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철학자”
“인간은 누구나 철학자”
  • 불광출판사 이기선
  • 승인 2014.12.29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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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쿨함 양심 죽음에 대한 답?…‘이럴 때 소크라테스라면’

선택의 순간순간 우리는 철학자가 된다

우리는 ‘점심엔 무얼 먹을까?’ 같은 평범한 일상의 문제에서도 고심하곤 한다. 다양한 선택지를 두루 비교하며 무엇이 ‘나’에게 더 이익인지를 따져 보는 건 기본이고, 가끔은 무엇이 더 ‘옳은지’를 두고 고심도 한다. 밥 한 공기를 줄줄이 따라 나오는 다양한 생각거리들, 예를 들면 육식이냐 채식이냐, 로컬 푸드냐 아니냐, 많이 먹을 것이냐 적게 먹을 것이냐 등을 붙잡고 있노라면 밥 생각이 달아날 정도다.

인생에는 밥만큼, 혹은 밥보다 더 중요해 보이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대학에서 무엇을 공부할 것이며, 무슨 일을 하고, 누구에게 투표를 할지… 이 모든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려 들면, 사실 끝이 없다. 그렇다고, 인생을 만들어 갈 중요한 결정들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러니 인간은 강요됐든 아니든 “타고난 철학자”일 수밖에.

하필이면 지금, 왜 소크라테스?

인생에선, 나와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나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사건들이 종종 발생한다. 예를 들어 올해 일어난 세월호 사건이 그러하다. 이런 사건은 우리를 ‘일단 정지’시킨 다음 길게 생각을 이어 나가도록 만든다. 타고난 철학자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보인 모습은 어떠한가? 다수 구성원들의 슬픔 이후엔 정치적인 공방만 남은 인상이다. ‘철학 하는’ 이성적 인간의 모습은 별로 볼 수 없었다. 최소한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했는데, 그 자리는 텅 비어 있다시피 했다.

우리에게는 이성적 인간의 귀환이 다시 중요해졌다. 해묵은 ‘계몽’을 다시 꺼내려는 건 아니다. 단지 좀 더 인간적인 가치를 중시하며, 생각이 다른 타인과도 오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되자는 권유이다. 그래서 떠오른 인물이 바로 ‘소크라테스’다.

소크라테스가 이웃에 산다면

‘너 자신을 알라’, ‘악법도 법이다’라는 발언으로 유명한 저 소크라테스는, 2014년을 사는 우리에게 고조할아버지 정도의 느낌을 주는 케케묵은 철학자일 뿐일까?

그럴 수도 있다. 고대 그리스의 문화, 역사, 예술, 종교에 관해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우리에게 그의 말들이 현실감 있게 다가올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이웃에 살아 우리와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어떨까? 지금의 말로 세상의 이슈에 대해 소크라테스와 나누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철학 하는 기쁨의 진수를 선사할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돌아왔다

『이럴 때 소크라테스라면』의 저자 아비에저 터커는, 플라톤의 대화편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다섯 작품 <크리톤> <메논> <에우티프론> <변론> <파이돈>이 우리 시대와 호흡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이 책에서 선보였다.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소크라테스와 상대방이 나누는 대화를 단편 소설 형식으로 써내려간 이 책에서, 저자는 플라톤 대화편의 내용 전개를 고집스럽게 따라간다. 하지만 군입대, 쿨함, 직업과 양심, 안락사처럼 현대적인 이슈를 글감으로 삼음으로써 현대인이 플라톤의 사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각자의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렇게 잔소리꾼 소크라테스가 돌아왔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상대방의 논리적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소크라테스. 그의 수다를 따라 가다 보면, 가끔은 그의 논지에 속수무책으로 말려들기도 하지만, 논증의 기술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영리한 소크라테스의 생각법이 우리 자신에게도 스며드는 듯한 행복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끝장토론이 매력적인 이유

전략적인 선택인지는 모르겠으나, 소크라테스는 대화 내내 모르쇠로 일관한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되, 오직 상대의 말이 옳은지 그른지를 분간할 수 있는 감식안만 지닌 것 같은 태도를 유지한다. 물론 말도 그가 훨씬 많이 하고 결론도 그가 바라는 쪽으로 나지만, 소크라테스는 상대가 말을 하도록 끊임없이 계기를 마련하고 발언을 독려한다.

사회학자 엄기호는 『단속사회』에서 “의견을 제시하는 대신 침묵해 버리는 것, 이로 인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정치적 행위는 결정적으로 타격을 받는다.”고 말한 바 있다. 대학 졸업 이후, 심지어 대학 안에서조차 침묵을 강요당하는 한국 사회이기에, 소크라테스의 대화술은, 그것이 교수법으로 고안되었든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다시 조명을 받을 필요가 있다.

사실 무언가를 가르치는 선생은 없으며, 무언가를 배울 때 우리는 잃어버린 기억을 떠올리기만 하면 되므로 자신은 옆에서 그걸 도울 뿐이라는 소크라테스의 주장. 배우기 위해서는 끝장토론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그 주장의 맥락 속에 정치와 교육의 미래가 있다고 하는 건 억측일까.

철학 하는 삶의 불편함, 혹은 행복에 대하여

끝장토론 속에는 정치와 교육의 미래 말고도, 그만큼이나 중요한 무언가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자기 자신으로 사는 기예’의 한 축이 그 안에 들어 있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교육을 받은 세대이지만, 동시에 역사상 자기를 가장 학대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현실이라는 이름 아래 자기를 포기하거나 억압하기를 수없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본다는 드라마 <미생>의 인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 자신으로 살고 있지 못한지를 증명하고 있다.

책 속에서 소크라테스는 정의와 진리 같은 선한 가치 이외에 자기가 따라야 할 기준은 없다고 거듭 말한다.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불의한 전쟁임에도 징병에 응하고, 학생들에게 세속적 성공을 보장하는 교육을 하여 일자리를 보전하는 대신 학교에서 쫓겨나며, 진리를 대면할 수 있다는 기쁨 속에서 안락사를 선택한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소크라테스의 선택들은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 혹은 괴짜의 엉뚱한 선택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자기 자신으로 사는 행복이나 ‘자기 배려의 삶’이라는 기준에서 본다면, 소크라테스만큼 행복한 이는 또 없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같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이럴 때 소크라테스라면>은 플라톤의 시대에 제기된 이슈 가운데 현대에도 여전히 타당성 있는 것 다섯 가지를 골라낸 다음, 이 철학자의 대화편을 재미있는 단편 소설로 각색하되 원작의 어조와 위트와 철학적 본질을 제대로 포착하여 현대식으로 해석한 책이다.

1부에서는 <크리톤>에 근거해서는 군대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이야기하며 법률과 정의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고, 2부에서는 <메논>에 근거해서는 사람은 어떻게 쿨해지는가에 대해 대화하면서 미덕의 문제를 논의하고, 3부에서는 <에우티프론>에 근거해서는 하느님이 선악을 결정하는지 아닌지를 논의하면서 선악의 기원을 고민하고, 4부에서는 <변론>에 근거해서는 일자리와 양심 가운데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5부에서는 <파이돈>에 근거해서는 우리에게 죽음이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한 철학자의 믿음을 담담한 어조로 들려준다.


이럴 때 소크라테스라면┃아비에저 터커 지음┃박중서 옮김┃원더박스┃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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