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태워 어둠을 밝히는 등불처럼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사바세계를 밝히면서 보살행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등은 어둠을 밝히는 빛인 동시에 무명 업장에 싸인 중생들을 구제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등을 밝히는 연등(燃燈)은 지혜의 빛을 밝히는 것이고, 등을 전하는 전등(傳燈)은 불법을 후세에 까지 이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밝히는 이 축제의 등 역시 지혜의 빛을 밝히는 연등(燃燈)이요, 부처님 당시부터, 이 땅에서는 신라 진흥왕 때부터 진리의 빛을 밝혀 봄에는 연등회를 열고 가을에는 팔관회를 개최한 전통이 이어져왔습니다. 연등축제는 연등회와 팔관회의 전통을 잇는 축제로서 단순히 부처님 오심을 경축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태민안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옛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연등축제는 과거와 소통하는 것이며 동시에 오늘의 세상과 화합하는 축제이기도 합니다. 어두운 중생계를 밝히기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을 이끌고 세상의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합니다. 너와 나, 좌와 우,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대립하는 속에서는 원한과 갈등만이 가득합니다. 이렇게 어두운 세상에 우리는 소통의 등, 화합의 빛을 널리 펼쳐야 합니다.
내 것을 버리면 비로소 상대방이 보이고, 나와 남을 떠나야 진정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빛은 안과 밖이 없고, 진리에는 밝고 어둠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밝히는 이 등불은 비록 작지만 삼천대천세계를 태양처럼 밝힐 수 있습니다. 다 같이 연등을 들고 세간 속으로 걸어갑시다.
우리의 등불로 작은 꽃망울과 풀잎 위에도 항상 계신 부처님의 진리 광명을 비추어 줍시다. 온 세상을 밝은 빛으로 물들이는 중중무진의 빛 구슬로 모든 중생이 고통을 여의고 안락을 얻는 그 길을 향해 힘차게 걸어 나갑시다.
불기 2554년년 5월 16일
부처님오신날 봉축위원장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자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