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보이지 않는다 없다고 말하려 하는가
보이는 것만 믿는 그대
펄럭이는 깃발이 바람이 여기 있다 말 하리라.
#작가의 변
마음은 보이지 않고 행동만 보일 뿐이고, 말은 보이지 않고 음성만 들릴 뿐이다. 우리가 절을 올리는 불상은 사실 나무를 조각해서 조각품일 뿐이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감기 바이러스, 코비드19 바이러스가 우리의 생활 모든 영역을 지배했던 지난 2년 동안이었다.
보통 역사적 사실을 말할 때 유물이나 유적이 있어야만 그 역사가 인정된다. 재판에서도 아무리 증언과 자백을 한다 해도 증거가 없다면 공소 사실 유지가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보려고 한다. 그것은 보이는 눈에 의한 사실조차도 다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이 다가 아닌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 눈으로 본 것만 믿는단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보고, 내가 듣고, 내가 느끼고, 내가 먹어 본 것들, 즉 내가 눈으로 본 것들을 믿고, 내가 느낀 감정들, 그리고 내가 맛을 본 음식이 정말 맛있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아름답다고 말하는 그 말의 의미가 절대적이 아니듯, 맛있다는 기준이 저마다 제각각이듯 그 맛있다는 기준은 절대적이 아니다. 그럼에도 때론 절대 미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던가 미래를 내다보는 심미안을 가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의심은 의심을 낳는다. 즉 근본적인 믿음이 없다면 그 후에 어떤 말이 따라 오더라도 믿을 수 없는 의심의 꼬리를 지울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만약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불경을 믿지 못한다면 불교도로서 믿음을 유지하기 힘들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힘이 더 크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음에도 우린 믿지 않으려는 많은 사람을 본다. 코비드19 예방 접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예방 접종이 오히려 많은 사람을 죽이거나 심각히 위독한 상태로 몰고 간다고 말한다.
성경에 나오는 내용과 불경에 나오는 내용은 이스라엘 땅에서 일어난 일들을 말하거나 인도에서 일어난 수천 년 전의 일들이다. 수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많은 종교인과 성직자들이 그 말씀에 살을 붙이고 해석과 주석을 달아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격에서 말하는 은유와 비유는 전 세계 인류에 공통적인 사항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물론 불경의 내용 또한 인도에서 수 천 년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한 기록이 아닌 전 세계 인류에게 말하는 말씀이자 진리고 전파되고 있다.
내가 어릴 적에 매형이 개고기를 먹고 개고기 한 덩어리를 종이에 둘둘 싸서 집으로 가져온 일이 있다. 그 일이 있고 누님은 바로 몸이 아파왔고 내가 누님을 보러 갔을 때 누님은 방바닥에 구부정하게 누워서 컹컹 짖고 있었다. 어린 조카들이 여기저기 방바닥에 오줌을 싸고 똥을 싸놓는 상황에서 누님이 아파서 개가 짖는 것처럼 짖고 나를 보면 애원을 하듯 말하려 했지만 그 말은 개 짖는 소리로만 들렸다. 그리고 한의사도 의사도 다들 원인을 알 수 없어 무당을 불러 굿을 하게 되었는데 그제야 마루 밑에 숨겨 두었던 개고기와 밖에서 개고기를 먹고 들어 온 매형의 행동이 밝혀졌다. 우리 외갓집에서 대대로 산신을 믿어 장독대에 정안수를 떠 놓고 빌고 부뚜막에도 정 안수 떠 놓고 빌었는데 산신을 믿던 집에서 개고기를 먹으면 그런 현상이 온다고 말하기도 했다. 굿을 하고 떠나지 못하던 매형의 첫 번째 부인의 원혼까지 달래주고 나서야 누님은 거짓말처럼 나았다. 내가 당시에 누님의 상태를 보지 않았다면 믿기 힘든 상황이었다.
장모님이 세상을 떠나고 한국에 장례를 치르러 가지도 못한 나는 49일이 되는 날까지 장모님을 위해 날마다 기도를 했다. 기도 중에 사자도 보이고 뱀도 보이고 결국 마지막에 웃음 띤 장모님의 모습을 꿈에서 뵐 수 있었다. 그 일을 아내에게 말했더니 나의 기도발이 세다고 아내는 늘 자기가 기도하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거라면서 기도를 종용했다. 하지만 내 마음에서 동하여 하는 기도와 누군가에게 등 떼밀려 하는 기도는 분명 차이가 있다. 기도라는 것이 무엇인가? 대부분 기도는 무엇을 달라고 하는 기도가 아닌가? 내 아들 좋은 대학 합격하게 해 주시길. 내가 좋은 직장을 잡게 해 주시길, 우리가 집을 살 수 있게 해 주시길, 대부분이 원하는 소원을 말하는 기도이다.
우리는 “성불하십시오”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속세의 욕망과 기대가 먼저인 경우가 많다. 영혼의 영생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고 지금 당장 일이 아니기에 깨우침이 일상에서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니기에 우선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요구한다. 저마다의 요구를 기도라는 이름을 통해서 말이다.
만약 하나님이 있고 부처님이 있어 정말 그 수억 명의 기도를 다 들어야 한다면 그 귀가 정말 많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병원에 응급실에 가서 접수하고 3시간이고 4시간이고 기다리다 보면 “캐나다 의료 서비스 엉망이야”라는 말이 툭툭 튀어나온다. 그러다가 한 달 넘게 입원하고도 돈 한 푼 내지 않고 퇴원을 하면서 “역시 캐나다 의료 서비스는 선진국이 맞아”라고 말한다. 암 수술을 하고 집에 방문 치료하는 간호사까지 몇 달을 방문하는 그 상황이 되면 “정말 캐나다 의료 시스템이 최고야” 하고 말하게 된다.
하나님은, 부처님은 우리 인간과는 다른 완전체이고 눈으로 볼 수 없다고 해도 우린 눈으로 보길 원한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변하고 변하는 것은 진리가 아님을 알면서도 말이다. 바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똑같은 실수를 늘 반복하면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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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은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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