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불교교류 비망록이제, 다시 본다] 21. 2004년 조불련 전국신도회
[남북불교교류 비망록이제, 다시 본다] 21. 2004년 조불련 전국신도회
  • 이지범 북한불교연구소장
  • 승인 2022.02.2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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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신도회가 탄생하다”

1945년 12월 26일 평양 룡화사에서 결성된 조선불교도련맹의 강령에는 신도회가 없다. 1945년 결성 때 ‘전조선 불교통일’과 ‘교단 혁신과 자주독립 촉진’ 등 5개 조항과 사회주의 건설에 동조 또는 협력하기 위한 1949년 수정 강령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1항의 “공화국 헌법과 정부 정강을 받들고, 이것을 철저히 실천・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하며, 조국의 국토 완정과 완전 자주독립을 위하여 적극 노력한다.” 또는 6항의 “불교도들에게 로동정신을 함양시킴으로써 조국 부강을 수립함으로써 민족문화발전에 기여한다.” 등 7개 항목으로 구성됐다.

이처럼 출・재가자의 구분 없는 교단 운영과 달리 남측에서는 지금까지도 2부 대중의 출가승 중심으로 교단이 운영되고 있다. 1954년 5월, 불교계 정화에 관한 이승만 대통령의 담화로 촉발된 정화운동은 1962년 4월 통합종단 출범으로 일단락됐다. 독신과 결혼승 계열의 갈등과 대립 시대이던 1955년 6월 조계사 불교회관에 사무실을 개소하고, 그해 11월 서울 조계사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전국신도회가 창립함으로 재가자들의 신행단체가 처음 출범했다.

그 후, 조계종 전국신도회는 1997년 3월 15일 창립한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와 2004년 5월 7일을 기해 통합됐다. 현재, 남측의 태고종과 천태종 등 여러 교단에서도 전국신도회라는 신도 조직을 창립 운영하고 있다.

지시에 의한 타율적인 결성 조직과 자율적인 창립의 측면에서 보면, 북측의 조불련 전국신도회는 당국의 지시와 허가로 결성된 조불련 중앙위원회 산하의 별도 조직체이다. 여자 승려인 비구니가 없는 조불련은 비구, 우바이, 우바새로 구성된 3부 대중(출가승과 재가자)의 교단인 셈이다. 또한 조선카톨릭협회 여성부와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여성부와 다른 조불련 ‘전국신도회’이란 명칭으로 출범함으로써 종교 교단의 기본 체계를 이루었다.

분단 후, 새로운 형태의 교단을 이룬 북한지역 불교 변화의 주요 사례로는 신도 조직의 탄생을 꼽을 수 있다. 2003년 12월 말, 조불련 전국신도회가 결성된 배경과 구성원 등을 비롯한 남북불교 교류에 참여한 전국신도회의 이모저모에 대해 정리했다.

사진 1>

[조불련 전국신도회 주요 임원과 함께(2008.8.7. 평양 조불련 청사) 좌측부터 필자, 리현숙 전국신도회 부회장, 손안식 조계종 중앙신도회 상임부회장, 심상진 조불련 위원장, 라영식 전국신도회장, 김명희 전국신도회 상무위원, 이상근 중앙신도회 사무총장. 사진: 이지범 제공]

조불련 전국신도회의 출범

1955년 창립한 조계종 전국신도회에 이어 48년 만에 북녘의 불교 신도회가 출현했다. 불교 교단의 정화운동을 지지하고 외호하기 위해 출범한 남측 신도회와 달리 북측의 조선불교도련맹 전국신도회는 주체사상에 입각한 ‘북한식 사회주의 건설에 복무’하기 위해 2003년 12월 26일 평양 광법사에서 처음 결성됐다.

조불련 전국신도회의 개막은 운무 라영식 초대회장을 중심으로 안심행 리현숙 부회장과 김명희 상무위원, 신정애 상무위원 등을 비롯한 정영호 평양시신도회장 등 여러 도・시 지역 사찰에서도 구성됐다. 주요 임원들은 2005년 7월 22일 금강산 신계사에서 열린 ‘제1차 조국통일기원 남북불교도 합동법회’에 참가해 처음 얼굴을 알렸다.

분단 48만에 전국신도회가 결성되기까지는 외부요인과 내부적 결단이 요구됐다. 먼저, 2000년 11월 4일 평양 광법사에서 열린 청공 윤이상 합동추모법회에서다. 신법타 평불협 회장의 즉석 제안으로 북녘사찰을 순례한 이수자 윤이상음악연구소 명예회장을 “조불련 신도회의 명예회장으로 모시는 것이 앞으로 추모사업과 남북불교 교류 협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발언으로, 조불련에 신도회 조직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로부터 2001년 12월 26일 조불련 창립 56돌 기념보고회에서 신도회 결성을 처음으로 제안했다. 조불련 중앙위원회는 2003년 12월 26일 평양 광법사에서 가진 창립 58돌 기념보고회에서 전국신도회 결성을 공식화했다.

그 시작은 2004년 4월 22일 평북 룡천군의 룡천역 열차 폭발사건과 7월 24일 큰물피해 돕기 사업에 참여하면서다. 그해 5월부터 조계종 민추본, 신계사복원추진위원회, 평불협, 한국JTS 등 남측의 구호물품 지원에 이어서 같은 해 12월 14일~17일 중국 베이징에서 가진 남북불교 회의에 라영식 조불련 전국신도회장이 처음 등장한 것이다. 국외 활동으로, 2004년 11월 1일에 임명된 조불련 정서정 서기장과 서철민 책임부원 등과 참가했다.

이 시기의 전국신도회는 조불련 중앙위원회와 함께 지정 기탁된 인도적 구호물품에 대한 접수와 배포 실무를 담당했다. 국내 평불협은 2004년 4월 30일 평양 일경사무소와 양파재배 지원사업 합의서를 체결하고, 5월 11일~15일까지 평양시 용성동을 방문해 양파 재배지 답사와 지원을 이어갔다. 또한 황북 사리원시의 금강국수공장과 성불사, 개성 영통사를 방문했다. 민추본은 5월 4일과 6월 22일 두 차례에 걸쳐 구호물품을 지정 기탁했으며, 평불협과 한국JTS 등 불교단체에서도 룡천역 폭발사고에 대한 식료와 의료품 등 지원사업을 가졌다.

한편, 2004년 6월 15일~16일 인천에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4돌 기념 우리민족대회’에 북측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오전 10시 30분 인천 문학경기장 보조경기장에서 가진 대회 개막식에 이어 가진 ‘남북종교인대회’에 심상진 조불련 부위원장 등이 참가했다. 북측・해외・국내 대표단 1,365명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에서 열린 6.15 민족대회에서 6.15 공동선언 계승과 자주평화통일을 다짐하는 ‘민족대단합 선언’을 채택했다. 그해에는 남북 노동자 5.1절 통일대회가 평양에서, 남북 농민통일대회가 6월 27일 금강산에서 열렸다. 또한 남북 대학생 상봉모임이 그해 3월 13일 금강산에서 처음 열렸다. 그러나 8.15 공동행사는 북측의 홍수피해와 함께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와 한총련의 참가를 남측 정부가 불허하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남북불교 교류에 있어 북측 전국신도회가 본격적으로 나섰던 때는 2005년 3월 31일 중국 베이징 피오니호텔(牡丹賓館)에서 조계종 중앙신도회와 ‘남북 신도단체 교류회의’를 처음 갖게 되면서다. 이때 교류 회의에는 조불련 심상진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리영호・류인명・서철민 책임부원이 전면에 나서서 백창기 조계종 중앙신도회장, 김규범 부회장, 최연 사무총장 등과 함께 ‘남북 신도단체 교류’의 첫 물꼬를 텄다.

이때 교류 테이블에 올린 주요한 의제는 ① 남북불교의 공통분모인 법회를 공동행사로 개최하자. ② 남북불자들의 인적교류를 위한 방안으로 정례회의를 열자. ③ 남측 신도회가 인도적 지원사업에 동참하자. ④ 중장기적으로 북녘사찰 순례를 가질 수 있도록 문호를 확대하고 대책을 수립한다. ⑤ 첫 과제로 6.15 공동선언의 이행과 실천에 양측 신도회가 주체적으로 앞장서서 노력한다. 이것을 결행하고 연대하기 위해 먼저, 금강산 신계사에서 ‘남북불교도 합동법회’ 개최와 실무회의를 갖는다. 또한 인도적 지원을 당해연도에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합의문에 대한 양측의 수표(서명)가 초저녁에 끝나면서 자연스레 축하연이 벌어졌다. 첫 만남은 반세기를 넘어 백년손님들이 찾아온 잔칫집이 됐다. 잔칫날의 흥감은 최연 중앙신도회 사무총장이 장착한 오백 곡의 가사불문 곡조에 모두의 얼굴이 붉은 단청으로 채워졌다. 그날, 중국 베이징의 모란관 식탁에는 동지들의 계영배(戒盈盃)가 밤새도록 놓였다.

분단 60년 만에 성사된 남북 신도단체 교류회의는 북측 당국이 ‘사상에서의 오염원’으로 분류한 종교와 ‘황색자본주의 골바람’ 또는 ‘양바람(서양풍)’이라 부른 교류의 벽장을 여는 첫 관문이 되었다. 그로부터 2017년 6월 5일 타계한 운경 백창기 조계종 중앙신도회장이 처음 닦아 놓은 교류의 길은 2005년 5월, 명원 김의정 중앙신도회장 권한대행에게 남북불교 신도간 교류의 바통(baton)이 넘겨졌다.

사진 2>

[남북불교 신도단체 교류회의(2005.3.31. 중국 베이징 모란빈관), 좌측 앞줄부터 리영호 조불련 책임부원, 심상진 조불련 서기장, 백창기 조계종 중앙신도회장, 김규범 중앙신도회 부회장, 김일록 중국 연길시 조선자치주 총경리, 좌측 뒷줄부터 길정태 중국 연락사무소장, 서철민 조불련 책임부원, 최연 중앙신도회 사무총장, 류인명 조불련 책임부원. 사진 : 이지범 제공]

사진 3>

[금강산 신계사 합동법회 대표자회의(2005.7.1. 개성 자남산려관) 김의정 조계종 중앙신도회장 권한대행, 손안식 상임부회장, 최연 사무총장, 정서정 조불련 서기장, 라영식 전국신도회장 등. 사진 : 이지범 제공]

남북 신도회의 첫 데이트

남북불교 신도대표의 첫 데이트는 2005년 7월 1일 개성 자남산려관에서 ‘온해’(하루종일) 동안 가졌다. 개성 송악산의 아들로 불리는 자남산 기슭에서 ‘난데(낯선) 손님’들이 어깨걸이와 ‘너꾸리’(옆구리)을 치며, ‘아가’(고상한 노래)와 ‘사거리’(옛노래 모음 형식)까지 즐겼다.

북측의 방언과 용어가 등장했던 첫 데이트는 2005년 3월 말 이후, 넉 달 만에 성사됐다. 정서정 조불련 서기장의 중매로 조계종 중앙신도회와 조불련 전국신도회 대표가 처음 만났다. 김의정 조계종 중앙신회장 권한대행을 단장으로 손안식 상임부회장, 김규범 부회장, 최연 사무총장, 이상근 사무처장, 이지범 기획실장, 장성원 총무팀장과 북측의 라영식 조불련 전국신도회장, 리현숙 부회장 그리고 조불련 정서정 서기장, 류인명 책임부원과 평양시 신도회 상무위원이 함께했다.

여름 장마가 시작된 7월 1일 아침 8시 30분 남측출입사무소를 통과한 2대의 차량은 ‘안개비’(가랑비)의 DMZ를 지나 북측 CIQ에서 삼엄한 입경 절차를 받았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의 왕래는 민족적 특성을 감안하여 국가간의 출입국 대신에 ‘출・입경’이란 용어의 수속 절차로 진행됐다. 사람과 차량 수속이 끝난 뒤, 그곳에서 조불련 정서정 서기장으로부터 안내를 받았다. 간략한 수인사와 함께 정서정 서기장은 “낮전(午前)에 안개비가 거치면, 조국의 승치(좋은 경치)를 잘 볼 수 있을 겁네다.” 또 “다들, 흐락이(긴장한 마음을 풀어서 흐뭇하고 편안하게) 하시라요.”라는 인사말로 긴장감을 풀어냈다. 개성공단을 통과한 일행은 오전 10시경 개성시 동쪽 자남동에 위치한 자남산려관(호텔)에 도착했다.

넋 놓고 개성 시내에 들어온 일행은 호텔 초입에 설치된 선전물의 ‘조국은 하나다’라고 쓰인 붉은 구호를 보고 일순간 숨이 멎었다. 바로 옆, 선죽교와 숭양서원을 지나쳤는지도 몰랐을 정도였다. “도착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주차마당에 기다리던 리현숙 부회장 등의 얼굴이 비치었다. 모두 낯섦에 엉거주춤 인사하며 자남산려관으로 들어섰다. 호텔 봉사원이 안내한 2층 회의실 창가에는 초록빛의 신록과 고려 오백 년의 새 빛이 반짝거렸다. 회의실 남・북쪽으로 자리한 양측은 상견례를 했다. 그때 정서정 서기장이 “리지범 동지가 다들 알고 있으니까. 먼저 소개하시라요.”라고 해서 급랭했던 분위기가 ‘흐락이’하게 됐다. 남측부터 북측까지 소개를 마치자. 또 정 서기장은 “이제, 북남불교 사회주의자가 다 됐습니다.”란 덧붙인 설명으로, 그때 필자는 특별한 닉네임을 얻게 됐다.

분단 60년의 만남과 ‘금강산 신계사 조국통일기원 남북불교도 합동법회 대표자회의’에 앞서 정서정 조불련 서기장은 환영 인사에서 “오늘, 북남 불자들의 역사적 만남은 ‘로도만리’(성난 물결이 만 리나 된다는 뜻으로, 매우 어렵고 험난한 먼 길을 비유한 말)와 같습니다. 그런 만큼 아무런 형식과 조건 없이 토론하고, ‘금석어’(신뢰할 수 있는 말)로 ‘시불가실’(때를 놓치면 안 된다는 뜻)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고 했다. 이어 김의정 중앙신도회장은 답례 인사로 “먼저, 조불련 스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불자들이 함께할 수 있는 장소와 자리를 열어 준 것에 대해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회의가 평화통일과 불교 교류에 큰 이정표를 세울 수 있도록 많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고 말했다.

이어 최연 중앙신도회 사무총장은 ‘금강산 신계사 합동법회’에 관한 세부사항을 제안 설명하고, 개최 일자와 시간 그리고 참가대상과 규모, 법회 식순 등에 관한 내용이 합의될 수 있기를 북측에 요청했다. 아울러 남측의 인도적 지원에 관한 시기와 내용에 관해 설명하고, 전달방식에 대한 협조를 제안했다. 조불련은 조계종 중앙신도회의 제안을 모두 수락하고, 당일 행사에 있어 필요한 제반사항은 전일 실무회의에서 최종 조율하여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개성 칠첩반상으로 차려진 호텔 연회장에서 정서정 조불련 서기장은 “6.16 공동선언 리행과 실천을 위해 북남불교도가 함께 뜻을 모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건배제의를 하고, 손안식 상임부회장은 답례 축배제의를 했다. 또한 호텔 별실에서 가진 여흥 자리는 남남북녀가 아닌 북남남녀로 회자됐다. 정 서기장은 최연 사무총장의 노래 솜씨에 “우리 ‘고동대’(군중 사기를 높이기 위한 대오나 조직)에 불러야겠다.”라며 화답했다. 필자 등은 자남산려관 회랑에 나아가 ‘나비초’(잎담배)와 려과담배로 개성 송악의 공기를 맛보았다.

남북 불자들은 복더위가 시작되는 초여름날, ‘숫눈길’(아무도 걷지 않은 생소한 길)에서 서로의 ‘골표’(얼굴 생김새)를 보고 이름 부르며, 개성에서의 한나절 데이트를 즐겼다. 금단의 땅으로 가는 상기된 표정은 감성으로 가득한 연인과의 대화처럼 상큼한 여운을 남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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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편은 ‘2005년 개성 영통사 낙성식’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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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범은

경북 경주 출생으로 1984년부터 불교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참여하다가 1990년 초, 법보종찰 해인사에 입산 환속했다. 1994년부터 남북불교 교류의 현장 실무자로 2000년부터 평양과 개성・금강산 등지를 다녀왔으며, 현재는 평화통일불교연대 운영위원장과 북한불교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남북불교 교류 60년사’ 등과 논문으로 ‘북한 주민들의 종교적 심성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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