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尊嚴)한 부처님께 삼배(三拜) 올리려고 왔습니다.". "비빔밥은 내년에 먹어도 됩니다.". "오늘따라 스님들이 유난히 크게 보인다."
스스로 마스크 쓰고, 발열 체크하고, 거리 두고...
성숙한 시민의식이 유난히 돋보인 '불기 2564년 부처님 오신 날' 부산경남·대구경북지역 불자와 일반인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위기 속에서도 일제히 가까운 사찰들을 찾았다.
각 사찰들은 찾아올 불자 인원 예측에 애를 먹었다. 등을 다는 정성에 비빔밥 대신 삼각김밥 떡이라도 대접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부사찰들은 예상보다 많은 순례객으로 미리 준비한 요깃거리가 등이 났음에도 불자들의 고 입가에는 웃음꽃이 만발했다.
불교계는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기 위해 올해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과 연등회를 한 달 뒤인 5월 30일에 열기로 했다. 대신 30일부터 전국 사찰에서 일제히 코로나 극복기도 입재식을 가졌다.
이날 지역 주요 사찰들의 '부처님 오신 날' 풍경은 한 장의 질서 있는 평화로움이 자연스럽게 표출된 사진이었다.
■ 팔공총림 대구 동화사
코로나19 전국 최대 피해지역에 위치한 팔공총림 대구 동화사(주지 사요 스님)에는 약 1만 여 명이 찾았다. 신도들은 하나 같이 코로나19 조기 종식을 서원하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는 모습을 보였다. 동화사측이 비빔밥 대신 준비한 6,000여개의 떡이 배포 1시간여 만에 동이 나기도했다. 동화사 관계자는 "이렇게 많은 불자님들이 오실 줄 몰랐다."며 "슬픈 부처님 오신 날일 줄 알았는데 가장 복 된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점등식에 참석한 권영진 대구시장은 동화사 회주스님의 법문을 경청했다. 동화사를 찾은 불자는 "존엄(尊嚴)한 부처님께 삼배(三拜) 올리려고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 영축총림 통도사
통도사(주지 현문 스님)는 불지종가답게 하루 종일 불자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통도사 관계자는 "공휴일이어서 매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내방객 숫자는 파악하지 못했다."며 "대략 1만 5천 여 명이 온 것 같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우리 불자와 국민들의 의식이 이렇게 높을 줄 몰랐다."며 "단 한 사람도 마스크를 끼지 않고 경내를 돌아다니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통도사 역시 비빔밥 대신 3000인 분의 요깃거리를 준비해 보시했다. 서울에서 온 불자는 코로나19로 인해 비빔밥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설명에 "비빔밥은 내년에 먹어도 됩니다."라고 말했다.
■ 금정총림 범어사
부산 범어사(주지 경선 스님)도 종일 부처님께 참배하려는 불자와 관광객들로 붐볐다. 부산지역 불자들도 매우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이며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참 뜻을 되새겼다. 범어사는 사찰 입구에서 발열 검사를 하고 이름과 전화번호, 해외방문 이력 등을 적은 후에 입장 시키는 등 여타 사찰들보다 강력한 방역의지를 보였다. 누구하나 짜증내거나 거부하지 않고 진지하게 응했다. 대략 1만 여 명이 참배한 것으로 추계된다는 것이 범어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휴일을 맞아 가족과 함께 범어사 나들이 온 한 불자는 "우리야 그냥 왔다가지만 스님들이 힘드시겠다."고 위로의 말을 한 후 "오늘따라 스님들이 유난히 크게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울산시 백양사(주지 산옹 스님)는 1500여 내방객들 중 부모 손을 잡은 어린이들에게는 주지스님이 직접 마스크를 나눠 준 후 건강을 기원하는 법회를 봉행했다. 밀양 표충사(주지 법기 스님)에는 약 2000여 명의 불자와 관광객들이 찾았다. 전국 사찰 중에서 가장 먼저 산문폐쇄를 단행했던 합천 해인사(주지 현응 스님)도 머처럼 분주한 산사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