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서로 닮아 간다. 동작뿐 아니라 사고까지도 범속하게 동질화되고 있다. 다스리는 쪽에서 보면 참으로 편리할 것이다. 적당한 물감만 풀어놓으면 우르르 몰려들어 허우적거리는 무리를 보고 쾌재를 부를 것이다." <법정. 무소유 126쪽 騷音紀行(소음기행) 中>
최승자는 틀을 거부한 한국 현대시사(現代詩史)에서 가장 독보적인 그녀만의 언어(言語)를 확립하며 허무주의에 처절하게 저항한 시인이다. 법정스님과 최승자 시인은 자신들만의 실천 언어와 우주를 만들어 냈다. 두 사람은 현실을 넘어 정신적 피안의 세계를 설계·제작해 만인을 이롭게 한 걸승(傑僧)이자 걸인(傑人)이다.
허무주의가 고개든지 쪼매(조금의 방언) 오래됐다. 이를 결코 탓할 일이 아니다.
나는 삶의 원천적인 의구심을 지닌 채 세속과 적조(積阻)하게 지내다 옹승(翁僧)으로 가는 길에 있는 스님이다.
불교의 인생관은 자신을 형성하고 있는 조건의 작용과 대상에서 벗어남이 중요하다고 일갈한다. 불교 오온(五蘊)은 인생은 현실의 괴로움과 연기법칙에 따라 윤회하면서 괴로움을 생산해 내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모두 같은 괴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풀이한다. 그래서 동시대에 사는 사람들을 동업중생이라 한다.
집착 내지는 애착은 죽어서도 진정한 행복과 거리가 먼 괴로움으로 단정된 생사윤회 속에서 연기법의 굴레를 벗어날 수 가 없다. 부처님은 오온의 괴로움 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깨달음이라고 한다.
오늘날 코로나-19·자연재해·기후변화·질병·경제 불안 등은 우리를 괴롭혀 결국 허무주의로 인해 극단적 선택까지 할 수도 있도록 유도해 내고 있다.
허무주의는 단견(斷見)사상으로써 한 쪽에 매우 치우친 사람은 제일 큰 병통이라고 신라시대 원효 스님은 말했다.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 삼법인(三法印)에 의해 비춰보면 현실이 드러난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어찌 보면 갈대처럼 나약할 수도 있어 보인다. 보조 국사도 땅에서 넘어진 자 땅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현실에서 견뎌내는 자가 용기 있고 지혜로운 자이다.
불교에서는 단견(斷見)·극단(極端)에 치우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어 인생 낭패를 당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부처님은 삼법인과 연기법으로 우리를 가르치고 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라는 말이 있듯이 허무주의와 불교 단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소승 역시 인간인지라 때로는 왜 사나?하는 의문을 갖기도 한다. 허무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때 저는 극복하고자 대응책으로 명상(冥想)을 한다. <불교닷컴> 독자들에게 명상이 좋다고 느껴 권해본다. 명상은 시인 최승자나 법정 선사가 걸었던 것처럼 틀이 없다. 앉아서하는 명상, 걸어 다니며하는 명상, 음악을 듣는 명상 등이 있다. 특히 잠자기 전 5분의 명상은 허무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부처님 말씀은 모든 속박과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어리석음을 깨치게 한다. 무명(無明)과 허무주의 단견에서 하루속히 벗어나 극락세계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보자.
원천스님/김해 선지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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