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배경: 최근 석두희천 선사 계열의 덕산선감-암두전활(827-887) 선사의 법을 이은 서암사언(850-910) 선사, 그리고 동시대를 호흡했던 앙산혜적-남탑광용(南塔光湧, 850-938) 선사의 법을 이은 신라 출신 파초혜청(芭蕉慧淸, ?-?) 선사를 중심으로 다루었습니다.
한편 이번 글에서는 파초 선사가 배출한 흥양청양(興陽淸讓, 814-?) 선사의 <무문관(無門關)> 제9칙 ‘대통지승(大通智勝)’ 공안과 동시대를 호흡했던 덕산선감(780-865)-설봉의존(822-908)-현사사비(835-908) 선사의 법을 이은 나한계침(羅漢桂琛, 875-928) 선사의 오도 기연과 그가 배출한 청량법안(淸凉法眼, 885-958) 선사에 얽힌 일화 및 법안 선사가 제창한 <무문관> 제26칙 ‘이승권렴(二僧卷簾)’ 공안을 중심으로 살피고자 합니다.
◇ 신무문관: 대통지승(大通智勝)
무문혜개(無門慧開, 1183-1260) 선사는 사실상 선종(禪宗)의 일곱 갈래[五宗七家]를 통합하여 선종의 정석이라 할 수 있는 <무문관> 48칙을 제창(提唱)했습니다. 그런데 무수히 많은 공안들 가운데 신라 출신 파초 선사의 공안이 포함된 것뿐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그의 법을 이은 청양 선사의 ‘대통지승’ 공안까지도 다음과 같이 수록되어 있으니 파초 선사의 역량이 탁월했던 것 같네요.
본칙(本則): 청양 화상께 어느 때 한 승려가 “대통지승불이 십겁(十劫)이나 도량(道場)에서 공부를 했으나 불법(佛法)을 얻지 못했다고 하는데, 불도(佛道)를 이루지 못한 때는 어떠합니까?”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청양 화상께서 “그 물음이 꽤 그럴싸하구나.”하고 대답했다. 다시 이 승려가 “이미 여기가 좌선 도량이거늘 무엇 때문에 불도를 이루지 못했을까요?”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청양 화상께서 “그[대통지승불]이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니라![爲伊不成佛.]”라고 답하셨다.
평창(評唱): 무문 선사께서, “다만 (중국 선종의 초조인) 달마[老胡]의 깨달음[知=智]은 허락하나, 그의 분별[會]은 허락하지 않노라. 만약 범부(凡夫)가 깨달으면 즉시 성인(聖人)이 되나, 만약 성인이라도 분별하면 즉시 범부가 되느니라.[只許老胡知 不許老胡會 凡夫若知 卽是聖人 聖人若會 卽是凡夫.]”라고 제창하셨다.
게송으로 가로되[頌曰], (백 년을 넘기기 어려운) 몸을 단련하는 것이 어찌 마음공부를 마침과 견줄 수 있으랴!/ 마음공부를 마쳤다면 몸은 걱정할 필요가 없느니라./ 그러니 만약 바르게 마음과 몸을 모두 통찰해 마쳤다면/ 이미 부처[神仙]인데 어찌 다시 부처[諸侯]를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了身何似了心休. 了得心兮身不愁. 若也心身俱了了 神仙何必更封侯.]
* 군더더기: 이 화두를 잘 살펴보면 <법화경(法華經)>의 ‘화성유품(化城喩品)’에 나오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대통지승불’을 등장시키고 있으며 십겁이라는 헤아릴 수 없는 긴 시간과 좌선도량이라는 공간을 설정해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지승불이 깨치지 못했다는 전제는 이런 좋은 환경 속에서 아무리 무한한 시간을 머리로 헤아려 봐야 헛수고라는 것을 뜻합니다. 더 나아가 사실 청양 선사는 문제의 핵심이 대통지승불의 ‘성불(成佛)’ 유무가 아니라 다만 이름뿐인 ‘대통지승불’과 ‘십겁’ 및 ‘좌선 도량’ 등을 머리로 헤아려 따지고 있는 승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과 승려 자신이 바로 시공(時空)의 주체임을 일깨워주려 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승려, 아니 우리 모두 바르게 깨달았다면 성불이니 십겁이니 좌선도량이니 하는 분별심은 더 이상 일으키지 않고 통찰과 나눔이 둘이 아닌 향상(向上) 여정을 치열하게 이어가겠지요.
한편 ‘좌선 도량’이라는 공간 관련해 필자가 틈날 때마다 인용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남악마전(南嶽磨塼)’ 일화도 함께 살피면 좋을 것 같네요.
“남악 선사가 제자인 마조 스님이 좌선을 잘 해보겠다고 고요한 산을 찾아다니며 애쓰는 것을 보고, 하루는 마조가 좌선하고 있는 근처 바위에다 기왓장을 갈며 거울을 만들려고 한다고 하자, 마조가 이 말에 크게 깨닫고 공간적 집착에서 벗어나 뛰어난 선사가 되었다.”
사실 여기서도 역시 남악 선사께서 공간의 주체인 마조에게 화살을 돌려 문제의 근원이 바로 마조 ‘자신’임을 통렬하게 일깨워 준 것입니다.
◇ 계침 선사의 오도와 가풍
계침 선사는 처음에는 운거(雲居) 선사와 설봉(雪峯) 선사를 뵙고 참문했으나 진전이 없자, 후에 현사(玄沙) 선사를 뵙고 한마디에 깨달아 의혹이 없어져 확 트였는데, 그 오도(悟道) 기연(機緣)이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21권에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사 선사께서 일찍이 ‘삼계가 마음뿐이란 대목을 그대는 어떻게 이해하는가?[三界唯心 汝作麼生會.]’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계침 스님이 의자를 가리키며 ‘화상께서는 저것을 무엇이라 하십니까?’ 이에 현사 선사께서 ‘의자라고 부르네’라고 응답하셨다. 그러자 계침 스님이 ‘화상께서는 삼계가 마음뿐인 소식을 모르시는군요.’하고 반문했다. 이에 현사 선사께서 ‘나는 저것을 대와 나무(로 만든 의자)라고 부르는데 그대는 무엇이라 하는가?’라고 다시 물으셨다. 그러자 계침 스님이 ‘저도 역시 대와 나무(로 만든 의자)라고 부릅니다.’라고 아뢰었다. 마침내 현사 선사께서 ‘천하에 불법을 아는 (자네와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나기는 어렵겠구나.’라고 극찬하셨다.”
한편 다음과 같은 일상(日常) 속 점검 일화를 통해 계침 선사의 가풍(家風)을 잘 엿볼 수 있다고 사료됩니다.
“한 번은 계침 선사께서 제자들과 함께 달구경[翫月]을 하시다가 ‘구름이 움직이는 것을 보니 비가 오겠구나.’하고 말씀하셨다. 이때 곁에 있던 한 승려가 ‘구름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不是雲動 是風動.]’라고 아뢰었다. 그러자 계침 선사께서 즉시 ‘나는 구름도 움직이지 않고, 바람도 움직이지지 않는다고 말하겠다.[我道 雲亦不動 風亦不動.]’라고 응대하셨다. 이에 이 승려가 ‘화상께서는 조금 전 구름이 움직인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라고 반문했다. 그러자 계침 선사께서 ‘그러면 누구에게 허물이 있는고?[阿誰罪過.]’라고 다그치셨다.”
군더더기: 추측하건대 계침 선사께서 저녁 공양 후 제자들과 달구경을 하시다가 먹구름이 몰려오고 바람이 드세지자 ‘동(動)’과 ‘부동(不動)’의 이원적 분별에서 제자들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그 역량을 시험하고자 미끼를 던졌다고 사료됩니다. 자! 만일 여러분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누구에게 허물이 있는고?’라는 물음에 어떻게 즉시 견해를 제시하시겠습니까?
참고로 이 문답은 필자가 예전에 이 칼럼에서 다루었던, 육조혜능(六祖慧能, 638-713) 선사가 주인공인 <무문관> 제29칙 ‘비풍비번(非風非幡)’ 공안을 계침 선사께서 산책하다가 즉석에서 멋지게 활용한 응용공안이라 할 수 있겠지요.
◇ 법안 선사의 오도 기연
청량법안 스님이 도반들과 같이 행각을 하다가 폭설(暴雪)로 길이 막혀 잠시 계침선사께서 주석하고 계신 지장원(地藏院)에 머물게 되었을 때의 오도 기연이 <전등록(傳燈錄)> 제24권 법안[淸凉文益] 선사 편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계침 선사께서 ‘상좌(上座)는 어디로 가는 길인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법안 스님이 ‘두루 이곳저곳[邐迤]을 행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다시 계침 선사께서 ‘행각하는 뜻이 무엇인가?[行脚事作麼生.]’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법안 스님이 ‘모르겠습니다.[不知.]’라고 답했다. 이에 계침 선사께서 ‘모르는 것이 가장 적절한 답변이지.[不知最親切.]’라고 말씀하셨다. 이때 법안 스님이 활연히 깨달았다.[豁然開悟.]”
한편 법안 선사의 어록에는 위의 개오(開悟) 일화에 이어 다음과 같은 문답이 추가되며 법안 선사의 큰 깨달음[大悟]에 관한 기연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폭설이 멈춰 행각을 계속하기 위해 작별 인사를 드리자, 계침 선사께서 문 앞에서 전송하며,
‘상좌여! 삼계는 다만 마음[心]뿐이고 만법은 다만 식(識)뿐이라고 늘 설하고 있다.’ 그리고는 곧 뜰앞의 바위를 가리키시며, ‘자! 일러 보게. 저 바위는 자네의 마음 안에 있는가 마음 밖에 있는가?[在心內 在心外.]’ 그러자 법안 스님이 ‘마음 안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계침 선사께서, ‘행각하는 이가 무슨 연유로 (무거운) 바위를 마음 안에 담아 두고 있는가?’하고 응대하셨다. 그러자 법안 스님은 난감해하며 전혀 답을 제시할 수 없었다. 즉시 걸망을 내려놓고 거의 한 달 동안 참구하며 매일 새롭게 견해를 세워 계침 선사께 그 도리(道理)를 제시했다. 마침내 계침 선사께서 ‘불법(佛法)은 (헤아려 제시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네.’라고 일러주셨다. 그러자 법안 스님이 ‘저는 이제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이치도 깜깜합니다.[某甲詞窮理絕也.]’라고 말씀드렸다. 이에 계침 선사께서 ‘만약 불법을 논하고자 한다면, (다만 중생들이 인득하지 못할 뿐이지 바위를 포함해) 모든 것이 (안이니 밖이니 하는 분별없이)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 보이고 있네.[若論佛法 一切見成.]’라고 조언을 해주셨다. 그러자 법안 스님이 이 말끝에 크게 깨쳤다.[師於言下大悟.]”
군더더기: 앞에서 언급한 ‘대와 나무로 만든 의자’를 활용한 ‘삼계유심(三界唯心)’에 관한 계침 선사의 오도 기연 체험은 제자인 법안과의 ‘바위’에 관한 문답으로 새롭게 활용되며 법안 선사를 크게 깨닫게 했다고 사료됩니다.
◇ 신무문관: 이승권렴(二僧卷簾)
법안 선사는 중국 선종의 5대 종파 가운데 가장 늦게 성립한 법안종(法眼宗)의 창시자인데 그의 대표적인 공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칙(本則): 청량의 대법안 선사께 어느 때 승려들이 점심공양[齋] 전에 상참(上參)하였다. 법안 선사께서 손으로 발[簾]을 가리키자 두 승려가 함께 일어나 발을 같이 말아 올렸다. 그러자 법안 선사께서 “한 제자는 맞았고 다른 한 제자는 틀렸느니라![一得一失.]”라고 일갈하셨다.
평창(評唱): 무문 선사께서, “자! 일러보아라. 누가 맞았고[得] 누가 틀렸는가[失]? 만약 이에 대하여 두 육안(肉眼)이 아니라 혜안(慧眼)인 제3의 눈[一隻眼]으로 꿰뚫어 볼 수 있다면, 곧 청량 국사의 허물이 있는 곳[敗闕處]을 알리라. 그런데 비록 그러하나 맞았다느니 틀렸다느니 하는 이원적 분별을 일으켜 헤아려서는 안되느니라!”라고 제창하셨다.
[然雖如是 切忌向得失裏商量.]
게송으로 가로되頌曰], 발을 걷어 올리니 확연히 탁 트인 밝은 하늘[空]이나/ 그런 하늘일지라도 선의 종지(宗旨)와는 계합(契合)하지 않네./ 어찌 그 ‘공(空)’이란 분별마저도 철저히 모두 내던져버린/ 면면밀밀해 바람도 통하지 않는 경지에 미치겠는가![卷起明明徹太空 太空猶未合吾宗. 爭似從空都放下 綿綿密密不通風.]
* 군더더기: 이 공안은 오늘날까지도 수행자들을 ‘득실시비(得失是非)’의 바다에 빠트려 허우적거리게 하고 있는데, 만일 여러분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응대해야 ‘득실’이란 시비 분별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끝으로 국내외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이때 우리 모두 삼독(三毒), 즉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중독된 채 득실시비(得失是非)를 벌이며 남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조상님을 기리는 이번 추석 명절 연휴 기간을 멋지게 활용해 스스로를 깊이 돌아보며, 각자 있는 그 자리에서 비록 서로 견해는 다를지라도 함께 더불어 상생(相生)의 지혜를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해 봅니다.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1989년 8월까지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이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선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선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행원 선사로부터 두 차례 독대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선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편저에 <온몸으로 투과하기: 무문관>(본북, 2011), <온몸으로 돕는 지구촌 길벗들>(마음살림, 2021)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