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언론통폐합’, 조선 작게 중앙은 크게
80년 ‘언론통폐합’, 조선 작게 중앙은 크게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0.01.11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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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1980년 전두환 국군보안사령부 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동아방송 등을 비롯한 64개 언론사의 강제통폐합을 단행했다고 7일 밝혔습니다.

 

▲ 1980년 11월 언론통폐합최종안(언론창달계획안)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이 뉴스를 다루는 방식이 언론사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당시 동아방송과 동양방송을 각각 빼앗긴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의 보도는 대단합니다. 중앙일보는 1면 탑으로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4·5·6면에서도 관련기사를 담았습니다. 5면 기사는 <군사작전 같은 'K-공작계획' 전두환 '언론조종반'에 서명>, 6면 기사는 <"신군부 방송 장악 위해 강제 폐방"/ TBC 왜 문닫게 됐나>에서 당시 황인용 TBC 아나운서의 마지막 방송을 지면에 옮기기도 했습니다. 사설 제목은 ‘국가는 언론통폐합의 피해구제조치 취하라’입니다.

다음은 조선일보입니다. 사설은 아예 없습니다. A6면에 삼단으로, 그것도 아래쪽 모퉁이에 실었습니다. 완전히 축소된 기사의 전형입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그 의미는 중앙일보의 사설제목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앙일보의 사설은 정부가 정치권, 사회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서 실효성 있는 구제조치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피해구제조치를 취하라는 것입니다. 중앙일보가 바라는 구제조치가 무엇일까요. 돈일까요. 사설에 쓰지는 않았지만 원상회복 아닐까요. 원상회복은 방송이지요. 결국 종편이지요.

이에 반해 조선일보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중앙, 동아와 조선은 종편 채널선정권을 둘러싼 경쟁관계입니다. 진실화해위의 이번 발표에 따라 중앙과 동아는 과거사정리라는 차원에서, 역사적 원상회복이라는 차원에서 대단한 논리적 근거를 확보할 수 있게 되겠지요. 그 점에서 조선은 경쟁이라는 형편에서 씁쓸한 생각을 가질 수 있겠네요. 그래서 사설에서도 빠지고 기사도 작게 처리할 수밖에 없었나요.

 

▲ 조선일보, 중앙일보 사옥 ⓒ오마이뉴스
최근들어 제가 우리 언론에 대해 줄곧 강조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있는 문제에 대해서 좀 더 겸허하고 회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미디어법에 대한 국회의 논의 과정에서 보여준 언론의 태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한 언론의 태도, 과연 자신들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보도였나요. 언론의 독자성과 공정성이라는 관점에서 진정 자신 있는 태도였나요.

YTN이나 KBS, MBC 문제를 다룰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신문과 방송 간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차원을 떠나 혹시 방송시장진출이라는 이해관계의 촉수가 작동되지는 않았었나요. 과연 그런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공정한 보도의 양식이었나요.

KBS 시청료 인상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은 종편에 대한 광고시장 몰아주기라는 비판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최시중 위원장도 이 점을 간접적으로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에 반대하는 박원순 변호사의 글이 있었지요. 시청료 거부 운동을 펼치겠다고 했었지요. 이런 뉴스는 아예 조중동 지면에 반영되지 않았지요. 최시중 위원장의 시청료 인상방침 보도와 박원순 변호사의 시청료 납부 거부운동에 대한 기사를 취사선택하고 기사의 가치를 평가하는데 있어 과연 조선과 중앙은 자신들의 방송시장진출이라는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고 공정했나요.

그리고 종편시장진출이라는 대전제 앞에서 혹여라도 언론의 비판적 시각이, 언론의 날카로운 펜 끝이 잠시 자제되거나 무디어진 적은 없었나요. 그런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고 공정하게 언론의 사명이 지켜지고 있는 거지요.

언론이 시민들로부터 신뢰받기 위해서는 언론사의 이해관계, 언론사주의 이해관계, 언론기업의 이해관계, 언론자본의 이해관계로부터의 독립, 특히 내부로부터의 독립, 조직으로부터의 독립, 관료관계로부터의 독립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2010년 지금 현재, 종편시장진출이라는 눈앞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것 같습니다. 자칫 제4의 권력인 언론이 사적권력으로 왜곡되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뻔한 소리이지만, 언론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언론의 위기가 공론의 위기이고, 공론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로 귀착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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