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50. 떠난 님 그리워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50. 떠난 님 그리워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2.02.21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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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을 전화했었는데
연결이 되지 않아
깨알 같은 마음을 담아
깨톡도 보냈지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올해 벚꽃이 피면
벚꽃 구경을 가자 했지요

답답한 병실 같은 방에서
창문만 물끄러미 바라보다
인기척에 문에 마음을 담아 웃음 짓던 당신

일찍 핀 매화도
버들강아지도
보지 못하고
무에 그리 바쁘다
먼 길을 재촉했는지.
 

#작가의 변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지인이나 친구로부터 연락이 오면 반갑기도 하고, 무슨 일 때문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구에게서의 연락은 반가운 연락보다는 다단계나 근처에 가게 되었는데 만나자는 연락이 대부분이다.

사람 간에 만남은 늘 반갑다. 하지만 다단계를 권유하거나 하면 친구라도 정말 야속하다. 친구로 생각은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젊어서는 결혼식 청첩장이 많았다. 이민 오고 나서는 결혼식 청첩장도 장례식 소식도 다 남의 일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는 지인도 별로 없었고, 한국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은 거리가 너무 멀었다. 어머니와 장모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으니 다른 사람은 말해 무엇하리요. 그러다 한인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산행사고로 지인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캐나다에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성당엘 나가야 한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었다. 천주교는 그들의 공원묘지가 있고 장례식 일체를 천주교인 단체에서 책임지고 하는 모임이 있다. 낯선 이민지에서 갑작스런 상을 당했는데 누군가 알아서 다 해준다면 얼마나 고마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었다. 결혼식도 많이 다니지 못했지만, 장례식도 많이 다니지 못했다. 그래서 캐나다에서 보는 장례식은 생소하기도 하고 느낌이 남달랐던 것 같다.

관에 망자를 안치하고 얼굴화장을 하고 보여주는 의식이라든지, 장례식에서 고인의 살아생전의 사진들을 슬라이드로 보여주면서 망자의 가족과 친구들이 나와서 망자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시간은 어릴 적 한국에서 내가 겪은 장례식과 많이 비교되었다. 평생을 떠돌이로 떠돌던 딸만 하나뿐인 작은 할아버지를 아버지가 잠시 모시다가 우리 집에서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가마니 같은 것으로 시신을 꽁꽁 싸맨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분명 관을 쓰지 않은 기억이다. 그리고 다리를 건널 때마다 행여는 앞으로 가지 않고 버텼다. 고모부가 돈 봉투를 상여 앞에 놓고 나서야 몇 발짝 움직이다 다시 주저하지 않고 하기를 여러 번 했다. 망자의 사위 얼굴에 검은 숯검정 칠을 하고 여러 사람이 줄로 매고, 이리저리 당겼던 기억도 어렴풋이 있는 것 같다. 망자의 사위는 장례식이 여러모로 쉽지 않구나 하고 느꼈다.

아는 지인이 캐나다에서 전문의에게 가서 진료를 받지 못하고 한국에 가서 파킨슨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몇 년 전에 보행장애와 얼굴 표정에 장애가 와서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증세가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한의원 의사의 말이 뇌경색이나 뇌출혈과는 좀 다른 것 같으니 정확한 병원 진단을 받아 보라고 했다. 하지만 가정의는 전문의에게 보내주지 않았고 증세가 계속 악화해 한국으로 간 것 같다. 손 떨림, 보행장애 근육의 경직 또는 마비 수면장애, 후각 소실 등의 증상이 있다는데 나의 증상과 유사하다. 2년 전 뇌경색으로 고생한 나로선 남의 일이 아니다. 현재 나의 경의 후각 손실이 되고 귀에 이면이 온 것과 뇌경색이 온 것이 시기가 비슷하다. 아니 6개월 정도 앞서 이런 증상이 시작되었다. 잠을 자지 못하고 이명, 조리 일하는 나에게 후각 손실은 어디 가서도 말하기 힘든 일이기도 했다. 손 떨림도 심하다. 뇌졸중인 중풍과도 증상이 비슷해서 치료가 늦어지기도 한다.

캐나다는 의료비를 내지 않는 대신에 오진 사고나 전문의한테 진단받는 게 힘든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병을 키워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경우도 많다. 위암 진단을 받고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를 잃어버리고 부모가 있는 대만에 다녀온다며 돌아와서는 하던 비지니스도 처분하겠다던 그 지인의 경우 대만에서 정밀진단을 해보니 회충이 뭉쳐 있어서 암으로 오진하게 되었다는 코미디 아닌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었다. 요즘은 의료기술이 발달해서 암도 조기 발견만 하면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조기 진단이 어려운 경우엔 병을 키우는 꼴이다. 한국에 자주 가지도 않지만 한국에 가서 진단을 받아 본 적도 없다. 전문 의료영어로 증세를 말하려면 의사한테 갈 때마다 병명을 영어로 찾고 증세를 영어로 찾아서 가도 괜찮다고 일반적인 증세라고 하거나 피검사 한번 받아 보자고 하면 기운이 쭉 빠지곤 한다. 겨울이 시작될 때 많이들 사망하지만 봄이 오기 전인 환절기 요맘때도 멀리 떠나는 분들이 많다. 살다가 죽는 것이 지극히 자연 현상이긴 하지만 막상 나에게 닥치거나 가족에게 닥치면 하늘이 노랗게 변한다.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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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살고 있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학원을 다니면서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 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 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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