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 3. 불교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 3. 불교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 박병기 한국교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 승인 2021.08.3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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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3)
한국의 불교사상가들: 휴정과 지눌, 원효

불교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우리에게 불교는 우선 친숙하다. 학생 시절 수학여행을 가면 꼭 한 군데 이상의 절에 들르고, 초파일에는 서울 동대문에서 광화문에 이르는 연등행렬이 방송을 통해 전국에 생방송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불교가 우리와 함께하기 시작한 것이 1700여년을 헤아리니 이런 친숙함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그 출발점부터 이차돈의 순교 정도를 제외하면 큰 충돌 없이 이 땅에 자리 잡아 오늘날까지 대표적인 제도종교 중 하나로 살아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 불교는 여전히 낯선 대상이기도 하다. 절에 들어가자마자 무서운 사천왕들이 위협하는 것처럼 서 있고, 법당에 들어서면 염불소리가 낯설어 멈칫할 때가 있다. 더 나아가 불교에 대해서는 고등학교에서 ‘윤리와 사상’이라는 과목을 선택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한국사’ 시간에 임진왜란 때의 승병장으로 활약한 서산이나 사명, 해골 물을 먹고 깨달았다는 원효 정도의 단편적인 지식만을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절에 가도 그 절이 그 절 같고, 도대체 왜 이런 곳에 와야 하는지 의문을 갖게 되기도 한다.

물론 일상에 지쳐서 진정한 쉼을 원할 때 가깝거나 먼 절에 머물며 이박삼일 정도의 템플스테이를 하거나, 스님들이 쓴 수필을 읽으면서 힐링(healing)이 되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때로는 일본 스님이나 외국인 수행자들이 쓴 책들을 찾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분들이 드물까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가 언론에 보도되는 승려들의 일탈을 접하면서 저런 분들밖에 없지는 않을 텐데 하는 한탄하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 현대사에서 법정이나 성철 같은 분들의 정신적 영향력이 상당했음을 떠올려보면, 21세기 초반 한국불교의 현실에 대해 우려할 만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그렇다면 21세기 초반 한국사회와 시민에게 불교는 과연 무엇일까? 이 물음은 다시 두 차원으로 나누어 제기될 수 있다. 하나는 한국사회라는 공동체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시민이라는 개인적 차원이다. 물론 이 두 차원은 서로 얽혀있어 분리가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두 차원으로 나누어봄으로써 불교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맥락을 좀 더 명료하게 만들어볼 수는 있다.

우선 21세기 초반 한국사회에서 불교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서 불교는 우선 그리스도교와 함께 대표적인 제도종교이자 전통종교로서 위상을 지닌다. 제도종교로서 불교는 승려와 재가신도, 법당 등의 요건을 갖추고 곳곳의 절집을 통해 우리에게 살아있는 종교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또 다른 제도종교인 그리스도교와 비교하면 전통에 기반한 종교라는 특징이 두드러진다. 그리스도교의 경우도 2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게 되었기 때문에 나름의 전통을 형성해가고 있기는 하지만, 불교와 비교하면 그 서구적 뿌리를 여전히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불교는 정신적 역할 부분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주로 자본주의라는 이념을 토대로 움직이고 있는 현재의 한국사회 속에서 불교는 전통에 기반한 정신적인 힘을 발휘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기도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그 자본주의에 휩쓸리면서 휘청거리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다. 절집은 끊임없는 불사(佛事)로 외적 성장을 향해서만 열심인 것처럼 보이고, 출가자나 재가자들 중에서는 최소한의 시민윤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도덕성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키면서 실망을 안겨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 시민들이 각자 마주해야 하는 삶의 의미 물음 앞에서 철학함의 여유를 보장해줄 수도 있는 템플스테이 등을 제공하고 있어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한 부분도 있다. 거기에 외국여행객들에게 ‘한국적인 것’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주고 있기도 하다는 사실은 전통종교로서 불교가 지닌 장점을 잘 활용하여 일정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또한 간화선(看話禪) 수행 전통을 유지하면서 2천여 명의 출가자들이 하안거와 동안거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주목받을 만하고, 비록 차별 요소가 여전히 극복되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비구와 비구니라는 이부승가(二部僧伽) 제도를 온전히 보전해내고 있는 점에도 유의할 만하다.

그렇다면 21세기 초반 한국시민에게 불교는 무엇일까? 위의 한국사회 속 불교의 위상에 관한 물음 속에 이미 많은 부분 포함되어 있지만, 한국시민의 차원에서는 조금 다른 접근이 가능할 수 있다. 우선 한국시민에게 불교는 자신의 성장 배경이나 종교 유무 등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 배경으로 자라나서 현재도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는 시민에게는 ‘우상 숭배’라는 편견이 작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반 시민에게도 ‘미신’ 또는 ‘하등종교’라는 인식이 작동할 가능성도 있다. 절집에 가면 마주하게 되는 삼신각과 산신각 등이 그런 인식을 불러오는 외적 요소이고, 합리성을 중점에 두고 비과학적인 것에 대한 적대감을 심어준 우리 학교교육이 내적 배경일 수 있다.

다른 한편 불교는 현재의 한국시민에게 철학이자 윤리, ‘종교적인 것’으로 다가가 있거나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기도 하다. 특히 불교가 과학과 가장 친화적인 종교라는 점에서 재해석된 불교는 과학적 상식의 기반 위에서 철학과 윤리로 작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불교도가 되지 않고도 불교적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제기하는 미국 듀크 대학 심리철학자 오웬 플래나간은, 전생이나 윤회 같은 요소들에 괄호를 치고도 불교는 그 자체로 시민사회의 철학과 윤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오웬 플래나간, 박병기·이윤주 옮김, <보살의 뇌>, 씨아이알, 2021 참조)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물음에 관한 불교적 답변이 그 종교적 요소를 특별히 강조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시민에게 수용될 수 있다는 평가다. 아마도 그가 불교를 새로운 시대의 종교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미국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더 확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불교의 무엇이 21세기 한국시민의 철학이자 윤리로 작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는 것일까? 이 물음은 열려 있다. 미완성의 질문이기 때문이고, 전통과 현재, 미래를 아우르면서 우리가 함께 찾아가야 할 물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 물음을 전통에 초점을 맞추고 함께 화두로 붙들어보고자 한다. 한국불교의 전통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등장했지만, 대체로 많은 동의를 얻고 있는 사상가들 중에서 조선과 고려, 신라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분들의 사상을 현재적으로 음미하면서 이 물음에 관한 탐구를 시작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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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기 교수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윤리학과 도덕교육학을 전공했고, 불교원전전문학림 삼학원에서 불교철학과 계율을 공부했다. 전주교육대학교 교수, 한국교원대 대학원장,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생명윤리교육평가전문위원회 위원,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한국도덕윤리과교육학회장으로 2015 초· 중·고 도덕과 교육과정 개정 연구를 총괄했다. 주요 저서로 《윤리학과 도덕교육 1·2》(공저)《우리 시대의 문화와 사회윤리》, 《직업과 윤리》. 《아동인격교육론》, 《도덕심리학의 전통과 새로운 동향》, 《동양 도덕교육론의 현대적 해석》(문광부우수학술도서),《의미의 시대와 불교윤리》《딸과 함께 철학자의 길을 걷다》,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등이 있다. 역서로 《철학의 과업》(공역), 《도덕철학과 도덕심리학》(공역), 《보살의 뇌》(공역), 《윤리적 자연주의》(공역), 《도덕적 감정과 직관》(공역) 등이 있다.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교수이자 종합교육연수원장을 맡고 있으며, 계간 <불교평론> 편집위원장, 정의평화불교연대 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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