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께루 강께루 정지문뒤 성께루..."
"오랑께루 강께루 정지문뒤 성께루..."
  • 이기표 원장
  • 승인 2010.01.08 09: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기표의세상이야기]

절에 갈 때마다 동네 꼬마들을 꼬드겨보지만 호락하지가 않다. 교회에 가면 재미있는데 절은 그렇지를 못하다며 꽁무니를 빼곤 한다. 아직은 종교의 의미를 알 수없는 꼬마들이니 재미를 좇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어릴 때의 감정이 어딜 가겠는가. 가슴속에 고이 간직되었다가 인생의 좌표가 되는 것이다.

요즘 개신교 목사들은 바야흐로 ‘코미디 열공’ 중이다. 코미디언보다 더 웃기는 설교로 인기를 누리는 목사도 많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웃기는 방법을 배우기에 골몰한다고 한다. 설교를 재미없게 진행하면 신도가 모이지 않기 때문이란다. 웃을 일이 드문 각박한 세상을 살다보니 이왕이면 재미있는 쪽을 선택하는 모양이다.

아무리 뿌리를 깊이 내린 전통종교라고 해도 그러한 시대적 욕구를 거스르다가는 사회적 외면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부처로 추앙받던 대선사 만공(滿空) 스님께서도 구한말의 우울했던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딱따구리타령’ 같은 코믹 법문(?)을 창안하셨을 것이다.

앞산의 딱따구리는 생나무 구멍도 잘 뚫는데
멍텅구리 서방님은 뚫린 구멍도 못 뚫는 구나

만공 스님이 어떤 분인가. 일정시대에 한국불교를 말살시키려던 미나미 총독의 서슬 퍼런 강권을 주장자로 내리쳐 그 음모를 박살내버린 근대 한국불교의 자존심 아니신가. 그런 분이 속된 노래를 법문으로 삼았던 것이다.

▲ 만공 스님

일제치하의 1930년대, 만공 스님이 머무르던 수덕사의 한 사미승이 나무를 하러갔다가 사하촌의 짓궂은 나무꾼으로부터 ‘딱따구리타령’을 배웠다. 나이 어린 사미는 노랫말의 뜻도 모른 채 시도 때도 없이 구성지게 불러댔는데 어쩌다 만공 스님이 그 노래를 듣고는 사미에게 이렇게 일렀다.

“네가 부른 그 노래 참으로 듣기가 좋구나. 잊어버리지 말거라.”

“예. 큰스님.”

사미는 스님의 칭찬에 신이 나서 더욱 열심히 타령을 불러댔다.

그러던 어느 날, 허울뿐인 왕실의 상궁나인들이 수덕사를 찾아와 법명 높은 만공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다. 스님이 쾌히 승낙을 하고 법문을 설했지만 궁녀들의 어두운 얼굴은 펴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왕을 모시는 궁녀들로서 나라를 빼앗긴 지경에 마음마저 돌처럼 굳어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저들의 굳은 마음을 풀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스님께서 무슨 생각에선지 사미승을 불러 상궁나인들 앞에 세웠다.

“네가 부르던 그 노래를 보살님들께 큰 소리로 들려드려라.”

많은 여자들 앞이었지만 큰스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었던 터라 사미는 용기를 내어 멋들어지게 노래를 불러 제켰다. 그리고 사미가 노래를 마친 뒤 만공 스님께서 대중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중들이여, 지금 그대들이 사미에게 들은 법문 속에는 인간을 제도하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들어있는 것이요.

원래 참법문은 맑음과 더러움이 없으며, 아름답고 추함의 경지도 넘어서는 것이요. 범부중생도 부처와 똑같은 불성을 갖추고 있으니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이 뚫린 부처씨앗이고, 뚫린 이치를 찾는 것이 바로 불법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요.

큰 길은 원래 훤히 뚫린 길이기에 막힘과 걸림이 없어 가까운 것임을 모르면 딱따구리보다 못한 멍텅구리가 되는 것이요. 그리고 사미가 부른 이 노래는 이처럼 뚫린 이치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풍자한 훌륭한 법문인 것입니다.”

그 제서야 궁녀들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스님께 합장배례하며 존경의 뜻을 표했다고 한다.

만공 스님께서는 이렇듯 자신의 불법수행에는 더할 수 없이 엄했지만 중생제도와 제자들을 가르침에는 천진무구한 분이셨다. 제자들이 공부를 함에 지루한 모습을 보일 때면 어린애처럼 춤을 추며 직접 불렀다는 노래가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오랑께루 강께루
정지문뒤 성께루
누룽지를 중께루
먹응께루 종께루

이처럼 해학적인 가락을 손수 지어 불러줌으로써 졸음에 겨운 선방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를 망설이지 않으셨던 것이다. 스님에게는 만상(萬象)이 불법이고 만음(萬音)이 법문이셨다. 그리고 그것이 무애일진대 사찰이라고 해서 재미를 외면한 채 엄정만을 고집할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불교가 젊어지려면 젊은 세대를 포용해야 하고, 그들의 취향에 맞게 보다 재미있는 불교로의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다.

 

   

1956년 남해에서 태어난 그는 불교방송 부산사업소장, 진여원불교대학 학장을 거쳐 부산보현의집 원장을 맡고 있다. 부산노숙자쉼터 협의회 회장을 비롯해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급식 등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Fact 포럼 대표, 한국전력공사 이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제로에서 시작하라>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6 대형빌딩 402호
  • 대표전화 : 02-734-7336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 법인명 : 뉴스렙
  • 제호 : 뉴스렙
  • 등록번호 : 서울 아 00432
  • 등록일 : 2007-09-17
  • 발행일 : 2007-09-17
  • 발행인 : 이석만
  • 편집인 : 이석만
  • 뉴스렙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cetana@gmail.com
  • 뉴스렙「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조현성 02-734-7336 cetana@gmail.com
인터넷신문위원회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