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스님 성전] 나이드는 것에 대하여
[미소스님 성전] 나이드는 것에 대하여
  • 김영태
  • 승인 2006.02.04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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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이제는 가끔씩 사람이 그리워지고는 한다. 아마도 나이 탓일 게다. 외로워질 나이라는 생각이 든다. 40 중반의 나이는 작은 나이가 아니다. 희망 보다는 절망이 깊을 수 있는 나이이고 기쁨보다는 슬픔이 많은 나이이기도 하다.

어려서 나는 일찍 죽었으면 했던 적이 있다. 멋있을 것만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죽음을 어쩔 수 없이 맞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내게 매혹적이었다. 내 나이 10대 때의 치기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아니다. 오래 살고 싶다. 설사 혼자 거동을 못하고 누군가의 등에 업혀서라도 오래 살고 싶은 것이 지금의 솔직한 내 심정이기도 하다.

치기로 넘치던 시절에는 그리움 같은 것이 없었다. 외로움과 슬픔 앞에서도 나는 오만할 수 있었다. 누군가 곁에 없어도 혼자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외로움이 깊을수록 삶은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삶을 모르던 그 때의 나를 돌아보면 그 어리석은 오만에 그만 웃음이 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삶을 무던히도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때의 진지했던 생각들이 비로소 치기로 다가서고 맹목적이던 열정들이 오만으로 다가서는 것을 보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결국 삶을 배워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제 외로우면 도반을 찾아가 외로움을 풀고 돌아온다. 이것도 삶이 내게 일러준 따뜻한 가르침이다. 혼자 품고 살 것이 아니라 친한 친구와 더불어 나누라는 삶의 가르침을 이제야 이해한 것이다. 누군가를 찾아가 외로움을 나눈다는 것은 안으로 닫혔던 가슴을 바깥으로 여는 일이다. 그것은 비로소 겸손해 지는 것이고 비로소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에 눈을 뜨는 것이다.

그리움 외로움 그리고 슬픔과 같은 단어들은 존재의 약함을 상징하는 말들이다. 젊어서는 그런 말들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런 단어들은 젊음이라는 생명력 앞에서는 바람처럼 지나가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그런 말들은 마치 입고 있는 옷처럼 몸에 와 감긴다. 옷을 벗기까지 그 말들은 언제나 존재의 그림자가 되어 함께 동행한다. 외로움을 외로움으로 인정하게 되고 그리움을 그리움이라 말할 수 있을 때 만나는 삶은 새롭다. 그것은 바로 성숙을 의미한다.

성숙해 간다는 것은 결국 약한 것들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익혀 가는 것이다. 보잘 것 없고 남루한 모습들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 볼 수 있는 마음의 넉넉함이 바로 그것이다. 모습은 자꾸 왜소해져 가도 마음은 한없이 커가는 것이 나이 듦의 의미라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절집에 와 산 세월도 결코 짧지 않다. 이제 내게 다가오는 약한 것들을 사랑하며 살아야겠다. 그것이 또한 이웃을 사랑하고 나누고 사는 삶의 시작일 수 있으니까. 하늘을 맴돌다 내리는 잔설 하나가 유난히 아름다운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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