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문관: 이각어언(離却語言)
신무문관: 이각어언(離却語言)
  • 박영재 명예교수(서강대)
  • 승인 2023.10.26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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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65.

성찰배경: 지금까지 <무문관(無門關)>에 등장하는 석두희천(700-790) 계열의 선사들과 마조도일(709-788) 계열 가운데 백장회해(749-814) 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할(喝)’로 유명한 임제의현(臨濟義玄, ?-867) 계열을 제외한 선사들을 중심으로 다루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무문관>에 등장하는 임제종 선사들을 중심으로 시대적 흐름에 따라 살피고자 합니다. 그런데 <무문관>에는 임제-흥화-남원 선사의 법을 이은 풍혈 선사부터 다루고 있어 법맥의 흐름을 자연스레 잇기 위해 다른 문헌들을 참고해서 임제의현, 흥화존장(興化存奘, 830-925) 및 남원혜옹(南院慧顒, 860-952) 선사에 관한 일화들을 다룬 후, <무문관> 제24칙에 들어있는 풍혈연소(風穴延沼, 896-973) 선사께서 제창한 ‘이각어언(離却語言)’ 공안을 다루고자 합니다. 

◇ 관음정안(觀音正眼)

먼저 임제 선사의 어록인 <임제록(臨濟錄)>에 나오는, 중생의 고통을 꿰뚫어 보시고 이를 어루만져주시는 천수천안(千手千眼) 관세음보살을 온몸으로 체득해 중생제도를 실천하라며 다그치고 계신 임제 선사의 다음과 같은 상당 법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임제 선사께서 어느 날 하북부(河北府)에 가셨는데, 부주(府主) 왕상시(王常侍)가 선사를 청해 법좌(法座)에 올랐다. 그때 마곡(麻谷) 스님이 앞으로 나와서, ‘대자대비(大慈大悲)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의 천개의 눈 가운데 어느 것이 진짜 눈[正眼]입니까?’라고 여쭈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임제 선사께서, ‘관세음보살의 천수천안 가운데 어느 것이 진짜 눈인가? 속히 이르시오! 속히 이르시오!’하고 다그치셨다. 

그러자 마곡 스님이 임제 선사를 법좌에서 끌어내리고 대신 법좌에 올랐다. 이에 임제 선사께서 마곡 스님 앞으로 가까이 가서 ‘(스님께서 관세음보살이신 줄) 미처 몰라 뵌 것 같군요.[不審.]’라고 한마디 던지셨다. 그러자 마곡 스님이 어떻게 응대할까 하고 잠시 궁리하려는데, 임제 선사께서 이때를 노려 역시 마곡 스님을 법좌에서 끌어내리고 다시 그 자리에 앉았다. 이에 마곡 스님이 곧바로 밖으로 나가버렸고, 임제 스님도 곧 법좌에서 내려왔다.

군더더기: 사실 우리 모두 종교를 넘어 날마다 자기성찰의 삶을 치열하게 이어가노라면 언젠가 문득 온몸으로 참나를 체득하는 때가 올 것이며 이럴 경우 ‘온몸이 손이 되고 온몸이 눈’[通身是手 通身是眼]이 될 것이고, 만일 우리 모두 이런 경지에 이를 수만 있다면 결코 천수천안 관세음보살도 부럽지 않겠지요! 

◇ 막맹할난할(莫盲喝亂喝)

임제 선사의 수제자로 조동종(曹洞宗)의 조산 선사, 운거 선사와 동시대를 호흡했던, 흥화 선사 계열이 번창했는데, 한 승려가 흥화 선사와 임제종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할을 주제로 한, 선문답(禪問答)이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12에 다음과 같이 들어 있습니다.

“어느날 위부(魏府)의 흥화 선사께서 한 승려에게, ‘어디에서 왔는가?’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이 승려가, ‘정주(定州)의 선최(善崔) 선사의 회상에서 왔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이에 흥화 선사께서, ‘선최 선사의 할(喝)을 얻어 가지고 왔느냐?’라고 다시 물으셨다. 그러자 이 승려가, ‘얻어오지 못했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이에 흥화 선사께서, ‘그렇다면 선최 선사 회상에서 온 것이 아니군.’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이 승려가 흥화 선사께 ‘할!’을 하니, 흥화 선사께서 이 승려를 주장자로 두들겨 팼다.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후에) 흥화 선사께서 대중에게, ‘나는 그동안 단지 복도[長廊]에서도 할을 하고 뒷마루[後架]에서도 할을 하는 것을 들어 왔다. 대중들이여! 그대들에게 고하노니 부디 앞으로는 맹목적으로 흉내 내는 할이나 대중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할을 하지 마시게! [汝莫盲喝亂喝.] 가령 그대들이 나, 흥화에게 할을 하여서 하늘 한가운데에 올라 머물게도 하고, 다시 쳐서 떨구어 기절시킨다 해도, 또한 내가 다시 깨어날 때까지 기다릴지라도 나는 그대들에게 아직 도가 없다고 이를 것이니라! 내가 무슨 까닭에서 그러겠는가? 왜냐하면 나는 일찍이 붉은 비단 장막 안에서 그대들에게 진주(真珠)를 뿌린 적이 없기 때문이니, 허공을 향해 대중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할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당부하셨다.” <경덕전등록> 권12 발췌 

군더더기: 선가(禪家)에서 임제의 할(喝)이나 덕산의 방(棒)을 포함해 대선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중국 천하에 널리 알려지자 아직 깊은 통찰 체험도 없는 이들이 이를 흉내 내는 ‘야호선(野弧禪)’이 유행하자 흥화 선사께서 이를 경계하고자 엄중하게 경고를 했다고 사료됩니다.

◇ 줄탁동시(啐啄同時)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 선사와 신라 출신 파초혜청(芭蕉慧淸, ?-?) 선사와 동시대를 호흡했던, 임제-흥화 선사의 법을 이은 남원혜옹(南院慧顒, 860-952) 선사께서 한 승려와 주고받은 선문답이 <경덕전등록> 권12에 다음과 같이 들어 있습니다.

“어느 날 남원 선사께서 상당(上堂)하여 ‘제방의 선승들 대부분은 다만 줄탁동시(啐啄同時)의 안목(眼目)만 갖추었지, 줄탁동시의 대용(大用)은 갖추지 못했느니라.’라고 법문을 하셨다. 이때 한 승려가 불쑥 ‘그러면 어떤 것이 줄탁동시의 대용입니까?’하고 여쭈었다. 이에 남원 선사께서 ‘선사[作家]를 만나면 부디 쪼우며[啐] 쳐달라고[啄] 조르지 말게나. 줄탁동시의 대용을 잃게 되느니라.’라고 타이르셨다. 그러자 이 승려가 ‘이 답변은 아직 제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닙니다.’라고 다시 응대했다.
이에 남원 선사께서 ‘자네의 질문이란 도대체 무엇인가?’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이 승려가 ‘선사께서 대용을 잃으셨군요.’하고 응수했다. 이에 남원 선사께서 즉시 그를 주장자로 내리쳤으나, 이 승려는 결코 이를 긍정하지 않았다. 

훗날 이 승려가 운문 선사 회상에서 마침 두 승려가 앞의 선문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이때 한 승려가 ‘당시에 남원 선사의 주장자가 부러졌겠군![當時 南院棒折那.]’하고 말했다. 이 승려가 이 말을 듣는 순간 홀연히 크게 깨닫고는 그제야 남원 선사께서 말씀하신 참뜻을 알아차렸다.[僧聞此語 忽然大悟. 方見南院答話處.]

이 승려가 다시 여주로 가서 남원 선사를 찾아뵈려 하니, 선사께서는 이미 열반[遷化]하신 다음이라, 곧 그의 법을 이은 풍혈 선사를 방문하였다. 그러자 풍혈 선사께서 이를 알아차리고 곧 ‘상좌는 당시 남원 선사에게 줄탁동시에 관한 이야기를 물었던가?’라고 물었다. 이에 이 승려가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풍혈 선사께서, ‘그대는 이제 그 뜻을 알았는가?’하고 물었다. 이에 이 승려가 ‘예. 지금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풍혈 선사께서, ‘그대는 당시 어떻게 알아들었는가?’하고 물었다. 이에 이 승려가 ‘저는 당시 등불의 그림자 속을 걷고 있는 듯하였으나 이제는 모든 것이 막힘없이 명료합니다.[某甲當時 如在燈影裏行相似.]’라고 아뢰었다. 그러자 풍혈 선사께서, ‘그대는 이제 확실히 알았군.[汝會也.]’하고 답하셨다.” <경덕전등록> 권12에서 발췌

군더더기: 종달 선사께서는 <벽암록> 제16칙 ‘경청줄탁기(鏡淸啐啄機)’에서 ‘줄탁(啐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제창하고 있습니다.

“알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오기 위하여 껍질 안에서 쪼는 것을 ‘줄(啐)’이라 하고,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을 ‘탁(啄)’이라고 한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행해지므로, 사제지간(師第之間)이 될 인연이 서로 무르익음의 비유로 쓰인다.”

참고로 돌이켜 보면 형편없는 마마보이였던 필자가 종달 선사 문하로 입문해 한동안 좌충우돌하며 헤매었으나, 종달 선사께서 입실할 때마다 늘 바르게 방향을 잡아 경계를 제시할 때까지 이를 인내(忍耐)하며 기다려주셨기에 필자가 오늘날 간신히 제 앞가림을 할 줄 아는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사료됩니다.

◇ 신무문관: 이각어언(離却語言)

운문 선사의 법을 이은 동산수초(洞山守初, 910-990) 선사와 동시대를 호흡했던 풍혈 선사의 ‘이각어언(離却語言)’ 공안이 <무문관> 제24칙에 다음과 같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본칙(本則): 풍혈 화상에게 어느 때 한 승려가, ‘말을 해도 진리[離微]에 어긋나고 침묵해도 어긋나니, 어떻게 해야 진리에 어긋나지 않고 진리에 계합[通]할 수 있습니까?[語黙涉離微 如何通不犯.]’라고 여쭈었다. 이에 풍혈 선사께서 ‘강남의 삼월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지. 자고새 우는 곳에 백화가 무척 향기로웠다네.[長憶江南三月裏 鷓鴣啼處百花香.]’라고 응대하셨다.

평창(評唱): 무문 선사께서, ‘풍혈의 기지(機智)는 번갯불이 번쩍이는 것과 같아서 거침없이 응대했으나 옛사람의 글귀를 떨쳐내지 못하였음을 어찌할꼬? 만약 이를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스스로 나아갈 길이 있으리라. 자! 어언(語言) 삼매를 떠나서 진리에 어긋남이 없는 한 마디를 일러 보아라.’라고 제창하셨다.

게송으로 가로되[頌曰], (격조 높은) 풍골구[一轉語]를 드러내지도 않고/ 아직 본론을 말하지 않고도 벌써 진리를 다 드러내 보였네./ 이에 대해 만일 입으로 이러쿵저러쿵 지껄인다면/ 이는 그대들이 크게 그르치는 것임을 알아라. [不露風骨句 未語先分付. 進步口喃喃 知君大罔措.]

군더더기: 참고로 스승인 남원 선사와 제자인 풍혈 선사가 벌린 임제 선사의 ‘사료간(四料揀)’에 관한 문답 가운데 관련된 구절이 <인천안목(人天眼目)> 제1권에 다음과 같이 들어 있습니다.

“남원 선사께서, ‘어떤 것이 주관[人]과 객관[境]을 모두 빼앗지 않는 경계인가?[如何是人境俱不奪.]’라고 물으셨다. 그러자 풍혈 선사께서, ‘강남의 삼월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는데, 자고새 우는 곳에 백화가 무척 향기로웠지요.’라고 아뢰었다.”

사실 무문혜개 선사는 이 ‘이각어언(離却語言)’ 공안의 제창을 통해 ‘진리에 어긋나지 않는 경계’를 드러낸 풍혈 선사의 게송을 ‘인경구불탈(人境俱不奪)’과 대비시켜 절묘하게 배치해 놓고 있다고 사료됩니다. 덧붙여 앞으로 다룰 예정입니다만 임제종은 임제-흥화-남원-풍혈-수산-분양-석상-양기-백운을 통해 간화선(看話禪)의 원류인 오조법연(五祖法演) 선사로 이어지며 만개하게 됩니다. 

끝으로 요즈음 국내외적으로 지구촌이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그런데 제 견해로는 그 주된 원인들 가운데 하나는 공동체를 이끄는 (무능하거나 또는 영악한) 지도자들 책임도 크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사실 우리는 크고 작은 공동체에 속해 있는데, 혼란스러운 상황의 주된 책임은  지혜와 역량을 두루 갖춘 적임자가 아니라, 즉 시절인연이 무르익은 ‘줄탁’이 아니라 권모술수를 통해 지도자의 위치에 올라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중독된 채 갑질을 포함해 개인의 안위(安危)와 영달(榮達)만을 꾀하며 언행불의치의 길을 어지러이 걸은 지도자에게 있기 때문이라 사료됩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 임제 선사께서 제창하신 ‘높낮이가 없는 참사람[無位眞人]’임을 자각하고, ‘줄탁동시’와 ‘이각어언’의 바른 뜻을 온몸으로 체득하려는 노력을 병행하면서 각자의 능력이 감당할 수 있는 자리에서 갑질하지 않고 맡은 바 책무를 다한다면 세상은 보다 빨리 안정을 되찾으며 평화로워지리라 확신합니다.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1989년 8월까지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이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선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선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행원 선사로부터 두 차례 독대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선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편저에 <온몸으로 투과하기: 무문관>(본북, 2011), <온몸으로 돕는 지구촌 길벗들>(마음살림,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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