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종면 YTN 지부장이 행복한 2010년을 희망하며
노종면 YTN 지부장이 행복한 2010년을 희망하며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0.01.08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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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2010년 새해 2009년을 되돌아봅니다. 미디어오늘이 ‘2009 한국 사회 키워드’라는 기사를 지난 해 마지막 날 실은 적이 있습니다.

한 번 소리 내어 읽어볼까요.

용산참사
미디어법 날치기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4대강·세종시 수정
신종 인플루엔자
강호순·조두순 사건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사형집행을 기다리거나 징역형 집행 중에 들어간 사건이 있고, 이제 큰 위험은 넘긴 일도 있고, 본격적으로 예산이 확보되어 굉음 소리가 울리는 일도 있고, 역사 속으로, 신화 속으로 걸어들어간 일도 있고, 이제 장례식을 남기고 있는 일도 있고, 여전히 제도적 변환을 앞두고 있는 일도 있고, 그럼에도 턱없이 미진하기에 혁명적 개혁이 요구되는 분야도 있고, … 여러 생각이 스칩니다.

순간 노종면 YTN 지부장 생각이 납니다.
지난달 23일 전격 사퇴한 노종면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장입니다. 때로 이렇게 자문할 때가 있습니다. 최고권력이 위험하냐, 중간권력이 위험하냐. 물론 말도 안 되는 질문입니다만, 저는 늘 중간권력의 취약성과 위험성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아닌가 하고 고민해볼 때가 있습니다. 최고권력자의 부패와 전단은 실상 투명하게 보여지고 투명하게 평가됩니다. 일거수일투족이 완벽하게 노출되고, 완벽하게 평가받습니다. 그리고 임기제입니다. 문제는 중간권력입니다. 임기도 없고, 권한도 불분명합니다. 제도와 사적 권력이 교묘하게, 때로는 기괴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디까지가 중간권력인지는 규정하기도 곤란하고 논리 자체도 대단히 미약합니다. 최소한 언론이 이 범주에 속하고 있음을 절감하곤 합니다.

정 대표, YTN 해직기자 간담회
(서울=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지난해 11월 18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YTN 노종면 전 위원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2009.11.18scoop@yna.co.kr
미디어 환경을 둘러싼 투쟁의 최정점, 혹은 백척간두에 노종면 지부장이 있었습니다. 외로웠을 겁니다. 한없이 힘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시적 동정은 있었을망정 연대의 힘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공감은 했을망정 공통의 행동에 나서지는 못했습니다. 언론 환경의 변화가 몰고 온 광풍과 쓰나미에 대해 지금쯤은 뼈저리게 느낄 줄 압니다. 순망치한의 의미를 느낄 줄 압니다. 제1선이 파괴되고 나니, 제2선이 얼마나 힘들어지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언론이라는 제4부의 권력이 사적 권력화될 때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지도 충분히 검증해보았습니다. 언론의 특권, 기자의 특권이 언론사의 특권과 언론 사주의 특권, 기업의 특권으로 변환되고 결합됐을 때 그 위험성이 어떠한지도 잘 알게 됐습니다.

지난 연말 어느 송년회 자리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 가장 영향력 있는 나라의 외교관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한국의 언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한마디로 규정하더군요. ‘한국의 기자는 공무원이다.’ 풀자면 이런 말입니다. 기자가 된 순간 공직의 그 자리에 가서, 그 특권을, 그 권력을 향유할 수 있는 것처럼 곧바로 올라선다는 말이었습니다. 고위직 공무원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그런 특별한 은유였습니다.

이를테면 그 나라에서 어느 주 중소도시 기자를 거쳐서, 주 정부 소재 기자로 갔다, 다시 대도시로 갔다, 그 다음에 수도로 가서 기자를 하게 되고, 그때 비로소 의회나 관청 출입을 할 수 있게 되고, 나름대로 자유스러운 언론인으로서의 경험과 특권을 가질 수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그렇지않다라는 겁니다. 입사 1, 2년차도 장관실이나 국회의원회관에 맘껏 출입하는 현실이 맨 처음 이해하기 쉽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기자는 공무원이고, 그야말로 최고위층 공무원의 신분을 곧바로 확보하는 거라고 했습니다. 결코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는 걸 느끼시겠지요.

언론의 특권, 모든 것이 시험으로 정해지고 수평적 교류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 기수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 더구나 실업이 주는 극단적 부담, 그리고 한국 사회만의 언론환경과 특별한 권력의식과 눈에 보이지 않게 주어지는 이런 저런 장점들, …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지사적 언론은 사라지고, 기자는 곧 언론사고, 언론사는 곧 사주인 언론기업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언론 기업의 직원 신분화 되고 만 것입니다. 물론 이런 현실에서 저 또한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 잘 압니다. 하여튼 어느새 현실이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언론의 방송시장진출이라는 명운 앞에서, 언론의 기업화라는 명운 앞에서, 원소스 멀티유즈라는 시대적 흐름 앞에서, 종이 신문의 한계라는 현실 앞에서, 언론 시장의 개방화라는 세계적 흐름 앞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 언론이 몇이나 되겠습니까마는 지난 2009년 미디어 환경 변화를 둘러싼 대한민국 사회는 참으로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원칙이 상실되고, 공의가 번잡스러워지는 그런 현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법원에는 최소한 회피제도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나하고 이해관계가 있는 사건은 손을 떼는 겁니다. 의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행정부도 그렇지요. 이것은 결코 흔들릴 수 없는 하나의 중요한 원칙입니다. 무릇 권력이라면 이해관계로부터 자유스러워야만 하지요. 도리어 피해 다닐 필요가 있지요. 미디어법 논란 속에서 우리 언론은 어떠했나요.

제가 최근에 읽은 재미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집트 정부의 어떤 관리는 아스완 하이 댐의 건설이 적절한 것인지 의문을 가졌던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결국 당시 대통령 자말 아브단 나세르가 내린 결정을 좇아간 것에 빗대어 우마르 하이얌(페르시아의 수학자, 천문학자이자 시인)의 시 <루바이야트>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한낮에 왕이 입을 열어 한밤중이라고 말하면, 현명한 사람은 달이 보인다고 말한다.’(생명의 강, 뿌리와 이파리)”

그래도 노종면 위원장은 달랐습니다. 달이 보인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낮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왜 대낮인데 밤이냐고 동료들과 함께 토론을 벌였습니다. 그랬던 겁니다. 그랬던 노 위원장이 사퇴를 했습니다. 사퇴를 패배로 해석하는 것은 철저히 경계해 달라고 했습니다.

“우리 앞에 아무것도 없다면 그때는 끝까지 다 온 것이다. 우리 뒤에 아무것도 없다면 그때는 앞에 시작이 높여있는 것이다(칼 샌드버그).”

그래서 노 위원장에겐 새로운 시작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올 한 해 노종면 위원장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노종면 위원장이 행복한 2010년이 실현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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