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1980년대 성철스님께서 종정에 취임하실 때 야보(治父)선사의 ‘산시산(山是山) 수시수(水是水) 부재하처(佛在荷處)’ 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보이는 만물은 관음(觀音)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妙音)이라, 보고 듣는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하셨던 말씀은 매우 유명하다.
특히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라는 구절은 온 세상에 회자되어 샐러리맨들의 퇴근 길 술자리, 시장의 난전 상인은 물론 사회의 유명인사들까지도 즐겨 인용하는 언구가 되었다. 다양한 해석을 낳았으나 여하튼 선불교를 사회 저변에 각인시킨 문구로써 충분하며, 어쩌면 성철 스님께서는 당시에 그 취임 일성으로 종정의 본분사를 이미 마쳤다고 본다.
출가자가 급감해서 행자는 물론 강원의 유지마저 어려운 지경이고 선원은 구참들로 차 있다고 한다. 교계 뉴스를 보면 관련한 위원회 등에서 토론도 하고 이런저런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지만 가시적인 이행은 눈에 들어오지를 않는다. 물론 짧은 기간 내에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사업이 아니나 종단의 역량을 총 발휘하는 다급한 행보가 안 보이기에 하는 말이다.
현응 스님이 교육원장 재직 시에 출가자에게는 대학과 대학원비 전액 및 기타 금액까지 보장하고 이후의 진로는 관여치 않는 조건이라도 제시하는 등 특단의 방안을 강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 적이 있다.
출가자의 감소는 인구와 전문 종교인의 감소라는 변화된 사회 상황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내부의 문제가 적지 않다. 불교와 승려에 대한 호감과 기대감이 그만큼 사라지고 있다는 뚜렷한 방증이다. 근자 통계와 보도에 의하면 불교의 호감도가 천주교에 뒤쳐졌다고 한다.
불교 조계종단이 사회적으로 감동과 울림을 주는 종교이고 그 교단 조직의 일원이 된다면 의미 있고 멋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이 전제의 무대를 조계종단이 깔아주고 세상이 그러한 현실을 느끼도록 해야 하는데 과연 그러한지 의문이다.
타종교는 절대적인 신을 믿고 천당에 가라는 짧은 언구로 접근이 가능하나 불교는 그렇게 할 수가 없는 종교다. 불교는 분명 타 종교와는 다른 방식의 포교를 해야 하고 출가자를 양성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종단이 실질적으로 해야 할 일보다는 아직도 권력지향의 흐름이 더 강하다는 느낌이 가시지를 않는다. 이 권력지향의 행태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불교중흥을 도모하지 않는 한 머지않은 장래에 불교와 승려는 연출자 정도로 전락할 것이라는 걱정이 앞선다.
지난해 2월 코로나19에 대한 종단적 지침이 나오기를 기대했으나 정리된 움직임이 보이지 않아 우회적으로 몇몇 스님들을 통해서 제안을 해보시도록 부탁을 드렸더니 당일 오후에 일부 수정된 안이 발표되었다. 현 코로나19가 지속되고 사회가 어려운 상황에서 불교가 국민에게 정신적으로 위안이 되고 물질적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들이 적지 않을 텐데도 어떤 고민이나 노력도 보이지가 않고 있어 안타까움에 하는 말이다. 사태가 진정되는데 이바지할 수 있음은 물론, 불교에 대한 이미지 제고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편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임 종정예하이신 성파 큰스님은 고불식에서 “지금 시기가 시기인 만큼 사회적으로 어려울 때 동체대비와 호국불교 사상을 앞으로도 유지해 나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께서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그러면서 “추대는 됐지만 우주에는 해가 둘이 있을 수 없듯, 아직까지 종정스님께서 계시고 하기 때문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없다”고 하셨다. (출처 : 불교신문 호수 3696) 신임 종정예하의 임기는 오는 2022년 3월26일부터 5년간이다.
본시 ‘무연대자 동체대비(無緣大慈 同體大悲)’라 한다. 나하고 지근의 인연이 없는 자에게도 무한한 자비를 베풀고 모든 이들을 나와 같이 여긴다는 의미다. 코로나19가 기세가 더해져서 온 국민이 고통의 아우성이고, 한국불교가 그야말로 풍전등화이며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다.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이라 했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국민과 불자들에게 신임 종정예하의 속 시원한 사이다와 같은 동체대비의 일갈(一喝)을 내심 기다렸다. 아니 내년 3월까지 기다려야 한다니 답답함이 밀려오는 것은 필자만의 심정일까 한다.
/法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