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대통령선거와 불교 마중물 발제
[전문]대통령선거와 불교 마중물 발제
  • 김경호 지지협동조합 이사
  • 승인 2022.01.1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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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대통령선거와 불교 토론회
대통령선거와 불교 토론회에서 마중물 발제한 김경호 이사(사진 맨 오른쪽)
대통령선거와 불교 토론회에서 마중물 발제한 김경호 이사(사진 맨 오른쪽)

 

대통령선거와 불교

1. 불교는 산적인가?

정치적 영역에서 종교의 역할은 종교의 공적 역할에 대한 논쟁 중에서도 특히 갈등이 많은 주제다. 정교분리라는 헌법 조항과 달리 한국의 제도종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치 영역에 관여해왔고 정치권은 표를 동원할 수 있는 종교집단의 요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번 20대 대선에서 불교 시민사회는 조계종 승려들의 강압적인 정치권 압박이라는 초유의 사태와 마주쳤다. 국정감사에서 집권당 정청래 의원의 발언을 문제 삼아 당차원의 징계와 출당조치,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정청래 의원은 10월 5일의 국정감사장에서 문화재 관람료를 ‘통행세’라 지칭하고 불교계를 ‘봉이 김선달’로 비유했다는 것이다.

만일 정청래 의원이 사실과 다른 말을 했거나 편향적 시각으로 불교를 폄훼했다면 스님들에 앞서 불교시민사회가 먼저 들고 일어날 일이다. 하지만 문화재 관람료와 관련하여 조계종은 그다지 정당성을 주장하기 어렵다. 당장 불교시민사회조차 설득하는 데 실패해왔기 때문이다. 허정 스님은 ‘정청래를 위한 변론’에서 “천은사와 관계기관이 협약을 이루어내기까지 불교계는 오랫동안 '산적' '통행세' '봉이 김선달'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라며 “정부도 문제지만 당사자인 종단의 책임도 크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청래 의원의 발언은 전후 맥락을 볼 때 시민사회가 주장해온 내용과 다르지 않다. 사찰 방문 의사가 없는 등산객을 상대로 문화재 관람료를 내라고 강요해온 것에 대해 사법부는 이미 몇 차례 불법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시민사회의 의견을 대신해서 정청래 의원이 요구한 것은 입장료 징수 위치를 옮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찰을 방문하는 사람들한테만 징수하면 된다는 상식적 견해를 밝힌 것이다.

그런데 이 발언에 대해 조계종이 유례없이 강경 대응에 나섰다.

게임 룰의 파괴

애초 이 사건은 지금처럼 극단으로 치달을 주제가 아니었다. 교계 언론에서 정청래 의원의 몇 가지 표현을 문제 삼아 문제를 확산시키고 중앙종회에서 사과를 요구하자 당 대표자와 대선 후보가 불교를 불편하게 한 데 대해 사과하고 총무원을 방문했다. 여태껏 정치권이 이렇게 저자세를 취하면 불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사과를 받아주고 사태를 수습해 온 것이 게임의 룰이었다. 불교는 자비 문중 아닌가.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 지금까지 방식처럼 당 대표자와 대선후보의 사과로 갈등을 봉합하려던 조계종 총무원은 중앙종회로부터 보이콧을 당해버렸다. 결국, 온건하게 문제를 해결하려던 총무원은 총무부장이 사임하며 2선으로 물러나고 이 주제는 중앙종회가 주도하게 되었다. 중앙종회는 민주당사를 찾아가 항의 집회를 열며 강경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급기야 승려대회와 범불교도대회가 추진되고 있다.

불교계의 피해의식

불교는 이승만 정권부터 민족종교인 불교가 홀대받아 왔다는 뿌리 깊은 피해의식이 있다. 미국 유학파 개신교가 한국 사회 파워엘리트로 부상하면서 불교는 민족종교를 대표하면서도 정작 국가정책으로부터 소외되어 왔다고 여긴다. 전통사찰보존법은 불교를 옥죄는 사슬이고, 기타 각종 법률과 규제가 종교 활동을 위한 필수적인 건축 등의 행위를 가로막았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찰에서 종교 활동에 필수적인 전각과 요사채가 불법건축물이 되어 매년 벌금을 납부하고 주지는 범법자가 되고 있다. 나무 하나를 베어도 산림법 위반이 되고, 국립공원법, 자연공원법. 환경법 등으로 중복규제가 되고 있다. 또 문화체육관광부는 물론 산림청, 문화재청, 지방자치단체 등의 중복규제와 관리목적의 상이한 방향이 충돌하고 부처 간 협력의 어려움마저 더해진다. 조계종단은 오래전부터 이들 중복규제를 해소하고 대책 일원화를 촉구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수행과 포교에 전념해야 할 주지는 온갖 행정서류를 준비하여 법률 소송에 역량을 탕진하고 있다.

이렇게 누적된 억울함에 이어 현실적인 재정문제가 닥친다. 사찰을 유지 보수하고 스님이 생활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자립이 가능한 재정 우량사찰은 일부에 불과하다.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전환된 지금, 불전의 공양미로는 생존할 수 없다. 수도·광열비와 세금, 공과금, 종사자 인건비 등 화폐 수요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전통사찰에 대한 정부지원금은 문화재와 보호각 등에만 국한되어 그곳에서 생활해야 하는 이들은 고려하지 않는다. 종합부동산세는 불교계의 감정에 불을 질렀다. 불교계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생산적이지 않은 부동산에도 일률적으로 세금을 부과한다는 피해의식이 상당하다. 그런 점에서 지금 상황은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이 되었다.

대선 시기 종단 실세의 정치게임

갈등을 수습해서 봉합할 온건 중도론자는 찾을 길 없고 더 과격한 방식을 주장하는 강경론자만 보이는 이유는 뭘까? 바로 20대 대통령선거 시기라는 특수한 기간임을 감안해야 한다.

종단 실세인 전 총무원장 스님이 이 사태의 배후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는 선거국면에서 자신의 불교계 장악력을 보여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지금 정청래 의원에 대한 불교계의 공세는 종단 실세의 정치게임에 불과하다. 그리고 실세의 눈에 들고자 하는 정치승들의 충성경쟁이 강성대응 기조를 더욱 가속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각종 규제와 불교계 피해, 종교 편향과 불교 왜곡이라는 그 모든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중앙종회 강경파들이 벌이고 있는 일은 국민이 용납할 상식선을 넘었다. 중앙 종회의원들이 대통령선거 시즌에 공당을 찾아 항의하는 모습은 보는 이에 따라 무리를 지어 세를 과시하는 압력으로 비추기도 한다. 정치권과의 갈등이 대부분 불교 소외를 사과하고 예산 배정을 더 해줌으로써 슬그머니 물러섰던 전례에 비춘다면 더 그렇다. 과거 천은사가 산골짜기를 지나가는 이들을 상대로 문화재 관람료라는 이름의 통행세를 걷던 것을 넘어서 도심 한가운데서 세력을 과시하며 뒤로는 정치권에 더 큰 배려와 예산 배정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수행자의 권위가 담긴 승복을 입은 이들이 정치인의 정치생명을 끊으라고 요구하는 모습은 자비 문중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2. 대통령선거와 불교

정교분리에 대한 극단적 의견 중 하나는, 종교는 정치적 문제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정치적이지 않은 의제가 있던가? 부처님도 물을 둘러싼 갈등상황, 석가족 멸망과 관련한 정치적 상황 등을 마주쳐 고뇌하면서 평화적 해법을 제시했다. 이 뜻을 따라 아소카왕은 인도통일의 살육 전쟁이 끝난 뒤에는 법에 의한 통치를 선언하며 아소카 석주를 세웠다. 신라 원효 스님은 삼국이 쟁패하던 시기, 전쟁을 넘어 다 함께 평화롭게 살 수 있기를 염원하며 화쟁 사상을 정립했다. 즉 속제를 넘어 진제를 추구하는 불교는 언제나 더 크고 열린 시야로 현실의 갈등을 뛰어넘는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인천의 스승으로 역할을 해왔다.

2021년 8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016년 기준 OECD 가입 30개국을 대상으로 갈등지수를 산출한 결과 우리나라가 정치 4위, 경제 3위, 사회 2위로 종합 3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정치·경제·사회 총 3개 분야의 13개 항목을 조사해 종합적인 갈등지수를 산출했다는 이 조사결과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는 자살률 1위, 출산율 최하위로 헬조선이라는 자기비하적 평을 듣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지도자들도 국가 비전을 제시해야 하지만 종교 또한 시대와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자각하고 반성과 제안을 통해 통합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미래를 위한 불교적 입장에서 본 국가 의제 제시가 필요하다.

불교의 정책제안

주요 선거철이면 불교는 정책제안을 만들어 정치권에 제안했다. 때로는 불교의 집단이익을 노골적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점을 비판받기도 하지만 전통문화 계승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강하게 주장해왔다. 개신교는 한국사회의 주요 의제에 대해 종교윤리에 기반한 제언을 해왔다. 가톨릭 또한 정치지도자들에게 종교적 조언을 하는 이상의 이익요구는 드러나지 않는다. 집단 이해가 없는 것이 아니라, 평소 이들 민원을 처리할 통로와 과정이 존재하기에 특별히 선거국면을 이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종교계가 정치권에 주문하는 정책제안은 크게 3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1) 공공선의 추구

종교인의 윤리와 보편적 상식에 기초한 정책제안이다. 기후위기와 생태환경문제 해결, 소수자 보호, 통일 이슈, 평화 정착을 위한 갈등 해소 등 특정 종교의 이익을 우선시하지 않으면서 공공선을 추구하는 정책제안이다. 이러한 정책제안에 대해서는 선호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종교계가 당연히 내야 하는 목소리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다.

2) 갈등 주제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불교는 찬성, 개신교는 선교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며 반대하고 있다. 그 결과 1차 차별금지법 제정 당시에는 처벌조항이 빠진 유명무실한 법이 되어버렸다.

개신교가 요구하는 종교윤리는 많은 지점에서 사회, 타 종교와 충돌하고 있다. 보수개신교는 동성애를 악으로 규정하며 전방위적 공세를 이어가고 나아가 이슬람을 공격하며 수쿠크법을 저지하고 일요일 국가고시 등을 반대하는 등 자신들의 교리를 국가 사회적으로 관철하려고 한다. 이것은 역사, 교육, 선교 영역에서 나타나는데, 근대사에서 개신교의 공헌을 강조하며 역사 교과서 개정을 요구하고, 이른바 ‘창조론’을 과학교과서에 수록하며 진화론을 폐기하기를 요구하는 등 비상식적인 주장을 펴기도 한다. 이러한 개신교의 실태는 코로나 19로 인한 팬데믹 시기에 방역을 거부하고 집합금지 명령을 어기고 예배 자유를 주장하고 백신을 거부하는 등 사회갈등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천주교도 2020년 동성혼을 인정하는 차별금지법 반대입장을 처음으로 공식표명하면서 생명윤리 등 기독교의 교리적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있다.

3) 집단이익 추구

불교는 선거철마다 자연공원법, 전통사찰보존법 등 10여 개 이상의 법에 전통사찰이 규제당하고 있다며 법령 제 개정을 요구해왔다. 불교계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에 대해 개신교는 일면 부러워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불교의 이익만을 위해 국가 법체계를 흔든다는 불만을 토로해왔다. 또한, 전통문화 관련 정책들을 불교 특혜라며 그에 상응하는 개신교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불교계는 템플스테이 예산 지원 등 정부 지원사업을 선거기간을 이용해 확보해온 것이 적지 않다. 문화재 관람료, 국립공원, 종부세, 템플스테이 등 세금 문제, 사찰 전기료 문제 등 불교는 여전히 정부를 상대로 요구할 것이 많다. 선거기간에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치권은 조직화한 종교 표를 획득하려는 욕망으로 선거캠프에 종교분과를 만들어 선제적으로 종교정책을 제안하기도 했다. 결국, 선거철이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정책제안은 종교와 정치 양자가 각자의 이해를 관철하는 정교 유착의 포장지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정책제안 중에서 그나마 공공성을 갖춘 주제들에 대해 선거가 끝나면 종교 기득권의 관심이 실종되어버리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볼 때, 정책제안의 주목적이 집단이익일 뿐이었다는 씁쓸한 결론을 내리게 된다.

선거는 대박이다

선거는 누적된 민원을 해결할 기회이기도 하고 향후 몇 년간 국가지원을 거래할 기회기도 했다. 종교집단에 따라서는 당선이 유력한 후보와의 특별한 관계를 과시하며 교세 확장의 계기로 여기기도 했다.

종교계는 선거철마다 세를 조직하여 규모를 과시했다. 후보 혹은 후보의 배우자(No.2라고 부른다)는 대형 행사에 참석하거나 주요 종교시설을 방문함으로써 종교 친화적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종교인의 지지를 호소했다. 후보자를 신자들에게 인사시키거나 아예 노골적으로 지지를 호소하면서 종교지도자들은 자기 세력에 대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대부분의 직능 단체들이 이처럼 자기 대중의 표를 미끼로 정치권에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종단 실세 스님의 선거 개입

선거국면을 더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성과를 얻은 대표적인 종교인을 꼽으라면 조계종의 막후 실세 스님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이명박을 대통령에 당선시키고 그 힘을 이용해서 총무원장 자리에 올랐다. 세월호 사건 당시 박근혜 정부 대응에 적극적으로 협조했고, 템플스테이 예산을 사찰에 지원할 때 이를 통치 자금화 함으로써 종단 권력을 사유화, 공고화하는 데 활용했다.

실세 스님은 철저히 자신의 영달을 위해 정치권력과 유착해왔다. 종교지도자라면 최소한 자기 종교를 챙겨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실세 스님은 총무원장 시절 천주교 신자인 나경원 후보를 재래시장까지 돌아다니면서 선거 지원을 했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기 측근을 독실한 불자인 민주당 이원욱 의원의 선거구에 낙하산 공천하였다. 국회 정각회장이자 국회 법회를 거의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챙겼던 불자 국회의원을 지원하지는 못할망정 변칙을 써서라도 불자 의원을 꺾고 자기 측근을 정치권에 꽂으려 했다. 그러나 당선을 호언장담하며 낙하산 공천을 했지만 30%에 이르는 표 차로 낙선함으로써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3. 이번 선거에서 불교 대응의 특징

이번 선거에서 불교가 보여주고 있는 정치적 입장의 특징을 짚어보자

1) 게임 룰의 파괴

앞서 말한 것처럼 그동안 정치권과 불교계에 이루어지던 게임의 룰을 파괴한 것이다. 당장은 강경론자의 입장이 관철되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온건한 중도층의 설 자리를 없애버려 갈등 조정의 해법을 찾을 수 없게 만든다. 적당히 물러서면 양해하는 형식적 해결이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퇴로를 남겨두어야 하는데, 지금 조계종 승려들의 행태는 도를 넘었다. 선거국면에서야 정치권이 납작 엎드려 양보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이후는 어찌할 것인가?

2) 노골적 특정 후보 지지

지금 종단 실세의 행보는 선거철에 최대한의 이익을 얻어내기 위해 정치권을 압박하던 예전 방식과 다르다. 이미 정파적 선택을 분명히 했다. 여당 국회의원을 표적으로 삼아 전선을 확대 강화함으로써 야당 대선주자 지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실세에게 돌아올 논공행상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만일 실세의 의도와 다르게 선거 결과가 나온다면, 그 후폭풍은 실세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지금 정청래 의원을 향한 겁박은 불교, 종단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 불교도들의 의사와 무관한 정치승의 독단적 선택과 행위로 불교는 상당한 후유증을 받을 수밖에 없다.

3) 불교 품격 실종

불교의 의견을 표시하는 전통적 방식이 있었다. 미얀마 군부에 항의하며 미얀마 승가는 발우를 엎어 공양을 거부하였고, 우리나라는 삼보일배라는 방식으로 생명과 환경을 지키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냈다. 또 산문을 폐쇄하는 것이 불교의 집단적 의견을 표현하는 가장 강한 항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번 정청래 건으로 민주당사를 방문한 중앙 종회의원들의 모습은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자비 승가를 상징하는 승복을 입은 이들이 사나운 표정으로 한 정치인의 정치생명을 끊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4) 막후 실세 원격조정과 공조직 무력화

비록 바지사장이라는 내외의 평이 있을지라도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법적인 지위는 조계종 총무원장임이 틀림없다. 그 자리에 앉힌 이상 그가 집단을 대표해 발언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런데 정청래 의원에 대한 대응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중앙종회를 통해 예산심의를 중단시키고 정기 종회를 파행시켰다. 손발이 묶인 총무원 집행부는 결국 전원 사표 제출로 납작 엎드렸고, 총무부장의 사표를 수리함으로써 종회의 폭거가 무엇 때문인지 드러냈다.

이 문제를 앞서서 해결해야 할 총무원은 지금 존재감이 없다. 공조직이 무력화됨으로써 배후실세의 뜻에 따르는 강경론자들이 불교의 대응을 주도하는 암흑시대가 도래했다. 공조직 무력화는 동시에 공적 이해보다는 사적 이해가 우선시되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5) 과잉 대표성

현재 드러나고 있는 불교의 뜻은 불교도의 전체 뜻을 모은 것이 아니라 권력자의 사적 이해가 우선되고 있다. 소수 권력승들의 사적 이해와 정치적 입장이 마치 모든 불자의 뜻을 대변하는 양 과잉 대표되고 있다. 60여 개에 불과한 관람료사찰 주지들의 이해를 관람료와 무관한 3천 사찰 주지들의 뜻, 1만2천 승려들의 의견으로 포장하고, 7백만 불자들의 염원인 양 호도한다.

관람료 갈등으로 한국 사회에서 불교가 멍들어가지만 자신들 정치 권력승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그나마 형식적 대표성인 총무원장 권력도 엎어버리고 노골적으로 막후 실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6) 이제는 직접 선거에 참여

참여방식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공적 지위에 있는 스님들이 직접적인 정치 발언이나 행위를 삼가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2007년 종단 실세 스님이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이라는 직책으로 이명박 후보 747불교지원단 상임고문 임명장을 받아 활동하면서 이 금기가 깨졌다.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전리품으로 청와대 행정관, 종무실 불교종무관, 국립공원 관리공단 감사 혹은 이사 등 공적 자리에 자기 사람을 심는 권한을 획득함으로써 국가기관을 정치승려의 텃밭으로 만들었다.

지금도 실세 스님은 은정재단과 봉은사 영빈관을 거점으로 정치인들을 수시로 부르고 있으며, 상월선원 걷기순례 등을 기회로 정치인들과 만남의 기회를 가지며 정치 권력과의 유대를 깊게 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실세 스님은 측근을 야당 대선후보 윤석열 캠프에 파견했다. 캠프에 자기 뜻을 대변하는 사람을 직접 천거하여 파견함으로써 후보의 정책과 인사에 기획단계부터 참여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윤석열 캠프만이 아니라 이재명 캠프에도 실세 스님이 보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어 이번 대선에도 문어발처럼 관여하고 있다.

7) 정치권 학습효과

불교는 정치권력에 대한 뿌리 깊은 공포가 있다. 정화 운동 당시 공권력의 도움이 없었다면 비구 측이 승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전통사찰 주지로 임명받은 승려는 관할관청에 신고해야 했다.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진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불교는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생존해왔다. 10.27 법난의 폭력은 이러한 일방적인 역학관계를 가장 잘 보여준다.

사회 민주화는 불교계에 이전과 다른 공간을 열어주었다. 정치권과의 관계도 새로 정립했다. 이제는 저자세로 관할청에 신고할 필요도 없고 표가 필요한 정치권은 불교를 비롯한 종교계에 대해 호혜적 관계를 새로 정립했다. 선거철마다 유력 후보들은 마치 눈도장을 찍으려는 듯 총무원과 주요사찰을 방문해서 덕담을 나누었다. 여기까지는 용인할 수 있는 범위다. 그러나 종단 실세 스님은 가장 빨리 정치권력과 직접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조계종 총무원장이 될 수 있었고, 자신의 세력을 만들어갔다.

2016년 6월, 팟캐스트 생선향기를 진행하며 조계종 권력승을 비판해온 정봉주 전 의원이 조계종의 압력과 각종 소송에 못 이겨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는 “앞으로 더 이상 조계종단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는 팟캐스트를 운영, 진행이나 패널로도 참가할 계획이 없으며 직간접적으로 불편함을 느낀 분들에게 유감의 뜻을 전한다”고 밝힘으로써 불교가 정치권을 상대로 승리하는 유력한 선례를 남겼다.

결정적인 것은 명진 스님 축출이다. 2017년 4월 5일 조계종 호계원은 명진 스님을 제적 징계했다. 5월 9일의 대통령선거를 코앞에 둔 때였다. 터무니없는 죄목으로 내려진 중징계였다. 하지만 평소 명진스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정치권 인사들은 아무도 명진스님을 위해 나서지 못했다. 이 경험을 통해 실세 스님은 대선국면이야말로 정치권의 손발을 묶는 시기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5. 그럼 무엇을 해야 하나?

바람직한 정치와 종교의 관계는?

헌법에 규정한 정교분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치와 종교의 분리는 각 시대와 지역의 역사경험에 따라 다르다. 왕과 귀족, 가톨릭 종교권력의 폭정에 시달리던 프랑스 국민들은 앙샹레짐(구체제)을 전복하고 프랑스대혁명을 성공시켰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화정, 근대시민 국가에서는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 국민을 억압하던 종교권력을 철저하게 부정하였다. 즉 프랑스 혁명에서 정교분리는, 왕과 귀족과 결탁했던 종교권력을 정치에서 강제로 분리하는 일이었다.

2차 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은 미군정하에서 새로운 질서를 건설했다. 천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일본군국주의를 해체해야 전범국가 일본이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천황제 아래에서 군국주의에 복무하던 국가주의 종교들을 정치권력에서 분리시킬 필요가 있었다. 일본에서 정교분리라는 단어에 담긴 함의는 이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정교분리라는 헌법조항은 어떤 의미가 있나? 우리는 다른 나라처럼 정치와 종교가 일체였던 시기가 없다. 지금도 전인구의 절반 이상이 무종교인 특수한 국가다.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 정교분리 국가에서 신앙의 자유, 언론의 자유의 연장선상에서 종교의 자유가 이루어진다. 특정 종교가 자기 교의를 국교화 하려는 시도는 당연히 거부되어야 한다.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초법적 특권과 민주 질서의 교란도 부정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는 아직 정교분리를 경험속에서 성숙시키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종교에 대한 지나친 특혜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고, 국교가 없는 한국 사회에서 종교는 사실 유례없는 특혜와 보호를 받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종교 명절의 국가 공휴일 지정이다. 크리스마스와 부처님오신날이 국가 공휴일인 것은 엄밀히 따지면 정교분리에 대한 헌법 위반이다. 나아가 비종교인들에 대한 차별이다.

또 다른 것은 군 종교 특권이다. 50만 대군인 군 내의 독점적 선교는 오직 몇몇 대형종교에만 보장되어있다. 국가방위를 위한 예산으로 군은 특정 종교들의 인건비와 독점적 선교공간을 보장해주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종무실은 종교 지원을 전담하는 정부 기관이다. 2과 가운데 1과는 오로지 불교만을 담당하고, 나머지 개신교와 천주교, 민족종교 등은 2과에서 담당하여 이 또한 불교에 대한 특혜라 주장하기도 한다.

문화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정부 예산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문화재 관리와 전통문화 지원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지만, 이를 넘어서는 추가 지원을 종교는 요구하고 선거철마다 정치권은 이를 수용해왔다. 조계종이 불교박물관을 짓겠다며 국고지원을 받아 총무원 청사를 건립하자 태고종은 전승관을 건립한다며 역시 자기 청사를 지었다. 조계종의 목동 국제선센터, 공주의 한국문화연수원 등 눈 가리고 아웅하듯 국가 세금의 종교 지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개신교가 종교인과세법을 무력화하고, 사랑의교회가 공공도로 지하를 사유화한 불법적 일들이 일어나는 것 또한 종교 특혜의 한 변종이다. 가톨릭은 서소문 성지화 사업으로 국가 땅에 지자체 예산으로 가톨릭 시설을 짓는 기염을 토했다.

순례길이라는 명목으로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지자체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거대종교가 이렇듯 특권적 이익을 추구하는 한 국민의 반종교 정서는 거세질 것이다. 종교 특혜를 끊어내려는 노력이 종교 스스로도, 정치권에서도 함께 고민되어야 한다.

대선을 계기로 불교계는 성찰해야

한국사회 대형종교와 정치권은 늘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정화 운동과 조계종 창종에서 직접 혜택을 입은 조계종은 말할 것도 없고, 개신교 또한 반공을 매개로 박정희 정권과 상생과 협력을 유지해왔다.

불교는 정치권력에 굴종하는 처세의 이데올로기로서 교의를 왜곡시키곤 했다. 박정희의 10월 유신을 지지했고 긴급조치를 한국적 민주주의라 찬양했으며, 전두환의 호헌조치를 구국의 결단이라고 칭송했다. 불교의 자비와 관용이 국가권력 범죄에 대한 면죄부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주적인 교단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해 왔다. 10.27법난을 극복하고자 했고, 94 종단개혁에서는 종단 자주화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2008년 총무원장 지관스님 때는 이명박 정부의 종교 편향과 차별에 항의하는 대규모 불교도대회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기도 했다.

사실 종교는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오히려 지나친 선거 개입을 국민은 부정적으로 본다. 불교의 정책제안이 시민사회로부터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비판받아온 이유는 이익집단의 요구가 노골적으로 전면화 되어있기 때문이다. 보편적, 공적 종교로 성숙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특히 시대의 담론인 공정과 정의를 담아내는 불교 윤리를 정치지도자들에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기후위기, 평화통일, 양극화 해소 등 국가운영 기조에 대한 종교적 입장을 제시할뿐더러, 자기 종교 내부에서부터 공공선을 위한 실천을 만들어나가는 모습을 보일 때 대사회적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

서울대 종교문화연구소 최현종의 연구에서 지적했듯 “종교가 어느 정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느냐의 관건은, 그들이 제기한 이슈들이 어느 정도 시민사회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보여 진다.”는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이번 대선과 불교에 대해

1) 불교의 품격을 지키며 민족사의 위기를 극복할 지혜를 제시하라.

한국사회 대전환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위기 극복을 위해 기후위기와 지구온난화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실천과 국제연대를 주문하고, 민족사적으로는 통일과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비전을 수립해야 한다. 남북문제, 미·중대립 등 한반도를 둘러싼 갈등상황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입각한 지혜로운 해법을 필요로 한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자영업자의 몰락 등 중생들의 삶과 경제위기가 심화하는 지금 불교의 자비와 연민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사회안전망 확충과 공동체 경제 회복이라는 과제를 정치지도자는 명심해야 한다.

또한,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고난에 깊은 연대를 표하며, 중동 난민 문제에 대해 국가의 더욱 적극적인 참여와 대안 마련을 촉구해야 한다.

2) 출가자의 과격한 행동을 자제하라

부처님은 자신의 장례는 재가자에게 맡기라고 하셨다. 출가자의 일이 아니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속과 갈등하는 호법 호교는 사부대중, 그 가운데서도 재가 2부 중이 앞장서야 할 일이다. 삭발염의한 수행자들이 팔뚝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민망한 일은 인제 그만 자제하길 바란다.

문화재 관람료와 국립공원용지 지정 등에 불교가 억울한 일이 있다면 국민을 설득함에 노력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겸허하게 반성해야 한다.

3) 일부 정치승의 준동을 막아내라

최근 조계종단을 보면, 공조직은 무력화되고 배후에서 모든 일이 결의되고 조직되고 있다. 파당을 지어 사적 이해를 추구하는 정치 권승을 막아내는 일이 승가 공동체 모두에게 요구된다.

더구나 특정인이 막후에서 불교의 이름으로 세를 과시하는 대형 행사를 조직하는 일은 코로나19 방역 시국과도 맞지 않는 위험한 일이다. 나아가 특정 정당의 선거조직에 이름을 올리거나, 선거 운동을 통해 종교를 정치에 예속시키거나 이용하는 등 종교인으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행태는 중단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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