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개신교나 가톨릭 신자인 운동선수들은 자신들이 승리했을 경우, 기도를 하거나 성호를 긋는 등의 종교적 행위로 세레머니를 대신하는 것이 보편화되어가고 있다.
선수들의 그러한 행동에는 자신들의 몸짓을 통해 선교에 기여하겠다는 의도도 깔려있을 것이다. 더욱이 그 장소가 다수의 관중이 모이는 경기장인 만큼 스포츠스타들의 종교적 몸짓이 사회 대중에 미치는 영향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특히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기 마련인 올림픽이나 월드컵경기와 같은 국제대회에서 승리한 선수의 세레머니는 국민감정에 끼치는 영향력이 엄청나다. 공중파를 타고 수차례씩 반복해서 전달되는 그들의 몸짓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할 뿐 아니라 일부 청소년들의 세레머니 흉내 내기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마치 선수 당사자가 표현해내는 종교가 승리를 뒷받침한 것 같은 착각에 빠트리기도 하는 것이다.
하여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한 불교종단에서는 선수들의 종교적 세레머니를 자제시켜야 한다는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 나는 종단의 대응이 참으로 궁핍하고 남루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피나는 훈련과 노력으로 승리의 기쁨을 안겨준 선수들은 많은 이들의 우상이 되기 마련이다. 그들이 무슨 몸짓을 하고 무슨 표현을 하더라도 시비거리가 된 적은 없다. 설령 기도를 하거나 성호를 긋는 등의 종교적 행위를 한다 해도 아무런 거부감 없이 갈채만 보낸다. 종교가 다른 사람까지.
다만 불교인으로서 아쉬운 것은 우리 불자선수들은 저들에 비해 자신의 종교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불교신자로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야구선수에게 ‘당신도 불교적 세레머니좀 해 보라.’고 주문을 했더니 그의 대답이 이랬다.
“내가 홈런을 치고 운동장을 돌면서 합장을 했더니 팬들이 나에게 ‘기독교로 개종했느냐?’고 묻더라. 기도하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그렇다고 나 혼자 운동장에 엎드려 절을 할 수도 없지 않은가.”
허탈하게 웃고 말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운동선수든 연예인이든 불교적 표현에 조심스러워하는 까닭은 사람들이 그러한 행동을 낯설게 여기기 때문이다. 특히 대중적 관심이 큰 인기연예인들의 경우, 몇 몇 원로연예인을 제외하고는 불자이면서도 불자임을 내세우는 이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시상식 같은 행사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는 멘트는 보편화 되었는데도 ‘부처님께 감사드린다.’는 소리는 들어볼 수가 없다.
왜 이럴까? 사회적으로 관심 높은 인기 스포츠 종목에 불자 선수들이 많지만, 불교종단에서 불교를 종교로 가진 선수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들에게 사랑 받는 불자 선수들에게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한다면 여기저기서 불교적 세레머니를 볼 수 있을 것이고, ‘부처님께 감사드린다.’는 멘트가 보편화되지 않겠는가.
옛말에 ‘한 그루 나무를 심으면 한 그루의 나무를 거두고, 한 알의 씨앗을 심으면 열 알의 곡식을 거두고, 한 명의 사람을 심으면 백 사람을 거둔다.’고 했다. 한 사람의 인재를 키우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피겨여왕 김연아 한 사람에 의한 국가경제 상승가치가 수 십 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하물며 그가 아이스링크에 들어서면서 보여주는 종교적 세레머니(성호긋기)로 인한 가톨릭계의 선교효과는 얼마나 클 것인가.
이제 우리 불교계도 인재를 키우는 일에 주력해야 할 때다. 절을 크게 짓는다고 불교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럴 여유가 있으면 사람을 키우는 일에 투자해야 한다. 국가나 사회를 발전시키는 것도 사람이듯, 종교를 발전시키는 것도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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