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교수의 선어록 사색 엿보기
철학교수의 선어록 사색 엿보기
  • 조현성
  • 승인 2014.03.0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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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탁 교수 ‘선문답의 일지미’

연세대 철학과 신규탁 교수가 <선문답의 일지미>를 펴냈다.

일지미(一指味)는 선문답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이다. 전체의 맛을 한 손가락에 찍어서 일부만 맛보여 줄 때에 쓰이는 말이다.

책은 저자가 선어록을 읽으면서 그때그때 느꼈던 생각을 글로 적어 모은 것이다. 때로는 선의 역사에 대해 적었고, 때로는 선사들의 언어를 평하기도 했다. 특정한 주제를 갖고 논증하는 철학적 글쓰기가 아닌 술술 읽힐 수 있는 편한 글들의 모임이다.

책은 4부로 구성됐다.

제1부 선의 향기에서는 비교적 짧은 글들로 선문답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선문답의 일지미를 맛볼 수 있게 했다.

글은 성철 스님이 열반하던 해, 도쿄 신주쿠 거리에서 들었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여!”로 시작한다. 이국땅 한복판에서 들리는 반가운 스님의 법구가 반가워, 말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 그게 그거고 그런 거니까 이것저것 고르지 말고 아무거나 빨리 사자는 이야기”였다.

저자는 “정말 선문답이란 본래 그런 건가? 세간에서는 흔히 논리적·상황적으로 의미가 통하지 않을 때 ‘선문답한다’고 하는데, 정말 선문답이란 그런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제2부 선사들이 그리는 세계에서는 선사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그들이 지향하는 세계를 드러낼 수 있는 글들을 모았다.

2부는 1996년 제자였던 민주화운동 열사 故 노수석 군의 학교장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필자는 “무엇이 젊음을 죽음으로 보내느냐”며 “군을 영결하는 날, 남은 우리가 칠판에 적었던 왕범지의 시, 그 가운데 미생(未生)이란 말은 내 영혼의 깊은 곳에 박혀든다”고 말한다.

我昔未生時(아석미생시) : 내가 옛날 태어나지 않았을 때
冥冥無所知(명명무소지) : 아득하여 알 수가 없네
天公强生我(천공강생아) : 하늘님이 억지로 나를 낳아
生我復何爲(생아복하위) : 나를 낳아 다시 무엇을 하시려는가.
無衣使我寒(무의사아한) : 입을 게 없어 날 춥게 하고
無食使我飢(무식사아기) : 먹을 게 없어 날 굶주리게 하네
還爾天公我(환이천공아) : 하늘님, 날 돌려보내 주오
還我未生時(환아미생시) : 태어나기 이전으로 날 보내주시오.

제3부 선어록을 읽는 묘미에서는 한국 독서계에 많이 읽히는 선어록을 소개했다. 저자는 “선어록을 직접 읽으려는 독자들에게 길 안내 역할을 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선어록을 읽기 위한 예비지식’에서 저자는 “내 불교공부를 돌이켜보면 어떻게 하면 깨달을 수 있을까보다는 불경에 무엇이 쓰여 있는지를 알고 싶은 쪽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며 봉선사 월운 스님과의 인연을 적었다.

그러면서 “감히 말한다면, 선에 관한 개론서를 읽기보다는 선서를 직접 읽어보기를 권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경험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제4부 선어록 읽기 진검 승부에서는 선불교 사상의 철학적 내용을 비롯해 문헌적인 분석을 소개했다. 저자는 ‘문헌 읽기의 맛보기’를 위한 장이라고 했다.

저자는 “선서를 문헌적으로 해독하는데는 몇가지 장벽이 있어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그것은 언어와 문자에 대한 해명이다”라고 했다. 이어 화두의 생성과 강의, 참구 등을 선어록에 맞춰 설명했다.

저자는 “일지미에는 맛있는 음식을 다 먹여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들어 있다. 책 내용이 그렇다는 자조 섞인 고백”이라며 “‘활계상유일지미(活計常有一指味)’라는 말이 있듯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일지미’를 통해서 활계를 찾길 기대한다”고 했다.

선문답의 일지미┃신규탁 지음┃정우서적┃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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