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건네는 말은
미처 준비하지도 못한 사이
불쑥 찾아온 친구처럼
가을이 가슴과 어깨 목덜미로 파고 든다.
#작가의 변
어제 인근 천주교 성당에 갔다. 이번이 3번째 방문이다. 매주 한 번씩 수프와 빵을 나눈다. 많은 시니어 어르신이 봉사한다. 커피잔도 제대로 못 들어 쏟을 거 같아 테이블에 가져다주고 갓구운 빵과 커피를 마시며 처음 보는 사람들과 날씨 얘기부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수프가 준비되어 수프와 빵을 함께 먹는데 한 그릇만 먹는 사람은 거의 없고 3그릇씩 먹는 사람도 많다. 앞에 어떤 노인은 2그릇을 먹고 4그릇을 가져온 통에 싼다. 규정상 그러면 안 된다고 얘기하면서도 그 할아버지가 테이블에 흘린 국물을 훔쳐낸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여성분이 함께했는데 앞에 앉은 할아버지가 칭찬한다. 늘 표정이 어둡지 않고 밝으면서 긍정적이라며 한쪽 팔과 한쪽 다리가 없는 그녀가 아마도 교통사고로 다친 것 같다고 말한다.
나도 재활치료 받을 때 다니던 병원에 유독 다리가 없는 환자들을 많이 봤다. 혈액 순환이 잘 안돼 괴사해도 다리를 자른다. 그때도 다리를 너무 쉽게 자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람에게 있어서 다리와 팔은 가장 많이 쓰는 신체 부위이고 없으면 보통의 활동을 하기 힘들지 않은가?
성당에서 서서 다니던 어떤 백인 할아버지를 길에서 만났는데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걸 봤다. 밤늦은 시간까지 깡통과 빈 병을 주우러 손전등을 켜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부부도 우리 아파트에 산다. 시내가 아닌 외곽에 살던 사람은 빈 병을 주워 쓰레기봉투 2개를 들고 마을버스를 타려고 하니 운전기사가 안 된다고 한다. 기생충 등이 있을 수 있어 안 된다고 하고 그 여자는 화가 나서 욕을 한다. 그냥 좀 태워 주지하는 말이 입에서 맴돌았지만 말하지 못했다. 버스가 복잡하고 손님이 많은 것도 아니었기에 더욱 그런 생각을 했었다.
교회에서 하는 푸드뱅크는 9시 30분부터 음식과 옷을 주는데 8시인데 많은 노숙자가 줄을 섰다. 날이 좋아 그나마 다행으로 보인다. 지난주엔 비가 왔는데 비 맞으며 피자 한 조각을 먹으며 밝게 웃는 사람들 얼굴이 떠올랐다. 쿠키를 구워서 주기도 하는데 덜 익은 것처럼 축 늘어지는 쿠키를 받아서 사람들이 잘도 먹는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힘들지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보다 먹을 것을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배고픔의 해결책이다.
내가 사는 랭리는 밴쿠버에서는 아주 많이 떨어진 외곽이다. 가끔 메트로타운이나 다운타운을 나가면 랭리가 정말 시골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가끔 나가는 메트로타운이나 다운타운의 복잡거리는 거리의 모습과 고 층건물 그리고 많은 사람, 또 다른 삶의 생동감을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랭리로 돌아오면 편안함과 안도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은 복잡한 전철을 타게 되면 군중에 의해 그냥 나도 군중과 한 덩어리가 되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안 보이고 수많은 사람 중에 한 점처럼 느껴진다. 그러다가 거리에 공간이 생기고 여유가 생기면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개성도 도시의 개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람마다 자기의 일과표처럼 일정이 있고 도시는 그런 사람들에 의해 돌아간다. 배고픔, 추위, 바람, 비, 낙엽 등 주변의 환경에 의해서 사람의 마음은 영향을 받지만, 버스를 타는 사람과 자가용을 타는 사람이 느끼는 계절은 분명 다를 수 있다. 배고픔, 추위 바람, 비, 낙엽을 대하는 마음도 다를 수 있다. 버스나 전철에서 사람이 많아서 불편하게 서서 오랫동안 길을 가야 한다면 세상을 보는 시각도 다를 수 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편리함이나 삶의 달콤함은 물질적인 것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물질적으로 풍족함을 추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다 주지 못하는 배우자를 원망하기도 한다.
불교의 ‘경전’이든 <성경>에서든 부자가 천국에 가는 일은 아주 힘들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부자가 살아 가는 것이 훨씬 쉽고 그 삶이 달콤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일주일 동안 삶에서 죄를 짓고 주일에 가서 회개하고 용서를 빌고 다시 죄를 짓는 일을 반복하기도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마음은 양심의 거울 같아서 마음에 나의 행위를 비추어 볼 때 부정한 행위라고 생각하면 하지 않아야 하고 십계명이나 불교에서 말하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 즉 살생하지 말고 남이 주지 않는 걸 취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거짓말 하지 말고, 술과 마약에 취하지 말고, 장식물로 몸을 치장하고 향수를 쓰는 것을 금하고, 사치스럽고 높은 침대에서 자는 것 금지, 세속적 오락에 빠지는 것 금지, 금과 은을 취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사실 쉬운 일이면서 지키기 어려운 것이다. 살인이 아닌 살생을 금지한다는 것은 파리나 쥐 같은 것들을 죽이는 것도 금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둑질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며, 거짓말 하지 말고, 술과 마약에 취하지 않는 것은 날마다 어기는 사람들이 많다. 치장하고 향수를 쓰고 높은 침대에서 자는 것과 세속적 오락에 빠지는 것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늘 하는 것 중에 하나다. 금과 은을 좋아하는 것은 기본적인 욕망인데 욕망을 끊어 내라는 말과 같다. 가난한 사람들은 술에 취하기 쉽고 마약에 취할 수 있지만 장식물로 치장하거나 세속적 오락이나 금은을 취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결혼식이나 상갓집에 그냥 가지 못하고 부조를 해야 하고 빠듯한 생활에서 물질적으로 넉넉했으면 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소원이다. 그래서 희망이 없는 사회일수록 복권 등에 빠지게 되는데 복권이 쉽게 될 리가 없다. 누구를 만나려 해도 밥도 먹고 차도 한잔해야 하는데 내가 형편이 어렵다고 계속 얻어먹기만 하면 마음에 부담이 생기게 된다. 그러니 없는 사람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피하게 된다.
요즘엔 노인회관이나 시에서 복지 차원에서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천주교에서도 한인을 위해 각종 취미생활을 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 비용도 부담이 되어서 하지 못하는 많은 노인이 있다. 노인회관에서 점심 프로그램도 밖에 식당보다는 싸게 점심을 판매하지만, 그것도 부담이 돼 사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을 하면 좀 더 나을 수는 있겠지만 요즘같이 부동산가격이 높고 임대료도 하늘을 찌르는 경우엔 일을 해도 마음대로 사 먹거나 사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로 인해 사회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시니어들이 많다.
선거철이 되니 자기 당의 후보를 홍보하는 전화가 자주 온다. 전화를 받자마자 끊는다. 지금은 비씨주 지방선거에서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신민당이 보수당에 밀린다는 보도를 많이 본다. 신민당이 오랜 시간 정권을 잡았지만, 부동산은 치솟고 임대료가 올랐기 때문에 불리하다. 하지만 보수당은 병원의 간호사를 줄이고 민간병원에 아웃소싱을 줄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마음을 편안히 하고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없애고 금강경에서 말하는 궁극의 경지에 이르고 싶지만 삶은 늘 나와 내 가족을 먼저 챙기지 않을 수 없다. 나와 의견이 다른 정치집단이나 사회집단을 악마화하고 적대시하고 전쟁하는 경우는 아주 일상이 되어 버렸다. 불경이나 성경의 좋은 말씀이 현실과 아주 동떨어진 데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와 너라는 생각을 없애고 집착을 내려놓는 일은 살아 가면 갈수록 더 힘든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아프면 아프다 그냥 죽고, 먹을 것이 없으면 굶어 죽으면 돼” 하면서도 가족과 우리라는 생각은 또 다른 삶에 애착을 가져온다.
사람들을 거짓으로 유혹하고 무당처럼 행동하는 스님도 유명해져서 불교방송 등에 나오는 경우가 있고 전기도 안 들어오는 산골에서 홀로 밥하고 빨래하고 땔감을 마련하면서 불제자로 살아 가는 스님도 있다.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세상에서 불교에서 공부하고 정진하는 스님들이 사람들의 삶 속에 가까이 들어와 함께 생활하면서 삶 속에 법문을 하고 불교 공부를 했으면 한다. 한국의 목사는 전임 목사가 많다. 캐나다 교회 같은 경우는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수님도 목수였고 어부였던 제자가 있었듯이 “종교인도 직업을 가진 종교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수도원에 수도사들은 밭에 일을 하기도 하고 빨래방에서 일하기도 하고 조각을 하기도 하고, 기계실에서 일하기도 한다. 온실 속에 화초가 아닌 현실에서 부딪히는 삶에서 나오는 종교의 힘을 구하고 싶다. 우리가 살아 가면서 양심에 거울에 비추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산다면 주말마다 죄를 회개하고 다시 죄를 짓는 종교인보다 낫지 않을까? 계절은 우리가 기다리건 기다리지 않건 우리에게 불쑥 찾아온다. 우리가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사이 계절의 변화처럼 우리에게 불쑥 깨달음이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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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은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