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61. 거울 앞에서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61. 거울 앞에서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4.05.05 2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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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그려진 주름만큼이나
마음에 주름진 아픔
거울 앞에 선 나를 본다

한때는 숱이 많던 머리도

못생겨 보인다는 생각 한 적이 있는데
이제는 황무지 같은
머리가 나의 얼굴이라며 거기 서 있다

거뭇거뭇 나던 코밑수염이
면도기로 밀면 더 까맣게 난다고
절대, 밀지 말라던 형들 말에
손에 잡히도록 그냥 두었던 까만 교복 중학생/

거울을 보지 않아도
자신감 넘치던
젊은 날엔
손으로 머리 쓸어 올려
내 모습이 그려지던
공중에 뜬 풍선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던 날들/

이젠 거울 앞에 내 모습이
늘어난 몸무게만큼이나
내려앉은 마음은 아니었던지
자꾸만 빠져버리던 오래된 자전거 체인처럼
이젠 닳아서 하나둘 잊혀 가는
누렇게 변해버린
앨범 속 사진같이
잊혀버린 나의 너

옥수수 알갱이처럼 수없이 박혀있는
수많은 날이 수없이 많은 사연으로
거울 앞에 내가 그를 맴돈다.
 

얼굴에 그려진 주름만큼이나
마음에 주름진 아픔
거울 앞에 선 나를 본다

한때는 숱이 많던 머리도

못생겨 보인다는 생각 한 적이 있는데
이제는 황무지 같은
머리가 나의 얼굴이라며 거기 서 있다

거뭇거뭇 나던 코밑수염이
면도기로 밀면 더 까맣게 난다고
절대, 밀지 말라던 형들 말에
손에 잡히도록 그냥 두었던 까만 교복 중학생/

거울을 보지 않아도
자신감 넘치던
젊은 날엔
손으로 머리 쓸어 올려
내 모습이 그려지던
공중에 뜬 풍선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던 날들/

이젠 거울 앞에 내 모습이
늘어난 몸무게만큼이나
내려앉은 마음은 아니었던지
자꾸만 빠져버리던 오래된 자전거 체인처럼
이젠 닳아서 하나둘 잊혀 가는
누렇게 변해버린
앨범 속 사진같이
잊혀버린 나의 너

옥수수 알갱이처럼 수없이 박혀있는
수많은 날이 수없이 많은 사연으로
거울 앞에 내가 그를 맴돈다.
 





얼굴에 그려진 주름만큼이나
마음에 주름진 아픔
거울 앞에 선 나를 본다

한때는 숱이 많던 머리도

못생겨 보인다는 생각 한 적이 있는데
이제는 황무지 같은
머리가 나의 얼굴이라며 거기 서 있다

거뭇거뭇 나던 코밑수염이
면도기로 밀면 더 까맣게 난다고
절대, 밀지 말라던 형들 말에
손에 잡히도록 그냥 두었던 까만 교복 중학생/

거울을 보지 않아도
자신감 넘치던
젊은 날엔
손으로 머리 쓸어 올려
내 모습이 그려지던
공중에 뜬 풍선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던 날들/

이젠 거울 앞에 내 모습이
늘어난 몸무게만큼이나
내려앉은 마음은 아니었던지
자꾸만 빠져버리던 오래된 자전거 체인처럼
이젠 닳아서 하나둘 잊혀 가는
누렇게 변해버린
앨범 속 사진같이
잊혀버린 나의 너

옥수수 알갱이처럼 수없이 박혀있는
수많은 날이 수없이 많은 사연으로
거울 앞에 내가 그를 맴돈다.
 

#작가의 변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 싯구 중에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라는 구절이 있다. 국화를 보며 누이를 떠올리는 마음처럼, 밤하늘의 별을 보고 달을 보며 그 밤하늘을 멍석 위에서 쑥으로 모기향을 피워놓고 옥수수와 감자로 배를 채우고 누워서 가족들이 함께 보던 그 시간을 떠올려 본다. 그 자리는 지금도 같은 자리지만 건물은 이미 부수어 새로 지어진 지 오래다. 고르지 않아 약간은 울퉁불퉁하고 흙 마당이라 흙냄새도 올라오고 버스나 트럭이 지나가면 신작로의 먼지가 온통 슬레이트 지붕을 덮던 흙벽돌로 지어 배가 툭 삐져나왔던 문도 맞지 않아 겨울에도 바람이 숭숭 들어오고 천장에도 방바닥에도 쥐들이 함께 뛰어놀던 그 집이 마지 마음의 거울처럼 생생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면 그곳엔 지금은 60이 넘은 나와 네 살 터울 내 동생 그리고 칠순을 넘긴 누나가 흠흠 헛기침하는 아버지와 젊어서 이미 치아가 모두 빠져버린 엄마의 들어간 볼을 보이며 웃고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사람의 무의식은 빙산의 보이지 않는 부분처럼 아주 거대하다고 말했다. 우울증 치료를 하면서 정신분석학도 함께 배운다. 그것도 영어로, 의외로 재미있다. 빙산의 모습 사진을 보여주면서 보이는 것은 의식의 세계이고 보이지 않는 것이 무의식의 세계라고 말한다. 의식이란 우리가 말하는 지성과 같다. 도덕적으로 배우고 사회적으로 배운 모든 걸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행위이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한다는 말은 반사적으로 반응한다는 말과 같다. 일종의 인간 이전에 동물적 감각과 욕망이 그 속에 숨겨져 있다. 그 동물적 욕망을 절제하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사회인 거다. 그래서 교육은 하라는 것보다 하지 말라는 것이 많고 법규도 그 행위를 규정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욕구에는 식욕, 가지고 싶은 욕구, 벗어나 자유롭고 싶은 욕구 등은 물론이고, 성욕 등 사회에서 허가하지 않는 욕구도 많다. 특히 종교에 귀의한 승려나 사제, 수녀 등은 일반적인 금욕보다 훨씬 많은 금욕적 계율이 있다. 그러한 계율이 정말 수도를 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말이다.

고기도 나물이라고 생각하고 먹으면 나물이 될 수도 있다. 막걸리도 곡차라고 생각하고 마실 수 있다. 하지만 양심의 거울에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처럼 우리의 무의식은 우리 마음의 거울처럼 우리를 비추는 기능도 있다. 정리되지 않은 창고의 서류처럼 찾기 힘든 수없이 많은 기억과 데이터들이 저장되어 있어서 우리는 그 무의식의 무한한 힘을 꺼내 쓰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수도를 통해 그 무한한 성장 가능성이 있는 무의식에서 자아를 찾고 무아의 경지로 가려고 노력한 것이다.

낮에 그 강렬한 태양을 맨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스스로 시력을 잃는 자살행위이다. 태양이 있어야 자라는 식물도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풀이 팍 죽어 있다가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살아난다. 어둠은 밤하늘을 볼 수 있게 하고 수없이 많은 별만큼 깊고 깊은 어둠 속에서 우주의 위대함을 느끼듯이 무의식은 깊은 어둠과 같다. 우리 안에 있지만 우리가 어쩌지 못하고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무의식이다. 그 무의식을 의식과 연결해 주는 것이 꿈이다. 밤마다 꿈을 꾸지만 우리는 잠 깨고 나면 잊고 만다. 그리곤 난 꿈을 꾸지 않았다고 말한다. 악몽은 기억하고 싶지 않아 잊고 싶고 기쁜 꿈은 너무 좋아서 꿈에서 즐기다가 꿈을 깨고 나면 무슨 꿈인지 몰라도 좋았다는 기분만 남는다.

어릴 적에 다리가 묶인 꿈을 많이 꾸었다. 두 손을 치켜들고, 날아라 마루치처럼 날고자 하는 마음을 먹으면 날았다. 날개도 없고 어떤 동력도 없는데 마음먹는 대로 날았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잡히려 할 때도 날고자 하면 날았다. 하지만 묶인 발목이 더 이상 날지 못하게 잡고는 했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꿈도 꾸었다. 평소에도 자주 하던 높은 언덕에서 친구들과 서서 아래로 오줌을 갈겨대던 꿈을 꾸면 영락없이 요에다 세계 지도를 그렸다. 그리고 키를 쓰고 이웃집에 소금을 꾸러 갔다. 물론 나도 할 말은 있다. 화장실에 가려면 한 방에 누워 자는 식구들을 더듬거리고 넘어서 문을 열고 나가서 마루를 지나 마당을 지나고 외양간의 소를 지나고, 깜깜한 화장실에 성냥으로 불을 그어 확인하고 앉거나 퇴비 거름에 오줌을 갈기고 들어가야 했다. 물론 비가 오는 날은 비 온다는 핑계로 봉 당에 서서 마당에 이리저리 흔들며 오줌을 갈겼다. 요강도 있었지만, 요강에 오줌을 누면 바깥에 지릴 가능성이 커 불편했다. 친구네 집에서 잘 때도 다른 식구들이 혹시나 잠을 깰까 오줌을 참으며 잠도 못 자고 누워있기도 했다.

꿈에서 날고 달리는 꿈과 어느 지점 이상을 가면 뚝 떨어지는 꿈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믿지 않은 탓인지도 모른다. 홍골 뒷산에 아버지가 나무하러 갔지만 그 너머에도 사람이 산다고 생각하지 않고 산짐승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했다. 꿈은 또한 버스에서 만난 말 한번 붙여 보지 못한 여학생을 꿈에서 만나는 행운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꿈에 서조차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좋아하는 마음만 가득 안고 꿈을 깨기가 일쑤였다.

아버지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도 오래됐는데 꿈속에 서조차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편안히 계신 것 같다 가도, 아버지 산소에 수맥이 흘러서 뇌경색이 왔다는 말과 동생이 뇌 수술을 한 것도 그것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면 빨리 화장을 해드려야 하는데 하면서도 생각뿐이지 쉽지 않다. 오욕칠정 우리는 항상 욕심과 더불어 기본적인 동물적 욕구에 이성이 지는 경우를 많이 느낀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동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도시에서 사는 한은 토굴을 지을 권리도 없다. 아니 시골도 정부 허락을 받고 등록된 집을 지으려면 나 혼자서 하기는 힘들다. 원시 시대처럼 땅을 파고 나무를 베어 기둥을 세우고 토굴에 산다는 것은 꿈일 수도 있다. 문명에서 벗어 난다는 것은 결국 국가의 모든 지원에서도 벗어난다는 뜻이다. 이성으로 살지 않고 동물적으로 살아가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내 이름의 땅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개인 땅이거나 지자체 땅이거나 국가 땅이 아니면 공원이 전부인 땅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무의식은 아직 그런 등록된 허가 받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불러낸다고 나와 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무의식은 창조와 발명은 물론 수많은 가치를 가진 무한대의 꿈의 프로젝트가 살아 있는 데이터베이스와 같다. 그곳엔 이성보다 더 큰 양심이 자리하고 있다. 평생 살면서 나쁜 짓을 한 것을 기록한 CCTV저럼 마음의 거울이 있다면 당당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생각해 본다. “거울아 거울에 세상에서 누가 가장 착하니” 하고 물어보면 거울은 뭐라고 대답할까? 착한 것은 바보로 통하는 세상에 그래도 나는 착한 편에 속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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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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