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습만 시키니 부처 나올 턱 있나”
“자습만 시키니 부처 나올 턱 있나”
  • 조현성
  • 승인 2017.02.1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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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 윤창화 대표 “가르칠 능력 없으니…‘앉아 있으라’”

“한국 불교 선방에서는 10시간씩 좌선을 한다. 선지식 지도 없이 납자들에게 자습만 시키는 꼴이니 부처가 나올 턱이 있나?”

민족사 윤창화 대표는 15일 서울 인사동에서 <당송시대 선종사원의 생활과 철학>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윤 대표는 “한국불교 그 가운데 선방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교토서 충격 받고 8년 집필

저자인 윤 대표는 일본 교토 겐닌지 등 선종사찰에서 받은 충격을 화두 삼아 8년 동안 ‘화를 푸느라 밥 먹는 것을 잊은 듯(發憤忘食)’ 하며 책을 썼다. 8년 만에 탈고한 책에는 한때 승려였던 저자의 승가에 대한 사랑이 배어 있다.

윤 대표는 “당송시대 선종 사원의 생활철학과 제도 문화 가람 교육 등은 모두 중생을 부처로 만들고 범부를 조사로 만드는 데(成佛作祖) 있었다”고 했다.

더부살이 하던 선승들

윤 대표는 “선종 초조 달마부터 마조도일(707~786)까지 선종사원은 없었다. 선승들은 율종 사원에서 더부살이 형태로 기거하거나 따로 암자를 얻어 생활했다.

선승들이 늘어나자 선종사찰이 필요하게 됐다. 최초의 선종사찰 백장총림 백장사가 생기고 규범인 <백장청규>가 제정됐다”고 했다.

선승들은 시주를 받지 않았다. 비옥한 전답에 씨를 뿌려 쉽게 농사를 지은 것도 아니었다. 선종사찰은 도심이 아닌 산중에 있었고 선승들은 직접 개간을 해 농지를 만들었다. 백장과 황벽의 선문답 가운데 땅을 개간하는 내용이 나오는 것이 본보기이다.

지혜 없는 불상은 부처 아니다

윤 대표는 “의식주가 독립돼야 사상이 독립할 수 있다. 중국 선승들은 생활경제는 보청(운력)으로 해결했다. 선종사찰에는 법문을 들을 법당(설법전)이 있었다. 대웅전은 두지 않고 불상도 모시지 않았다”고 했다.

선종사찰이 불상을 모시지 않은 이유는 불상에는 지혜가 없기 때문이었다. 주지(방장)를 불조의 혜명을 이은 생불이자 법왕으로 여겼던 것도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은 이유였다.

윤 대표는 “당시 선승들은 반야지혜가 투철한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부처’란 목석이나 금은으로 만든 불상이 아니었다. 반야지혜가 곧 부처였다. 반야지혜가 작동하지 않는 부처는 나무토막이나 돌조각으로 보았다”고 했다.

좌선? 벽돌 갈아 거울 될까

윤 대표는 “중국 전통 선종사찰은 방장(주지)이 거의 매일 법문을 하고 독참 청익 등 개인지도를 했다. 선승들에게 좌선할 시간은 많아야 4시간이었다”고 했다.

방장은 대중에게 매일 법문을 했다. 법문 시간은 20~30분 대중은 서서 방장의 법문을 들었다. 방장은 공개 법문 외에도 선승 하나하나를 따로 불러 독참을 했다. 선승의 요구에 따라 청익을 통한 개별면담이 있었다.

이들에게 좌선은 중요하지 않았다. 좌선을 하고 있는 마조도일에게 남악회양 선사가 “벽돌을 갈아서 거울이 되겠느냐”고 말한 것이 한 본보기이다.

좌선 시킨 주지는 관료 만나고

윤 대표는 “중국 선종사찰에서 좌선이 정례화되기 시작한 것은 남송 때이다. 활발발한 선문답이 줄고 지혜 작용도 약화되면서 그 대안으로 나타난 현상이 좌선 강조였다”고 했다.

이어 “좌선이 정례화 된 남송 원대 방장(주지)들은 총림에 앉아 있는 날이 적었다. 관료, 사대부들과의 잦은 회동으로 그들에게는 정안과 정견을 갖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납자 지도도 등한시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방장 대부분은 총림을 비우기 일쑤였다. 정기 법문도 거를 때가 많았다. 납자들이 독참 청익을 해도 며칠을 기다려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항주로 나가는 것에 하루나 한나절이 걸렸다. 사찰로 돌아오기 까지는 사나흘이 걸렸다.

큰스님? 지혜 모자라, 법문도 안 돼
 
윤 대표는 “지혜가 모자라고, 법문 능력이 부족하고, 납자를 제접할 능력이 적다보니 ‘앉아 있으라’는 좌선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나라 선원 현상과도 비슷하다”고 했다.

이어 “한국 불교 선방에 전해진 하루 4번 좌선을 하라는 ‘사시좌선’은 남송 이후 정례화된 것이다. 좌선의 정례화는 학생들에게 강의는 않고 자습시키는 것과 같다”고 했다.

윤 대표는 “한국의 선방 문화는 화두도 알아서 들고 수행도 자율로 하는 방목선(放牧禪)이다. 좌선이 곧 깨달음이고, 깨달을 수 있는 길이라면 ‘사시좌선’이 정례화된 후 선승 출현이 많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했다.

당송 선종사찰 시스템 도입 절실

윤 대표는 “중국 선종 사찰에서는 생활 그대로가 선이었다. 노동(울력) 하느라 스님들에게 좌선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마조도일 서당지장 남전보원 백장회해 위산영우 앙산혜적 조주종심 임제의현 동산양개 운문문언 등 유명한 선승들이 나왔다”고 했다.

윤 대표는 “한국 선방에는 ‘황금시대’라 불리던 선승 때의 전통이 사라지고 없다. ‘방부를 들인다’는 근거 없는 표현이 사용되고 경책 대신 시중어와 붙은 ‘장군죽비’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것도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윤 대표는 “선종을 표방하는 한국불교의 방법론이 잘못되고 교육시스템은 망가졌다. 교육철학은 없다. 기라성 같은 선승을 배출해 내던 당송 때의 선종 사찰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당송시대 선종사원의 생활과 철학┃윤창화 지음┃민족사┃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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