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선사들의 다비식 풍경
열일곱 선사들의 다비식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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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7.09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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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불 들어갑니다. 어서 나오세요.”

“거화(炬火)”라는 선창에 따라 연화대에 불이 붙는다. 화염이 치솟자 다비장 근처에 있던 스님과 신도들이 한목소리로 외친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어서 나오세요.”

우리가 아무리 “어서 나오세요.”라고 소리쳐도 스님은 불이 붙은 연화대에서 나오지 않는다. 스님들의 다비식에서 보게 되는 이 마지막 의식은 또 하나의 법문이다.
“응애~” 하는 울음소리로 시작된 생은 “깔딱!” 하고 숨 거둔다는 표현으로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으로 구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생자는 필멸이며 나 역시 한 줌의 재가 되어 지수화풍으로 환원된다는 큰스님의 가르침이요 결국 생과 사가 둘이 아니라는 무언의 설법인 것이다.

스님들의 다비식에 대해 다룬 최초의 단행본

이 책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열반에 들었던 큰스님 열일곱 분의 다비식 현장 취재기다.
저자는 6년 동안 석주 스님, 서옹 스님, 숭산 스님 등 이 시대의 내로라하는 선승들의 다비식장을 직접 찾아보고 취재한 내용 그리고 큰스님들의 평소 수행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150여 장의 사진과 함께 진중하지만 맛깔스럽게 펼쳐보인다. 
저자가 찾은 다비식장 풍경은 같은 듯했지만 모두 달랐다. 나무와 숯, 가마니 등으로 화장장을 만들고 거기에 관을 올려 거화(炬火)를 해 재 속에서 뼈를 수습하고 마지막으로 재를 날리며 산골을 하는 등 다비식 풍경은 비슷하기도 하지만 사찰과 문중에 따라 제각각이었다. 연화대의 모양도 달랐고 불을 붙이고 사리를 습골하는 방식 모두 달랐다. 심지어 남아 있는 사람들의 슬픔의 깊이가 다르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비식장 하늘에는 갑자기 무지개가 뜬 모습을 보고(법장 스님, 정천 스님) 큰스님의 높은 법력을 실감하기도 하고 3년 전에 집을 나갔던 개가 돌아와 며칠씩 식음을 전폐하고 다비장을 지키는 모습(명안 스님)을 보고 평소 스님들과 신도들에게 따뜻한 스승이었던 님의 모습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래서 오히려 이 책 속의 글은 단순한 ‘다비장’ 풍경이라기보다는 열반하신 큰 스님들이 평소에 우리에게 해왔던 이야기들의 묶음이라고 보아도 좋다.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갔다고 해라”

다비식은 가신 ‘님’에 대한 이승에 남은 사람들의 마지막 의식이다. 그 속에서 열반에 든 선사들은 무언의 설법을 하지만 우리에게 육성으로 들려주었던 마지막 법문은 어쩌면 임종게인지도 모른다.
“은혜를 갚는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할 뿐이네.”(청화 큰스님 임종게)라고 일갈을 하거나 “주어도 주어도 비지 않는다.”(법장 큰스님 임종게)라고 일갈하며 우리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남긴다.
하지만 이 보다 더 깊은 가르침은 결국 무언(無言)인지도 모른다. “스님 사람들이 열반송을 물으면 무어라 할까요?”라는 질문에 “그런 거 없다고 해라.”라고 한마디 던지고 그래도 “한평생 사시고 남기실 말씀이 없습니까?”라고 재차 묻자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갔다고 해라.”(서암 스님)라며 우리를 더욱 깊은 심연에 잠기게 하기도 한다.

▦ 글 / 사진

임윤수가 말하는 임윤수

1960년 쥐띠 해, 햇살 좋은 봄날 벽항궁촌인 충북 괴산에 있는 군자산 자락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무시(無時)로 꿈꾸는 출가와 그렇지 못하는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둔한 중생으로 재료공학에서 상변태(相變態)를 전공한 공학박사(工學博士)이지만 삶에 수반되는 심변태(心變態)에 관심이 더 많아 몽환적일지언정 공학자(空學者)를 꿈꾸는 영원한 철부지다.
산을 찾아다니다 보니 산사가 보였고, 산사를 찾아다니다 보니 풍경소리가 들리고 연화대에서 피어오르는 그림자가 보였다. 아직까지는 보지 못한 ‘마음’이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시간이기에 산길을 걸어왔고, 걷다보면 언젠가는 그 마음도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낙엽귀근(落葉歸根), 떨어진 낙엽이 뿌리로 돌아가듯 인생 역시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임을 알기에 허허로운 마음으로 살고 싶지만 잘 안 된다.
산길을 걷고, 산사를 찾아다니며 도토리를 줍듯 모아온 이런 마음 저런 풍경을 네 권의 책,『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가야넷), 『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 2』(가야북스), 『울림』(가야북스), 『열림』(가야북스)으로 출간했다.

▦ 책 속으로

좌탈입망과 항아리 속의 사리로 보인 서옹 큰스님의 이적이야 말로 차안의 세계를 떠나는 큰스님께서 오랜 참선과 구도의 수행에서 얻을 수 있는 결과가 이렇다는 것을 무지한 중생들에게 온몸으로 들려주고픈 최고의 법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어리석은 나그네의 물음은 멈추지 않는다. 남들 다 그러하듯 큰스님께서도 주무시듯 편안히 누워서 원적에 드시지 왜 좌탈을 하셨는지를 말이다.
대답해 줄 사람도 없고, 들려준다 해도 그 현답을 쉽게 알아들을 수는 없다. 한평생을 참선만 하셨던 스님이기에 입적에 드시면서도 참선의 자세를 흩뜨리지 않으셨을 거라는 것만을 짐작할 뿐이다. 얄팍한 신심으로는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사리에 대한 물음은 멈추지도 않고 끊이지도 않을 것이다.
「참선, 참선, 참선, 생사의 경계에서도 참선- 백양사 다비장 서옹 큰스님」 중

연화대를 설치하고 다비를 진행할 사람들이 오기에 ‘저 개가 어떤 개냐’고 물으니, 믿기지 않을 이야기를 한다. 상청을 지키고 있는 상주처럼 연화대를 지키고 있는 백구는 몇 년 전까지 미타사에서 키우다 다른 곳으로 보냈던 개라고 한다. 그 개가 명안 스님이 입적에 드신 지 3일 만에 어디에선가 홀연히 나타났다고 한다. 얼마나 먼 거리를 달려왔는지 온 몸이 흙투성이인 몰골이여서 일을 하던 분들이 대충 씻어준 상태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씻어준 이후 백구는 연화대 곁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것이라고 한다. 먹을 것을 줘도 먹지 않고, 물만 조금씩 마시며 연화대가 만들어지고 있던 이틀 동안 그렇게 지키고 있는 상태라고 하였다. 미물이라고 하는 개조차도 스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며 극락왕생을 빌고 싶었던 모양이다.
「스님께서는 개에게도 불성을 심으셨나 보다-미타사 다비장 명안 큰스님」 중 177쪽

스님은 분명 큰스님이셨지만 도도히 높기만 하거나,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런 도인만은 아니셨다. 신도들과 함께 앉아 기도하고, 신도들과 어울려 차담을 나누는 그런 분이셨다. 뜨거운 차를 마시다 아가들이 다가오면 후후 불어 식혀 아가들에게 먹여주고 다과를 건네주시던 그런 분이셨다.
신도들이 삼배를 올리려면 일배를 말씀하시고, 어렵지 않게 다가가 좋은 글 좀 써달라고 부탁드리면 기꺼이 써 주시던 분이다. 그러기에 스님의 글은 팔만사천 부처님 가르침만큼이나 어렵지 않게 볼 수도 있고 소유할 수도 있었을 거다.
어렵지 않고 높게만 보이지는 않던 살아생전의 석주 큰스님이 원적에 들어 석곽 연화대에 오르시니 정녕 저만치 높고 크게만 보이는 까닭은 석주 큰스님이야말로 승속을 어우르는 진정한 큰스님이셨기 때문일 거다.
「석곽연화대에 오르시더니 금정산인으로 귀토하시네-범어사 다비장 석주 큰스님」 중 109쪽

│임윤수 글·사진│256쪽│불광출판사│1만2천원│(02)420-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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