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무원장 선거 단독후보 추대의 그림자
총무원장 선거 단독후보 추대의 그림자
  • 김경호 운판 대표
  • 승인 2022.08.10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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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대표
김경호 대표

이번 조계종 37대 총무원장 선거처럼 조용한 선거도 찾아보기 어렵다. 선거가 임박하였지만 그 흔한 하마평조차 돌지 않았다. 모두가 조계종단의 실세로 알려진 스님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은 후보등록이 임박한 7월 말이 되어서였다.

7월 30일, 차기 총무원장 선출을 위해 교구본사 주지 및 중앙종회 의원, 그리고 중진 스님이 회동했다. <불교닷컴> 기사에 따르면 이날 서울 모처에서 자승·종상(불국사 법주사)·법등(직지사)·장윤(전등사. 본사 아님)·돈명(은해사)·성월(용주사) 스님 등 중진 스님과 교구본사주지협의회 회장단〔회장 덕문(화엄사, 수석부회장 초격(봉선사), 부회장 허운(관음사) 스님이 회장단이다. 이밖에 교구본사주지협의회는 총무간사 등운(고운사), 재무간사 법상 스님(대흥사)이 소임을 맡고 있다.〕 및 몇몇 교구본사 주지 스님, 중앙종회 의장단 및 중앙종회 종책모임 회장단 등이 모여 차기 총무원장 선거와 관련한 의견을 청취하는 비공개 회동을 가졌으며, 오후에 중진 스님 등 십 수 명의 스님이 모여 총무원장 선거와 관련한 의견을 나눴다고 한다. 선거법 위반을 의식해 특정인을 결정하지는 않고 여러 후보군을 상의하는 태도를 취했지만 합의추대라는 단일후보 방향을 제시하는 자리였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이날 기사에는 ‘현 총무원장 원행 스님 측이 총무원장 후보자 등록 서류 등을 챙기는 분위기가 확인되었다’는 내용이 실렸다.

8월 3일 <법보신문>은 현 총무원장 원행 스님 측근 스님의 전언이라며 “더 이상 차기 후보군으로 언급되지 않길”, “남은 기간 백만원력불사 잘 마무리할 것”이라는 말을 전하는 ‘총무원장 단일후보 추대논의 급물살 탈 듯’이라는 기사를 내놓았다.

하지만 측근 스님의 전언이라고 하더라도 원행 총무원장 스님의 뜻과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 공식적으로 총무원 대변인은 기획실장이고, 원장 스님 개인의 뜻은 사서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화 한 통화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측근이라 자처하는 스님의 주장만 있을 뿐이다.

<법보신문>의 이번 기사로 원행 스님의 재임출마는 불가능하다는 강남원장 자승 스님의 뜻이 공개되었다.

8월 3일에는 교구본사주지협의회가 ‘제37대 총무원장 선거에 즈음한 교구본사 주지 입장문’을 발표했다. 교구본사주지협의회는 “제37대 총무원장 선출은 후보자의 난립으로 인한 분열과 비방이 아닌, 수행과 포교가 검증된 단일후보로 추대되기를 간곡히 희망한다”며 단일후보 추대 노선을 공표했다.

8월 8일에는 교육원장 진우 스님의 이임식을 오후 4시에 연다는 문자 연락이 돌았다. 총무원장 후보 출마자는 8일까지 공직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공지에 따른 것이다.

8월 9일 오전 10시 조계종 중앙종회 종책모임 화엄회, 무량회, 법화회, 금강회, 비구니 중앙종회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수행과 교화를 본분으로 정진해온 진우 스님이 제37대 총무원장으로 여법하게 선출되길 바란다”며 추대의 뜻을 밝혔다. 종회 절대 다수를 차지한 불교광장이 진우 스님 지지를 선언함으로써 이른바 단일후보 추대의 밑그림은 완성되었다고 하겠다.

그런데 단일후보 추대가 왜 문제일까? 단일후보 합의 추대라는 말 뒤에는 종단 실세들의 동의를 받지 못하는 후보는 당선가능성이 없다는 단호한 정치적 함의가 담겨있다. 단일후보를 만들어내는 세력의 이해타산과, 만들어내는 과정의 불투명성은 당연히 따르는 것이고. 더군다나 2019년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단일후보의 경우 자동당선이 된다. 선거인단 선출도 필요 없다. 불교공동체의 대표자를 선정하는 중요한 행사에 구성원들은 간선제 선거인단을 선출할 알량한 투표권조차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조계종단의 거대 정치세력이 연합하여 단일후보를 추대한 것은 2009년 선거 때가 시작이다. 조계종 중앙종회의 종책모임들이 연대해서 동일한 후보를 지지하기로 했다고 발표함으로써 당시 자승 스님은 90%가 넘는 절대다수의 지지 속에 총무원장에 당선되었다. 81명의 종회의원과 24개 교구본사에서 선출된 240명 선거인단의 투표에서 종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한 종책모임의 합의 추대를 거스를 교구본사는 존재하기 어렵다. 2009년 선거 당시 이미 이런 기고글이 있었다.

“대세론은 국민들이 참여할 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총무원장 선거의 대세론도 종도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몇몇 종회 계파의 수장들이 이해관계에 얽매여 대세론을 주장하는 것은 대세가 아니고 소통을 거부하는 그들만의 권력사유화인 것이다.”

이번 37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가 종단 실세가 짜놓은 그림대로 진행된다면, 그렇게 선출된 총무원장은 자신을 총무원장으로 만들어준 세력과 인물에 충성할 수밖에 없다. 더 극단적으로는 또 한 명의 바지원장이 출현하고 모든 실권은 배후에서 행사하는 한국불교의 비극이 연장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8월 11일까지가 후보등록 기간이다. 절대권력에 저항하는 독자후보가 출현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한국불교의 장자종단 대한불교조계종의 법적 대표권자인 총무원장 스님이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정신적인 지도자, 내·외부에서 존경받으며 불교와 민족사의 비전을 제시하는 스님, 전쟁과 역병에 시달리는 인류에게 희망을 주는 모범적인 수행자가 되시기를 꿈꿔본다.

김경호 | 지식정보플랫폼 운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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