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착오적 추선제 논의
시대착오적 추선제 논의
  • 법응 스님
  • 승인 2018.03.2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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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조계종이 망(忘)하기를 재촉하는가?

총무원장 선출 방식에 대해 논의와 갈등이 진부하게 이어지고 있다. 대중의 80%가 직선제를 선호하고 있음이 진즉에 밝혀졌고, 그러한 방식이 부처님 재세 시부터 대중에게 의견을 물었던 갈마제도(羯磨制度) 및 한국불교 전통의 산중공의제(山中公議制)에 가장 부합하다는 데에도 큰 이견이 없었다.

종단 집행부가 총무원장 선거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그 변화의 방식에 대해서는 수년간 공회전을 반복하고 있으니, 진실로 선거제도를 바꿀 의향이 있기는 있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보도에 의하면 아직은 논의 중인 ‘추선제’로 가닥을 잡는 듯하다. 듣기에도 생소한 ‘추선제’는 총 130명(원로의원 25인, 교구본사주지 24인, 중앙종회의원 81인 등)으로 구성되는 총무원장 추선위원회가 총무원장 임기만료 1개월 전에 특정 장소에 모여 외부와 연락을 차단한 채 1명을 총무원장으로 뽑는 제도란다. 얼핏 가톨릭의 교황 선출제도를 연상시키는데, 만약 추대 합의가 실패할 경우 후보군에서 선출을 한다는 제도로써 근자 여론조사를 통해 확정된 후보군을 5배수 등으로 축약한다는 안이 제시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방식의 선출제도는 결국 원로의원과 종회의원이 면전에서 다투는 상황을 연출가능하게 만드는 제도다. 무엇보다 총무원장이 되고자 하는 승려 자신이 총무원장직에 대한 도전을 결정할 수 없으며, 위원회 바깥의 종도 대중은 철저히 배제될 수밖에 없다. 총무원장이 종단 권력층과 타의에 의해 선출되는 기이한 제도가 논의 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에 있어서 국가나 특정 집단의 지도부가 그 사회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희망을 주고 있느냐를 가늠할 수 있는 것으로 구성원 개개인의 존재 가치와 인격이 충분히 존중되고 있는지, 운영이나 경영에 민주적 참여가 보장되고 있는지, 또 소통이 개방적인지 여부가 주요 척도로 거론된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직선제와 광역시도 단체장들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고 부정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 적용을 함으로써 건전한 선거문화와 민주주의를 정착시켜 가고 있다. 사회의 중요한 현안에 대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서 국민의 직접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문화에서 민주주의의 열망을 안고 있는 우리나라의 어느 국민이 구시대적이고 개개인의 의사를 무시한 채 권위주의만 고착화 되어가고 있는 종교집단에 후한 점수를 줄 것이며 그 종단의 구성원이 되려 할까? 특히나 젊은 층에게는 구태의연하다 못해 퇴행적으로 비춰질 뿐이다.

총무원장 선출제도 자체가 너덜너덜해져 버렸고, 종단은 세상의 흐름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총무원장 선거 방식에 대해 간혹 승려들이 가톨릭의 교황 선출 방식을 선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불교의 본질이나 기본 철학에 대해 잘못 알고 있거나 이해를 하지 못하는 데서 갖는 발상이다. 불교 종단의 행정수반은 결코 절대자를 대리하는 존재가 아니다. 절대자를 대리하는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가 불교다. 종단의 수장을 선출함에 있어 비공개, 혹은 비밀유지를 엄수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 영역이 신성불가침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신을 대리하는 자’에게 절대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부연하자면, 오로지 남성 사제만이 이 신을 대리할 수 있다.

직선제 실현 등 조계종의 혁신을 바라는 출재가자들이 모여 진행한 범불교도대회(불교닷컴 자료사진)

차별과 분별을 넘은 평등과 대자유라는 가치는 불교의 핵심을 구성한다. 석가모니부처님 재세 시부터 그 실천적 철학에 의거 대중에게 직접 의견을 묻는 갈마제도가 이미 자리매김했으며 한국불교 또한 산중공의제를 확립해온 전통이 있다. 대중 존중과 참여 그리고 투명성이 불교의 중요한 가치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하물며 지금은 중세시대도 아니다.

총무원장 선거제도는 종단의 포교와 교육과도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으므로 포교원장과 교육원장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 비합리적이고 반대중적이며, 어딘지 음험한 제도와 이로 인해 내외의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종교를 잠재적 불자나 출가 희망자들이 선호하기를 바란다면 죽은 말에 침놓기와 다를 게 무엇인가.

총무원장 직선제는 현 종단 상황에서 그동안 노정된 문제들을 해소하고 불교유신의 초석을 놓아 대중에게 희망을 주기에는 충분한 선택이라고 본다. 직선제는 대중의 선택에 의해 대중이 책임진다는 점에서 불교적이며, 또한 장점이기도 하다.

제도는 복잡할수록 변수와 음모가 많다. 따라서 발전은 요원해지고 대중과 큰 괴리가 생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앞으로 총무원장 선출제도를 새롭게 규정할 종헌의 개정은 당해 종단 최고지도자의 자질과 역량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출가자가 두 자릿수로 급감하고 있으니 종단과 한국불교는 큰 위기에 직면해 있음이 자명하다. 이대로라면 과연 ‘불일증휘 법륜상전’ 그리고 ‘삼보를 법계에 유전’이 가능 하겠는가? 어느 집단이든 희망찬 미래를 위한 일대 혁신 의지와 대안이 없는 지도자는 존재 가치가 없다. “해종”은 종단과 불교를 음험하게 만들며, 퇴보케 하는 자들에게나 적용되어야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 法應(불교사회정책연구소)

[불교중심 불교닷컴.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dasan2580@gmail.com]

[뉴스렙=법응 스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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