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55 .조연들을 위한 시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55 .조연들을 위한 시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2.04.11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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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로
인도 한 가운데 누워 아침을 맞는 노숙자
홀 아래서 올라오는 스팀
맨 얼굴로 하늘과 마주하는 그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아침

도시는 빌딩조차 날이 서서
시퍼런 얼음 위를 걷듯 유리창에 세상을 비추지
메모리 칩을 심은 로봇처럼
바쁘게 움직이는 아침 출근길
무표정한 사람들은
운전기사도 안내양도 없는 무표정한 전철에
포개어진 짐짝처럼 실어져
도심으로 날라진다.

눈만 뜨면 삽을 들고 논으로 향하던 아버지처럼
눈만 뜨면 호미 들고 밭으로 가던 어머니처럼
손전화 세상을 쳐다보며 보이는 것들에
관심이 없는 척 무표정한 모습을 한 채

주연보다 더 주연 같은 조연들이
움직이는 세상은
한 발짝 떨어져 보면
감정도
느낌도
사랑도 없는 로봇처럼
도시 밀물처럼 왔다
썰물처럼 간다.

작은 핸드백
살아가는 소품처럼
풀어 헤친 화장지 왕관을 쓰고.


#작가의 변
어젠 오후가 되어서 아내에게 쑥 뜯으러 가자고 했더니 웬일이냐는 옆지기의 반응처럼 내 입에서 나온 말에 나도 놀랐다. 어지간히 심심한가 보다며 기꺼이 함께 나선 아내는 무릎이 아주 좋지 않다. 가까운 곳으로 전에 들은 것 같은데 아주 멀리 간다. 그리고 풀밖에 보이지 않는 주택가 언덕에서 나는 “쑥이 어디 있어.”하고 질문을 하게 되고, 아내는 “발밑에 쫙 깔렸네.” 그런다.
며칠 전 사 온 막걸리로 막걸리 빵을 만들어 달라고 했지만, 아내는 직접 만들라고 하고 한 잔씩 마시다 보니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 4리터짜리 우유병에 들어 우유같이 보이기도 하는 막걸리를 술을 잘못하는 아들, 딸까지 한 잔씩 마신다.
SNS에서 쑥버무리를 보고 쑥버무리 만들어 달라고 그러나보다고 아내는 이미 짐작하고 있다. 정말이지 쑥 개떡이라도 먹고 싶다. 아니 밥 위에 얹은 감자 개떡을 먹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로
인도 한 가운데 누워 아침을 맞는 노숙자
홀 아래서 올라오는 스팀
맨 얼굴로 하늘과 마주하는 그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아침

도시는 빌딩조차 날이 서서
시퍼런 얼음 위를 걷듯 유리창에 세상을 비추지
메모리 칩을 심은 로봇처럼
바쁘게 움직이는 아침 출근길
무표정한 사람들은
운전기사도 안내양도 없는 무표정한 전철에
포개어진 짐짝처럼 실어져
도심으로 날라진다.

눈만 뜨면 삽을 들고 논으로 향하던 아버지처럼
눈만 뜨면 호미 들고 밭으로 가던 어머니처럼
손전화 세상을 쳐다보며 보이는 것들에
관심이 없는 척 무표정한 모습을 한 채

주연보다 더 주연 같은 조연들이
움직이는 세상은
한 발짝 떨어져 보면
감정도
느낌도
사랑도 없는 로봇처럼
도시 밀물처럼 왔다
썰물처럼 간다.

작은 핸드백
살아가는 소품처럼
풀어 헤친 화장지 왕관을 쓰고.

#작가의 변
어젠 오후가 되어서 아내에게 쑥 뜯으러 가자고 했더니 웬일이냐는 옆지기의 반응처럼 내 입에서 나온 말에 나도 놀랐다. 어지간히 심심한가 보다며 기꺼이 함께 나선 아내는 무릎이 아주 좋지 않다. 가까운 곳으로 전에 들은 것 같은데 아주 멀리 간다. 그리고 풀밖에 보이지 않는 주택가 언덕에서 나는 “쑥이 어디 있어.”하고 질문을 하게 되고, 아내는 “발밑에 쫙 깔렸네.” 그런다.
며칠 전 사 온 막걸리로 막걸리 빵을 만들어 달라고 했지만, 아내는 직접 만들라고 하고 한 잔씩 마시다 보니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 4리터짜리 우유병에 들어 우유같이 보이기도 하는 막걸리를 술을 잘못하는 아들, 딸까지 한 잔씩 마신다.
SNS에서 쑥버무리를 보고 쑥버무리 만들어 달라고 그러나보다고 아내는 이미 짐작하고 있다. 정말이지 쑥 개떡이라도 먹고 싶다. 아니 밥 위에 얹은 감자 개떡을 먹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로
인도 한 가운데 누워 아침을 맞는 노숙자
홀 아래서 올라오는 스팀
맨 얼굴로 하늘과 마주하는 그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아침

도시는 빌딩조차 날이 서서
시퍼런 얼음 위를 걷듯 유리창에 세상을 비추지
메모리 칩을 심은 로봇처럼
바쁘게 움직이는 아침 출근길
무표정한 사람들은
운전기사도 안내양도 없는 무표정한 전철에
포개어진 짐짝처럼 실어져
도심으로 날라진다.

눈만 뜨면 삽을 들고 논으로 향하던 아버지처럼
눈만 뜨면 호미 들고 밭으로 가던 어머니처럼
손전화 세상을 쳐다보며 보이는 것들에
관심이 없는 척 무표정한 모습을 한 채

주연보다 더 주연 같은 조연들이
움직이는 세상은
한 발짝 떨어져 보면
감정도
느낌도
사랑도 없는 로봇처럼
도시 밀물처럼 왔다
썰물처럼 간다.

작은 핸드백
살아가는 소품처럼
풀어 헤친 화장지 왕관을 쓰고.


#작가의 변
어젠 오후가 되어서 아내에게 쑥 뜯으러 가자고 했더니 웬일이냐는 옆지기의 반응처럼 내 입에서 나온 말에 나도 놀랐다. 어지간히 심심한가 보다며 기꺼이 함께 나선 아내는 무릎이 아주 좋지 않다. 가까운 곳으로 전에 들은 것 같은데 아주 멀리 간다. 그리고 풀밖에 보이지 않는 주택가 언덕에서 나는 “쑥이 어디 있어.”하고 질문을 하게 되고, 아내는 “발밑에 쫙 깔렸네.” 그런다.
며칠 전 사 온 막걸리로 막걸리 빵을 만들어 달라고 했지만, 아내는 직접 만들라고 하고 한 잔씩 마시다 보니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 4리터짜리 우유병에 들어 우유같이 보이기도 하는 막걸리를 술을 잘못하는 아들, 딸까지 한 잔씩 마신다.
SNS에서 쑥버무리를 보고 쑥버무리 만들어 달라고 그러나보다고 아내는 이미 짐작하고 있다. 정말이지 쑥 개떡이라도 먹고 싶다. 아니 밥 위에 얹은 감자 개떡을 먹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작은 칼로 쑥을 베어 내는데 이게 자세를 구부리고 하니 허리가 아프고 무릎을 꿇고 하니 무릎이 아픈 아주 고약한 자세다. 조금 쑥을 뜯다가 “이제 가자” 하니, 아내가 “왜 그 말이 안 나오나 했다”며 “힘들지” 한다. 물론 무릎이 안 좋은 아내도 안 아플 리 없다.
그리고 동네 언덕이다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고 집안에서도 저 사람들 뭐하나 하고 쳐다보는 것만 같다. 자기들이 채취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네 땅도 아니지만 이상해 보이는 것을 신고하는 것에 진심인 캐나다 사람들 눈에 곱게 보일 리가 없다.
딱 한 번 깊은 산에 송이버섯을 채취하러 간 적이 있다. 아주 깊고 깊은 산 속이라 다시 찾아가라고 해도 찾아가지 못할 그런 곳에 가서 송이를 쇼핑백 가득 따오면서 그곳에 우릴 데려간 사람이 가져간 라면을 끓이고 그 라면에 송이를 넣어서 먹으니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모른다. 지금까지 맛있게 먹은 음식 중에 손꼽히는 음식 중 하나이다. 회를 먹은 것 중에 가장 맛있었던 것은 울릉도 신혼여행을 갔을 때 배에서 선장이 직접 회를 떠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던 그 펄펄 뛰던 생선의 고소함은 잊을 수 없다.
캐나다에서도 송이버섯을 업으로 따서 파는 사람들이 있고 고사리를 채취해 파는 사람도 있다. 심심풀이 땅콩처럼 도토리를 채취해서 도토리묵을 만들어 먹고 파는 노인들도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 갈 때 캐나다 도토리묵 가루라고 가져가기도 한다.
일찍 그만둔 쑥 채취가 아쉬워 돌아오는 길에 산책길 주변에 고사리나 따러 가자고 들렀다. 이미 누군가가 고사리를 채취해 간 뒤였지만 그래도 몇 움큼 고사리를 꺾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리고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물어보는 사람들이 없는 것도 다행이었다.
우리가 고사리를 채취하면 “그거 먹는 거냐?” “그거 독이 있는 풀인데 먹어도 되냐?” 등등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왠지 불편하다. 다들 운동하는 공원에서 풀 같은 것은 뜯으니 이상한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달래 캐서 달래장 만들어 밥을 비벼 먹는다는데, 달래는 고사하고 쑥을 뜯는 일도 쉽지 않다. 캐나다 밴쿠버에도 한국에서 공수된 달래나 냉이를 팔기도 하는데 그 가격이 사악하다. 100그램에 7불이 넘기도 하니 말이다. 고향의 향수를 보는 것만으로 달래는 수밖에 없다.
도시의 출근 시간은 꿈틀대는 생명이 있다. 그 꿈틀대는 생명 속에 나도 끼어 있기도 하고 때론 떨어져 제3자가 되어 바라보기도 한다. 노숙자들을 보면 집에서 자고 나온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깨닫게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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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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