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괴물'(patent troll)을 아십니까
'특허 괴물'(patent troll)을 아십니까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0.09.27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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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1998년, 미국의 테크서치(Techsearch)가 Intel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합니다. 이 회사는 컴퓨터 제조업체가 아니었습니다. ‘IMS’(Int'l Meta Systems Inc.)라는 마이크로프로세서 생산업체의 특허권만을 사들인 회사였지요. 그런 다음 인텔사가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합니다. 당시 테크서치가 요구한 배상액 규모는 무려 매입가의 1만 배나 되었습니다. 인텔 측 사내변호사 피터 뎃킨(Peter Detkin)은 테크서치 사를 ‘특허괴물(Patent Troll)’이라고 비난합니다.

이렇듯 상품을 제조하거나 판매하지 않고 ‘특허권 또는 지식재산권만을 집중적으로 보유함으로써 로열티 수입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특허관리 전문회사’가 있습니다. 이들을 ‘특허 괴물(patent troll)'이라고 부르지요.

‘특허 괴물’은 주로 미국에서 활동 중입니다. 미국이 특히 지적재산권의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달 5일 척 슈머 미 상원의원(민주당)은 ‘혁신적 디자인 보호와 저작권 침해 방지를 위한 법안’(s. 3728)을 제출합니다. 저작권 보호법을 패션 산업에까지 확장하려는 제안입니다. 이 제안에는 공화당 의원 3명을 포함한 10명의 공동 제안자가 동참했습니다. ("Copycats vs. Copyrights," Newsweek Aug. 20, 2010.)현재 미국에는 패션 관련 저작권 보호법은 비어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람의 디자인을 흉내 내는 일조차 지적재산권으로 보호하겠다는 것이지요.

이런 연유로 미국에는 특허 전문 회사들이 많습니다. 전형적인 ‘특허 괴물’이라 불릴만한 회사가 NTP입니다. 이들은 ‘오바마 스마트폰’으로 널리 알려진 캐나다 RIM사의 ‘블랙베리 폰’에 소송을 제기하여 2006년 6억 1,250만 달러의 합의금을 받아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회사는 전 세계에 220여 개 정도가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이런 회사의 ‘사냥’에서 자유로울까요.
자금운용 규모가 무려 5조 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특허 괴물`인 인텔렉추얼 벤처스(Intellectual Ventures)가 지난해부터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사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 등이 주도하여 2000년 창립한 회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직 공개되진 않고 있습니다만 인텔렉추얼벤처스는 삼성, LG 등 국내 기업을 상대로 수조원에 달하는 로열티를 요구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지난해 국내에서 확보한 지식재산권만 이미 200개 이상입니다. ‘특허 괴물’들의 특허 사냥과 특허 분쟁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괴물 상대하는 특허펀드 조성 ‘삼성·LG 관심’,” <이데일리> 2009. 7. 29.) 참고로 미국 특허 관련 단체 '페턴트프리덤'(Patent Freedom)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난 2004년부터 5년 동안 특허괴물로부터 가장 많은 소송을 당한 회사가 바로 삼성전자였습니다. 후발 선진국으로 원천 기술이 없는 우리나라의 근본적 한계일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우리 나라는 이런 특허 전문 회사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습니다. 문제겠지요?

정부와 업계가 힘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특허전문회사를 설립하고, 특허펀드를 조성해 운영키로 했습니다. 지난 달 29일 국가경쟁력강화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입니다.

우선 정부는 지식재산의 권리를 강화하고 상업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민관합동으로 지식재산관리회사(NPEs) 설립을 추진키로 했습니다. 이 특허전문회사는 정부지원금 50억원과 함께 민간 기업들의 자금을 모아, 올해 200억원 규모의 특허펀드를 조성한다는 계획입니다. 특허청은 앞으로 5년 내에 최대 5000억원 규모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방식의 정부 대응은 무조건 옳기만 한 걸까요? 여기에 한국적 현실이 있습니다.
작년의 일입니다. 제가 전혀 알지 못하는 유리 제조 관련 분야의 특허 기술을 가진 분을 만나 뵌 적이 있습니다. 이분께서는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행태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표시하더군요. 그리고 이상하게 여기실 것입니다만, 심지어 법률 회사와 변리사들의 특허 사무 혹은 특허 소송 관련 행태에 대해서도 극도의 반감을 표현하셨습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특허청도 예외일 수 없겠지요. 예를 들어 특허를 신청하려고 관련 법인에 자료를 넘겨 놓으면 그 순간 경쟁 대기업에 새어나갈 게 뻔하기 때문에 아예 다른 나라에 특허를 먼저 신청하는 게 요즘 개발자들의 관행이라고까지 설명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단순한 피해의식의 수준을 넘는 일이었습니다. 구조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확연히 다가오더군요. 도리어 저를 혼내시는 것이었습니다.

현실에는 힘 없고 돈 없는 지적재산권 개발자나 여러 중소기업이 있습니다. 이들은 원천 기술이나 지적 재산권을 확보하고도 거대 기업의 특허 침해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결국은 특허를 빼앗기고 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다른 기업으로부터 기술자료 제공을 요구받은 중소업체 중에서 ‘기술자료 탈취 및 유용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업체가 무려 22.1%에 달했지요.

이런 관점에서 한 번 이번 민관 회사 설립을 평가해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과연 이번 회사나 펀드가 이런 존재감 없는 소수파 개발자들이나 중기업이나 소기업들의 특허권을 거대 기업들을 상대로 해서 확실하게 보호해줄 수 있을까요? 한국적 기업 현실에서, 지적재산권이란 측면에서, 이 방면의 사회적 약자들을 확실하게 보호할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요? 차라리 개발자가 외국의 ‘특허 괴물’ 회사에게 특허권을 일시적으로 임대하거나 혹은 배상금을 나누어 갖는 방식으로 양도해버리는 경우는 생기지 않을까요? 이런 경우 자칫 특허권 침해를 해 온 기업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일이 되겠지만 지금까지 특허 침해를 당하고도 돈이 없어 배상을 구하지 못한 개인이나 소기업의 입장에서는 도리어 ‘특허 괴물’ 회사를 선호하는 경우가 있지는 않을까요?

개인이나 소기업들의 특허 피해에 대해선 침묵하던 언론들이, 최근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특허 괴물’들의 사냥감으로 지목되자 놀랍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장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선 셈이지요. ‘공정 사회’라는 관점에서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긴 합니다만 어찌됐건 이제라도 이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의 관심이 제고되고 있다는 점만은 장점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허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지적재산권은 ‘합법화된 독점’이라는 비판도 있고, 지적재산권이야말로 혁신을 장려한다는 근본 입장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어느 쪽이 소비자에게 이득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되고 있고, ‘모방이 도리어 창조를 낳는다’는 전통적 이론도 유용하지요. 과연 우리나라에서 특허권에 대한 사회적 흐름이나 ‘특허 괴물’ 회사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어떻게 이루어질 지 관심사입니다.

참고로 ‘구텐베르크 프로젝트’(Project Gutenberg)에 대한 이야기로 끝낼까 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전 세계에서 저작권 시효가 만료된 책 수만 권을 공짜로 제공합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저작권 시효가 끝난 책들을 스캔해서 올립니다. 책이 오래되어 글자가 흐릿하거나 불분명한 것을 확인해서 교정합니다. 스캔해서 올린 글들은 한 쪽을 적어도 두 사람이 읽어가며 확인하며, 확인이 끝난 책들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온라인으로 제공됩니다.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서로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고급의 무료 정보들을 더욱 많이 제공하기 위해 서로 더욱더 협력해서 일합니다. 전 세계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자신들의 귀중한 시간들을 쪼개서 인류 공동의 학문적 기념비를 세우기 위해 기꺼이 헌신하고 있습니다.(알렉스 스테픈, 김명남 외 역, <월드체인징> (바다출판사, 2009), p.171.)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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