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식판, 선방 발우서 유래했다?
군대 식판, 선방 발우서 유래했다?
  • 조현성
  • 승인 2013.06.0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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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현정’ 명분으로 저질러진 폭력 파헤친 ‘불교파시즘’

세계 제2차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 일본. 군대에서 사용하는 식판 등 일본 군대 지도자들이 의도적으로 사찰 문화를 군대에 이식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 교수(美 앤티오크대)가 저서 <불교 파시즘>에서 어떻게 평화의 종교가 전쟁 이데올로기로 변신했는지, 깨달음의 교리가 어떻게 윤리·양심을 마비시켰는지, 일본 파시즘과 불교와의 은밀한 유착을 파헤쳤다.

“법랍 가리는 선원과 계급 따지는 군대 유사”

빅토리아 교수는 스승인 조동종 승려 아사다 다이센 선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라며 “(2차대전 당시) 일본군 보병 소좌였던 기시 야지로(1874~1938)가 연대장 지시를 받아 병사들의 식품 공급 개선을 위해 선사(禪寺)를 방문했던 사실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알루미늄 식판의 기원이 선방 공양그릇에서 유래됐다. 이는 군인들로 하여금 금속 재질의 식판을 통해 종교적 금욕주의와 결합된 군대의 차가운 효율성을 느끼게 했다”고 말했다.

빅토리아 교수는 “선원이 일본 군대 휴대용 식기 세트 모델일뿐만 아니라 조직 구조 모델로서도 역할을 해왔다”며 선방과 군조직이 유사하다는 점도 들었다.

그는 임제종 선승이었던 미즈카미 스토무의 의견을 인용해 “선방은 실제 나이보다 선수행 기간을 중시하는데, 아무리 나이가 적더라도 수행 기간이 더 긴 승려가 지시를 내리면 나이 많은 승려라도 그 뜻에 따라야 한다. 이는 군대 조직이 세워질 때 선원 규정이 길잡이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구에 선을 소개한 선구자로 알려진 스즈끼 다이세츠는 선이 군대에 매력적으로 비친 이유를 “선의 수행법은 간단하고 단도직입적이며 자립적·극기적이다. 선의 금욕적인 경향은 투지와 잘 어울린다. 훌륭한 투사는 대체로 금욕적이거나 극기심이 강하다. 이것은 그에게 무쇠 같은 굳센 의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요할 때는 선이 그 의지를 제공해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선의 논리가 살인·전쟁 정당화하기도”

빅토리아 교수는 “선수행을 한 무사는 살생하지 말라는 불교의 기본 계율을 어기는 것이 아닌가 우려할 수도 있다”면서도 에도 시대(1603~1868) 임제종 선사 다쿠안 소호의 편지를 인용해 이를 일축했다.

소호 선사는 글에서 “치켜든 칼에는 자신의 의지가 없습니다. 완전히 텅 비어 있습니다. 그것은 번갯불과 같습니다. 칼에 맞아 막 쓰러지려는 사람 역시 텅 비어 있습니다. 칼을 휘두르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도 알맹이가 있는 마음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저마다 다 텅 비어 있고 ‘마음’이 없습니다. 칼로 치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고, 손에 들린 칼로 칼이 아니며, 막 쓰러지려는 ‘나’는 번갯불 속에서 봄의 미풍이 길게 일자로 찢어지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적었다.

빅토리아 교수는 “1930년대초 일본내 암살사건에서 선사들과 그의 속가제자들이 맡은 역할은 흥미롭다”며 “조동종 후쿠사다 무가이 선사와 속가제자 아이자와 사부로 중좌는 ‘파사현정’에 따라 같은 일본인을 죽이는 것이 선불교에 의해 정당화된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메이지 시대에 유명했던 고승 난텐보도 “자비심으로 생명을 빼앗는 것보다 더 나은 보살행은 없다”며 자신의 군인 제자 노기 마레스케 대장을 칭찬했다.

“불교 경전, 전쟁 선전도구로도 쓰여”

1943년 2월 일본에서는 <도겐 선사와 수증의>가 출간됐다. 이는 조동종이 도겐 선사의 <정법안장>을 재가신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엮은 요약집이다.

빅토리아 교수는 “책이 발간된 시점은 전쟁이 더는 일본에 유리하게 전개되지 않으리라는 것이 명백해지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책은 조동종 선사 야스타니 하쿠운이 주석을 달았다. 하쿠운 선사는 일본불교 역사와 계율을 왜곡해 전쟁과 천황 숭배를 정당화했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하쿠운 선사는 책에서 “열심히 싸워 적군을 모두 죽여야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와 효행을 완벽하게 수행하려면 선을 돕고 악을 벌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 살인이 지금으로서는 살인이 아니라는 진리를 명심하고 눈물을 삼켜야 한다”며 “살해해야 마땅한 사악한 자를 죽이지 못하는 것, 혹은 섬멸해야 하는 적군을 섬멸하지 못하는 것은 자비심과 효행을 저버리는 일이며 생명을 빼앗는 것을 금지하는 계율을 어기는 일이 될 것이다. 이것이 대승불교 계율이 지닌 특질”이라고도 했다.

뿐만 아니라 선수행도 군인 정신 강조를 위해 왜곡됐다.

임제종 선사 야마자키 에키주의 속가제자였던 육군 장교 스기모토 고로 중좌는 1940년대 ‘전쟁의 신’으로 불리던 인물이다.

그는 “선수행으로 삶과 죽음이 명확해지고 삶과 죽음을 제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선수행으로 나는 완전히 순수해질 수 있고, 진정한 군인이 되고 싶은 소망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선을 전쟁 수단으로 삼았던 이러한 내용은 일본군 필독서였던 <전진훈>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전진훈>은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에게도 읽혔다. 조동종, 정토종 등에서는 신도교육용으로도 사용됐다. <전진훈>으로 많은 사람들이 포로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할복 등을 통해 목숨을 버렸다.
 
“패전 후 전범들, 승려로 탈바꿈”

빅토리아 교수는 “전시의 일본 선불교 지도자들은 종교적인 신앙의 힘으로 자살을 부르는 일본 군인정신 주입에 앞장섰다. 특히 민간인들에게까지 이 같은 정신이 주입됐을 때 이미 그들 스스로 철저하고 완전하게 도덕적으로 파산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몇몇 사례를 들어 1945년 8월 15일 천황의 항복 선언이 방송된 후 동남아 곳곳에 있던 일본군 다수가 사원으로 숨어들었다고 했다.

빅토리아 교수는 “태국에서 천황의 항복 선언을 들은 일본군 한무리가 만찬 후 소승불교 승려가 입는 노란 법의로 갈이입고 신발도 버리고 눈썹도 밀었다. 경전을 암송했던 이들은 ‘소승불교를 공부하기 위해 미얀마로 갔다가 전쟁으로 방콕으로 돌아왔다’고 말하고 다녔다”고 설명했다.

이들 가운데는 승려로 탈바꿈해 전범이던 신분·이력을 숨기고 일본으로 돌아와 대학교수가 되거나, 국회의원 등으로 재기(?)에 성공했던 경우가 적지 않았다.


선이 살육을 위한 정당성을 제공하고, 군국주의의 앞잡이 역할을 했던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빅토리아 교수는 스즈키 다이세츠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했다.

“선에는 특별한 교리·철학·개념·법칙이 없다. 단지 선 특유의 직관적인 이해 방식 및 몇가지로 탄생과 죽음의 굴레에서 사람을 해방하려 노력할 뿐이다. 선은 단지 한 사람이 도달한 결론이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그 결론을 가슴에 품고 전진하라고 촉구할 뿐이다.”

불교 파시즘┃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박광순 옮김┃교양인┃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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