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한 조각이 생각인데
한 조각이 끝없는 마음을 지배하는 밤
때론 널 생각하는 마음이 내 마음에 온통 안개처럼 깔리고
때론 널 미워하는 마음이 전부이듯 노을처럼 물들이면
심장마비 걸린 듯 숨조차 쉴 수 없는 순간처럼
말 한마디 못 하고 벼락 맞은 나무처럼 서서
#작가의 변
모든 것은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모른 것이 아니었다.
일할 때는 일이 힘들어서 휴식 시간과 일이 끝나는 시간만을 기다린다. 마음도 몸에 자리한지라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다. 그러니 일이 힘들면 마음 또한 힘들다. 하지만 때론 마음이 힘들어 몸을 혹사하기도 한다. 헤어짐으로 힘들 때 그것을 잊기 위해 몸을 혹사해서 일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혹은 자기 몸을 자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몸이 아프니 마음도 다치고 악순환의 연속이 된다.
누가 한마디 말했는데 그 말이 내게 와서 독화살처럼 박히고 그 말 한마디는 밤에 잘 때도 꿈속에서도 아픔을 느끼게 된다. 꿈속에서는 나를 떠나 다른 세상에서 사는 듯 보이지만 사실 내 안에서 나와 싸우는 중이다. 모든 번민에서 해방되어 해탈을 꿈꾸지만 늘 번뇌와 고통이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아파서 병원 병실 침대에 누워야 건강에 대한 고마움을 알게 되고 직장을 잃고 나서야 일하는 즐거움이 얼마나 컸는지 날마다 직장으로 출근하는 발걸음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요양원에서 꿈도 희망도 잃고 그날그날 점심 메뉴 저녁 메뉴가 제일 궁금한 나날을 살게 된다면 살아 있지만 살아 있지 않은 날이 된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의학이 발달하고 평균 수명이 늘어 평균 90살이 2030년에 이루어진다는 보도를 보면 반갑기보단 끔찍하단 생각을 하게 된다. 40대에 이미 권고사직에 의해 직장을 잃고 이일 저일 삶의 밑바닥에 내몰리다 환갑이 지나 은퇴를 한다고 하더라도 90까지 산다면 30년이란 긴 세월을 또다시 살아가야 한다. 시골에 땅이 있어서 소일 삼아 농사를 짓는다고 하더라도 몸이 따라 주지 않거나 하여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고 요즘엔 흔한 치매가 올까, 자녀들도 자신조차 노심초사하게 되는 것은 내가 나를 알 수 없는 시간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도 치매였다. 그 치매로 인해 열차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러니 가벼운 건망증에도 아버지의 병력이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내가 나의 육신을 잊고 정신의 반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는 것은 사는 것 보다 죽는 것이 나은 시간일 수도 있다. 내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친구들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어린 시절, 젊었던 시절의 기억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구멍 숭숭 뚫린 기억처럼 날마다 낭떠러지기를 걸어가는 것과 같다.
일하다 실업으로 집에 있으면 괜히 눈치를 보게 되고 시간은 많은데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게 된다. 일할 땐 시간이 없어 여행을 못 하고 일자리가 없을 땐 돈도 없고 눈치가 보이니 아무것도 못 하게 된다. 그래도 힘내라고 등산도 보내고 여러모로 응원하는 가족들의 응원에도 주눅이 들고 할 일이 많은 듯하지만, 실상은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일할 때도 바쁘게 일하면 시간이 언제 갔는지 모르게 가서 좋다. 그렇지만 그것이 날마다 이어지면 몸이 힘들어져 마음마저 아파 오는 것이다. 아니 몸도 병을 저축하듯 쌓아 두고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식물도 내가 너를 사랑한다. 쑥쑥 자라라고 주문을 외면 잘 자라는 경향이 있다. 물론 햇볕과 영양분, 토질 등은 물론 적당히 비가 내려 주는 여러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지만 그중에 가장 소중한 사랑이 빠지면 시들시들 죽어 간다. 그런데 아 저 원수 언제 뒤지냐 하는 염원이 들어가면 시름시름 말라가게 되는 것처럼 사람 사이도 그런 염원이 들어가면 시름시름 앓게 되는 것인데 염원을 말하거나 생각한 사람도 지분을 가지고 시름시름 아파 간다는 것이 문제다. 남한테 해를 끼친 사람은 발 뻗고 자지 못해도 맞은 사람은 발 쭉 뻗고 잔다는 말처럼 용서하고 건강과 행복을 빌어 주면 내게 그 주문이 돌아오게 된다. 나의 염원이 텔레파시가 되어 아니면 부처님이 듣게 되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누구를 죽거나 다치게 하는 기도를 했다면 부처님이 들어 주지 않고 악마가 염원을 들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나의 복수일지라도 말이다. 기도는 선의의 마음을 가지고 해야만 그것이 이루어지고 나의 마음도 편안한 것이니까 말이다. 마음 한자리 곱게 쓰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아니 세상이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누굴 미워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나도 나의 지옥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선한 마음자리가 곧 나의 천국일 수 있는 이유다.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순간이 행복한 이유다. 누군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로 나를 힘들게 해도 선한 마음으로 씻어 내야 하는 이유는 그를 미워할수록 나의 마음은 점점 지옥에 갇혀 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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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은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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