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웠던 천년 일으켜, 미래 천년 기립(起立) 첫걸음”
“누웠던 천년 일으켜, 미래 천년 기립(起立) 첫걸음”
  • 서현욱 기자
  • 승인 2022.11.01 0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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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조계종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고불식’ 봉행
총무원장 진우 스님 “이태원 참변 비통…미래청년 일으켜야”




조계종은 국운융창과 불교중흥, 그리고 불자들의 자긍심을 세울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불사’의 첫 단추를 채웠다.

31일, 10월의 마지막 날 오후 경주 남산 경주 내남면 노곡리. 새갓골 주차장에 차를 세운 사람들은 산행을 시작했다. 열암곡으로 가는 산길은 좁았다. 처음 몇 분은 그리 가파르지 않은 길이었지만, 이도 잠시 가파른 비탈길이 계속 이어졌다. 옛날엔 바우골(巖谷)이라 한 모양이다. 요즘은 열암곡으로 부른다. 이름처럼 좁은 비탈길과 주변은 바위가 굴러 멈춰선 듯 자리 잡고 있었다. 길 곳곳에 나무뿌리가 드러나 디딤돌 역할을 해주었다. 바위가 계단 역할을 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까지 가는 길에는 세 곳의 사지가 존재한다. 불굴조사 결과 1, 2사지는 3사지와 관련된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지에는 석조 유구를 모아놓았다. 산산조각난 불상도 있었다. 경주 남산에는 머리가 없는 불상이 다수 존재한다.

새갓골 주차장에서 800미터. 멀지 않은 거리지만 좁고 비탈졌고, 곳곳은 미끄러워 간혹 넘어지는 이도 있었다. 가는 길 주변에 기와 조각도 보였다. 땀이 흘렀다. 흐린 날이라던 예보와 달리 쾌청했고, 가파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디디면서 미끄러지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땀은 절로 흘렀다. 숨이 차오를 즈음, 새갓골 주차장에서 30여 분 채 못된 거리에 열암곡 마애부처님이 있었다. 하지만 마애부처님 보다 ‘열암곡 석조좌상’이 먼저 찾는 이를 반겼다.







열암곡 마애부처님은 복원한 ‘열암곡 석불좌상’이 내려다보는 아래쪽에 있었다. 경사면 벼랑에서 떨어진 큰 괴석들이 흩어져 있고, 그 중심에 열암곡 마애부처님이 경주와 하늘을 보지 못하고 땅을 보고 엎어져 있었다. 괴석와 나무와 흙 속에 있던 마애부처님은 ‘열암곡 석불좌상’ 발굴조사 과정에서 세상에 그 존재를 알렸다.

‘열암곡 석불좌상’은 열암곡 마애부처님과 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열암곡 석불좌상’은 경주 남산 백운계 새갓골 제3사지에 불두와 대좌의 중대석이 결실된 상태로 있던 중, 2005년 불상 머리가 확인돼, 보수·정비계획에 따라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불상이 안치된 건물지와 도괴된 마애불상을 발견했다. 사역 안에 건물지가 2동으로 금당 추정 주 건물은 3차에 걸쳐 증축한 것을 확인했다. 창건 당시 금당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후대의 중축으로 일부만 잔존한다. 2차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창건기보다 면적이 커졌다. 출토유물은 통일신라시대의 막새와 기와들이다. 3차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로 규모가 줄어든 모습이다. 근처에 1, 2사지도 3사지와 관련된 곳으로 추정된다. 열암곡 마애부처님과 열암곡 석불좌상의 관계성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인근에 금당지 등 건물지가 발견돼 이곳에 사찰이 존재했고, 마애부처님 역시 이 사찰지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게 80톤으로 추정하는 열암곡 마애부처님은 조선 중기 지진으로 쓰러진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의뢰해 시행한 연구결과 마애부처님은 1430년 진도 7에 가까운 대형지진에 넘어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넘어진지 600년이 넘은 것이다.







원래 위치로 추정되는 경사면을 따라 쓰러지면서 얼굴과 지면이 5cm 차이로 닿지 않아 훼손을 면해 ‘5cm의 기적’으로 불린다. 비탈의 아래쪽에 얼굴이, 원래 봉안된 위치 쪽에 좌대가 있는 상태이며, 주변은 임시 옹벽을 쌓았고, 마애부처님은 철근 가건물로 덮혀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이 부처님 주변에 진동계 등을 설치해 상태를 관찰하고 있다.

이 열암곡 마애부처님 주변에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등 200여 명의 사부대중이 모였다. ‘천년을 세우다-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기 고불식’을 위해서다.

땀을 채 닦을 새도 없이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총무부장 호산 스님, 기획실장 성화 스님, 사회부장 범종 스님이 사부대중을 대표해 마애부처님께 108배를 올렸다. 호산 스님의 죽비 소리에 맞춰 종단 대표인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네 스님은 절하고 또 절했다. 마애부처님 앞 터는 비좁아 더 많은 이들이 108에 동참할 수 없었다.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 동화사 주지 능종 스님, 은해사 주지 덕조 스님, 불국사 주지 직무대행 종천 스님 등 경북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과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 등이 108배를 하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 뒤에서 합장해 염불하며 ‘천년을 세우기’ 위한 원력을 모았다.

108배를 마치고 고불식 의례에 이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향을 올렸고, 종회의장 정문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이 차를 올렸다. 그리고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등 대구경북 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 등이 꽃을 올렸다. 







108배를 마친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고 곧 절한 의미를 설명했다.

진우 스님은 “오늘 열암곡 마애 부처님을 바로 모시기 108배를 하면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함께 축원했다.”며 “우리 불교의 목적은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인데 뜻밖의 참변을 당하니 매우 비통하다. 다시는 이렇게 예견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진력해야겠다.”고 했다.

이어 “부처님께서 뭇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평생을 길에서 전법 하셨듯이 우리 불제자들이 더욱 발심하여 정진하자.”면서 “우리 사회 미래인 청년들을 보호하고 밝은 내일을 열기 위해 진력하자. 종단은 희생자와 가족들의 슬픔을 함께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종정 성파 대종사에게 금일봉을 받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왼쪽),



진우 스님은 이날 오전 종정 성파 대종사를 예방했다. 종정 성파 대종사는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는 데 쓰라고 금일봉을 진우 스님에게 전달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에 종단의 신성인 종정 스님부터 종무행정의 수반인 총무원장, 그리고 재가불자들까지 원력을 더한 것이다.

이어 진우 스님은 마애부처님 전에 종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서 원래 모습으로 바로 모실 것을 고했다. 진우 스님은 제37대 총무원장 임기 개시 직후 중앙종무기관 종무원 특강에서 “예경의 대상인 부처님을 천년 넘도록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우리의 직무유기”라며 “어떤 식으로든 총력을 기울여 하루빨리 부처님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했다. 이어 10월 5일 취임법회에서 종책사업으로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세우기’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공표했고, 10월 12일 종무회의에서 불사 슬로건을 ‘천년을 세우다’로 제안하고, 불교계만 아닌 대국민 원력 불사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같은 달 18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예방 때 “천년 간 방치된 부처님을 바로 세움으로써 국민에게 다시 도약할 기운을 불어넣겠다.”고 했고, 19일에는 최응천 문화재청장 예방 때 “천년 간 누워 있던 부처님을 세우는 일은 종교적인 차원을 떠나 민족의 얼을 되살리는 것”이라며 “문화재는 한 나라와 민족의 얼굴이다. 이를 보존 계승하는 건 후손으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날 10월 31일 오후 2시 열암곡 마애부처님 앞에서 종책사업으로 ‘바로 모실 것’을 약속했다.



차를 올리는 종회의장 정문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취임 후 반복해 열암곡 마애부처님의 ‘기립(起立)’을 강조했다. 천년을 세우는 일이 국운융창과 불교중흥의 시작일 것이라는 뜻에서다. 또 마애부처님을 바로 모시는 것이 불자들의 자긍심을 세우는 불사라고 말해 왔다.

진우 스님은 고불식에서 “천년을 쓰러져 계신 마애부처님을 온전히 모시기 위한 사부대중의 간곡한 원력이 모였다. 지금 이 자리, 간절한 서원으로 마애 부처님을 바로 모셔 천년을 세우기 위한 첫걸음을 시작한다.”고 고했다.

이어 “이 불사는 누워 있는 천년을 일으켜 세워 미래 천년을 만들기 위한 거룩하고 당당한 발걸음“이라며 ”이 원력은 부처님 제자들의 마음을 모아 치열한 수행으로 깨달음의 길을 열고 진실한 언어로 부처님 법을 전해 불교중흥의 기틀을 세우고자 하는 굳은 서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마음은 국민의 화합과 행복을 위해 차별과 대립을 걷어내고 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길을 열어 국운 창성을 이루겠다는 진솔한 약속“이며 ”마애부처님을 바로 세우는 일은 천년을 세워 그 공덕으로 개인들은 서원을 성취하고 나라는 부강한 강대국의 위상을 확립하며 불교를 다시 중흥시키겠다는 온 마음, 온 정성을 다한 신실한 원력”이라고 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불사의 시작을 고하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



2007년 마애부처님 발견 후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이를 바로 세우는 것이 가능할지 고민이 많았다. 무게 80톤으로 추정되는 마애 부처님을, 계곡의 좁은 공간에서 마애 부처님을 흠 하나 없이 바로 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원력을 세웠지만, 경주시, 경북도, 문화재청,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공원관리공단 등 관계 기관의 협력이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관계 부처도 조계종의 원력에 힘을 모으겠다고 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시에서 건축역사학회와 산업기술연구원에 용역을 줘 무게 80톤에 달하는 마애부처님을 안전하게 세우고 적절한 장소에 세우기 위한 최적의 방안을 연구하고 있지만, 마애부처님 바로세우기는 경주시의 의지만으로는 힘이 부치는 일이었다.”면서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먼저 힘을 받쳐줘 감사하고 국가적으로 입불에 나서 국민적 관광지로도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발원문을 하는 불국사 직무대행 종천 스님.



박보균 문체부 장관, 최응천 문화재청장,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축사를 보내 “각계 관심을 바탕으로 입불을 위한 최적의 방향을 찾는데 노력하겠다.”며 적극적인 지지와 동참을 약속했다.

이경영 동국대 WISE(와이즈)캠퍼스 총장은 “신라인들의 염원이 담긴 이 땅에서 우리의 이상세계(불국정토) 실현에 대한 염원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며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했다.

고불식 후엔 제11교구본사 불국사, 양양 낙산사가 각각 1억원의 기금을 쾌척했다. 봉선사가 지난 17일 마애 부처님 바로세우기 기금 3,000만원을 희사한 데 이어 종도들의 원력이 모아지고 있다. 낙산사 측은 “큰 산불로 피해가 컸지만 전 국민들의 도움과 사부대중의 동참으로 수년에 걸쳐 복원할 수 있었다”며 “그 때의 원력이 열암곡 마애부처님에게도 모아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조계종은 국운융창과 불교중흥, 그리고 불자들의 자긍심을 세울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불사’의 첫 단추를 채웠다.

31일, 10월의 마지막 날 오후 경주 남산 경주 내남면 노곡리. 새갓골 주차장에 차를 세운 사람들은 산행을 시작했다. 열암곡으로 가는 산길은 좁았다. 처음 몇 분은 그리 가파르지 않은 길이었지만, 이도 잠시 가파른 비탈길이 계속 이어졌다. 옛날엔 바우골(巖谷)이라 한 모양이다. 요즘은 열암곡으로 부른다. 이름처럼 좁은 비탈길과 주변은 바위가 굴러 멈춰선 듯 자리 잡고 있었다. 길 곳곳에 나무뿌리가 드러나 디딤돌 역할을 해주었다. 바위가 계단 역할을 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까지 가는 길에는 세 곳의 사지가 존재한다. 불굴조사 결과 1, 2사지는 3사지와 관련된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지에는 석조 유구를 모아놓았다. 산산조각난 불상도 있었다. 경주 남산에는 머리가 없는 불상이 다수 존재한다.

새갓골 주차장에서 800미터. 멀지 않은 거리지만 좁고 비탈졌고, 곳곳은 미끄러워 간혹 넘어지는 이도 있었다. 가는 길 주변에 기와 조각도 보였다. 땀이 흘렀다. 흐린 날이라던 예보와 달리 쾌청했고, 가파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디디면서 미끄러지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땀은 절로 흘렀다. 숨이 차오를 즈음, 새갓골 주차장에서 30여 분 채 못된 거리에 열암곡 마애부처님이 있었다. 하지만 마애부처님 보다 ‘열암곡 석조좌상’이 먼저 찾는 이를 반겼다.





조계종은 국운융창과 불교중흥, 그리고 불자들의 자긍심을 세울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불사’의 첫 단추를 채웠다.

31일, 10월의 마지막 날 오후 경주 남산 경주 내남면 노곡리. 새갓골 주차장에 차를 세운 사람들은 산행을 시작했다. 열암곡으로 가는 산길은 좁았다. 처음 몇 분은 그리 가파르지 않은 길이었지만, 이도 잠시 가파른 비탈길이 계속 이어졌다. 옛날엔 바우골(巖谷)이라 한 모양이다. 요즘은 열암곡으로 부른다. 이름처럼 좁은 비탈길과 주변은 바위가 굴러 멈춰선 듯 자리 잡고 있었다. 길 곳곳에 나무뿌리가 드러나 디딤돌 역할을 해주었다. 바위가 계단 역할을 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까지 가는 길에는 세 곳의 사지가 존재한다. 불굴조사 결과 1, 2사지는 3사지와 관련된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지에는 석조 유구를 모아놓았다. 산산조각난 불상도 있었다. 경주 남산에는 머리가 없는 불상이 다수 존재한다.

새갓골 주차장에서 800미터. 멀지 않은 거리지만 좁고 비탈졌고, 곳곳은 미끄러워 간혹 넘어지는 이도 있었다. 가는 길 주변에 기와 조각도 보였다. 땀이 흘렀다. 흐린 날이라던 예보와 달리 쾌청했고, 가파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디디면서 미끄러지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땀은 절로 흘렀다. 숨이 차오를 즈음, 새갓골 주차장에서 30여 분 채 못된 거리에 열암곡 마애부처님이 있었다. 하지만 마애부처님 보다 ‘열암곡 석조좌상’이 먼저 찾는 이를 반겼다.







열암곡 마애부처님은 복원한 ‘열암곡 석불좌상’이 내려다보는 아래쪽에 있었다. 경사면 벼랑에서 떨어진 큰 괴석들이 흩어져 있고, 그 중심에 열암곡 마애부처님이 경주와 하늘을 보지 못하고 땅을 보고 엎어져 있었다. 괴석와 나무와 흙 속에 있던 마애부처님은 ‘열암곡 석불좌상’ 발굴조사 과정에서 세상에 그 존재를 알렸다.

‘열암곡 석불좌상’은 열암곡 마애부처님과 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열암곡 석불좌상’은 경주 남산 백운계 새갓골 제3사지에 불두와 대좌의 중대석이 결실된 상태로 있던 중, 2005년 불상 머리가 확인돼, 보수·정비계획에 따라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불상이 안치된 건물지와 도괴된 마애불상을 발견했다. 사역 안에 건물지가 2동으로 금당 추정 주 건물은 3차에 걸쳐 증축한 것을 확인했다. 창건 당시 금당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후대의 중축으로 일부만 잔존한다. 2차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창건기보다 면적이 커졌다. 출토유물은 통일신라시대의 막새와 기와들이다. 3차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로 규모가 줄어든 모습이다. 근처에 1, 2사지도 3사지와 관련된 곳으로 추정된다. 열암곡 마애부처님과 열암곡 석불좌상의 관계성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인근에 금당지 등 건물지가 발견돼 이곳에 사찰이 존재했고, 마애부처님 역시 이 사찰지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게 80톤으로 추정하는 열암곡 마애부처님은 조선 중기 지진으로 쓰러진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의뢰해 시행한 연구결과 마애부처님은 1430년 진도 7에 가까운 대형지진에 넘어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넘어진지 600년이 넘은 것이다.







원래 위치로 추정되는 경사면을 따라 쓰러지면서 얼굴과 지면이 5cm 차이로 닿지 않아 훼손을 면해 ‘5cm의 기적’으로 불린다. 비탈의 아래쪽에 얼굴이, 원래 봉안된 위치 쪽에 좌대가 있는 상태이며, 주변은 임시 옹벽을 쌓았고, 마애부처님은 철근 가건물로 덮혀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이 부처님 주변에 진동계 등을 설치해 상태를 관찰하고 있다.

이 열암곡 마애부처님 주변에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등 200여 명의 사부대중이 모였다. ‘천년을 세우다-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기 고불식’을 위해서다.

땀을 채 닦을 새도 없이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총무부장 호산 스님, 기획실장 성화 스님, 사회부장 범종 스님이 사부대중을 대표해 마애부처님께 108배를 올렸다. 호산 스님의 죽비 소리에 맞춰 종단 대표인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네 스님은 절하고 또 절했다. 마애부처님 앞 터는 비좁아 더 많은 이들이 108에 동참할 수 없었다.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 동화사 주지 능종 스님, 은해사 주지 덕조 스님, 불국사 주지 직무대행 종천 스님 등 경북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과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 등이 108배를 하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 뒤에서 합장해 염불하며 ‘천년을 세우기’ 위한 원력을 모았다.

108배를 마치고 고불식 의례에 이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향을 올렸고, 종회의장 정문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이 차를 올렸다. 그리고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등 대구경북 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 등이 꽃을 올렸다. 







108배를 마친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고 곧 절한 의미를 설명했다.

진우 스님은 “오늘 열암곡 마애 부처님을 바로 모시기 108배를 하면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함께 축원했다.”며 “우리 불교의 목적은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인데 뜻밖의 참변을 당하니 매우 비통하다. 다시는 이렇게 예견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진력해야겠다.”고 했다.

이어 “부처님께서 뭇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평생을 길에서 전법 하셨듯이 우리 불제자들이 더욱 발심하여 정진하자.”면서 “우리 사회 미래인 청년들을 보호하고 밝은 내일을 열기 위해 진력하자. 종단은 희생자와 가족들의 슬픔을 함께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종정 성파 대종사에게 금일봉을 받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왼쪽),



진우 스님은 이날 오전 종정 성파 대종사를 예방했다. 종정 성파 대종사는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는 데 쓰라고 금일봉을 진우 스님에게 전달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에 종단의 신성인 종정 스님부터 종무행정의 수반인 총무원장, 그리고 재가불자들까지 원력을 더한 것이다.

이어 진우 스님은 마애부처님 전에 종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서 원래 모습으로 바로 모실 것을 고했다. 진우 스님은 제37대 총무원장 임기 개시 직후 중앙종무기관 종무원 특강에서 “예경의 대상인 부처님을 천년 넘도록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우리의 직무유기”라며 “어떤 식으로든 총력을 기울여 하루빨리 부처님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했다. 이어 10월 5일 취임법회에서 종책사업으로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세우기’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공표했고, 10월 12일 종무회의에서 불사 슬로건을 ‘천년을 세우다’로 제안하고, 불교계만 아닌 대국민 원력 불사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같은 달 18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예방 때 “천년 간 방치된 부처님을 바로 세움으로써 국민에게 다시 도약할 기운을 불어넣겠다.”고 했고, 19일에는 최응천 문화재청장 예방 때 “천년 간 누워 있던 부처님을 세우는 일은 종교적인 차원을 떠나 민족의 얼을 되살리는 것”이라며 “문화재는 한 나라와 민족의 얼굴이다. 이를 보존 계승하는 건 후손으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날 10월 31일 오후 2시 열암곡 마애부처님 앞에서 종책사업으로 ‘바로 모실 것’을 약속했다.



차를 올리는 종회의장 정문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취임 후 반복해 열암곡 마애부처님의 ‘기립(起立)’을 강조했다. 천년을 세우는 일이 국운융창과 불교중흥의 시작일 것이라는 뜻에서다. 또 마애부처님을 바로 모시는 것이 불자들의 자긍심을 세우는 불사라고 말해 왔다.

진우 스님은 고불식에서 “천년을 쓰러져 계신 마애부처님을 온전히 모시기 위한 사부대중의 간곡한 원력이 모였다. 지금 이 자리, 간절한 서원으로 마애 부처님을 바로 모셔 천년을 세우기 위한 첫걸음을 시작한다.”고 고했다.

이어 “이 불사는 누워 있는 천년을 일으켜 세워 미래 천년을 만들기 위한 거룩하고 당당한 발걸음“이라며 ”이 원력은 부처님 제자들의 마음을 모아 치열한 수행으로 깨달음의 길을 열고 진실한 언어로 부처님 법을 전해 불교중흥의 기틀을 세우고자 하는 굳은 서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마음은 국민의 화합과 행복을 위해 차별과 대립을 걷어내고 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길을 열어 국운 창성을 이루겠다는 진솔한 약속“이며 ”마애부처님을 바로 세우는 일은 천년을 세워 그 공덕으로 개인들은 서원을 성취하고 나라는 부강한 강대국의 위상을 확립하며 불교를 다시 중흥시키겠다는 온 마음, 온 정성을 다한 신실한 원력”이라고 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불사의 시작을 고하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



2007년 마애부처님 발견 후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이를 바로 세우는 것이 가능할지 고민이 많았다. 무게 80톤으로 추정되는 마애 부처님을, 계곡의 좁은 공간에서 마애 부처님을 흠 하나 없이 바로 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원력을 세웠지만, 경주시, 경북도, 문화재청,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공원관리공단 등 관계 기관의 협력이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관계 부처도 조계종의 원력에 힘을 모으겠다고 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시에서 건축역사학회와 산업기술연구원에 용역을 줘 무게 80톤에 달하는 마애부처님을 안전하게 세우고 적절한 장소에 세우기 위한 최적의 방안을 연구하고 있지만, 마애부처님 바로세우기는 경주시의 의지만으로는 힘이 부치는 일이었다.”면서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먼저 힘을 받쳐줘 감사하고 국가적으로 입불에 나서 국민적 관광지로도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발원문을 하는 불국사 직무대행 종천 스님.



박보균 문체부 장관, 최응천 문화재청장,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축사를 보내 “각계 관심을 바탕으로 입불을 위한 최적의 방향을 찾는데 노력하겠다.”며 적극적인 지지와 동참을 약속했다.

이경영 동국대 WISE(와이즈)캠퍼스 총장은 “신라인들의 염원이 담긴 이 땅에서 우리의 이상세계(불국정토) 실현에 대한 염원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며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했다.

고불식 후엔 제11교구본사 불국사, 양양 낙산사가 각각 1억원의 기금을 쾌척했다. 봉선사가 지난 17일 마애 부처님 바로세우기 기금 3,000만원을 희사한 데 이어 종도들의 원력이 모아지고 있다. 낙산사 측은 “큰 산불로 피해가 컸지만 전 국민들의 도움과 사부대중의 동참으로 수년에 걸쳐 복원할 수 있었다”며 “그 때의 원력이 열암곡 마애부처님에게도 모아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은 복원한 ‘열암곡 석불좌상’이 내려다보는 아래쪽에 있었다. 경사면 벼랑에서 떨어진 큰 괴석들이 흩어져 있고, 그 중심에 열암곡 마애부처님이 경주와 하늘을 보지 못하고 땅을 보고 엎어져 있었다. 괴석와 나무와 흙 속에 있던 마애부처님은 ‘열암곡 석불좌상’ 발굴조사 과정에서 세상에 그 존재를 알렸다.

‘열암곡 석불좌상’은 열암곡 마애부처님과 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열암곡 석불좌상’은 경주 남산 백운계 새갓골 제3사지에 불두와 대좌의 중대석이 결실된 상태로 있던 중, 2005년 불상 머리가 확인돼, 보수·정비계획에 따라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불상이 안치된 건물지와 도괴된 마애불상을 발견했다. 사역 안에 건물지가 2동으로 금당 추정 주 건물은 3차에 걸쳐 증축한 것을 확인했다. 창건 당시 금당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후대의 중축으로 일부만 잔존한다. 2차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창건기보다 면적이 커졌다. 출토유물은 통일신라시대의 막새와 기와들이다. 3차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로 규모가 줄어든 모습이다. 근처에 1, 2사지도 3사지와 관련된 곳으로 추정된다. 열암곡 마애부처님과 열암곡 석불좌상의 관계성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인근에 금당지 등 건물지가 발견돼 이곳에 사찰이 존재했고, 마애부처님 역시 이 사찰지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게 80톤으로 추정하는 열암곡 마애부처님은 조선 중기 지진으로 쓰러진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의뢰해 시행한 연구결과 마애부처님은 1430년 진도 7에 가까운 대형지진에 넘어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넘어진지 600년이 넘은 것이다.





조계종은 국운융창과 불교중흥, 그리고 불자들의 자긍심을 세울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불사’의 첫 단추를 채웠다.

31일, 10월의 마지막 날 오후 경주 남산 경주 내남면 노곡리. 새갓골 주차장에 차를 세운 사람들은 산행을 시작했다. 열암곡으로 가는 산길은 좁았다. 처음 몇 분은 그리 가파르지 않은 길이었지만, 이도 잠시 가파른 비탈길이 계속 이어졌다. 옛날엔 바우골(巖谷)이라 한 모양이다. 요즘은 열암곡으로 부른다. 이름처럼 좁은 비탈길과 주변은 바위가 굴러 멈춰선 듯 자리 잡고 있었다. 길 곳곳에 나무뿌리가 드러나 디딤돌 역할을 해주었다. 바위가 계단 역할을 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까지 가는 길에는 세 곳의 사지가 존재한다. 불굴조사 결과 1, 2사지는 3사지와 관련된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지에는 석조 유구를 모아놓았다. 산산조각난 불상도 있었다. 경주 남산에는 머리가 없는 불상이 다수 존재한다.

새갓골 주차장에서 800미터. 멀지 않은 거리지만 좁고 비탈졌고, 곳곳은 미끄러워 간혹 넘어지는 이도 있었다. 가는 길 주변에 기와 조각도 보였다. 땀이 흘렀다. 흐린 날이라던 예보와 달리 쾌청했고, 가파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디디면서 미끄러지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땀은 절로 흘렀다. 숨이 차오를 즈음, 새갓골 주차장에서 30여 분 채 못된 거리에 열암곡 마애부처님이 있었다. 하지만 마애부처님 보다 ‘열암곡 석조좌상’이 먼저 찾는 이를 반겼다.







열암곡 마애부처님은 복원한 ‘열암곡 석불좌상’이 내려다보는 아래쪽에 있었다. 경사면 벼랑에서 떨어진 큰 괴석들이 흩어져 있고, 그 중심에 열암곡 마애부처님이 경주와 하늘을 보지 못하고 땅을 보고 엎어져 있었다. 괴석와 나무와 흙 속에 있던 마애부처님은 ‘열암곡 석불좌상’ 발굴조사 과정에서 세상에 그 존재를 알렸다.

‘열암곡 석불좌상’은 열암곡 마애부처님과 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열암곡 석불좌상’은 경주 남산 백운계 새갓골 제3사지에 불두와 대좌의 중대석이 결실된 상태로 있던 중, 2005년 불상 머리가 확인돼, 보수·정비계획에 따라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불상이 안치된 건물지와 도괴된 마애불상을 발견했다. 사역 안에 건물지가 2동으로 금당 추정 주 건물은 3차에 걸쳐 증축한 것을 확인했다. 창건 당시 금당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후대의 중축으로 일부만 잔존한다. 2차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창건기보다 면적이 커졌다. 출토유물은 통일신라시대의 막새와 기와들이다. 3차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로 규모가 줄어든 모습이다. 근처에 1, 2사지도 3사지와 관련된 곳으로 추정된다. 열암곡 마애부처님과 열암곡 석불좌상의 관계성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인근에 금당지 등 건물지가 발견돼 이곳에 사찰이 존재했고, 마애부처님 역시 이 사찰지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게 80톤으로 추정하는 열암곡 마애부처님은 조선 중기 지진으로 쓰러진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의뢰해 시행한 연구결과 마애부처님은 1430년 진도 7에 가까운 대형지진에 넘어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넘어진지 600년이 넘은 것이다.







원래 위치로 추정되는 경사면을 따라 쓰러지면서 얼굴과 지면이 5cm 차이로 닿지 않아 훼손을 면해 ‘5cm의 기적’으로 불린다. 비탈의 아래쪽에 얼굴이, 원래 봉안된 위치 쪽에 좌대가 있는 상태이며, 주변은 임시 옹벽을 쌓았고, 마애부처님은 철근 가건물로 덮혀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이 부처님 주변에 진동계 등을 설치해 상태를 관찰하고 있다.

이 열암곡 마애부처님 주변에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등 200여 명의 사부대중이 모였다. ‘천년을 세우다-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기 고불식’을 위해서다.

땀을 채 닦을 새도 없이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총무부장 호산 스님, 기획실장 성화 스님, 사회부장 범종 스님이 사부대중을 대표해 마애부처님께 108배를 올렸다. 호산 스님의 죽비 소리에 맞춰 종단 대표인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네 스님은 절하고 또 절했다. 마애부처님 앞 터는 비좁아 더 많은 이들이 108에 동참할 수 없었다.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 동화사 주지 능종 스님, 은해사 주지 덕조 스님, 불국사 주지 직무대행 종천 스님 등 경북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과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 등이 108배를 하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 뒤에서 합장해 염불하며 ‘천년을 세우기’ 위한 원력을 모았다.

108배를 마치고 고불식 의례에 이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향을 올렸고, 종회의장 정문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이 차를 올렸다. 그리고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등 대구경북 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 등이 꽃을 올렸다. 







108배를 마친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고 곧 절한 의미를 설명했다.

진우 스님은 “오늘 열암곡 마애 부처님을 바로 모시기 108배를 하면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함께 축원했다.”며 “우리 불교의 목적은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인데 뜻밖의 참변을 당하니 매우 비통하다. 다시는 이렇게 예견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진력해야겠다.”고 했다.

이어 “부처님께서 뭇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평생을 길에서 전법 하셨듯이 우리 불제자들이 더욱 발심하여 정진하자.”면서 “우리 사회 미래인 청년들을 보호하고 밝은 내일을 열기 위해 진력하자. 종단은 희생자와 가족들의 슬픔을 함께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종정 성파 대종사에게 금일봉을 받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왼쪽),



진우 스님은 이날 오전 종정 성파 대종사를 예방했다. 종정 성파 대종사는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는 데 쓰라고 금일봉을 진우 스님에게 전달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에 종단의 신성인 종정 스님부터 종무행정의 수반인 총무원장, 그리고 재가불자들까지 원력을 더한 것이다.

이어 진우 스님은 마애부처님 전에 종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서 원래 모습으로 바로 모실 것을 고했다. 진우 스님은 제37대 총무원장 임기 개시 직후 중앙종무기관 종무원 특강에서 “예경의 대상인 부처님을 천년 넘도록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우리의 직무유기”라며 “어떤 식으로든 총력을 기울여 하루빨리 부처님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했다. 이어 10월 5일 취임법회에서 종책사업으로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세우기’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공표했고, 10월 12일 종무회의에서 불사 슬로건을 ‘천년을 세우다’로 제안하고, 불교계만 아닌 대국민 원력 불사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같은 달 18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예방 때 “천년 간 방치된 부처님을 바로 세움으로써 국민에게 다시 도약할 기운을 불어넣겠다.”고 했고, 19일에는 최응천 문화재청장 예방 때 “천년 간 누워 있던 부처님을 세우는 일은 종교적인 차원을 떠나 민족의 얼을 되살리는 것”이라며 “문화재는 한 나라와 민족의 얼굴이다. 이를 보존 계승하는 건 후손으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날 10월 31일 오후 2시 열암곡 마애부처님 앞에서 종책사업으로 ‘바로 모실 것’을 약속했다.



차를 올리는 종회의장 정문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취임 후 반복해 열암곡 마애부처님의 ‘기립(起立)’을 강조했다. 천년을 세우는 일이 국운융창과 불교중흥의 시작일 것이라는 뜻에서다. 또 마애부처님을 바로 모시는 것이 불자들의 자긍심을 세우는 불사라고 말해 왔다.

진우 스님은 고불식에서 “천년을 쓰러져 계신 마애부처님을 온전히 모시기 위한 사부대중의 간곡한 원력이 모였다. 지금 이 자리, 간절한 서원으로 마애 부처님을 바로 모셔 천년을 세우기 위한 첫걸음을 시작한다.”고 고했다.

이어 “이 불사는 누워 있는 천년을 일으켜 세워 미래 천년을 만들기 위한 거룩하고 당당한 발걸음“이라며 ”이 원력은 부처님 제자들의 마음을 모아 치열한 수행으로 깨달음의 길을 열고 진실한 언어로 부처님 법을 전해 불교중흥의 기틀을 세우고자 하는 굳은 서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마음은 국민의 화합과 행복을 위해 차별과 대립을 걷어내고 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길을 열어 국운 창성을 이루겠다는 진솔한 약속“이며 ”마애부처님을 바로 세우는 일은 천년을 세워 그 공덕으로 개인들은 서원을 성취하고 나라는 부강한 강대국의 위상을 확립하며 불교를 다시 중흥시키겠다는 온 마음, 온 정성을 다한 신실한 원력”이라고 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불사의 시작을 고하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



2007년 마애부처님 발견 후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이를 바로 세우는 것이 가능할지 고민이 많았다. 무게 80톤으로 추정되는 마애 부처님을, 계곡의 좁은 공간에서 마애 부처님을 흠 하나 없이 바로 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원력을 세웠지만, 경주시, 경북도, 문화재청,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공원관리공단 등 관계 기관의 협력이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관계 부처도 조계종의 원력에 힘을 모으겠다고 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시에서 건축역사학회와 산업기술연구원에 용역을 줘 무게 80톤에 달하는 마애부처님을 안전하게 세우고 적절한 장소에 세우기 위한 최적의 방안을 연구하고 있지만, 마애부처님 바로세우기는 경주시의 의지만으로는 힘이 부치는 일이었다.”면서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먼저 힘을 받쳐줘 감사하고 국가적으로 입불에 나서 국민적 관광지로도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발원문을 하는 불국사 직무대행 종천 스님.



박보균 문체부 장관, 최응천 문화재청장,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축사를 보내 “각계 관심을 바탕으로 입불을 위한 최적의 방향을 찾는데 노력하겠다.”며 적극적인 지지와 동참을 약속했다.

이경영 동국대 WISE(와이즈)캠퍼스 총장은 “신라인들의 염원이 담긴 이 땅에서 우리의 이상세계(불국정토) 실현에 대한 염원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며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했다.

고불식 후엔 제11교구본사 불국사, 양양 낙산사가 각각 1억원의 기금을 쾌척했다. 봉선사가 지난 17일 마애 부처님 바로세우기 기금 3,000만원을 희사한 데 이어 종도들의 원력이 모아지고 있다. 낙산사 측은 “큰 산불로 피해가 컸지만 전 국민들의 도움과 사부대중의 동참으로 수년에 걸쳐 복원할 수 있었다”며 “그 때의 원력이 열암곡 마애부처님에게도 모아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원래 위치로 추정되는 경사면을 따라 쓰러지면서 얼굴과 지면이 5cm 차이로 닿지 않아 훼손을 면해 ‘5cm의 기적’으로 불린다. 비탈의 아래쪽에 얼굴이, 원래 봉안된 위치 쪽에 좌대가 있는 상태이며, 주변은 임시 옹벽을 쌓았고, 마애부처님은 철근 가건물로 덮혀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이 부처님 주변에 진동계 등을 설치해 상태를 관찰하고 있다.

이 열암곡 마애부처님 주변에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등 200여 명의 사부대중이 모였다. ‘천년을 세우다-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기 고불식’을 위해서다.

땀을 채 닦을 새도 없이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총무부장 호산 스님, 기획실장 성화 스님, 사회부장 범종 스님이 사부대중을 대표해 마애부처님께 108배를 올렸다. 호산 스님의 죽비 소리에 맞춰 종단 대표인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네 스님은 절하고 또 절했다. 마애부처님 앞 터는 비좁아 더 많은 이들이 108에 동참할 수 없었다.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 동화사 주지 능종 스님, 은해사 주지 덕조 스님, 불국사 주지 직무대행 종천 스님 등 경북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과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 등이 108배를 하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 뒤에서 합장해 염불하며 ‘천년을 세우기’ 위한 원력을 모았다.

108배를 마치고 고불식 의례에 이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향을 올렸고, 종회의장 정문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이 차를 올렸다. 그리고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등 대구경북 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 등이 꽃을 올렸다. 





조계종은 국운융창과 불교중흥, 그리고 불자들의 자긍심을 세울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불사’의 첫 단추를 채웠다.

31일, 10월의 마지막 날 오후 경주 남산 경주 내남면 노곡리. 새갓골 주차장에 차를 세운 사람들은 산행을 시작했다. 열암곡으로 가는 산길은 좁았다. 처음 몇 분은 그리 가파르지 않은 길이었지만, 이도 잠시 가파른 비탈길이 계속 이어졌다. 옛날엔 바우골(巖谷)이라 한 모양이다. 요즘은 열암곡으로 부른다. 이름처럼 좁은 비탈길과 주변은 바위가 굴러 멈춰선 듯 자리 잡고 있었다. 길 곳곳에 나무뿌리가 드러나 디딤돌 역할을 해주었다. 바위가 계단 역할을 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까지 가는 길에는 세 곳의 사지가 존재한다. 불굴조사 결과 1, 2사지는 3사지와 관련된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지에는 석조 유구를 모아놓았다. 산산조각난 불상도 있었다. 경주 남산에는 머리가 없는 불상이 다수 존재한다.

새갓골 주차장에서 800미터. 멀지 않은 거리지만 좁고 비탈졌고, 곳곳은 미끄러워 간혹 넘어지는 이도 있었다. 가는 길 주변에 기와 조각도 보였다. 땀이 흘렀다. 흐린 날이라던 예보와 달리 쾌청했고, 가파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디디면서 미끄러지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땀은 절로 흘렀다. 숨이 차오를 즈음, 새갓골 주차장에서 30여 분 채 못된 거리에 열암곡 마애부처님이 있었다. 하지만 마애부처님 보다 ‘열암곡 석조좌상’이 먼저 찾는 이를 반겼다.







열암곡 마애부처님은 복원한 ‘열암곡 석불좌상’이 내려다보는 아래쪽에 있었다. 경사면 벼랑에서 떨어진 큰 괴석들이 흩어져 있고, 그 중심에 열암곡 마애부처님이 경주와 하늘을 보지 못하고 땅을 보고 엎어져 있었다. 괴석와 나무와 흙 속에 있던 마애부처님은 ‘열암곡 석불좌상’ 발굴조사 과정에서 세상에 그 존재를 알렸다.

‘열암곡 석불좌상’은 열암곡 마애부처님과 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열암곡 석불좌상’은 경주 남산 백운계 새갓골 제3사지에 불두와 대좌의 중대석이 결실된 상태로 있던 중, 2005년 불상 머리가 확인돼, 보수·정비계획에 따라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불상이 안치된 건물지와 도괴된 마애불상을 발견했다. 사역 안에 건물지가 2동으로 금당 추정 주 건물은 3차에 걸쳐 증축한 것을 확인했다. 창건 당시 금당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후대의 중축으로 일부만 잔존한다. 2차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창건기보다 면적이 커졌다. 출토유물은 통일신라시대의 막새와 기와들이다. 3차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로 규모가 줄어든 모습이다. 근처에 1, 2사지도 3사지와 관련된 곳으로 추정된다. 열암곡 마애부처님과 열암곡 석불좌상의 관계성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인근에 금당지 등 건물지가 발견돼 이곳에 사찰이 존재했고, 마애부처님 역시 이 사찰지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게 80톤으로 추정하는 열암곡 마애부처님은 조선 중기 지진으로 쓰러진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의뢰해 시행한 연구결과 마애부처님은 1430년 진도 7에 가까운 대형지진에 넘어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넘어진지 600년이 넘은 것이다.







원래 위치로 추정되는 경사면을 따라 쓰러지면서 얼굴과 지면이 5cm 차이로 닿지 않아 훼손을 면해 ‘5cm의 기적’으로 불린다. 비탈의 아래쪽에 얼굴이, 원래 봉안된 위치 쪽에 좌대가 있는 상태이며, 주변은 임시 옹벽을 쌓았고, 마애부처님은 철근 가건물로 덮혀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이 부처님 주변에 진동계 등을 설치해 상태를 관찰하고 있다.

이 열암곡 마애부처님 주변에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등 200여 명의 사부대중이 모였다. ‘천년을 세우다-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기 고불식’을 위해서다.

땀을 채 닦을 새도 없이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총무부장 호산 스님, 기획실장 성화 스님, 사회부장 범종 스님이 사부대중을 대표해 마애부처님께 108배를 올렸다. 호산 스님의 죽비 소리에 맞춰 종단 대표인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네 스님은 절하고 또 절했다. 마애부처님 앞 터는 비좁아 더 많은 이들이 108에 동참할 수 없었다.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 동화사 주지 능종 스님, 은해사 주지 덕조 스님, 불국사 주지 직무대행 종천 스님 등 경북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과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 등이 108배를 하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 뒤에서 합장해 염불하며 ‘천년을 세우기’ 위한 원력을 모았다.

108배를 마치고 고불식 의례에 이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향을 올렸고, 종회의장 정문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이 차를 올렸다. 그리고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등 대구경북 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 등이 꽃을 올렸다. 







108배를 마친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고 곧 절한 의미를 설명했다.

진우 스님은 “오늘 열암곡 마애 부처님을 바로 모시기 108배를 하면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함께 축원했다.”며 “우리 불교의 목적은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인데 뜻밖의 참변을 당하니 매우 비통하다. 다시는 이렇게 예견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진력해야겠다.”고 했다.

이어 “부처님께서 뭇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평생을 길에서 전법 하셨듯이 우리 불제자들이 더욱 발심하여 정진하자.”면서 “우리 사회 미래인 청년들을 보호하고 밝은 내일을 열기 위해 진력하자. 종단은 희생자와 가족들의 슬픔을 함께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종정 성파 대종사에게 금일봉을 받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왼쪽),



진우 스님은 이날 오전 종정 성파 대종사를 예방했다. 종정 성파 대종사는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는 데 쓰라고 금일봉을 진우 스님에게 전달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에 종단의 신성인 종정 스님부터 종무행정의 수반인 총무원장, 그리고 재가불자들까지 원력을 더한 것이다.

이어 진우 스님은 마애부처님 전에 종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서 원래 모습으로 바로 모실 것을 고했다. 진우 스님은 제37대 총무원장 임기 개시 직후 중앙종무기관 종무원 특강에서 “예경의 대상인 부처님을 천년 넘도록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우리의 직무유기”라며 “어떤 식으로든 총력을 기울여 하루빨리 부처님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했다. 이어 10월 5일 취임법회에서 종책사업으로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세우기’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공표했고, 10월 12일 종무회의에서 불사 슬로건을 ‘천년을 세우다’로 제안하고, 불교계만 아닌 대국민 원력 불사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같은 달 18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예방 때 “천년 간 방치된 부처님을 바로 세움으로써 국민에게 다시 도약할 기운을 불어넣겠다.”고 했고, 19일에는 최응천 문화재청장 예방 때 “천년 간 누워 있던 부처님을 세우는 일은 종교적인 차원을 떠나 민족의 얼을 되살리는 것”이라며 “문화재는 한 나라와 민족의 얼굴이다. 이를 보존 계승하는 건 후손으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날 10월 31일 오후 2시 열암곡 마애부처님 앞에서 종책사업으로 ‘바로 모실 것’을 약속했다.



차를 올리는 종회의장 정문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취임 후 반복해 열암곡 마애부처님의 ‘기립(起立)’을 강조했다. 천년을 세우는 일이 국운융창과 불교중흥의 시작일 것이라는 뜻에서다. 또 마애부처님을 바로 모시는 것이 불자들의 자긍심을 세우는 불사라고 말해 왔다.

진우 스님은 고불식에서 “천년을 쓰러져 계신 마애부처님을 온전히 모시기 위한 사부대중의 간곡한 원력이 모였다. 지금 이 자리, 간절한 서원으로 마애 부처님을 바로 모셔 천년을 세우기 위한 첫걸음을 시작한다.”고 고했다.

이어 “이 불사는 누워 있는 천년을 일으켜 세워 미래 천년을 만들기 위한 거룩하고 당당한 발걸음“이라며 ”이 원력은 부처님 제자들의 마음을 모아 치열한 수행으로 깨달음의 길을 열고 진실한 언어로 부처님 법을 전해 불교중흥의 기틀을 세우고자 하는 굳은 서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마음은 국민의 화합과 행복을 위해 차별과 대립을 걷어내고 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길을 열어 국운 창성을 이루겠다는 진솔한 약속“이며 ”마애부처님을 바로 세우는 일은 천년을 세워 그 공덕으로 개인들은 서원을 성취하고 나라는 부강한 강대국의 위상을 확립하며 불교를 다시 중흥시키겠다는 온 마음, 온 정성을 다한 신실한 원력”이라고 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불사의 시작을 고하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



2007년 마애부처님 발견 후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이를 바로 세우는 것이 가능할지 고민이 많았다. 무게 80톤으로 추정되는 마애 부처님을, 계곡의 좁은 공간에서 마애 부처님을 흠 하나 없이 바로 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원력을 세웠지만, 경주시, 경북도, 문화재청,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공원관리공단 등 관계 기관의 협력이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관계 부처도 조계종의 원력에 힘을 모으겠다고 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시에서 건축역사학회와 산업기술연구원에 용역을 줘 무게 80톤에 달하는 마애부처님을 안전하게 세우고 적절한 장소에 세우기 위한 최적의 방안을 연구하고 있지만, 마애부처님 바로세우기는 경주시의 의지만으로는 힘이 부치는 일이었다.”면서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먼저 힘을 받쳐줘 감사하고 국가적으로 입불에 나서 국민적 관광지로도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발원문을 하는 불국사 직무대행 종천 스님.



박보균 문체부 장관, 최응천 문화재청장,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축사를 보내 “각계 관심을 바탕으로 입불을 위한 최적의 방향을 찾는데 노력하겠다.”며 적극적인 지지와 동참을 약속했다.

이경영 동국대 WISE(와이즈)캠퍼스 총장은 “신라인들의 염원이 담긴 이 땅에서 우리의 이상세계(불국정토) 실현에 대한 염원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며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했다.

고불식 후엔 제11교구본사 불국사, 양양 낙산사가 각각 1억원의 기금을 쾌척했다. 봉선사가 지난 17일 마애 부처님 바로세우기 기금 3,000만원을 희사한 데 이어 종도들의 원력이 모아지고 있다. 낙산사 측은 “큰 산불로 피해가 컸지만 전 국민들의 도움과 사부대중의 동참으로 수년에 걸쳐 복원할 수 있었다”며 “그 때의 원력이 열암곡 마애부처님에게도 모아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108배를 마친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고 곧 절한 의미를 설명했다.

진우 스님은 “오늘 열암곡 마애 부처님을 바로 모시기 108배를 하면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함께 축원했다.”며 “우리 불교의 목적은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인데 뜻밖의 참변을 당하니 매우 비통하다. 다시는 이렇게 예견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진력해야겠다.”고 했다.

이어 “부처님께서 뭇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평생을 길에서 전법 하셨듯이 우리 불제자들이 더욱 발심하여 정진하자.”면서 “우리 사회 미래인 청년들을 보호하고 밝은 내일을 열기 위해 진력하자. 종단은 희생자와 가족들의 슬픔을 함께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종정 성파 대종사에게 금일봉을 받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왼쪽),
종정 성파 대종사에게 금일봉을 받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왼쪽),

진우 스님은 이날 오전 종정 성파 대종사를 예방했다. 종정 성파 대종사는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는 데 쓰라고 금일봉을 진우 스님에게 전달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에 종단의 신성인 종정 스님부터 종무행정의 수반인 총무원장, 그리고 재가불자들까지 원력을 더한 것이다.

이어 진우 스님은 마애부처님 전에 종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서 원래 모습으로 바로 모실 것을 고했다. 진우 스님은 제37대 총무원장 임기 개시 직후 중앙종무기관 종무원 특강에서 “예경의 대상인 부처님을 천년 넘도록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우리의 직무유기”라며 “어떤 식으로든 총력을 기울여 하루빨리 부처님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했다. 이어 10월 5일 취임법회에서 종책사업으로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세우기’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공표했고, 10월 12일 종무회의에서 불사 슬로건을 ‘천년을 세우다’로 제안하고, 불교계만 아닌 대국민 원력 불사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같은 달 18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예방 때 “천년 간 방치된 부처님을 바로 세움으로써 국민에게 다시 도약할 기운을 불어넣겠다.”고 했고, 19일에는 최응천 문화재청장 예방 때 “천년 간 누워 있던 부처님을 세우는 일은 종교적인 차원을 떠나 민족의 얼을 되살리는 것”이라며 “문화재는 한 나라와 민족의 얼굴이다. 이를 보존 계승하는 건 후손으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날 10월 31일 오후 2시 열암곡 마애부처님 앞에서 종책사업으로 ‘바로 모실 것’을 약속했다.

차를 올리는 종회의장 정문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차를 올리는 종회의장 정문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취임 후 반복해 열암곡 마애부처님의 ‘기립(起立)’을 강조했다. 천년을 세우는 일이 국운융창과 불교중흥의 시작일 것이라는 뜻에서다. 또 마애부처님을 바로 모시는 것이 불자들의 자긍심을 세우는 불사라고 말해 왔다.

진우 스님은 고불식에서 “천년을 쓰러져 계신 마애부처님을 온전히 모시기 위한 사부대중의 간곡한 원력이 모였다. 지금 이 자리, 간절한 서원으로 마애 부처님을 바로 모셔 천년을 세우기 위한 첫걸음을 시작한다.”고 고했다.

이어 “이 불사는 누워 있는 천년을 일으켜 세워 미래 천년을 만들기 위한 거룩하고 당당한 발걸음“이라며 ”이 원력은 부처님 제자들의 마음을 모아 치열한 수행으로 깨달음의 길을 열고 진실한 언어로 부처님 법을 전해 불교중흥의 기틀을 세우고자 하는 굳은 서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마음은 국민의 화합과 행복을 위해 차별과 대립을 걷어내고 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길을 열어 국운 창성을 이루겠다는 진솔한 약속“이며 ”마애부처님을 바로 세우는 일은 천년을 세워 그 공덕으로 개인들은 서원을 성취하고 나라는 부강한 강대국의 위상을 확립하며 불교를 다시 중흥시키겠다는 온 마음, 온 정성을 다한 신실한 원력”이라고 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불사의 시작을 고하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불사의 시작을 고하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

2007년 마애부처님 발견 후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이를 바로 세우는 것이 가능할지 고민이 많았다. 무게 80톤으로 추정되는 마애 부처님을, 계곡의 좁은 공간에서 마애 부처님을 흠 하나 없이 바로 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원력을 세웠지만, 경주시, 경북도, 문화재청,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공원관리공단 등 관계 기관의 협력이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관계 부처도 조계종의 원력에 힘을 모으겠다고 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시에서 건축역사학회와 산업기술연구원에 용역을 줘 무게 80톤에 달하는 마애부처님을 안전하게 세우고 적절한 장소에 세우기 위한 최적의 방안을 연구하고 있지만, 마애부처님 바로세우기는 경주시의 의지만으로는 힘이 부치는 일이었다.”면서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먼저 힘을 받쳐줘 감사하고 국가적으로 입불에 나서 국민적 관광지로도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발원문을 하는 불국사 직무대행 종천 스님.
발원문을 하는 불국사 직무대행 종천 스님.

박보균 문체부 장관, 최응천 문화재청장,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축사를 보내 “각계 관심을 바탕으로 입불을 위한 최적의 방향을 찾는데 노력하겠다.”며 적극적인 지지와 동참을 약속했다.

이경영 동국대 WISE(와이즈)캠퍼스 총장은 “신라인들의 염원이 담긴 이 땅에서 우리의 이상세계(불국정토) 실현에 대한 염원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며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했다.

고불식 후엔 제11교구본사 불국사, 양양 낙산사가 각각 1억원의 기금을 쾌척했다. 봉선사가 지난 17일 마애 부처님 바로세우기 기금 3,000만원을 희사한 데 이어 종도들의 원력이 모아지고 있다. 낙산사 측은 “큰 산불로 피해가 컸지만 전 국민들의 도움과 사부대중의 동참으로 수년에 걸쳐 복원할 수 있었다”며 “그 때의 원력이 열암곡 마애부처님에게도 모아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조계종은 국운융창과 불교중흥, 그리고 불자들의 자긍심을 세울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불사’의 첫 단추를 채웠다.

31일, 10월의 마지막 날 오후 경주 남산 경주 내남면 노곡리. 새갓골 주차장에 차를 세운 사람들은 산행을 시작했다. 열암곡으로 가는 산길은 좁았다. 처음 몇 분은 그리 가파르지 않은 길이었지만, 이도 잠시 가파른 비탈길이 계속 이어졌다. 옛날엔 바우골(巖谷)이라 한 모양이다. 요즘은 열암곡으로 부른다. 이름처럼 좁은 비탈길과 주변은 바위가 굴러 멈춰선 듯 자리 잡고 있었다. 길 곳곳에 나무뿌리가 드러나 디딤돌 역할을 해주었다. 바위가 계단 역할을 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까지 가는 길에는 세 곳의 사지가 존재한다. 불굴조사 결과 1, 2사지는 3사지와 관련된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지에는 석조 유구를 모아놓았다. 산산조각난 불상도 있었다. 경주 남산에는 머리가 없는 불상이 다수 존재한다.

새갓골 주차장에서 800미터. 멀지 않은 거리지만 좁고 비탈졌고, 곳곳은 미끄러워 간혹 넘어지는 이도 있었다. 가는 길 주변에 기와 조각도 보였다. 땀이 흘렀다. 흐린 날이라던 예보와 달리 쾌청했고, 가파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디디면서 미끄러지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땀은 절로 흘렀다. 숨이 차오를 즈음, 새갓골 주차장에서 30여 분 채 못된 거리에 열암곡 마애부처님이 있었다. 하지만 마애부처님 보다 ‘열암곡 석조좌상’이 먼저 찾는 이를 반겼다.







열암곡 마애부처님은 복원한 ‘열암곡 석불좌상’이 내려다보는 아래쪽에 있었다. 경사면 벼랑에서 떨어진 큰 괴석들이 흩어져 있고, 그 중심에 열암곡 마애부처님이 경주와 하늘을 보지 못하고 땅을 보고 엎어져 있었다. 괴석와 나무와 흙 속에 있던 마애부처님은 ‘열암곡 석불좌상’ 발굴조사 과정에서 세상에 그 존재를 알렸다.

‘열암곡 석불좌상’은 열암곡 마애부처님과 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열암곡 석불좌상’은 경주 남산 백운계 새갓골 제3사지에 불두와 대좌의 중대석이 결실된 상태로 있던 중, 2005년 불상 머리가 확인돼, 보수·정비계획에 따라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불상이 안치된 건물지와 도괴된 마애불상을 발견했다. 사역 안에 건물지가 2동으로 금당 추정 주 건물은 3차에 걸쳐 증축한 것을 확인했다. 창건 당시 금당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후대의 중축으로 일부만 잔존한다. 2차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창건기보다 면적이 커졌다. 출토유물은 통일신라시대의 막새와 기와들이다. 3차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로 규모가 줄어든 모습이다. 근처에 1, 2사지도 3사지와 관련된 곳으로 추정된다. 열암곡 마애부처님과 열암곡 석불좌상의 관계성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인근에 금당지 등 건물지가 발견돼 이곳에 사찰이 존재했고, 마애부처님 역시 이 사찰지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게 80톤으로 추정하는 열암곡 마애부처님은 조선 중기 지진으로 쓰러진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의뢰해 시행한 연구결과 마애부처님은 1430년 진도 7에 가까운 대형지진에 넘어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넘어진지 600년이 넘은 것이다.







원래 위치로 추정되는 경사면을 따라 쓰러지면서 얼굴과 지면이 5cm 차이로 닿지 않아 훼손을 면해 ‘5cm의 기적’으로 불린다. 비탈의 아래쪽에 얼굴이, 원래 봉안된 위치 쪽에 좌대가 있는 상태이며, 주변은 임시 옹벽을 쌓았고, 마애부처님은 철근 가건물로 덮혀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이 부처님 주변에 진동계 등을 설치해 상태를 관찰하고 있다.

이 열암곡 마애부처님 주변에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등 200여 명의 사부대중이 모였다. ‘천년을 세우다-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기 고불식’을 위해서다.

땀을 채 닦을 새도 없이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총무부장 호산 스님, 기획실장 성화 스님, 사회부장 범종 스님이 사부대중을 대표해 마애부처님께 108배를 올렸다. 호산 스님의 죽비 소리에 맞춰 종단 대표인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네 스님은 절하고 또 절했다. 마애부처님 앞 터는 비좁아 더 많은 이들이 108에 동참할 수 없었다.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 동화사 주지 능종 스님, 은해사 주지 덕조 스님, 불국사 주지 직무대행 종천 스님 등 경북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과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 등이 108배를 하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 뒤에서 합장해 염불하며 ‘천년을 세우기’ 위한 원력을 모았다.

108배를 마치고 고불식 의례에 이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향을 올렸고, 종회의장 정문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이 차를 올렸다. 그리고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등 대구경북 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 등이 꽃을 올렸다. 







108배를 마친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고 곧 절한 의미를 설명했다.

진우 스님은 “오늘 열암곡 마애 부처님을 바로 모시기 108배를 하면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함께 축원했다.”며 “우리 불교의 목적은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인데 뜻밖의 참변을 당하니 매우 비통하다. 다시는 이렇게 예견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진력해야겠다.”고 했다.

이어 “부처님께서 뭇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평생을 길에서 전법 하셨듯이 우리 불제자들이 더욱 발심하여 정진하자.”면서 “우리 사회 미래인 청년들을 보호하고 밝은 내일을 열기 위해 진력하자. 종단은 희생자와 가족들의 슬픔을 함께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종정 성파 대종사에게 금일봉을 받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왼쪽),



진우 스님은 이날 오전 종정 성파 대종사를 예방했다. 종정 성파 대종사는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는 데 쓰라고 금일봉을 진우 스님에게 전달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에 종단의 신성인 종정 스님부터 종무행정의 수반인 총무원장, 그리고 재가불자들까지 원력을 더한 것이다.

이어 진우 스님은 마애부처님 전에 종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서 원래 모습으로 바로 모실 것을 고했다. 진우 스님은 제37대 총무원장 임기 개시 직후 중앙종무기관 종무원 특강에서 “예경의 대상인 부처님을 천년 넘도록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우리의 직무유기”라며 “어떤 식으로든 총력을 기울여 하루빨리 부처님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했다. 이어 10월 5일 취임법회에서 종책사업으로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세우기’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공표했고, 10월 12일 종무회의에서 불사 슬로건을 ‘천년을 세우다’로 제안하고, 불교계만 아닌 대국민 원력 불사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같은 달 18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예방 때 “천년 간 방치된 부처님을 바로 세움으로써 국민에게 다시 도약할 기운을 불어넣겠다.”고 했고, 19일에는 최응천 문화재청장 예방 때 “천년 간 누워 있던 부처님을 세우는 일은 종교적인 차원을 떠나 민족의 얼을 되살리는 것”이라며 “문화재는 한 나라와 민족의 얼굴이다. 이를 보존 계승하는 건 후손으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날 10월 31일 오후 2시 열암곡 마애부처님 앞에서 종책사업으로 ‘바로 모실 것’을 약속했다.



차를 올리는 종회의장 정문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취임 후 반복해 열암곡 마애부처님의 ‘기립(起立)’을 강조했다. 천년을 세우는 일이 국운융창과 불교중흥의 시작일 것이라는 뜻에서다. 또 마애부처님을 바로 모시는 것이 불자들의 자긍심을 세우는 불사라고 말해 왔다.

진우 스님은 고불식에서 “천년을 쓰러져 계신 마애부처님을 온전히 모시기 위한 사부대중의 간곡한 원력이 모였다. 지금 이 자리, 간절한 서원으로 마애 부처님을 바로 모셔 천년을 세우기 위한 첫걸음을 시작한다.”고 고했다.

이어 “이 불사는 누워 있는 천년을 일으켜 세워 미래 천년을 만들기 위한 거룩하고 당당한 발걸음“이라며 ”이 원력은 부처님 제자들의 마음을 모아 치열한 수행으로 깨달음의 길을 열고 진실한 언어로 부처님 법을 전해 불교중흥의 기틀을 세우고자 하는 굳은 서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마음은 국민의 화합과 행복을 위해 차별과 대립을 걷어내고 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길을 열어 국운 창성을 이루겠다는 진솔한 약속“이며 ”마애부처님을 바로 세우는 일은 천년을 세워 그 공덕으로 개인들은 서원을 성취하고 나라는 부강한 강대국의 위상을 확립하며 불교를 다시 중흥시키겠다는 온 마음, 온 정성을 다한 신실한 원력”이라고 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불사의 시작을 고하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



2007년 마애부처님 발견 후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이를 바로 세우는 것이 가능할지 고민이 많았다. 무게 80톤으로 추정되는 마애 부처님을, 계곡의 좁은 공간에서 마애 부처님을 흠 하나 없이 바로 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원력을 세웠지만, 경주시, 경북도, 문화재청,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공원관리공단 등 관계 기관의 협력이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관계 부처도 조계종의 원력에 힘을 모으겠다고 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시에서 건축역사학회와 산업기술연구원에 용역을 줘 무게 80톤에 달하는 마애부처님을 안전하게 세우고 적절한 장소에 세우기 위한 최적의 방안을 연구하고 있지만, 마애부처님 바로세우기는 경주시의 의지만으로는 힘이 부치는 일이었다.”면서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먼저 힘을 받쳐줘 감사하고 국가적으로 입불에 나서 국민적 관광지로도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발원문을 하는 불국사 직무대행 종천 스님.



박보균 문체부 장관, 최응천 문화재청장,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축사를 보내 “각계 관심을 바탕으로 입불을 위한 최적의 방향을 찾는데 노력하겠다.”며 적극적인 지지와 동참을 약속했다.

이경영 동국대 WISE(와이즈)캠퍼스 총장은 “신라인들의 염원이 담긴 이 땅에서 우리의 이상세계(불국정토) 실현에 대한 염원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며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했다.

고불식 후엔 제11교구본사 불국사, 양양 낙산사가 각각 1억원의 기금을 쾌척했다. 봉선사가 지난 17일 마애 부처님 바로세우기 기금 3,000만원을 희사한 데 이어 종도들의 원력이 모아지고 있다. 낙산사 측은 “큰 산불로 피해가 컸지만 전 국민들의 도움과 사부대중의 동참으로 수년에 걸쳐 복원할 수 있었다”며 “그 때의 원력이 열암곡 마애부처님에게도 모아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조계종은 국운융창과 불교중흥, 그리고 불자들의 자긍심을 세울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불사’의 첫 단추를 채웠다.

31일, 10월의 마지막 날 오후 경주 남산 경주 내남면 노곡리. 새갓골 주차장에 차를 세운 사람들은 산행을 시작했다. 열암곡으로 가는 산길은 좁았다. 처음 몇 분은 그리 가파르지 않은 길이었지만, 이도 잠시 가파른 비탈길이 계속 이어졌다. 옛날엔 바우골(巖谷)이라 한 모양이다. 요즘은 열암곡으로 부른다. 이름처럼 좁은 비탈길과 주변은 바위가 굴러 멈춰선 듯 자리 잡고 있었다. 길 곳곳에 나무뿌리가 드러나 디딤돌 역할을 해주었다. 바위가 계단 역할을 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까지 가는 길에는 세 곳의 사지가 존재한다. 불굴조사 결과 1, 2사지는 3사지와 관련된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지에는 석조 유구를 모아놓았다. 산산조각난 불상도 있었다. 경주 남산에는 머리가 없는 불상이 다수 존재한다.

새갓골 주차장에서 800미터. 멀지 않은 거리지만 좁고 비탈졌고, 곳곳은 미끄러워 간혹 넘어지는 이도 있었다. 가는 길 주변에 기와 조각도 보였다. 땀이 흘렀다. 흐린 날이라던 예보와 달리 쾌청했고, 가파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디디면서 미끄러지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땀은 절로 흘렀다. 숨이 차오를 즈음, 새갓골 주차장에서 30여 분 채 못된 거리에 열암곡 마애부처님이 있었다. 하지만 마애부처님 보다 ‘열암곡 석조좌상’이 먼저 찾는 이를 반겼다.







열암곡 마애부처님은 복원한 ‘열암곡 석불좌상’이 내려다보는 아래쪽에 있었다. 경사면 벼랑에서 떨어진 큰 괴석들이 흩어져 있고, 그 중심에 열암곡 마애부처님이 경주와 하늘을 보지 못하고 땅을 보고 엎어져 있었다. 괴석와 나무와 흙 속에 있던 마애부처님은 ‘열암곡 석불좌상’ 발굴조사 과정에서 세상에 그 존재를 알렸다.

‘열암곡 석불좌상’은 열암곡 마애부처님과 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열암곡 석불좌상’은 경주 남산 백운계 새갓골 제3사지에 불두와 대좌의 중대석이 결실된 상태로 있던 중, 2005년 불상 머리가 확인돼, 보수·정비계획에 따라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불상이 안치된 건물지와 도괴된 마애불상을 발견했다. 사역 안에 건물지가 2동으로 금당 추정 주 건물은 3차에 걸쳐 증축한 것을 확인했다. 창건 당시 금당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후대의 중축으로 일부만 잔존한다. 2차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창건기보다 면적이 커졌다. 출토유물은 통일신라시대의 막새와 기와들이다. 3차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로 규모가 줄어든 모습이다. 근처에 1, 2사지도 3사지와 관련된 곳으로 추정된다. 열암곡 마애부처님과 열암곡 석불좌상의 관계성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인근에 금당지 등 건물지가 발견돼 이곳에 사찰이 존재했고, 마애부처님 역시 이 사찰지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게 80톤으로 추정하는 열암곡 마애부처님은 조선 중기 지진으로 쓰러진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의뢰해 시행한 연구결과 마애부처님은 1430년 진도 7에 가까운 대형지진에 넘어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넘어진지 600년이 넘은 것이다.







원래 위치로 추정되는 경사면을 따라 쓰러지면서 얼굴과 지면이 5cm 차이로 닿지 않아 훼손을 면해 ‘5cm의 기적’으로 불린다. 비탈의 아래쪽에 얼굴이, 원래 봉안된 위치 쪽에 좌대가 있는 상태이며, 주변은 임시 옹벽을 쌓았고, 마애부처님은 철근 가건물로 덮혀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이 부처님 주변에 진동계 등을 설치해 상태를 관찰하고 있다.

이 열암곡 마애부처님 주변에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등 200여 명의 사부대중이 모였다. ‘천년을 세우다-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기 고불식’을 위해서다.

땀을 채 닦을 새도 없이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총무부장 호산 스님, 기획실장 성화 스님, 사회부장 범종 스님이 사부대중을 대표해 마애부처님께 108배를 올렸다. 호산 스님의 죽비 소리에 맞춰 종단 대표인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네 스님은 절하고 또 절했다. 마애부처님 앞 터는 비좁아 더 많은 이들이 108에 동참할 수 없었다.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 동화사 주지 능종 스님, 은해사 주지 덕조 스님, 불국사 주지 직무대행 종천 스님 등 경북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과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 등이 108배를 하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 뒤에서 합장해 염불하며 ‘천년을 세우기’ 위한 원력을 모았다.

108배를 마치고 고불식 의례에 이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향을 올렸고, 종회의장 정문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이 차를 올렸다. 그리고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등 대구경북 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 등이 꽃을 올렸다. 







108배를 마친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고 곧 절한 의미를 설명했다.

진우 스님은 “오늘 열암곡 마애 부처님을 바로 모시기 108배를 하면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함께 축원했다.”며 “우리 불교의 목적은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인데 뜻밖의 참변을 당하니 매우 비통하다. 다시는 이렇게 예견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진력해야겠다.”고 했다.

이어 “부처님께서 뭇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평생을 길에서 전법 하셨듯이 우리 불제자들이 더욱 발심하여 정진하자.”면서 “우리 사회 미래인 청년들을 보호하고 밝은 내일을 열기 위해 진력하자. 종단은 희생자와 가족들의 슬픔을 함께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종정 성파 대종사에게 금일봉을 받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왼쪽),



진우 스님은 이날 오전 종정 성파 대종사를 예방했다. 종정 성파 대종사는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는 데 쓰라고 금일봉을 진우 스님에게 전달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에 종단의 신성인 종정 스님부터 종무행정의 수반인 총무원장, 그리고 재가불자들까지 원력을 더한 것이다.

이어 진우 스님은 마애부처님 전에 종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서 원래 모습으로 바로 모실 것을 고했다. 진우 스님은 제37대 총무원장 임기 개시 직후 중앙종무기관 종무원 특강에서 “예경의 대상인 부처님을 천년 넘도록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우리의 직무유기”라며 “어떤 식으로든 총력을 기울여 하루빨리 부처님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했다. 이어 10월 5일 취임법회에서 종책사업으로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세우기’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공표했고, 10월 12일 종무회의에서 불사 슬로건을 ‘천년을 세우다’로 제안하고, 불교계만 아닌 대국민 원력 불사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같은 달 18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예방 때 “천년 간 방치된 부처님을 바로 세움으로써 국민에게 다시 도약할 기운을 불어넣겠다.”고 했고, 19일에는 최응천 문화재청장 예방 때 “천년 간 누워 있던 부처님을 세우는 일은 종교적인 차원을 떠나 민족의 얼을 되살리는 것”이라며 “문화재는 한 나라와 민족의 얼굴이다. 이를 보존 계승하는 건 후손으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날 10월 31일 오후 2시 열암곡 마애부처님 앞에서 종책사업으로 ‘바로 모실 것’을 약속했다.



차를 올리는 종회의장 정문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취임 후 반복해 열암곡 마애부처님의 ‘기립(起立)’을 강조했다. 천년을 세우는 일이 국운융창과 불교중흥의 시작일 것이라는 뜻에서다. 또 마애부처님을 바로 모시는 것이 불자들의 자긍심을 세우는 불사라고 말해 왔다.

진우 스님은 고불식에서 “천년을 쓰러져 계신 마애부처님을 온전히 모시기 위한 사부대중의 간곡한 원력이 모였다. 지금 이 자리, 간절한 서원으로 마애 부처님을 바로 모셔 천년을 세우기 위한 첫걸음을 시작한다.”고 고했다.

이어 “이 불사는 누워 있는 천년을 일으켜 세워 미래 천년을 만들기 위한 거룩하고 당당한 발걸음“이라며 ”이 원력은 부처님 제자들의 마음을 모아 치열한 수행으로 깨달음의 길을 열고 진실한 언어로 부처님 법을 전해 불교중흥의 기틀을 세우고자 하는 굳은 서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마음은 국민의 화합과 행복을 위해 차별과 대립을 걷어내고 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길을 열어 국운 창성을 이루겠다는 진솔한 약속“이며 ”마애부처님을 바로 세우는 일은 천년을 세워 그 공덕으로 개인들은 서원을 성취하고 나라는 부강한 강대국의 위상을 확립하며 불교를 다시 중흥시키겠다는 온 마음, 온 정성을 다한 신실한 원력”이라고 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불사의 시작을 고하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



2007년 마애부처님 발견 후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이를 바로 세우는 것이 가능할지 고민이 많았다. 무게 80톤으로 추정되는 마애 부처님을, 계곡의 좁은 공간에서 마애 부처님을 흠 하나 없이 바로 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원력을 세웠지만, 경주시, 경북도, 문화재청,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공원관리공단 등 관계 기관의 협력이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관계 부처도 조계종의 원력에 힘을 모으겠다고 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시에서 건축역사학회와 산업기술연구원에 용역을 줘 무게 80톤에 달하는 마애부처님을 안전하게 세우고 적절한 장소에 세우기 위한 최적의 방안을 연구하고 있지만, 마애부처님 바로세우기는 경주시의 의지만으로는 힘이 부치는 일이었다.”면서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먼저 힘을 받쳐줘 감사하고 국가적으로 입불에 나서 국민적 관광지로도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발원문을 하는 불국사 직무대행 종천 스님.



박보균 문체부 장관, 최응천 문화재청장,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축사를 보내 “각계 관심을 바탕으로 입불을 위한 최적의 방향을 찾는데 노력하겠다.”며 적극적인 지지와 동참을 약속했다.

이경영 동국대 WISE(와이즈)캠퍼스 총장은 “신라인들의 염원이 담긴 이 땅에서 우리의 이상세계(불국정토) 실현에 대한 염원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며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했다.

고불식 후엔 제11교구본사 불국사, 양양 낙산사가 각각 1억원의 기금을 쾌척했다. 봉선사가 지난 17일 마애 부처님 바로세우기 기금 3,000만원을 희사한 데 이어 종도들의 원력이 모아지고 있다. 낙산사 측은 “큰 산불로 피해가 컸지만 전 국민들의 도움과 사부대중의 동참으로 수년에 걸쳐 복원할 수 있었다”며 “그 때의 원력이 열암곡 마애부처님에게도 모아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조계종은 국운융창과 불교중흥, 그리고 불자들의 자긍심을 세울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불사’의 첫 단추를 채웠다.

31일, 10월의 마지막 날 오후 경주 남산 경주 내남면 노곡리. 새갓골 주차장에 차를 세운 사람들은 산행을 시작했다. 열암곡으로 가는 산길은 좁았다. 처음 몇 분은 그리 가파르지 않은 길이었지만, 이도 잠시 가파른 비탈길이 계속 이어졌다. 옛날엔 바우골(巖谷)이라 한 모양이다. 요즘은 열암곡으로 부른다. 이름처럼 좁은 비탈길과 주변은 바위가 굴러 멈춰선 듯 자리 잡고 있었다. 길 곳곳에 나무뿌리가 드러나 디딤돌 역할을 해주었다. 바위가 계단 역할을 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까지 가는 길에는 세 곳의 사지가 존재한다. 불굴조사 결과 1, 2사지는 3사지와 관련된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지에는 석조 유구를 모아놓았다. 산산조각난 불상도 있었다. 경주 남산에는 머리가 없는 불상이 다수 존재한다.

새갓골 주차장에서 800미터. 멀지 않은 거리지만 좁고 비탈졌고, 곳곳은 미끄러워 간혹 넘어지는 이도 있었다. 가는 길 주변에 기와 조각도 보였다. 땀이 흘렀다. 흐린 날이라던 예보와 달리 쾌청했고, 가파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디디면서 미끄러지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땀은 절로 흘렀다. 숨이 차오를 즈음, 새갓골 주차장에서 30여 분 채 못된 거리에 열암곡 마애부처님이 있었다. 하지만 마애부처님 보다 ‘열암곡 석조좌상’이 먼저 찾는 이를 반겼다.







열암곡 마애부처님은 복원한 ‘열암곡 석불좌상’이 내려다보는 아래쪽에 있었다. 경사면 벼랑에서 떨어진 큰 괴석들이 흩어져 있고, 그 중심에 열암곡 마애부처님이 경주와 하늘을 보지 못하고 땅을 보고 엎어져 있었다. 괴석와 나무와 흙 속에 있던 마애부처님은 ‘열암곡 석불좌상’ 발굴조사 과정에서 세상에 그 존재를 알렸다.

‘열암곡 석불좌상’은 열암곡 마애부처님과 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열암곡 석불좌상’은 경주 남산 백운계 새갓골 제3사지에 불두와 대좌의 중대석이 결실된 상태로 있던 중, 2005년 불상 머리가 확인돼, 보수·정비계획에 따라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불상이 안치된 건물지와 도괴된 마애불상을 발견했다. 사역 안에 건물지가 2동으로 금당 추정 주 건물은 3차에 걸쳐 증축한 것을 확인했다. 창건 당시 금당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후대의 중축으로 일부만 잔존한다. 2차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창건기보다 면적이 커졌다. 출토유물은 통일신라시대의 막새와 기와들이다. 3차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로 규모가 줄어든 모습이다. 근처에 1, 2사지도 3사지와 관련된 곳으로 추정된다. 열암곡 마애부처님과 열암곡 석불좌상의 관계성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인근에 금당지 등 건물지가 발견돼 이곳에 사찰이 존재했고, 마애부처님 역시 이 사찰지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게 80톤으로 추정하는 열암곡 마애부처님은 조선 중기 지진으로 쓰러진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의뢰해 시행한 연구결과 마애부처님은 1430년 진도 7에 가까운 대형지진에 넘어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넘어진지 600년이 넘은 것이다.







원래 위치로 추정되는 경사면을 따라 쓰러지면서 얼굴과 지면이 5cm 차이로 닿지 않아 훼손을 면해 ‘5cm의 기적’으로 불린다. 비탈의 아래쪽에 얼굴이, 원래 봉안된 위치 쪽에 좌대가 있는 상태이며, 주변은 임시 옹벽을 쌓았고, 마애부처님은 철근 가건물로 덮혀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이 부처님 주변에 진동계 등을 설치해 상태를 관찰하고 있다.

이 열암곡 마애부처님 주변에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등 200여 명의 사부대중이 모였다. ‘천년을 세우다-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기 고불식’을 위해서다.

땀을 채 닦을 새도 없이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총무부장 호산 스님, 기획실장 성화 스님, 사회부장 범종 스님이 사부대중을 대표해 마애부처님께 108배를 올렸다. 호산 스님의 죽비 소리에 맞춰 종단 대표인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네 스님은 절하고 또 절했다. 마애부처님 앞 터는 비좁아 더 많은 이들이 108에 동참할 수 없었다.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 동화사 주지 능종 스님, 은해사 주지 덕조 스님, 불국사 주지 직무대행 종천 스님 등 경북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과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 등이 108배를 하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 뒤에서 합장해 염불하며 ‘천년을 세우기’ 위한 원력을 모았다.

108배를 마치고 고불식 의례에 이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향을 올렸고, 종회의장 정문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이 차를 올렸다. 그리고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등 대구경북 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 등이 꽃을 올렸다. 







108배를 마친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고 곧 절한 의미를 설명했다.

진우 스님은 “오늘 열암곡 마애 부처님을 바로 모시기 108배를 하면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함께 축원했다.”며 “우리 불교의 목적은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인데 뜻밖의 참변을 당하니 매우 비통하다. 다시는 이렇게 예견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진력해야겠다.”고 했다.

이어 “부처님께서 뭇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평생을 길에서 전법 하셨듯이 우리 불제자들이 더욱 발심하여 정진하자.”면서 “우리 사회 미래인 청년들을 보호하고 밝은 내일을 열기 위해 진력하자. 종단은 희생자와 가족들의 슬픔을 함께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종정 성파 대종사에게 금일봉을 받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왼쪽),



진우 스님은 이날 오전 종정 성파 대종사를 예방했다. 종정 성파 대종사는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는 데 쓰라고 금일봉을 진우 스님에게 전달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에 종단의 신성인 종정 스님부터 종무행정의 수반인 총무원장, 그리고 재가불자들까지 원력을 더한 것이다.

이어 진우 스님은 마애부처님 전에 종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서 원래 모습으로 바로 모실 것을 고했다. 진우 스님은 제37대 총무원장 임기 개시 직후 중앙종무기관 종무원 특강에서 “예경의 대상인 부처님을 천년 넘도록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우리의 직무유기”라며 “어떤 식으로든 총력을 기울여 하루빨리 부처님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했다. 이어 10월 5일 취임법회에서 종책사업으로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세우기’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공표했고, 10월 12일 종무회의에서 불사 슬로건을 ‘천년을 세우다’로 제안하고, 불교계만 아닌 대국민 원력 불사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같은 달 18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예방 때 “천년 간 방치된 부처님을 바로 세움으로써 국민에게 다시 도약할 기운을 불어넣겠다.”고 했고, 19일에는 최응천 문화재청장 예방 때 “천년 간 누워 있던 부처님을 세우는 일은 종교적인 차원을 떠나 민족의 얼을 되살리는 것”이라며 “문화재는 한 나라와 민족의 얼굴이다. 이를 보존 계승하는 건 후손으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날 10월 31일 오후 2시 열암곡 마애부처님 앞에서 종책사업으로 ‘바로 모실 것’을 약속했다.



차를 올리는 종회의장 정문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취임 후 반복해 열암곡 마애부처님의 ‘기립(起立)’을 강조했다. 천년을 세우는 일이 국운융창과 불교중흥의 시작일 것이라는 뜻에서다. 또 마애부처님을 바로 모시는 것이 불자들의 자긍심을 세우는 불사라고 말해 왔다.

진우 스님은 고불식에서 “천년을 쓰러져 계신 마애부처님을 온전히 모시기 위한 사부대중의 간곡한 원력이 모였다. 지금 이 자리, 간절한 서원으로 마애 부처님을 바로 모셔 천년을 세우기 위한 첫걸음을 시작한다.”고 고했다.

이어 “이 불사는 누워 있는 천년을 일으켜 세워 미래 천년을 만들기 위한 거룩하고 당당한 발걸음“이라며 ”이 원력은 부처님 제자들의 마음을 모아 치열한 수행으로 깨달음의 길을 열고 진실한 언어로 부처님 법을 전해 불교중흥의 기틀을 세우고자 하는 굳은 서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마음은 국민의 화합과 행복을 위해 차별과 대립을 걷어내고 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길을 열어 국운 창성을 이루겠다는 진솔한 약속“이며 ”마애부처님을 바로 세우는 일은 천년을 세워 그 공덕으로 개인들은 서원을 성취하고 나라는 부강한 강대국의 위상을 확립하며 불교를 다시 중흥시키겠다는 온 마음, 온 정성을 다한 신실한 원력”이라고 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불사의 시작을 고하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



2007년 마애부처님 발견 후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이를 바로 세우는 것이 가능할지 고민이 많았다. 무게 80톤으로 추정되는 마애 부처님을, 계곡의 좁은 공간에서 마애 부처님을 흠 하나 없이 바로 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원력을 세웠지만, 경주시, 경북도, 문화재청,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공원관리공단 등 관계 기관의 협력이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관계 부처도 조계종의 원력에 힘을 모으겠다고 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시에서 건축역사학회와 산업기술연구원에 용역을 줘 무게 80톤에 달하는 마애부처님을 안전하게 세우고 적절한 장소에 세우기 위한 최적의 방안을 연구하고 있지만, 마애부처님 바로세우기는 경주시의 의지만으로는 힘이 부치는 일이었다.”면서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먼저 힘을 받쳐줘 감사하고 국가적으로 입불에 나서 국민적 관광지로도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발원문을 하는 불국사 직무대행 종천 스님.



박보균 문체부 장관, 최응천 문화재청장,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축사를 보내 “각계 관심을 바탕으로 입불을 위한 최적의 방향을 찾는데 노력하겠다.”며 적극적인 지지와 동참을 약속했다.

이경영 동국대 WISE(와이즈)캠퍼스 총장은 “신라인들의 염원이 담긴 이 땅에서 우리의 이상세계(불국정토) 실현에 대한 염원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며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했다.

고불식 후엔 제11교구본사 불국사, 양양 낙산사가 각각 1억원의 기금을 쾌척했다. 봉선사가 지난 17일 마애 부처님 바로세우기 기금 3,000만원을 희사한 데 이어 종도들의 원력이 모아지고 있다. 낙산사 측은 “큰 산불로 피해가 컸지만 전 국민들의 도움과 사부대중의 동참으로 수년에 걸쳐 복원할 수 있었다”며 “그 때의 원력이 열암곡 마애부처님에게도 모아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조계종은 국운융창과 불교중흥, 그리고 불자들의 자긍심을 세울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불사’의 첫 단추를 채웠다.

31일, 10월의 마지막 날 오후 경주 남산 경주 내남면 노곡리. 새갓골 주차장에 차를 세운 사람들은 산행을 시작했다. 열암곡으로 가는 산길은 좁았다. 처음 몇 분은 그리 가파르지 않은 길이었지만, 이도 잠시 가파른 비탈길이 계속 이어졌다. 옛날엔 바우골(巖谷)이라 한 모양이다. 요즘은 열암곡으로 부른다. 이름처럼 좁은 비탈길과 주변은 바위가 굴러 멈춰선 듯 자리 잡고 있었다. 길 곳곳에 나무뿌리가 드러나 디딤돌 역할을 해주었다. 바위가 계단 역할을 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까지 가는 길에는 세 곳의 사지가 존재한다. 불굴조사 결과 1, 2사지는 3사지와 관련된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지에는 석조 유구를 모아놓았다. 산산조각난 불상도 있었다. 경주 남산에는 머리가 없는 불상이 다수 존재한다.

새갓골 주차장에서 800미터. 멀지 않은 거리지만 좁고 비탈졌고, 곳곳은 미끄러워 간혹 넘어지는 이도 있었다. 가는 길 주변에 기와 조각도 보였다. 땀이 흘렀다. 흐린 날이라던 예보와 달리 쾌청했고, 가파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디디면서 미끄러지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땀은 절로 흘렀다. 숨이 차오를 즈음, 새갓골 주차장에서 30여 분 채 못된 거리에 열암곡 마애부처님이 있었다. 하지만 마애부처님 보다 ‘열암곡 석조좌상’이 먼저 찾는 이를 반겼다.







열암곡 마애부처님은 복원한 ‘열암곡 석불좌상’이 내려다보는 아래쪽에 있었다. 경사면 벼랑에서 떨어진 큰 괴석들이 흩어져 있고, 그 중심에 열암곡 마애부처님이 경주와 하늘을 보지 못하고 땅을 보고 엎어져 있었다. 괴석와 나무와 흙 속에 있던 마애부처님은 ‘열암곡 석불좌상’ 발굴조사 과정에서 세상에 그 존재를 알렸다.

‘열암곡 석불좌상’은 열암곡 마애부처님과 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열암곡 석불좌상’은 경주 남산 백운계 새갓골 제3사지에 불두와 대좌의 중대석이 결실된 상태로 있던 중, 2005년 불상 머리가 확인돼, 보수·정비계획에 따라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불상이 안치된 건물지와 도괴된 마애불상을 발견했다. 사역 안에 건물지가 2동으로 금당 추정 주 건물은 3차에 걸쳐 증축한 것을 확인했다. 창건 당시 금당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후대의 중축으로 일부만 잔존한다. 2차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창건기보다 면적이 커졌다. 출토유물은 통일신라시대의 막새와 기와들이다. 3차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로 규모가 줄어든 모습이다. 근처에 1, 2사지도 3사지와 관련된 곳으로 추정된다. 열암곡 마애부처님과 열암곡 석불좌상의 관계성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인근에 금당지 등 건물지가 발견돼 이곳에 사찰이 존재했고, 마애부처님 역시 이 사찰지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게 80톤으로 추정하는 열암곡 마애부처님은 조선 중기 지진으로 쓰러진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의뢰해 시행한 연구결과 마애부처님은 1430년 진도 7에 가까운 대형지진에 넘어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넘어진지 600년이 넘은 것이다.







원래 위치로 추정되는 경사면을 따라 쓰러지면서 얼굴과 지면이 5cm 차이로 닿지 않아 훼손을 면해 ‘5cm의 기적’으로 불린다. 비탈의 아래쪽에 얼굴이, 원래 봉안된 위치 쪽에 좌대가 있는 상태이며, 주변은 임시 옹벽을 쌓았고, 마애부처님은 철근 가건물로 덮혀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이 부처님 주변에 진동계 등을 설치해 상태를 관찰하고 있다.

이 열암곡 마애부처님 주변에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등 200여 명의 사부대중이 모였다. ‘천년을 세우다-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기 고불식’을 위해서다.

땀을 채 닦을 새도 없이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총무부장 호산 스님, 기획실장 성화 스님, 사회부장 범종 스님이 사부대중을 대표해 마애부처님께 108배를 올렸다. 호산 스님의 죽비 소리에 맞춰 종단 대표인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네 스님은 절하고 또 절했다. 마애부처님 앞 터는 비좁아 더 많은 이들이 108에 동참할 수 없었다.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 동화사 주지 능종 스님, 은해사 주지 덕조 스님, 불국사 주지 직무대행 종천 스님 등 경북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과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 등이 108배를 하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 뒤에서 합장해 염불하며 ‘천년을 세우기’ 위한 원력을 모았다.

108배를 마치고 고불식 의례에 이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향을 올렸고, 종회의장 정문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이 차를 올렸다. 그리고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등 대구경북 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 등이 꽃을 올렸다. 







108배를 마친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고 곧 절한 의미를 설명했다.

진우 스님은 “오늘 열암곡 마애 부처님을 바로 모시기 108배를 하면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함께 축원했다.”며 “우리 불교의 목적은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인데 뜻밖의 참변을 당하니 매우 비통하다. 다시는 이렇게 예견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진력해야겠다.”고 했다.

이어 “부처님께서 뭇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평생을 길에서 전법 하셨듯이 우리 불제자들이 더욱 발심하여 정진하자.”면서 “우리 사회 미래인 청년들을 보호하고 밝은 내일을 열기 위해 진력하자. 종단은 희생자와 가족들의 슬픔을 함께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종정 성파 대종사에게 금일봉을 받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왼쪽),



진우 스님은 이날 오전 종정 성파 대종사를 예방했다. 종정 성파 대종사는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는 데 쓰라고 금일봉을 진우 스님에게 전달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에 종단의 신성인 종정 스님부터 종무행정의 수반인 총무원장, 그리고 재가불자들까지 원력을 더한 것이다.

이어 진우 스님은 마애부처님 전에 종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서 원래 모습으로 바로 모실 것을 고했다. 진우 스님은 제37대 총무원장 임기 개시 직후 중앙종무기관 종무원 특강에서 “예경의 대상인 부처님을 천년 넘도록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우리의 직무유기”라며 “어떤 식으로든 총력을 기울여 하루빨리 부처님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했다. 이어 10월 5일 취임법회에서 종책사업으로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세우기’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공표했고, 10월 12일 종무회의에서 불사 슬로건을 ‘천년을 세우다’로 제안하고, 불교계만 아닌 대국민 원력 불사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같은 달 18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예방 때 “천년 간 방치된 부처님을 바로 세움으로써 국민에게 다시 도약할 기운을 불어넣겠다.”고 했고, 19일에는 최응천 문화재청장 예방 때 “천년 간 누워 있던 부처님을 세우는 일은 종교적인 차원을 떠나 민족의 얼을 되살리는 것”이라며 “문화재는 한 나라와 민족의 얼굴이다. 이를 보존 계승하는 건 후손으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날 10월 31일 오후 2시 열암곡 마애부처님 앞에서 종책사업으로 ‘바로 모실 것’을 약속했다.



차를 올리는 종회의장 정문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취임 후 반복해 열암곡 마애부처님의 ‘기립(起立)’을 강조했다. 천년을 세우는 일이 국운융창과 불교중흥의 시작일 것이라는 뜻에서다. 또 마애부처님을 바로 모시는 것이 불자들의 자긍심을 세우는 불사라고 말해 왔다.

진우 스님은 고불식에서 “천년을 쓰러져 계신 마애부처님을 온전히 모시기 위한 사부대중의 간곡한 원력이 모였다. 지금 이 자리, 간절한 서원으로 마애 부처님을 바로 모셔 천년을 세우기 위한 첫걸음을 시작한다.”고 고했다.

이어 “이 불사는 누워 있는 천년을 일으켜 세워 미래 천년을 만들기 위한 거룩하고 당당한 발걸음“이라며 ”이 원력은 부처님 제자들의 마음을 모아 치열한 수행으로 깨달음의 길을 열고 진실한 언어로 부처님 법을 전해 불교중흥의 기틀을 세우고자 하는 굳은 서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마음은 국민의 화합과 행복을 위해 차별과 대립을 걷어내고 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길을 열어 국운 창성을 이루겠다는 진솔한 약속“이며 ”마애부처님을 바로 세우는 일은 천년을 세워 그 공덕으로 개인들은 서원을 성취하고 나라는 부강한 강대국의 위상을 확립하며 불교를 다시 중흥시키겠다는 온 마음, 온 정성을 다한 신실한 원력”이라고 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불사의 시작을 고하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



2007년 마애부처님 발견 후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이를 바로 세우는 것이 가능할지 고민이 많았다. 무게 80톤으로 추정되는 마애 부처님을, 계곡의 좁은 공간에서 마애 부처님을 흠 하나 없이 바로 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원력을 세웠지만, 경주시, 경북도, 문화재청,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공원관리공단 등 관계 기관의 협력이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관계 부처도 조계종의 원력에 힘을 모으겠다고 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시에서 건축역사학회와 산업기술연구원에 용역을 줘 무게 80톤에 달하는 마애부처님을 안전하게 세우고 적절한 장소에 세우기 위한 최적의 방안을 연구하고 있지만, 마애부처님 바로세우기는 경주시의 의지만으로는 힘이 부치는 일이었다.”면서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먼저 힘을 받쳐줘 감사하고 국가적으로 입불에 나서 국민적 관광지로도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발원문을 하는 불국사 직무대행 종천 스님.



박보균 문체부 장관, 최응천 문화재청장,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축사를 보내 “각계 관심을 바탕으로 입불을 위한 최적의 방향을 찾는데 노력하겠다.”며 적극적인 지지와 동참을 약속했다.

이경영 동국대 WISE(와이즈)캠퍼스 총장은 “신라인들의 염원이 담긴 이 땅에서 우리의 이상세계(불국정토) 실현에 대한 염원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며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했다.

고불식 후엔 제11교구본사 불국사, 양양 낙산사가 각각 1억원의 기금을 쾌척했다. 봉선사가 지난 17일 마애 부처님 바로세우기 기금 3,000만원을 희사한 데 이어 종도들의 원력이 모아지고 있다. 낙산사 측은 “큰 산불로 피해가 컸지만 전 국민들의 도움과 사부대중의 동참으로 수년에 걸쳐 복원할 수 있었다”며 “그 때의 원력이 열암곡 마애부처님에게도 모아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조계종은 국운융창과 불교중흥, 그리고 불자들의 자긍심을 세울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불사’의 첫 단추를 채웠다.

31일, 10월의 마지막 날 오후 경주 남산 경주 내남면 노곡리. 새갓골 주차장에 차를 세운 사람들은 산행을 시작했다. 열암곡으로 가는 산길은 좁았다. 처음 몇 분은 그리 가파르지 않은 길이었지만, 이도 잠시 가파른 비탈길이 계속 이어졌다. 옛날엔 바우골(巖谷)이라 한 모양이다. 요즘은 열암곡으로 부른다. 이름처럼 좁은 비탈길과 주변은 바위가 굴러 멈춰선 듯 자리 잡고 있었다. 길 곳곳에 나무뿌리가 드러나 디딤돌 역할을 해주었다. 바위가 계단 역할을 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까지 가는 길에는 세 곳의 사지가 존재한다. 불굴조사 결과 1, 2사지는 3사지와 관련된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지에는 석조 유구를 모아놓았다. 산산조각난 불상도 있었다. 경주 남산에는 머리가 없는 불상이 다수 존재한다.

새갓골 주차장에서 800미터. 멀지 않은 거리지만 좁고 비탈졌고, 곳곳은 미끄러워 간혹 넘어지는 이도 있었다. 가는 길 주변에 기와 조각도 보였다. 땀이 흘렀다. 흐린 날이라던 예보와 달리 쾌청했고, 가파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디디면서 미끄러지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땀은 절로 흘렀다. 숨이 차오를 즈음, 새갓골 주차장에서 30여 분 채 못된 거리에 열암곡 마애부처님이 있었다. 하지만 마애부처님 보다 ‘열암곡 석조좌상’이 먼저 찾는 이를 반겼다.







열암곡 마애부처님은 복원한 ‘열암곡 석불좌상’이 내려다보는 아래쪽에 있었다. 경사면 벼랑에서 떨어진 큰 괴석들이 흩어져 있고, 그 중심에 열암곡 마애부처님이 경주와 하늘을 보지 못하고 땅을 보고 엎어져 있었다. 괴석와 나무와 흙 속에 있던 마애부처님은 ‘열암곡 석불좌상’ 발굴조사 과정에서 세상에 그 존재를 알렸다.

‘열암곡 석불좌상’은 열암곡 마애부처님과 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열암곡 석불좌상’은 경주 남산 백운계 새갓골 제3사지에 불두와 대좌의 중대석이 결실된 상태로 있던 중, 2005년 불상 머리가 확인돼, 보수·정비계획에 따라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불상이 안치된 건물지와 도괴된 마애불상을 발견했다. 사역 안에 건물지가 2동으로 금당 추정 주 건물은 3차에 걸쳐 증축한 것을 확인했다. 창건 당시 금당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후대의 중축으로 일부만 잔존한다. 2차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창건기보다 면적이 커졌다. 출토유물은 통일신라시대의 막새와 기와들이다. 3차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로 규모가 줄어든 모습이다. 근처에 1, 2사지도 3사지와 관련된 곳으로 추정된다. 열암곡 마애부처님과 열암곡 석불좌상의 관계성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인근에 금당지 등 건물지가 발견돼 이곳에 사찰이 존재했고, 마애부처님 역시 이 사찰지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게 80톤으로 추정하는 열암곡 마애부처님은 조선 중기 지진으로 쓰러진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의뢰해 시행한 연구결과 마애부처님은 1430년 진도 7에 가까운 대형지진에 넘어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넘어진지 600년이 넘은 것이다.







원래 위치로 추정되는 경사면을 따라 쓰러지면서 얼굴과 지면이 5cm 차이로 닿지 않아 훼손을 면해 ‘5cm의 기적’으로 불린다. 비탈의 아래쪽에 얼굴이, 원래 봉안된 위치 쪽에 좌대가 있는 상태이며, 주변은 임시 옹벽을 쌓았고, 마애부처님은 철근 가건물로 덮혀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이 부처님 주변에 진동계 등을 설치해 상태를 관찰하고 있다.

이 열암곡 마애부처님 주변에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등 200여 명의 사부대중이 모였다. ‘천년을 세우다-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기 고불식’을 위해서다.

땀을 채 닦을 새도 없이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총무부장 호산 스님, 기획실장 성화 스님, 사회부장 범종 스님이 사부대중을 대표해 마애부처님께 108배를 올렸다. 호산 스님의 죽비 소리에 맞춰 종단 대표인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네 스님은 절하고 또 절했다. 마애부처님 앞 터는 비좁아 더 많은 이들이 108에 동참할 수 없었다.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 동화사 주지 능종 스님, 은해사 주지 덕조 스님, 불국사 주지 직무대행 종천 스님 등 경북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과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 등이 108배를 하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 뒤에서 합장해 염불하며 ‘천년을 세우기’ 위한 원력을 모았다.

108배를 마치고 고불식 의례에 이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향을 올렸고, 종회의장 정문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이 차를 올렸다. 그리고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등 대구경북 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 등이 꽃을 올렸다. 







108배를 마친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고 곧 절한 의미를 설명했다.

진우 스님은 “오늘 열암곡 마애 부처님을 바로 모시기 108배를 하면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함께 축원했다.”며 “우리 불교의 목적은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인데 뜻밖의 참변을 당하니 매우 비통하다. 다시는 이렇게 예견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진력해야겠다.”고 했다.

이어 “부처님께서 뭇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평생을 길에서 전법 하셨듯이 우리 불제자들이 더욱 발심하여 정진하자.”면서 “우리 사회 미래인 청년들을 보호하고 밝은 내일을 열기 위해 진력하자. 종단은 희생자와 가족들의 슬픔을 함께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종정 성파 대종사에게 금일봉을 받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왼쪽),



진우 스님은 이날 오전 종정 성파 대종사를 예방했다. 종정 성파 대종사는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는 데 쓰라고 금일봉을 진우 스님에게 전달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에 종단의 신성인 종정 스님부터 종무행정의 수반인 총무원장, 그리고 재가불자들까지 원력을 더한 것이다.

이어 진우 스님은 마애부처님 전에 종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서 원래 모습으로 바로 모실 것을 고했다. 진우 스님은 제37대 총무원장 임기 개시 직후 중앙종무기관 종무원 특강에서 “예경의 대상인 부처님을 천년 넘도록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우리의 직무유기”라며 “어떤 식으로든 총력을 기울여 하루빨리 부처님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했다. 이어 10월 5일 취임법회에서 종책사업으로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세우기’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공표했고, 10월 12일 종무회의에서 불사 슬로건을 ‘천년을 세우다’로 제안하고, 불교계만 아닌 대국민 원력 불사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같은 달 18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예방 때 “천년 간 방치된 부처님을 바로 세움으로써 국민에게 다시 도약할 기운을 불어넣겠다.”고 했고, 19일에는 최응천 문화재청장 예방 때 “천년 간 누워 있던 부처님을 세우는 일은 종교적인 차원을 떠나 민족의 얼을 되살리는 것”이라며 “문화재는 한 나라와 민족의 얼굴이다. 이를 보존 계승하는 건 후손으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날 10월 31일 오후 2시 열암곡 마애부처님 앞에서 종책사업으로 ‘바로 모실 것’을 약속했다.



차를 올리는 종회의장 정문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취임 후 반복해 열암곡 마애부처님의 ‘기립(起立)’을 강조했다. 천년을 세우는 일이 국운융창과 불교중흥의 시작일 것이라는 뜻에서다. 또 마애부처님을 바로 모시는 것이 불자들의 자긍심을 세우는 불사라고 말해 왔다.

진우 스님은 고불식에서 “천년을 쓰러져 계신 마애부처님을 온전히 모시기 위한 사부대중의 간곡한 원력이 모였다. 지금 이 자리, 간절한 서원으로 마애 부처님을 바로 모셔 천년을 세우기 위한 첫걸음을 시작한다.”고 고했다.

이어 “이 불사는 누워 있는 천년을 일으켜 세워 미래 천년을 만들기 위한 거룩하고 당당한 발걸음“이라며 ”이 원력은 부처님 제자들의 마음을 모아 치열한 수행으로 깨달음의 길을 열고 진실한 언어로 부처님 법을 전해 불교중흥의 기틀을 세우고자 하는 굳은 서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마음은 국민의 화합과 행복을 위해 차별과 대립을 걷어내고 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길을 열어 국운 창성을 이루겠다는 진솔한 약속“이며 ”마애부처님을 바로 세우는 일은 천년을 세워 그 공덕으로 개인들은 서원을 성취하고 나라는 부강한 강대국의 위상을 확립하며 불교를 다시 중흥시키겠다는 온 마음, 온 정성을 다한 신실한 원력”이라고 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불사의 시작을 고하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



2007년 마애부처님 발견 후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이를 바로 세우는 것이 가능할지 고민이 많았다. 무게 80톤으로 추정되는 마애 부처님을, 계곡의 좁은 공간에서 마애 부처님을 흠 하나 없이 바로 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원력을 세웠지만, 경주시, 경북도, 문화재청,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공원관리공단 등 관계 기관의 협력이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관계 부처도 조계종의 원력에 힘을 모으겠다고 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시에서 건축역사학회와 산업기술연구원에 용역을 줘 무게 80톤에 달하는 마애부처님을 안전하게 세우고 적절한 장소에 세우기 위한 최적의 방안을 연구하고 있지만, 마애부처님 바로세우기는 경주시의 의지만으로는 힘이 부치는 일이었다.”면서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먼저 힘을 받쳐줘 감사하고 국가적으로 입불에 나서 국민적 관광지로도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발원문을 하는 불국사 직무대행 종천 스님.



박보균 문체부 장관, 최응천 문화재청장,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축사를 보내 “각계 관심을 바탕으로 입불을 위한 최적의 방향을 찾는데 노력하겠다.”며 적극적인 지지와 동참을 약속했다.

이경영 동국대 WISE(와이즈)캠퍼스 총장은 “신라인들의 염원이 담긴 이 땅에서 우리의 이상세계(불국정토) 실현에 대한 염원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며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했다.

고불식 후엔 제11교구본사 불국사, 양양 낙산사가 각각 1억원의 기금을 쾌척했다. 봉선사가 지난 17일 마애 부처님 바로세우기 기금 3,000만원을 희사한 데 이어 종도들의 원력이 모아지고 있다. 낙산사 측은 “큰 산불로 피해가 컸지만 전 국민들의 도움과 사부대중의 동참으로 수년에 걸쳐 복원할 수 있었다”며 “그 때의 원력이 열암곡 마애부처님에게도 모아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조계종은 국운융창과 불교중흥, 그리고 불자들의 자긍심을 세울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불사’의 첫 단추를 채웠다.

31일, 10월의 마지막 날 오후 경주 남산 경주 내남면 노곡리. 새갓골 주차장에 차를 세운 사람들은 산행을 시작했다. 열암곡으로 가는 산길은 좁았다. 처음 몇 분은 그리 가파르지 않은 길이었지만, 이도 잠시 가파른 비탈길이 계속 이어졌다. 옛날엔 바우골(巖谷)이라 한 모양이다. 요즘은 열암곡으로 부른다. 이름처럼 좁은 비탈길과 주변은 바위가 굴러 멈춰선 듯 자리 잡고 있었다. 길 곳곳에 나무뿌리가 드러나 디딤돌 역할을 해주었다. 바위가 계단 역할을 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까지 가는 길에는 세 곳의 사지가 존재한다. 불굴조사 결과 1, 2사지는 3사지와 관련된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지에는 석조 유구를 모아놓았다. 산산조각난 불상도 있었다. 경주 남산에는 머리가 없는 불상이 다수 존재한다.

새갓골 주차장에서 800미터. 멀지 않은 거리지만 좁고 비탈졌고, 곳곳은 미끄러워 간혹 넘어지는 이도 있었다. 가는 길 주변에 기와 조각도 보였다. 땀이 흘렀다. 흐린 날이라던 예보와 달리 쾌청했고, 가파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디디면서 미끄러지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땀은 절로 흘렀다. 숨이 차오를 즈음, 새갓골 주차장에서 30여 분 채 못된 거리에 열암곡 마애부처님이 있었다. 하지만 마애부처님 보다 ‘열암곡 석조좌상’이 먼저 찾는 이를 반겼다.







열암곡 마애부처님은 복원한 ‘열암곡 석불좌상’이 내려다보는 아래쪽에 있었다. 경사면 벼랑에서 떨어진 큰 괴석들이 흩어져 있고, 그 중심에 열암곡 마애부처님이 경주와 하늘을 보지 못하고 땅을 보고 엎어져 있었다. 괴석와 나무와 흙 속에 있던 마애부처님은 ‘열암곡 석불좌상’ 발굴조사 과정에서 세상에 그 존재를 알렸다.

‘열암곡 석불좌상’은 열암곡 마애부처님과 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열암곡 석불좌상’은 경주 남산 백운계 새갓골 제3사지에 불두와 대좌의 중대석이 결실된 상태로 있던 중, 2005년 불상 머리가 확인돼, 보수·정비계획에 따라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불상이 안치된 건물지와 도괴된 마애불상을 발견했다. 사역 안에 건물지가 2동으로 금당 추정 주 건물은 3차에 걸쳐 증축한 것을 확인했다. 창건 당시 금당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후대의 중축으로 일부만 잔존한다. 2차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창건기보다 면적이 커졌다. 출토유물은 통일신라시대의 막새와 기와들이다. 3차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로 규모가 줄어든 모습이다. 근처에 1, 2사지도 3사지와 관련된 곳으로 추정된다. 열암곡 마애부처님과 열암곡 석불좌상의 관계성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인근에 금당지 등 건물지가 발견돼 이곳에 사찰이 존재했고, 마애부처님 역시 이 사찰지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게 80톤으로 추정하는 열암곡 마애부처님은 조선 중기 지진으로 쓰러진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의뢰해 시행한 연구결과 마애부처님은 1430년 진도 7에 가까운 대형지진에 넘어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넘어진지 600년이 넘은 것이다.







원래 위치로 추정되는 경사면을 따라 쓰러지면서 얼굴과 지면이 5cm 차이로 닿지 않아 훼손을 면해 ‘5cm의 기적’으로 불린다. 비탈의 아래쪽에 얼굴이, 원래 봉안된 위치 쪽에 좌대가 있는 상태이며, 주변은 임시 옹벽을 쌓았고, 마애부처님은 철근 가건물로 덮혀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이 부처님 주변에 진동계 등을 설치해 상태를 관찰하고 있다.

이 열암곡 마애부처님 주변에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등 200여 명의 사부대중이 모였다. ‘천년을 세우다-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기 고불식’을 위해서다.

땀을 채 닦을 새도 없이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총무부장 호산 스님, 기획실장 성화 스님, 사회부장 범종 스님이 사부대중을 대표해 마애부처님께 108배를 올렸다. 호산 스님의 죽비 소리에 맞춰 종단 대표인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네 스님은 절하고 또 절했다. 마애부처님 앞 터는 비좁아 더 많은 이들이 108에 동참할 수 없었다.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 동화사 주지 능종 스님, 은해사 주지 덕조 스님, 불국사 주지 직무대행 종천 스님 등 경북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과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 등이 108배를 하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 뒤에서 합장해 염불하며 ‘천년을 세우기’ 위한 원력을 모았다.

108배를 마치고 고불식 의례에 이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향을 올렸고, 종회의장 정문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이 차를 올렸다. 그리고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등 대구경북 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 등이 꽃을 올렸다. 







108배를 마친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고 곧 절한 의미를 설명했다.

진우 스님은 “오늘 열암곡 마애 부처님을 바로 모시기 108배를 하면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함께 축원했다.”며 “우리 불교의 목적은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인데 뜻밖의 참변을 당하니 매우 비통하다. 다시는 이렇게 예견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진력해야겠다.”고 했다.

이어 “부처님께서 뭇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평생을 길에서 전법 하셨듯이 우리 불제자들이 더욱 발심하여 정진하자.”면서 “우리 사회 미래인 청년들을 보호하고 밝은 내일을 열기 위해 진력하자. 종단은 희생자와 가족들의 슬픔을 함께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종정 성파 대종사에게 금일봉을 받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왼쪽),



진우 스님은 이날 오전 종정 성파 대종사를 예방했다. 종정 성파 대종사는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는 데 쓰라고 금일봉을 진우 스님에게 전달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에 종단의 신성인 종정 스님부터 종무행정의 수반인 총무원장, 그리고 재가불자들까지 원력을 더한 것이다.

이어 진우 스님은 마애부처님 전에 종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서 원래 모습으로 바로 모실 것을 고했다. 진우 스님은 제37대 총무원장 임기 개시 직후 중앙종무기관 종무원 특강에서 “예경의 대상인 부처님을 천년 넘도록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우리의 직무유기”라며 “어떤 식으로든 총력을 기울여 하루빨리 부처님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했다. 이어 10월 5일 취임법회에서 종책사업으로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세우기’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공표했고, 10월 12일 종무회의에서 불사 슬로건을 ‘천년을 세우다’로 제안하고, 불교계만 아닌 대국민 원력 불사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같은 달 18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예방 때 “천년 간 방치된 부처님을 바로 세움으로써 국민에게 다시 도약할 기운을 불어넣겠다.”고 했고, 19일에는 최응천 문화재청장 예방 때 “천년 간 누워 있던 부처님을 세우는 일은 종교적인 차원을 떠나 민족의 얼을 되살리는 것”이라며 “문화재는 한 나라와 민족의 얼굴이다. 이를 보존 계승하는 건 후손으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날 10월 31일 오후 2시 열암곡 마애부처님 앞에서 종책사업으로 ‘바로 모실 것’을 약속했다.



차를 올리는 종회의장 정문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취임 후 반복해 열암곡 마애부처님의 ‘기립(起立)’을 강조했다. 천년을 세우는 일이 국운융창과 불교중흥의 시작일 것이라는 뜻에서다. 또 마애부처님을 바로 모시는 것이 불자들의 자긍심을 세우는 불사라고 말해 왔다.

진우 스님은 고불식에서 “천년을 쓰러져 계신 마애부처님을 온전히 모시기 위한 사부대중의 간곡한 원력이 모였다. 지금 이 자리, 간절한 서원으로 마애 부처님을 바로 모셔 천년을 세우기 위한 첫걸음을 시작한다.”고 고했다.

이어 “이 불사는 누워 있는 천년을 일으켜 세워 미래 천년을 만들기 위한 거룩하고 당당한 발걸음“이라며 ”이 원력은 부처님 제자들의 마음을 모아 치열한 수행으로 깨달음의 길을 열고 진실한 언어로 부처님 법을 전해 불교중흥의 기틀을 세우고자 하는 굳은 서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마음은 국민의 화합과 행복을 위해 차별과 대립을 걷어내고 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길을 열어 국운 창성을 이루겠다는 진솔한 약속“이며 ”마애부처님을 바로 세우는 일은 천년을 세워 그 공덕으로 개인들은 서원을 성취하고 나라는 부강한 강대국의 위상을 확립하며 불교를 다시 중흥시키겠다는 온 마음, 온 정성을 다한 신실한 원력”이라고 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불사의 시작을 고하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



2007년 마애부처님 발견 후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이를 바로 세우는 것이 가능할지 고민이 많았다. 무게 80톤으로 추정되는 마애 부처님을, 계곡의 좁은 공간에서 마애 부처님을 흠 하나 없이 바로 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원력을 세웠지만, 경주시, 경북도, 문화재청,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공원관리공단 등 관계 기관의 협력이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관계 부처도 조계종의 원력에 힘을 모으겠다고 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시에서 건축역사학회와 산업기술연구원에 용역을 줘 무게 80톤에 달하는 마애부처님을 안전하게 세우고 적절한 장소에 세우기 위한 최적의 방안을 연구하고 있지만, 마애부처님 바로세우기는 경주시의 의지만으로는 힘이 부치는 일이었다.”면서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먼저 힘을 받쳐줘 감사하고 국가적으로 입불에 나서 국민적 관광지로도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발원문을 하는 불국사 직무대행 종천 스님.



박보균 문체부 장관, 최응천 문화재청장,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축사를 보내 “각계 관심을 바탕으로 입불을 위한 최적의 방향을 찾는데 노력하겠다.”며 적극적인 지지와 동참을 약속했다.

이경영 동국대 WISE(와이즈)캠퍼스 총장은 “신라인들의 염원이 담긴 이 땅에서 우리의 이상세계(불국정토) 실현에 대한 염원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며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했다.

고불식 후엔 제11교구본사 불국사, 양양 낙산사가 각각 1억원의 기금을 쾌척했다. 봉선사가 지난 17일 마애 부처님 바로세우기 기금 3,000만원을 희사한 데 이어 종도들의 원력이 모아지고 있다. 낙산사 측은 “큰 산불로 피해가 컸지만 전 국민들의 도움과 사부대중의 동참으로 수년에 걸쳐 복원할 수 있었다”며 “그 때의 원력이 열암곡 마애부처님에게도 모아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조계종은 국운융창과 불교중흥, 그리고 불자들의 자긍심을 세울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불사’의 첫 단추를 채웠다.

31일, 10월의 마지막 날 오후 경주 남산 경주 내남면 노곡리. 새갓골 주차장에 차를 세운 사람들은 산행을 시작했다. 열암곡으로 가는 산길은 좁았다. 처음 몇 분은 그리 가파르지 않은 길이었지만, 이도 잠시 가파른 비탈길이 계속 이어졌다. 옛날엔 바우골(巖谷)이라 한 모양이다. 요즘은 열암곡으로 부른다. 이름처럼 좁은 비탈길과 주변은 바위가 굴러 멈춰선 듯 자리 잡고 있었다. 길 곳곳에 나무뿌리가 드러나 디딤돌 역할을 해주었다. 바위가 계단 역할을 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까지 가는 길에는 세 곳의 사지가 존재한다. 불굴조사 결과 1, 2사지는 3사지와 관련된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지에는 석조 유구를 모아놓았다. 산산조각난 불상도 있었다. 경주 남산에는 머리가 없는 불상이 다수 존재한다.

새갓골 주차장에서 800미터. 멀지 않은 거리지만 좁고 비탈졌고, 곳곳은 미끄러워 간혹 넘어지는 이도 있었다. 가는 길 주변에 기와 조각도 보였다. 땀이 흘렀다. 흐린 날이라던 예보와 달리 쾌청했고, 가파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디디면서 미끄러지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땀은 절로 흘렀다. 숨이 차오를 즈음, 새갓골 주차장에서 30여 분 채 못된 거리에 열암곡 마애부처님이 있었다. 하지만 마애부처님 보다 ‘열암곡 석조좌상’이 먼저 찾는 이를 반겼다.







열암곡 마애부처님은 복원한 ‘열암곡 석불좌상’이 내려다보는 아래쪽에 있었다. 경사면 벼랑에서 떨어진 큰 괴석들이 흩어져 있고, 그 중심에 열암곡 마애부처님이 경주와 하늘을 보지 못하고 땅을 보고 엎어져 있었다. 괴석와 나무와 흙 속에 있던 마애부처님은 ‘열암곡 석불좌상’ 발굴조사 과정에서 세상에 그 존재를 알렸다.

‘열암곡 석불좌상’은 열암곡 마애부처님과 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열암곡 석불좌상’은 경주 남산 백운계 새갓골 제3사지에 불두와 대좌의 중대석이 결실된 상태로 있던 중, 2005년 불상 머리가 확인돼, 보수·정비계획에 따라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불상이 안치된 건물지와 도괴된 마애불상을 발견했다. 사역 안에 건물지가 2동으로 금당 추정 주 건물은 3차에 걸쳐 증축한 것을 확인했다. 창건 당시 금당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후대의 중축으로 일부만 잔존한다. 2차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창건기보다 면적이 커졌다. 출토유물은 통일신라시대의 막새와 기와들이다. 3차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로 규모가 줄어든 모습이다. 근처에 1, 2사지도 3사지와 관련된 곳으로 추정된다. 열암곡 마애부처님과 열암곡 석불좌상의 관계성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인근에 금당지 등 건물지가 발견돼 이곳에 사찰이 존재했고, 마애부처님 역시 이 사찰지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게 80톤으로 추정하는 열암곡 마애부처님은 조선 중기 지진으로 쓰러진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의뢰해 시행한 연구결과 마애부처님은 1430년 진도 7에 가까운 대형지진에 넘어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넘어진지 600년이 넘은 것이다.







원래 위치로 추정되는 경사면을 따라 쓰러지면서 얼굴과 지면이 5cm 차이로 닿지 않아 훼손을 면해 ‘5cm의 기적’으로 불린다. 비탈의 아래쪽에 얼굴이, 원래 봉안된 위치 쪽에 좌대가 있는 상태이며, 주변은 임시 옹벽을 쌓았고, 마애부처님은 철근 가건물로 덮혀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이 부처님 주변에 진동계 등을 설치해 상태를 관찰하고 있다.

이 열암곡 마애부처님 주변에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등 200여 명의 사부대중이 모였다. ‘천년을 세우다-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기 고불식’을 위해서다.

땀을 채 닦을 새도 없이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총무부장 호산 스님, 기획실장 성화 스님, 사회부장 범종 스님이 사부대중을 대표해 마애부처님께 108배를 올렸다. 호산 스님의 죽비 소리에 맞춰 종단 대표인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네 스님은 절하고 또 절했다. 마애부처님 앞 터는 비좁아 더 많은 이들이 108에 동참할 수 없었다.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 동화사 주지 능종 스님, 은해사 주지 덕조 스님, 불국사 주지 직무대행 종천 스님 등 경북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과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 등이 108배를 하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 뒤에서 합장해 염불하며 ‘천년을 세우기’ 위한 원력을 모았다.

108배를 마치고 고불식 의례에 이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향을 올렸고, 종회의장 정문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이 차를 올렸다. 그리고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등 대구경북 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 등이 꽃을 올렸다. 







108배를 마친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고 곧 절한 의미를 설명했다.

진우 스님은 “오늘 열암곡 마애 부처님을 바로 모시기 108배를 하면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함께 축원했다.”며 “우리 불교의 목적은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인데 뜻밖의 참변을 당하니 매우 비통하다. 다시는 이렇게 예견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진력해야겠다.”고 했다.

이어 “부처님께서 뭇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평생을 길에서 전법 하셨듯이 우리 불제자들이 더욱 발심하여 정진하자.”면서 “우리 사회 미래인 청년들을 보호하고 밝은 내일을 열기 위해 진력하자. 종단은 희생자와 가족들의 슬픔을 함께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종정 성파 대종사에게 금일봉을 받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왼쪽),



진우 스님은 이날 오전 종정 성파 대종사를 예방했다. 종정 성파 대종사는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는 데 쓰라고 금일봉을 진우 스님에게 전달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에 종단의 신성인 종정 스님부터 종무행정의 수반인 총무원장, 그리고 재가불자들까지 원력을 더한 것이다.

이어 진우 스님은 마애부처님 전에 종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서 원래 모습으로 바로 모실 것을 고했다. 진우 스님은 제37대 총무원장 임기 개시 직후 중앙종무기관 종무원 특강에서 “예경의 대상인 부처님을 천년 넘도록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우리의 직무유기”라며 “어떤 식으로든 총력을 기울여 하루빨리 부처님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했다. 이어 10월 5일 취임법회에서 종책사업으로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세우기’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공표했고, 10월 12일 종무회의에서 불사 슬로건을 ‘천년을 세우다’로 제안하고, 불교계만 아닌 대국민 원력 불사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같은 달 18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예방 때 “천년 간 방치된 부처님을 바로 세움으로써 국민에게 다시 도약할 기운을 불어넣겠다.”고 했고, 19일에는 최응천 문화재청장 예방 때 “천년 간 누워 있던 부처님을 세우는 일은 종교적인 차원을 떠나 민족의 얼을 되살리는 것”이라며 “문화재는 한 나라와 민족의 얼굴이다. 이를 보존 계승하는 건 후손으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날 10월 31일 오후 2시 열암곡 마애부처님 앞에서 종책사업으로 ‘바로 모실 것’을 약속했다.



차를 올리는 종회의장 정문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취임 후 반복해 열암곡 마애부처님의 ‘기립(起立)’을 강조했다. 천년을 세우는 일이 국운융창과 불교중흥의 시작일 것이라는 뜻에서다. 또 마애부처님을 바로 모시는 것이 불자들의 자긍심을 세우는 불사라고 말해 왔다.

진우 스님은 고불식에서 “천년을 쓰러져 계신 마애부처님을 온전히 모시기 위한 사부대중의 간곡한 원력이 모였다. 지금 이 자리, 간절한 서원으로 마애 부처님을 바로 모셔 천년을 세우기 위한 첫걸음을 시작한다.”고 고했다.

이어 “이 불사는 누워 있는 천년을 일으켜 세워 미래 천년을 만들기 위한 거룩하고 당당한 발걸음“이라며 ”이 원력은 부처님 제자들의 마음을 모아 치열한 수행으로 깨달음의 길을 열고 진실한 언어로 부처님 법을 전해 불교중흥의 기틀을 세우고자 하는 굳은 서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마음은 국민의 화합과 행복을 위해 차별과 대립을 걷어내고 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길을 열어 국운 창성을 이루겠다는 진솔한 약속“이며 ”마애부처님을 바로 세우는 일은 천년을 세워 그 공덕으로 개인들은 서원을 성취하고 나라는 부강한 강대국의 위상을 확립하며 불교를 다시 중흥시키겠다는 온 마음, 온 정성을 다한 신실한 원력”이라고 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불사의 시작을 고하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



2007년 마애부처님 발견 후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이를 바로 세우는 것이 가능할지 고민이 많았다. 무게 80톤으로 추정되는 마애 부처님을, 계곡의 좁은 공간에서 마애 부처님을 흠 하나 없이 바로 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원력을 세웠지만, 경주시, 경북도, 문화재청,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공원관리공단 등 관계 기관의 협력이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관계 부처도 조계종의 원력에 힘을 모으겠다고 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시에서 건축역사학회와 산업기술연구원에 용역을 줘 무게 80톤에 달하는 마애부처님을 안전하게 세우고 적절한 장소에 세우기 위한 최적의 방안을 연구하고 있지만, 마애부처님 바로세우기는 경주시의 의지만으로는 힘이 부치는 일이었다.”면서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먼저 힘을 받쳐줘 감사하고 국가적으로 입불에 나서 국민적 관광지로도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발원문을 하는 불국사 직무대행 종천 스님.



박보균 문체부 장관, 최응천 문화재청장,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축사를 보내 “각계 관심을 바탕으로 입불을 위한 최적의 방향을 찾는데 노력하겠다.”며 적극적인 지지와 동참을 약속했다.

이경영 동국대 WISE(와이즈)캠퍼스 총장은 “신라인들의 염원이 담긴 이 땅에서 우리의 이상세계(불국정토) 실현에 대한 염원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며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했다.

고불식 후엔 제11교구본사 불국사, 양양 낙산사가 각각 1억원의 기금을 쾌척했다. 봉선사가 지난 17일 마애 부처님 바로세우기 기금 3,000만원을 희사한 데 이어 종도들의 원력이 모아지고 있다. 낙산사 측은 “큰 산불로 피해가 컸지만 전 국민들의 도움과 사부대중의 동참으로 수년에 걸쳐 복원할 수 있었다”며 “그 때의 원력이 열암곡 마애부처님에게도 모아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조계종은 국운융창과 불교중흥, 그리고 불자들의 자긍심을 세울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불사’의 첫 단추를 채웠다.

31일, 10월의 마지막 날 오후 경주 남산 경주 내남면 노곡리. 새갓골 주차장에 차를 세운 사람들은 산행을 시작했다. 열암곡으로 가는 산길은 좁았다. 처음 몇 분은 그리 가파르지 않은 길이었지만, 이도 잠시 가파른 비탈길이 계속 이어졌다. 옛날엔 바우골(巖谷)이라 한 모양이다. 요즘은 열암곡으로 부른다. 이름처럼 좁은 비탈길과 주변은 바위가 굴러 멈춰선 듯 자리 잡고 있었다. 길 곳곳에 나무뿌리가 드러나 디딤돌 역할을 해주었다. 바위가 계단 역할을 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까지 가는 길에는 세 곳의 사지가 존재한다. 불굴조사 결과 1, 2사지는 3사지와 관련된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지에는 석조 유구를 모아놓았다. 산산조각난 불상도 있었다. 경주 남산에는 머리가 없는 불상이 다수 존재한다.

새갓골 주차장에서 800미터. 멀지 않은 거리지만 좁고 비탈졌고, 곳곳은 미끄러워 간혹 넘어지는 이도 있었다. 가는 길 주변에 기와 조각도 보였다. 땀이 흘렀다. 흐린 날이라던 예보와 달리 쾌청했고, 가파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디디면서 미끄러지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땀은 절로 흘렀다. 숨이 차오를 즈음, 새갓골 주차장에서 30여 분 채 못된 거리에 열암곡 마애부처님이 있었다. 하지만 마애부처님 보다 ‘열암곡 석조좌상’이 먼저 찾는 이를 반겼다.







열암곡 마애부처님은 복원한 ‘열암곡 석불좌상’이 내려다보는 아래쪽에 있었다. 경사면 벼랑에서 떨어진 큰 괴석들이 흩어져 있고, 그 중심에 열암곡 마애부처님이 경주와 하늘을 보지 못하고 땅을 보고 엎어져 있었다. 괴석와 나무와 흙 속에 있던 마애부처님은 ‘열암곡 석불좌상’ 발굴조사 과정에서 세상에 그 존재를 알렸다.

‘열암곡 석불좌상’은 열암곡 마애부처님과 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열암곡 석불좌상’은 경주 남산 백운계 새갓골 제3사지에 불두와 대좌의 중대석이 결실된 상태로 있던 중, 2005년 불상 머리가 확인돼, 보수·정비계획에 따라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불상이 안치된 건물지와 도괴된 마애불상을 발견했다. 사역 안에 건물지가 2동으로 금당 추정 주 건물은 3차에 걸쳐 증축한 것을 확인했다. 창건 당시 금당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후대의 중축으로 일부만 잔존한다. 2차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창건기보다 면적이 커졌다. 출토유물은 통일신라시대의 막새와 기와들이다. 3차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로 규모가 줄어든 모습이다. 근처에 1, 2사지도 3사지와 관련된 곳으로 추정된다. 열암곡 마애부처님과 열암곡 석불좌상의 관계성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인근에 금당지 등 건물지가 발견돼 이곳에 사찰이 존재했고, 마애부처님 역시 이 사찰지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게 80톤으로 추정하는 열암곡 마애부처님은 조선 중기 지진으로 쓰러진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의뢰해 시행한 연구결과 마애부처님은 1430년 진도 7에 가까운 대형지진에 넘어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넘어진지 600년이 넘은 것이다.







원래 위치로 추정되는 경사면을 따라 쓰러지면서 얼굴과 지면이 5cm 차이로 닿지 않아 훼손을 면해 ‘5cm의 기적’으로 불린다. 비탈의 아래쪽에 얼굴이, 원래 봉안된 위치 쪽에 좌대가 있는 상태이며, 주변은 임시 옹벽을 쌓았고, 마애부처님은 철근 가건물로 덮혀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이 부처님 주변에 진동계 등을 설치해 상태를 관찰하고 있다.

이 열암곡 마애부처님 주변에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등 200여 명의 사부대중이 모였다. ‘천년을 세우다-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기 고불식’을 위해서다.

땀을 채 닦을 새도 없이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총무부장 호산 스님, 기획실장 성화 스님, 사회부장 범종 스님이 사부대중을 대표해 마애부처님께 108배를 올렸다. 호산 스님의 죽비 소리에 맞춰 종단 대표인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네 스님은 절하고 또 절했다. 마애부처님 앞 터는 비좁아 더 많은 이들이 108에 동참할 수 없었다.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 동화사 주지 능종 스님, 은해사 주지 덕조 스님, 불국사 주지 직무대행 종천 스님 등 경북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과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 등이 108배를 하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 뒤에서 합장해 염불하며 ‘천년을 세우기’ 위한 원력을 모았다.

108배를 마치고 고불식 의례에 이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향을 올렸고, 종회의장 정문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이 차를 올렸다. 그리고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등 대구경북 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 등이 꽃을 올렸다. 







108배를 마친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고 곧 절한 의미를 설명했다.

진우 스님은 “오늘 열암곡 마애 부처님을 바로 모시기 108배를 하면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함께 축원했다.”며 “우리 불교의 목적은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인데 뜻밖의 참변을 당하니 매우 비통하다. 다시는 이렇게 예견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진력해야겠다.”고 했다.

이어 “부처님께서 뭇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평생을 길에서 전법 하셨듯이 우리 불제자들이 더욱 발심하여 정진하자.”면서 “우리 사회 미래인 청년들을 보호하고 밝은 내일을 열기 위해 진력하자. 종단은 희생자와 가족들의 슬픔을 함께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종정 성파 대종사에게 금일봉을 받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왼쪽),



진우 스님은 이날 오전 종정 성파 대종사를 예방했다. 종정 성파 대종사는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는 데 쓰라고 금일봉을 진우 스님에게 전달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에 종단의 신성인 종정 스님부터 종무행정의 수반인 총무원장, 그리고 재가불자들까지 원력을 더한 것이다.

이어 진우 스님은 마애부처님 전에 종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서 원래 모습으로 바로 모실 것을 고했다. 진우 스님은 제37대 총무원장 임기 개시 직후 중앙종무기관 종무원 특강에서 “예경의 대상인 부처님을 천년 넘도록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우리의 직무유기”라며 “어떤 식으로든 총력을 기울여 하루빨리 부처님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했다. 이어 10월 5일 취임법회에서 종책사업으로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세우기’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공표했고, 10월 12일 종무회의에서 불사 슬로건을 ‘천년을 세우다’로 제안하고, 불교계만 아닌 대국민 원력 불사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같은 달 18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예방 때 “천년 간 방치된 부처님을 바로 세움으로써 국민에게 다시 도약할 기운을 불어넣겠다.”고 했고, 19일에는 최응천 문화재청장 예방 때 “천년 간 누워 있던 부처님을 세우는 일은 종교적인 차원을 떠나 민족의 얼을 되살리는 것”이라며 “문화재는 한 나라와 민족의 얼굴이다. 이를 보존 계승하는 건 후손으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날 10월 31일 오후 2시 열암곡 마애부처님 앞에서 종책사업으로 ‘바로 모실 것’을 약속했다.



차를 올리는 종회의장 정문 스님과 포교원장 범해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취임 후 반복해 열암곡 마애부처님의 ‘기립(起立)’을 강조했다. 천년을 세우는 일이 국운융창과 불교중흥의 시작일 것이라는 뜻에서다. 또 마애부처님을 바로 모시는 것이 불자들의 자긍심을 세우는 불사라고 말해 왔다.

진우 스님은 고불식에서 “천년을 쓰러져 계신 마애부처님을 온전히 모시기 위한 사부대중의 간곡한 원력이 모였다. 지금 이 자리, 간절한 서원으로 마애 부처님을 바로 모셔 천년을 세우기 위한 첫걸음을 시작한다.”고 고했다.

이어 “이 불사는 누워 있는 천년을 일으켜 세워 미래 천년을 만들기 위한 거룩하고 당당한 발걸음“이라며 ”이 원력은 부처님 제자들의 마음을 모아 치열한 수행으로 깨달음의 길을 열고 진실한 언어로 부처님 법을 전해 불교중흥의 기틀을 세우고자 하는 굳은 서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마음은 국민의 화합과 행복을 위해 차별과 대립을 걷어내고 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길을 열어 국운 창성을 이루겠다는 진솔한 약속“이며 ”마애부처님을 바로 세우는 일은 천년을 세워 그 공덕으로 개인들은 서원을 성취하고 나라는 부강한 강대국의 위상을 확립하며 불교를 다시 중흥시키겠다는 온 마음, 온 정성을 다한 신실한 원력”이라고 했다.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모시기 불사의 시작을 고하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



2007년 마애부처님 발견 후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이를 바로 세우는 것이 가능할지 고민이 많았다. 무게 80톤으로 추정되는 마애 부처님을, 계곡의 좁은 공간에서 마애 부처님을 흠 하나 없이 바로 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원력을 세웠지만, 경주시, 경북도, 문화재청,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공원관리공단 등 관계 기관의 협력이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관계 부처도 조계종의 원력에 힘을 모으겠다고 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시에서 건축역사학회와 산업기술연구원에 용역을 줘 무게 80톤에 달하는 마애부처님을 안전하게 세우고 적절한 장소에 세우기 위한 최적의 방안을 연구하고 있지만, 마애부처님 바로세우기는 경주시의 의지만으로는 힘이 부치는 일이었다.”면서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먼저 힘을 받쳐줘 감사하고 국가적으로 입불에 나서 국민적 관광지로도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발원문을 하는 불국사 직무대행 종천 스님.



박보균 문체부 장관, 최응천 문화재청장,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축사를 보내 “각계 관심을 바탕으로 입불을 위한 최적의 방향을 찾는데 노력하겠다.”며 적극적인 지지와 동참을 약속했다.

이경영 동국대 WISE(와이즈)캠퍼스 총장은 “신라인들의 염원이 담긴 이 땅에서 우리의 이상세계(불국정토) 실현에 대한 염원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며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했다.

고불식 후엔 제11교구본사 불국사, 양양 낙산사가 각각 1억원의 기금을 쾌척했다. 봉선사가 지난 17일 마애 부처님 바로세우기 기금 3,000만원을 희사한 데 이어 종도들의 원력이 모아지고 있다. 낙산사 측은 “큰 산불로 피해가 컸지만 전 국민들의 도움과 사부대중의 동참으로 수년에 걸쳐 복원할 수 있었다”며 “그 때의 원력이 열암곡 마애부처님에게도 모아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고불식에는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 포교원장 범해 스님, 교육원장 권한 대행 서봉 스님, 사업부장 주혜 스님, 조계종복지재단 대표이사 보인 스님, 불교신문사 사장 현법 스님, 불교중앙박물관장 미등 스님, 불교문화재연구소장 제정 스님 등 종단 주요 소임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 직지사 주지 법보 스님, 동화사 주지 능종 스님, 은해사 주지 덕조 스님, 불국사 종천 스님,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 등 대구 경북 5개 교구본사 스님들도 함께했다.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 등 전국비구니회 스님들, 주윤식 중앙신도회장, 주낙영 경주시장, 송형근 국립공원공단 이사장, 김대현 문체부 종무실장 등이 관계 부처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주석한 담양 용흥사와 서울 조계사와 봉은사, 경북 5개 본사 신도들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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