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이 직업인 것은 한심스런 인생살이”
“중이 직업인 것은 한심스런 인생살이”
  • 조현성
  • 승인 2013.04.2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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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前 종정 서암 스님 회고록서, 종단개혁·한국불교 평폐 등 지적

“정화라는 목적에 매달려 불러들였던 폭력은 아예 오늘날까지도 불교계에 자리 잡고 앉아 불교 발전을 저해하는 근본요인이 됐다. 승려의 질은 떨어졌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의 도가니가 돼 버렸다.”

정화·개혁 등 근대 한국불교 사건들을 목도하고 몸을 던져 부처님 법다이 해결코자 노력했던 서암 스님(1914~2003, 前 조계종 종정)은 최근 출간된 <그대, 보지 못했는가>에서 이같이 말했다.

스님은 1994년 종단개혁 때 ‘반개혁 세력’으로 몰려 승려대회에서 ‘종정 불신임’이 결의됐다. 이와 무관하게 스님은 종정직을 스스로 사퇴했고 종단을 떠났다. 스님은 열반하는 그 날까지도 종단 밖에서 자유로운 걸사비구로 한국불교를 걱정했던 도인이었다.

스님은 서문에서 “후생에 도움 될 만한 것을 갖지 못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도움이 되니 지나온 발걸음과 속에 담은 ‘말’을 토해내라’는 주변의 강권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7000 대처 vs 40 비구, 깡패 중으로 둔갑시켜”

스님은 “왜색불교 척결을 내세운 이승만 대통령의 유시는 몇몇 비구승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유시 직후 20~30여 스님들이 선학원에 모여 정화의 불씨를 지폈다”고 말했다.

당시 스님들 가운데 대처승은 모두 절에서 물러나야한다는 과격파와 해인사·통도사·범어사 등 3개사찰만 받아내 여법하게 운영하자는 온건파(중도파)가 있었다. 서암 스님은 청담 스님이 인정한(?) 중도파였다.

스님은 “당시 7000명이나 되는 대처승 가운데 정치 경제 문화 언론 등에서 활약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를 수십에 지나지 않는 비구가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설명했다.

스님은 “정화불사의 막이 오르며 명분·정권을 등에 업은 비구 측은 물리적인 힘을 앞세워 사찰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숫자가 부족해 깡패들을 중으로 둔갑시켜 ‘투쟁’에 동원했다”고 말했다.

스님은 “정화불사는 명분·목적이 훌륭했지만 추진과정에서 정치세력을 등에 업었고, 폭력배들을 앞세운 결정적 잘못을 저질렀다. 그 때문에 오늘날 불교가 왜곡되고 새로운 정화가 끊임없이 요구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왜색불교로부터 간신히 기사회생한 한국불교를 새로운 난장판으로 이끌고 간 것은 기이하게도 정화라는 이름의 불사였다. 정화불사가 명분에 맞는 결과보다 후유증을 더 많이 남긴 까닭은 폭력을 불러들인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조계종은 승려의 질이 떨어지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의 도가니가 됐고, 정화 명분이 사라진 뒤에는 종권 다툼으로 일관돼 왔다는 설명이다.

“사찰 차지하려는 것 자체가 물욕”

스님은 “부질없는 싸움으로 불교계 스스로 퇴보의 길을 걸었다. 그러는 동안 정권에 덜미 잡혀 만신창이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중도파 주장대로 몇 개 사찰만 인수해 수행처로 삼았다면 한국불교 판도는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불교 위상이 지금처럼 실추되지는 않았을 것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명분이야 어쨌든 사찰을 차지하려는 마음 자체가 물욕이기 때문에 정화불사는 시작부터 정법에서 팔만사천리 어긋나 있었다는 설명이다.

스님은 “한국불교의 복잡하기만한 현실은 자격 없는 중들이 강제로 차지한 절로 인해 종단이 지나치게 비대해지고 수도자가 배불러 일어난 일”이라며 “얼굴에 기름기 흐르고 배 나온 수행자는 사람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생각 있는 이들을 슬프게 한다”고 탄식했다.


“10·27법난 억울한 것 아니라 부끄러운 일”

스님은 “10·27법난은 억울하다기 보다 부끄러운 일”이라고 규정했다. “10·27법난 당시 국민 가운데는 ‘중들 하는 짓이 싸움질뿐이더니 속이 후련하다’고 느낀 이가 적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스님은 전두환 정권이 불교 비상사태에 대한 타당성을 마련코자 종단을 원로 중심으로 운영키로 하고 원로스님들에게 일일이 도장을 받으려 했을 때, 홀로 거부했던 사연도 털어놓았다.

“이런 일은 없을 수 없는 일이오. 정 그렇다면 정부에서 불교를 다 맡아서 운영하시오. 마을에서는 늙은이들은 집안일을 젊은 자손들에게 맡기는 법이오. 젊은이들에게 다소 허물이 있었다 치더라도 그것을 빌미로 송장 감들이 일을 맡을 수는 없지 않소.”

스님은 자신이 도장 찍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일은 성사되지 못했다고 했다. 그로인해 스님들이 종헌을 개정하고 성철 스님을 종정을 추대해 종단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고도 했다.

스님은 “불교가 정부로부터 제대로된 대접을 못 받았고 국민으로부터도 관제불교니 하는 좋지 못한 평을 들었다. 이는 제대로 응집된 모습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응집된 힘은 부처님 가르침에 입각해 승단이 여법하게 운영될 때 우러나는 것”이라며 “한국불교는 내분으로 지리멸렬해졌고, 저항 한 번 못하고 정치의 희생양이 된 것이 10·27법난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라고 했다.

스님은 “정치권력의 무자비함을 탓하기 전에 군대의 군홧발을 끌어들였던 스스로의 허물을 먼저 반성해야 할 것”이라며 “신군부의 무식을 나무라기 전에 그들로 하여금 ‘깡패소탕’ 차원에서 ‘불교비리’에 칼을 들이대도록 유인했던 종단에 먼저 질책의 화살을 돌려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교 개혁원리 간단,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스님은 종정 추대 3년 전인 1991년 6월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에 선출됐다. 원로의장을 지내는 동안 스님은 전국승려대표자회의에서 불교개혁위원회 의장에 추대됐다.

개혁위원회 의장으로서 스님은 ▷교육과 ▷재정 투명성 두 가지를 내세웠다. 

교육이 바로 서면 ‘심심한 놈, 사업 실패해 도망치고 싶은 놈, 사랑에 실패해 자살하고 싶은 놈, 이도저도 아닌 낙오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중이 될 수 있다는 것, 중이 된 후 일정 세월이 지나면 주지도 해 거들먹거리며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모든 병폐는 돈에서 나오니 재정을 투명하게 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개혁·혁명도 공염불이며, 재정투명화가 실천되지 않는 개혁은 불전함을 차지하기 위한 권력투쟁은 될 지언정 진정한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는 주장이다. 스님은 “불교 개혁원리는 간단하다. ‘부처님 법에 맞는 도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에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스님의 말처럼 현실은 녹녹하지 않았다. 당장 불교 개혁에 무관심하고 장기집권을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는 서의현 체제가 문제였다.

“(걸어다니는 스님에게) 서 원장이 차 사줬다고?”

스님은 성철 前 종정스님의 49재 직후인 1993년 12월 24일 제8대 종정에 추대돼 재임 140일만인 1994년 4월 26일 사임했다.

사임 한 달 전인 3월 23일 원로책임자 회의에서 “서의현 원장이 3월 30일 종회에서 다시 총무원장으로 선출되더라도 이를 인준치 않는다”고 결의했지만 ‘반개혁세력’ 딱지가 붙었기 때문이었다.

스님에게 ‘반개혁세력’ 딱지가 붙은 것은 폭력에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스님에게는 3임을 하려는 서 원장 측이나 이에 폭력으로 대항한 개혁회의 측이나 매한가지였다.

스님은 “나는 두 가지 폭력에 모두 반대했다. 그 어느 것도 불교 발전과 종단 화합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다. 비불교적인 방법의 개혁은 또 다른 악의 근원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어느 쪽이 승리해 기존 종권을 지키거나 새로운 종권을 창출한다고 해도 역사의 저편에서 볼 때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 한국불교가 입는 상처는 깊고도 크리라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었다.

스님은 “서 원장이 퇴진해야 한다는 데는 당연히 동의했지만 불교적인 방법·절차에 따라서 할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인물로 널리 각인된 사람(서 원장)을 하루아침에 체탈도첩시키면 우리 불교는 온전하겠는가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스님은 “닭을 쫓아도 나갈 구멍을 보고 쫓으라는 속담처럼 순리에 따라 물갈이를 하려고 했다. 그게 종정에서 ‘쫓겨난’ 이유라면 이유이고, 개혁의 걸림돌이라면 걸림돌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스님에게 사람들은 별소리를 다했다. 대표적인 예가 “서 원장이 자동차를 사줬다”는 소문이었다. 차는커녕 다른 스님들이 툭하면 택시를 불러 타는 구간도 스님은 시외버스를 탔다. 서울에 올라와서도 스님은 지하철·버스로 다녔다. 

이를 스님은 “내가 굳이 모범을 보이겠다고 작심하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한평생 걸사와 같은 비구의 삶에 젖은 생활 습관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한국불교 문중은 그저 세력집단…폐단의 근원은 당연”

스님은 “오늘날 한국불교는 그 종권이 문중의 힘에서 나오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현대 한국불교 문중은 독특한 종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그저 세력집단으로 존재할 뿐이다. 모든 폐단의 근원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옛날에는 제자를 함부로 두지 않고 엄격하게 뒀다. 자기 제자 얼굴도 모르는 스승이 있을 거라는 요즘과는 달랐다. 서암 스님은 상좌 두기를 꺼려했다. 스님이 봉암사 조실을 지내며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상좌인 까닭에 스님이 말년에 이르렀어도 다섯이 채 되지 못했다.

스님은 “누가 내게 문중을 물으면 ‘석가문중’이라 답했다. 무슨 종이냐 물으면 ‘석가종’이라고 말했다”며 “나는 처음부터 문중이라는 잘못된 세력집단을 배격해왔고 지금도 그것이 한국불교를 망하게 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불법을 따라야지 스님을 따르는 것은 수행자의 도리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부처님이 “단의법(但依法)이언정 불의인(不依人)이라”고 했던 것처럼.

스님은 “자기 문중 일이라면 모두 옳고, 다른 문중 일이라면 옳은 일도 아니라고 우기는 풍조는 패싸움이나 마찬가지로 냄새나는 일”이라며 “한국불교가 제대로 중생제도를 하려면 집단이기주의 표본으로 변한 문중 이기주의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일성·김정일 세습왕조를 비웃기 전에 상좌에게 절을 세습하는 절집 풍속부터 고치라”고 질타했다.

“악순환 고리 끊는 것이 불가의 지혜”

스님은 “한국불교의 시급한 문제는 누가 낸 상처인지 따지며 서로 칼자루를 쥐고 싸우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치료하고 갈무리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님은 “세속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특히나 불가의 일에 결과주의적 사고를 갖고 단지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 칼자루를 무리하게 휘두르면 자칫 또 다른 개혁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줄 아는 것이 불가의 지혜라는 설명이다.

근현대 조계종 종정 가운데 종단을 떠난 스님은 서암 스님 말고도 있었다.
송만암 스님은 비구·대처 싸움 중에 비구 측이 갑자기 태고보우 선사에서 보조지눌 선사로 바꾸자 환부역조(換父易祖), 즉 아비를 바꾸고 할아비를 팔아먹는 짓이라 꾸짖으며 종단을 떠났다. 청담 스님도 종정 직을 떠나고 종단을 떠나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었다. 그 후 총무원장으로 종단에 복귀했지만.

서암 스님은 “중이 직업이 될 때 그것보다 한심스러운 인생살이도 다시 보기 힘들 것”이라며 “종단을 떠나고 안 떠나는 것이 부처님 도리를 깨닫고 이를 중생에게 돌려주는 일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냐”고 말했다.

“환부가 점점 커져 가면 선택은 자멸뿐이고, 몰락은 순식간이다.”
열반송을 묻는 후학에게 마지못해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하라는 스님이 한국 불교계에 남긴 충언이다.

그대, 보지 못했는가┃서암 스님 구술┃이청 엮음┃정토출판┃1만6000원

[불교중심 불교닷컴 기사제보 cetan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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