 가치의 기준을 노동에서 인간 본연으로 되돌릴 필요 있다. 디지털 시대에는 말할 나위 없다.



인간노동은 당연히 신성하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인간노동의 가치 때문에 인간이 소외된다고 하여도 여전히 인간노동이 인간자체의 본질보다 우선시 될 수 있는가? 임금노동은 어쩔 수 없이 자본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다. 무임금 노동은 불행히도 무임금 노동을 하는 사람도 그 가치를 느끼기 힘든 사회가 되었다. 하물며 노동할 수 없는 인간은 어떠하겠는가? 미래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신하여 많은 일들을 하고 로봇이 노동하는 세상에서 여전히 인간노동이 가치의 기준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로봇의 노동은 인간의 노동이 아니라 자본이 하는 노동이다. 그러므로 로봇의 노동으로 생기는 가치와 재화는 자본가에게 그 소득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인간노동이 가치의 출발이라는 생각은 더 이상 합리적인 논리가 아니다. 인간노동이 아닌 인간으로 그 가치의 출발을 한 단계 끄집어내려야 하는 이유다. 그것이 똥본위화폐 철학이다.

일단 손에 쥔 돈은 놓기 싫어하고 가능하면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싶어진다. 돈이 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창조적 경제활동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돈이 돈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경제활동의 수단(medium or signifier of an economic system)인 돈은 본래 임무인 가치교환보다는 자본형성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돈은 애당초 미래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만들어 졌다는 것을 상기했으면 한다.

“현재 돈·자본 체계 유지하면서 새로운 돈 통용
두 개의 돈이 통용되는 사회 시스템 디자인“

가치는 욕망과 두려움으로부터 나온다.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한, 사용utility해야 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주는 또는 희소한 것에 대한 욕망이 가치를 만든다(미셸 푸코의 책, order of things).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불확실한 미래에 부족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에 서도 가치가 만들어진다. 사과, 물고기는 썩고 부패해 사라지지만 돈은 사라지지 않는다. 돈은 교환수단인 동시에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보관이 가능하기 때문에 돈 자체에도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즉, 돈은 필수품에 대한 필요, 사용utility, 즐거움, 희소의 가치를 동시에 가지는 매력덩어리인 셈이다. 마법과도 같은 돈은 인간의 욕망을 한없이 키워 버려 때로는 무엇을 욕망했었는지 잊어버리게 한다. 또한 막연한 두려움을 키워 무엇 때문에 두려운 것인지를 잊게 하기도 한다.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과 하지 않아도 될 두려움을 돈은 만들어 낸 것이다. 허상에 대한 욕망과 두려움은 돈에 대한 끝없는 신뢰를 만들어 내었고, 이는 신용credit이라는 이름으로 자본화되었다. 이런 허상이 만들어 낸 것이 소득불균형이고 필요이상으로 거대해진 기관과 권력(예, 은행과 정부)이다.

쉽지 않겠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불안한 미래를 불안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다. 불안하지 않고 두려움이 줄어들면 욕망도 줄어 의외로 쉽게 충족될 수 있다. 한 달 후, 일 년 후, 십년 후, 음식을 살, 집을 마련할, 자녀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길이 보이고 보장된다면 사람들의 욕망이 그렇게까지 크지 않을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을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갑작스런 변화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에 이미 굳게 자리 잡은 욕망이 눈치 채지 못하게 은근 슬쩍 물들이 듯 나아갔으면 한다. 현재의 돈과 자본 체계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돈을 통용시켜 두 개의 돈이 통용되는 사회 시스템을 디자인함으로써 사람들의 두려움을 서서히 제거해 가는 것이다.



돈의 역할보다 돈 자체만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돈의 목적을 보여주기 위해 돈도 자연의 일부로써 사라지게 한다. 똥본위화폐 철학이다



세계통용통화이자 보완통화, 똥본위화폐

매일 일정금액이, 일 년 후, 십 년 후에도 계속해서 매일 지불될 것이다. 이런 날들이 쌓여 가면, 사람들은 돈의 지불이 중단된다는 의심을 하지 않게 된다. 지불되는 돈은 세금에 기초하여 정부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돈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미래에도 계속 돈이 지불될 것이라고 오히려 믿는다. 매일 지급되기 때문에 저축할 필요 없이 그때그때 요긴하게 쓰면 된다. 똥본위화폐에는 국가의 구별도 없다. 가치의 기준은 인간이라는 철학을 가진 돈이고 똥본위화폐 나눔을 통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바뀌게 되면 인간노동의 가치척도가 바뀔 수 있지만 인간 본연의 가치는 국가와 관계없이 동일하다. 가치기준이 동일하니, 세상의 모든 지역이 연결될 수 있는 세계통용통화인 것이다. 세상 어디를 가든지 환전할 필요 없이 사용가능하다. 또한 지금 세계 각 나라에서 통용되고 있는 기존 화폐와 함께 사용되기 때문에 똥본위화폐는 보완통화(complementary currency)이다.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질서 하나가 우리 곁으로 다가오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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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와 같은 절박한 상황에서, 정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대중들끼리 서로 기본적인 삶을 서로에게 주기 위한 돈, 기본소득이 똥본위화폐로 가능하다. 어짜피 돈이란 믿음으로 작동되지 않는가? 정부와 은행이 그 믿음을 주듯이 대중도 해낼 수 있다.

“사람들 믿음과 연결로 만들어진 현금, 똥본위화폐”

똥본위화폐는 기본소득 역할도 할 수 있다. 매일 일정량 지불되고 똥본위화폐 시스템 속에 있는 사람 모두에게 조건 없이 지불된다. 똥본위화폐도 분명 현금이다. 사람들 간의 믿음과 연결로 만들어진 현금이다. 현재 통화로 지불되는 기본소득과 차이가 있다면, 정부의 세금에 기반 하지 않으며 똥본위화폐 기본소득의 일부는 동료와 나누고, 똥본위화폐이기 때문에 매일 조금씩 사라진다는 것이다. 한 가지가 더 있는데, 똥본위화폐의 성격이다. 가치의 기준을 인간노동이 아닌 인간 본연의 가치에 둔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10꿀이 나의 똥본위화폐 계좌에 입금되어 있고, 그중 3꿀은 나의 동료들에게 이미 나눠졌다. 비비화장실BeeVi toilet에 가지 않아도 매일 똥본위화폐 시스템이 모든 사람에게 10꿀을 지불한다. 이를 ‘기본소득 똥본위화폐’라고 한다. 이 돈은 매일 마이너스 7% 이율로 감소한다. 년 7% 마이너스 이율이 아니라 하루 이율이 –7%이다. 10일 후에는 반정도만남고 30일 후에는 약 10%만 남는다. 매일 감소하는 돈은 저장할 수 없다. 활용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빨리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영화를 예약하든 책을 주문하든지 미리 지불하면 할수록 유리하다. 똥본위화폐로 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그날 바로 사용하는 것이 그냥 사라지게 놔두는 것 보다 유리하다.

돈을 쓰지 않았는데도 계정에서 사라지는 경험을 우리는 한 적이 없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나무에서 사과를 수확하고 사과를 바로 먹지 않고 놔두면 사과는 하루가 다르게 시들어 결국 먹지 못한다. 물고기를 잡아도 마찬가지다. 온도를 맞추고 포장하여 오랫동안 싱싱한 사과와 물고기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인간이 찾아내었고 만들어낸 방법이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인위적인 방법으로 사라질 가치를 유지시키고 없던 가치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방법은 가치롭지만 부작용도 생긴다. 냉장고에 보관해둔 과일과 생선이 있어 시장에 자주가지 않아도 된다. 그 계절, 그 장소에서 형성 되었어야 할 시장의 패턴이 달라져 버렸다. 달라진 패턴이 잘못이라는 뜻이 아니라, 생산, 소비, 시장이 달라진 현실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인간노동이 가치 출발이라는 생각,
더 이상 합리적인 논리가 아니다”

동전과 지폐, 즉, 교환의 수단은 재화와는 달리 사라지지 않는다. 돈(동전, 지폐, 지금은 신용화폐)은 수단일 뿐이지만, 가치는 사라져도 돈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불어날 수 있다. 돈은 자본이 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때로는 실제의 돈보다 훨씬 큰 자본이 만들어 진다. 파생상품derivatives과 같은 새로운 자본이 탄생하기도 한다. 경이로운 논리이고 이론이 되었다. 자본capital은 사라질 수 있지만 돈money은 남는다. 남은 돈은 또 다른 자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가치, 자본 이전에 인간의 노동이 있었다. 아담 스미스는 노동이 가치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인간노동이 가치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자본으로 인해 생기는 이익도 인간노동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노동을 제공한 노동자에게 정당하게 지불되어야 한다. 이것이 당연한 주장인 것은 모든 가치는 노동으로부터 나왔다고 믿기 때문이다. 반면, 자본가는 노동이 만들어낸 가치와는 차원이 다른 가치를 자본이 만든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본이 만든 가치가 노동이 만든 가치에 비해 크다고 믿는다. 자본소득이 노동소득보다 훨씬 높아도 이상하지 않은 이유이다. 우리 사회가 그러하다. 하지만 자본가도 가치의 출발은 인간의 노동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최소한 지금은 그렇다. 가치에 대한 믿음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인간노동이 가치의 출발점이라는 논리다. 인간노동이 가치기준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신성한 인간노동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자본가의 믿음이다. 한정된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인간노동과는 달리 자본은 무한하기까지 한 가치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자본이 만들어 내는 무한한 가치에 대한 기준은 여전히 인간의 노동이다. 자본가도 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은 인간이 발명한 것이다. 돈도, 자본도 인간이 발명하였고, 인간노동이 가치의 출발점이라는 믿음도 인간이 만들었다. ‘인간노동은 신성하다’와 ‘인간노동이 가치의 출발점’이라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인간노동이 가치기준이 아니라고 하여 인간노동이 신성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자본이 만들어낸 재화에 대한 자본가의 몫이 크다는 믿음은 인간노동이 가치의 출발점이라는 믿음과 어쩔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물론 이 연결고리를 어느 정도는 끊어 버릴 수 있다. 그것이 사회주의 방법이다. 사회주의는 인간노동의 가치를 여전히 존중하지만 국가가 어느 정도는 가치의 분배를 공정하고 공평하게 할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 사회주의 역시 인간이 발명한 방법을 지닌 제도이다. 즉, 이 모든 것은 인간이 만들어 내었다. 이 말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라는 의미다. 선택은 또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인간의 노동이 가치의 출발점이 아닐 수 있다는 전혀 다른 개념을 우리는 선택할 수도 있다. 또한 돈이 자본을 만들고 자본은 또 다른 자본을 만든다는 것에 반대할 수도 있다. 인간의 노동이 아닌 인간 자체에 가치의 출발점을 두는 것, 자본의 출발이 된 돈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인간노동은 신성하다”와 “인간노동이 가치의 출발점이다”는 다르다. 인간노동이 가치의 기준이라는 오랜 믿음이 지금 자본의 가치와 부의 재분배 불공정에 관여했고 여전히 하고 있다면, 가치의 기준을 노동에서 인간 본연으로 되돌릴 필요 있다. 디지털 시대에는 말할 나위없다.
“인간노동은 신성하다”와 “인간노동이 가치의 출발점이다”는 다르다. 인간노동이 가치의 기준이라는 오랜 믿음이 지금 자본의 가치와 부의 재분배 불공정에 관여했고 여전히 하고 있다면, 가치의 기준을 노동에서 인간 본연으로 되돌릴 필요 있다. 디지털 시대에는 말할 나위 없다.

인간노동은 당연히 신성하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인간노동의 가치 때문에 인간이 소외된다고 하여도 여전히 인간노동이 인간자체의 본질보다 우선시 될 수 있는가? 임금노동은 어쩔 수 없이 자본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다. 무임금 노동은 불행히도 무임금 노동을 하는 사람도 그 가치를 느끼기 힘든 사회가 되었다. 하물며 노동할 수 없는 인간은 어떠하겠는가? 미래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신하여 많은 일들을 하고 로봇이 노동하는 세상에서 여전히 인간노동이 가치의 기준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로봇의 노동은 인간의 노동이 아니라 자본이 하는 노동이다. 그러므로 로봇의 노동으로 생기는 가치와 재화는 자본가에게 그 소득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인간노동이 가치의 출발이라는 생각은 더 이상 합리적인 논리가 아니다. 인간노동이 아닌 인간으로 그 가치의 출발을 한 단계 끄집어내려야 하는 이유다. 그것이 똥본위화폐 철학이다.

일단 손에 쥔 돈은 놓기 싫어하고 가능하면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싶어진다. 돈이 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창조적 경제활동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돈이 돈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경제활동의 수단(medium or signifier of an economic system)인 돈은 본래 임무인 가치교환보다는 자본형성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돈은 애당초 미래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만들어 졌다는 것을 상기했으면 한다.

“현재 돈·자본 체계 유지하면서 새로운 돈 통용
두 개의 돈이 통용되는 사회 시스템 디자인“

가치는 욕망과 두려움으로부터 나온다.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한, 사용utility해야 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주는 또는 희소한 것에 대한 욕망이 가치를 만든다(미셸 푸코의 책, order of things).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불확실한 미래에 부족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에 서도 가치가 만들어진다. 사과, 물고기는 썩고 부패해 사라지지만 돈은 사라지지 않는다. 돈은 교환수단인 동시에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보관이 가능하기 때문에 돈 자체에도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즉, 돈은 필수품에 대한 필요, 사용utility, 즐거움, 희소의 가치를 동시에 가지는 매력덩어리인 셈이다. 마법과도 같은 돈은 인간의 욕망을 한없이 키워 버려 때로는 무엇을 욕망했었는지 잊어버리게 한다. 또한 막연한 두려움을 키워 무엇 때문에 두려운 것인지를 잊게 하기도 한다.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과 하지 않아도 될 두려움을 돈은 만들어 낸 것이다. 허상에 대한 욕망과 두려움은 돈에 대한 끝없는 신뢰를 만들어 내었고, 이는 신용credit이라는 이름으로 자본화되었다. 이런 허상이 만들어 낸 것이 소득불균형이고 필요이상으로 거대해진 기관과 권력(예, 은행과 정부)이다.

쉽지 않겠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불안한 미래를 불안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다. 불안하지 않고 두려움이 줄어들면 욕망도 줄어 의외로 쉽게 충족될 수 있다. 한 달 후, 일 년 후, 십년 후, 음식을 살, 집을 마련할, 자녀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길이 보이고 보장된다면 사람들의 욕망이 그렇게까지 크지 않을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을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갑작스런 변화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에 이미 굳게 자리 잡은 욕망이 눈치 채지 못하게 은근 슬쩍 물들이 듯 나아갔으면 한다. 현재의 돈과 자본 체계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돈을 통용시켜 두 개의 돈이 통용되는 사회 시스템을 디자인함으로써 사람들의 두려움을 서서히 제거해 가는 것이다.

돈의 역할보다 돈 자체만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돈의 목적을 보여주기 위해 돈도 자연의 일부로써 사라지게 한다. 똥본위화폐 철학이다
돈의 역할보다 돈 자체만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돈의 목적을 보여주기 위해 돈도 자연의 일부로써 사라지게 한다. 똥본위화폐 철학이다

세계통용통화이자 보완통화, 똥본위화폐

매일 일정금액이, 일 년 후, 십 년 후에도 계속해서 매일 지불될 것이다. 이런 날들이 쌓여 가면, 사람들은 돈의 지불이 중단된다는 의심을 하지 않게 된다. 지불되는 돈은 세금에 기초하여 정부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돈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미래에도 계속 돈이 지불될 것이라고 오히려 믿는다. 매일 지급되기 때문에 저축할 필요 없이 그때그때 요긴하게 쓰면 된다. 똥본위화폐에는 국가의 구별도 없다. 가치의 기준은 인간이라는 철학을 가진 돈이고 똥본위화폐 나눔을 통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바뀌게 되면 인간노동의 가치척도가 바뀔 수 있지만 인간 본연의 가치는 국가와 관계없이 동일하다. 가치기준이 동일하니, 세상의 모든 지역이 연결될 수 있는 세계통용통화인 것이다. 세상 어디를 가든지 환전할 필요 없이 사용가능하다. 또한 지금 세계 각 나라에서 통용되고 있는 기존 화폐와 함께 사용되기 때문에 똥본위화폐는 보완통화(complementary currency)이다.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질서 하나가 우리 곁으로 다가오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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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원
울산과학기술원(UNIST) 도시환경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법명은 원광(圓光).
과학예술융합 연구센터 사이언스월든 센터장을 2015년 이후 맡고 있다. 2016년, 2017년 씽크탱크 Edge 재단에 ‘똥본위화폐’, ‘중용의 비움’ 에세이를 발표했다. 통일부 (사)북한물문제연구회 창립멤버로서 북한주민이 겪고 있는 물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또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 물이 부족하고 수질이 나쁜 작은 마을에 전기없이도 안전한 물을 생산할 수 있는 ‘옹달샘’ 정수기 공급프로젝트를 2006년 이후 진행하고 있다. 저술로는 <이것은 변기가 아닙니다>(2021년, 개마고원)과 <금간 거울 산산조각 내기>(2020년, 파티)가 있다. 사이언스월든 센터 웹: ScienceWalde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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