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어디서 돈이 생겨 최고급만 원할까”
“스님은 어디서 돈이 생겨 최고급만 원할까”
  • 김광수/정의평화불교연대 공동대표, 한양여대 교수
  • 승인 2017.05.1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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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다시 ‘깨달음’ (9) 삼보정재
“돈 없으면 신도회 활동도 못하는 절집”
▲ 김광수 정의평화불교연대 공동대표.ⓒ불교닷컴

1.
두어 달 전에 잘 아는 후배가 서울에서 유명한 사찰 (신도와 수입이 많기로 유명한)의 신도회 부회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본인도 좋아했고, 마음으로 축하도 해 주었다. 한편, 내 생각에는 “그런 신도회 부회장이 되려면 신도회 활동을 열심히 해야 하겠지? 법회에도 열심히 나가고, 공양 배식 봉사도 열심히 하고, 주차장 봉사도 열심히 해야 하겠지?” 또, 그런 생각도 했다. “나는 그런 봉사심이 떨어지니까 그런데 회장 부회장이 될 자격은 없겠지?”

그 후배는 한 두어 달 법회 소식도 페이스북에 잘 올리고, 사찰 행사 소식을 밴드에도 열심히 올렸다. 자기 사찰을 자랑하고 홍보하는 일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그런 글들이 안 올라왔다. “역시 사람이란 처음 마음먹은 일을 꾸준히 하기가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 후배를 다시 만나서 들은 얘기로는 신도회 부회장을 석 달 만에 그만 두었다는 것이다. 왜 그 좋은 자리를 그만 두었는가 놀라서 물었더니, “돈이 너무 들어서요”, “돈을 그렇게 많이 내야 하는 건지 몰랐어요.”라고 했다. 후배는 약관 사십대의 중학생 아들을 둔 그저 평범한 학교선생일 뿐이다. 신심(신앙심)은 깊지만 재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후배의 말로는 5백만 원을 한번만 내면 되는 줄 알았다는 거다. “아니 그거 돈 내야하는 거야?” 라고 물었더니, “그게 처음에 한번 5백만 원 내면 되는 줄 알고 부처님께 바친다는 생각으로 냈는데, 그게 아니라 매달 1백만 원씩 내야하는 거였어요.”

그러니 이 일로, 오로지 부처님에 대한 신앙심으로 똘똘 뭉친 그 후배가 얼마나 실망했으며, 얼마나 마음의 상처가 컸겠는가 싶었다.

2.
이것은 비단 그 사찰 하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사찰에서 신도회 회장도 아니고 부회장을 하는 데도 실태는 이러하다. 열성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회장 부회장이 되어야지 돈 있는 사람이 되어서야 그 조직에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신도회장 자리가 주지스님 용돈 챙겨주는 자리는 아니지 않는가. 절은 회사가 아니다. 가겟방도 아니다. 돈으로 무슨 일을 이루는 데가 아니라는 뜻이다.

깨닫기 위해서 돈이 필요한가? 부처가 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한가? 내가 배우기로는 견성을 하기 위해서는 ‘간절한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고 배웠다. ‘대분심’, ‘대의심’, ‘대신심’이 중요하다고 배웠다. 부처님은 깨닫기 위해서 제왕의 자리도 버리고 나오신 분이다. 부처님 사업을 열심히 하기 위해서는 부자라야 하는가? 오히려 신도회에서 부자들이 회장 부회장을 하니까 수행에는 관심이 없고, 기복에만 관심이 있는 것 아닐까.

3.
그런데 돈을 내야 회장 하는 제도는 누가 만들었을까? 신도들만이 만들어 낸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스님이 그렇게 원하니까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만약 올바른 스님이라면 설사 그런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대로 둘 일은 아니다. 이런 관행은 오래전부터 계속되었을 것이다. 즉, 오래전부터 썩어왔다는 뜻이다.

나는 그 후배가 다닌 절을 오래 전부터 흠모해 왔다. 주지스님 한번 뵙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알았고, 주지실 앞에서는 경건한 마음에 감히 큰소리도 못 내고 옷깃을 여미고 지나갔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또한 그 절은 오래전부터 대학생 불자들의 수련관으로 청년재가불교운동의 산실이었다. 수많은 재가불교운동의 인재들이 그곳에서 배출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 절을 숭모해 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곳은 돈을 많이 내야 신도회장이 되고, 돈을 제대로 못 내면 신도회 활동도 제대로 못하는, 그렇게 돈에 지독히도 오염된 절이었다. 현실은 얼마나 절망적인가. 김중배(金重培)의 더러운 돈에 팔려 가는 심순애(沈純愛)는 그래도 순정이라도 있지 아니한가. 하기야 거기만 그렀겠는가. 그러한 관행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수십 년 전부터 당연시되어 내려온 것이라는 점이 더욱 우리의 절망감을 깊게 한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인데, 절 밖의 사람들은 까맣게 모르는 이야기이다. 수십 년을 절에 다닌 나도 몰랐던 이야기이다. 내가 멍청한 것인지,

4.
듣는 이야기로는 스님들의 씀씀이가 누구보다도 사치스럽다고 한다. 스님들 가사 한 벌이 2백만 원이 넘는다는 얘기를 10년 전에 들었는데, 요즘은 얼마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스님들께 가사공양도 안 하는 ‘해종 인사’다. 한번은 한 스님이 “어떤 신도님이 나한테 가사공양을 자꾸 하시겠다는데, 가사 값이 얼마 하는 지나 아시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가사는 두벌을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도 아시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면서 신도님 흉을 보셨다. 그 스님은 신도님의 착한 정성을 얼마나 느끼시는지….

아는 치과의사 얘기로도 “스님들은 어디서 그렇게 돈이 나는지, 최고급만 원하시냐.”는 거다. 결국은 스님들 자신이 회사를 운영하거나, 어디서 급료를 받거나, 혹은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를 해서 돈을 벌지 않는다면 그 돈은 모두 신도님들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다. 신도회장, 부회장이 내는 돈은 다 그렇게 쓰이는 게 아니겠는가. 큰마음을 먹고 낸 후배님의 돈 5백만 원은 부처님께가 아니라 그렇게 스님들의 사치와 낭비로 쓰이는 것이다. 부회장이 20명이라서 1억 원이다. 그래서 우리의 절망감이 깊어진다.

5.
요즘 이런 이유로 사찰 재정이 반드시 공개되어야 하고, 그것이 스님들이나 신도회나 사찰운영회에서 공개적으로 정확히 운영되어야 한다고 한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사찰에 들어오는 신도님들의 시줏돈을 삼보정재(三寶淨財)라고 한다. 불법승 삼보를 위해 쓰이는 깨끗한 재산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그 깨끗한 재산이 깨끗하지 않게 스님들의 사치를 위해서, 혹은 숨겨놓은 처자식을 위해서 쓰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사찰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수입이 공개되지 않는다. 또 공개되는 것은 아주 일부분이다. 사찰의 지하경제 규모가 너무 크다는 뜻이다. 불전에 공식적으로, 혹은 등값 명목으로 들어오는 돈보다, 노출되지 않고 들어오는 돈이 훨씬 더 많다는 이야기인데, 앞에서 예로든 신도회장이 기여하는 돈도 그런 종류일 것이다. 그러니 삼보 정재는 부정한 목적, 혹은 타락한 목적으로 쓰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모두 공개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사치를 하고, 검은 돈을 쓰는 스님들 쪽만 문제인가. 신도님들은 스님들께 돈을 은밀히 드린다. 그리고 이런 돈은 드러나지 않는 돈이기 때문에 잘못 쓰이기 쉽다. 어째서 신도님들은 유명한 스님께 돈을 은밀히 드릴까? 모임에서 이런 얘기를 했더니, 답이 금방 나온다. “그거야 자기 혼자 복을 많이 받으려고 하기 때문이지.” 아, 그렇구나.

그러니 불교의 정화를 위해서는 우리 신도님들도 많이 정화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복 받기 위해서 부처님 모시는 것도 아니고, 스님들께 은밀히 돈을 많이 드린다고 해서 복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스님을 더욱 타락시킬 뿐이다. 올바른 스님이라면 올바른 돈을 올바른 곳에 쓸 것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스님이시라면 “보살님, 그 돈은 내게 주지 마시고 저 불전함에 넣으십시오.”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돈을 빼내자면 회계부정의 방법도 많이 있다. 그래서 재정공개를 해도 소용없다고 한다면 아예 썩도록 내버려 두자는 말이다. 그러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하나라도 고쳐나가야 할 일이다.

6.
우리 불교가 살기 위해서는 물론 재가나 신도님들도 잘해야 하지만, 우선 스님들이 모범을 보여야 하고, 스님들이 깨끗해져야 한다. 그렇지도 않다면 스님들이 존경받을 이유가 없다.

병을 잘 못 고치는 의사는 이미 의사가 아니고, 판결을 번번이 잘 못 내리는 판사는 판사의 자격이 없다. 짓는 집마다 무너지는 건축업자는 자격이 없다. 그러면 스님들은 무엇 때문에 스님인가. 그처럼 일상생활에서 청정하고 도덕적이지 않다면 이미 스님이 아니다. 비구로서 처자식이 있다면 이미 비구가 아니고, 조계종 승려가 아니다. 스님이 청정하지 않다면 이미 스님이 아닌 것이다.

승단이 정화되려면 이런 비밀스레 거래되는 돈들이 없어져야 하며, 신도회 회장 부회장 자리를 돈으로 사고 파는 일이 없어져야 하고, 그래야 의욕 있는 불자들이 우리 불교를 발전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불교의 발전은 돈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개되지 않는 돈은 절대적으로 우리 불교를 타락시키기 때문이다.

7.
전에 우리 어머니께서는 절에 가실 때면 만 원짜리를 천 원짜리로 바꿔 달라고 내게 말씀하셨다. 절에 갈 때마다 어머니께 돈 십만 원씩 드리지 못한 나도 별로 잘하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어머니 말씀은 전각에 있는 부처님 수대로 각각 복전함에 돈을 넣으시려면 만 원짜리로는 감당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불교인구 천만, 혹은 760만의 불자들은 거의 다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 보살님, 할머니들의 천 원짜리들이 모이고 모여서 백만 원도 되고 천만 원도 되는데 그런 돈을 어찌 사치스럽게 쓰는가.

불전함에 들어오는 돈은 ‘별로 돈이 안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재(齋)를 많이 지어야 돈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불전함의 돈은 가난한 신도님들의 소망과 믿음이 깃든 돈이다. 부처님에 대한 사랑이 깃든 돈이다. 요즘 그래서 할머니들은 오랫동안 불교를 믿다가도 돌아가실 때가 되면 천주교로 돌아선다고 한다. 절에서는 49재를 하는 데 많은 돈이 들기 때문이다. 자식들 사랑에 평생 믿어온 불교마저 버리는 것이다. 결국 스님들의 잿밥 타령이 이 땅의 불교 인구를 떨어트리는 중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큰절에는 가지 않으신다. 가지 못하신다. 돈을 못 내니까 스님들이 상대해 주지 않으신다는 거다. 스님들께 2백만 원짜리 가사·장삼을 두벌씩 해 드릴 수 있는 신도님들은 극소수이다. 그래도 스님들은 그런 신도님들한테만 잘해주신다. 그러니 과연 불교를 지켜나갈 사람들이 누구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결국 불전함에 ‘천 원짜리’를 넣은 할머니들, 그런 보살님들을 외면한다면 우리나라 불교는 멸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김광수/정의평화불교연대 공동대표, 한양여자대학교 교수

[불교중심 불교닷컴.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mytrea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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