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문화 산업의 재발견
헌책방 문화 산업의 재발견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1.05.0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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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4월은 이사철입니다. 이사를 하기위해 짐을 싸다보면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들 때문에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읽고 나서 흥미가 없어진 책,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 책들을 그냥 버리자니 아깝고 그렇다고 가져가자니 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에서 인쇄용지로 연간 220만 톤의 종이를 사용하는데, 이는 30년생 나무 3700만 그루에 해당됩니다. 그냥 버리기에는 뭔가 죄를 짓는 느낌이 듭니다.
 
예전에는 필요 없는 책을 처리하기 위해 주로 헌책방을 애용했습니다. 헌책방 서가에 기대어 오래된 책 향기에 흠뻑 취해 느지막한 휴일 오후의 여유를 즐겼던 학창 시절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언제부터인지 동네에 있던 헌책방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 정작 필요한 경우 헌책방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온라인에도 헌책방 사이트들이 있긴 하지만 원하는 책을 구하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책을 직접 살펴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책을 구입할 때 직접 손으로 펼쳐보는 맛은 온라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지요.

한국에 들어온 외국의 헌책방 체인점

예전에 연세대학교에서 강연을 하다 ‘북오프’ 라는 헌책방에 가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진출한 헌책방 체인으로, 기존의 이미지를 깨부순 새로운 개념의 헌책방이었습니다. 밝은 조명과 서가에 차곡히 꽂혀있는 책들, 알기 쉽게 붙여져 있는 가격표 등 철저하게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또한 구입한 헌 책들을 그냥 팔지 않고 새 책처럼 다듬어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책의 가장자리를 살짝 갈아내 손때를 없애고 표지에 전용 세제를 뿌려 광을 내준다고 합니다.

▲ 북오프 신촌점

한국의 헌책방과 대비되는 북오프를 방문한 경험은 제게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서울역에 있던 또 다른 점포가 폐점해 신촌점만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헌책방들이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춰 변화해도 헌책방 운영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기존에 운영되고 있는 적지 않은 수의 헌책방들을 활성화 시켜 하나의 문화산업으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영국의 헤이 온 와이(Hay-on-Wye)와 일본의 간다 진보초 (神田神保町)라는 두 좋은 사례가 있습니다.

영국 웨일즈의 헤이 온 와이(Hay-on-Wye)

인구 1,300여명의 작은 도시 헤이 온 와이는 원래 탄광촌이었으나, 석탄 경기가 쇠퇴한 1950년대에 들어서 폐광촌이 되어갔습니다. 1961년 리처드 부스(Richard Booth)라는 청년이 대학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와 헌책들을 수집하고 판매하기 시작한 이후 마을 사람들과 도매상들이 하나 둘씩 헌책방을 개점하면서 최초의 헌책방 마을이 탄생하게 됩니다. 인구가 불과 1,500명에 불과하고 한 시간정도 걸으면 마을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이 작은 마을에는 40여 개의 헌책방이 있습니다.

▲ 헤이 온 와이(영국 웨일즈)

희귀한 책을 구할 수 있다는 유명세를 타면서 마을에는 점차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이에 따라 각종 편의시설들이 생기면서 마을 전체가 책을 중심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1988년 시작된 이래 매년 봄 열흘 동안 개최되는 ‘헤이 축제(Hay Festival)’를 비롯해 각종 예술, 문화 행사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매년 5월말부터 6월초까지 열리는 이 축제는 점차 전통 있는 문화축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헤이 축제에서는 토론회, 영화, 시낭송, 음악공연 등 수백 개의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이제 이곳은 독자적인 테마관광코스로까지 개발되었으며, 축제기간에만 5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듭니다. 헤이 온 와이의 성공은 유럽 각지로 퍼져 벨기에의 레뒤(Redu), 네덜란드의 브레드보르트(Bredevoort) 등 22개의 헌책방 마을이 생겼습니다.

일본의 간다 진보초 (神田神保町)

일본 도쿄 간다(神田)의 진보초(神保町)에는 헌책방을 비롯해 출판사, 출판 도매상이 많이 있습니다. 진보초에는 고문서부터 현대의 헌책까지 다양한 책이 구비되어있어 세계적으로 알려진 거리입니다. 진보초에서 매년 10월 말쯤 열리는 ‘도쿄 명물 간다 후루혼 마쓰리’ (고서적 축제)는 해마다 열리는 유명한 행사 중 하나입니다.

지난 2009년 ‘도쿄 명물 간다 후루혼 마쓰리’ 50주년 행사에는 수십만의 인파가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이 축제는 서적에 관한 여러 가지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도쿄의 명물로 자리 잡았고, 일본 현지 및 해외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간다 진보초를 방문하면서 주변 상가와 소속 행정 구역인 ‘치요다’ 구에 활기를 가져다주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서울의 청계천 헌책방 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간다 진보초와 비교하면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청계천의 헌책방 거리는 지역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고, 단순히 헌책방 서점들이 모여 있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일본의 ‘동경고서적상업협동조합 간다지부’ 에서 펴낸 그림을 보면 뒤에는 홈페이지와 이메일 주소 그리고 무슨 책을 주로 파는지 자세하게 적어 놓았습니다. 이런 조그마한 노력들이 오늘날의 간다 진보초를 헌책방들의 단순한 집산이 아닌 일종의 문화아이콘으로 이끌지 않았을까요? 우리도 서울시, 적어도 청계천에 자리 잡은 헌책방들의 위치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간편한 지도라도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을 바라보며...

2006년 부산시는 중구 보수동 헌책방골목 일대를 문화거리로 만들기 위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현재는 ‘보수동책방골목문화축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그 이전에 부산 중구청과 보수동 책방 골목번영회가 힘을 모아 도로정비, 고객 쉼터 환경 조성을 통해 보수동의 이미지를 바꾸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래피티(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린 그림) 축제를 통해 보수동의 얼굴을 바꾸는 한편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흥미로운 시도도 이루어졌습니다. 홈페이지(http://www.bosubook.com/)를 통해 보수동의 역사나 서점을 소개하는 일도 뒤따랐습니다. 

▲ 부산 보수동 그래피티 축제

파주에서 한국 헌책방 문화 산업 발전을 모색하다

파주에는 출판도시단지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방문객을 비롯한 이동 인구는 실제로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 파주는 책방거리 조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책방거리를 시작으로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까지 어우러지는 문화예술단지로의 변화를 시도하려는 것입니다.

이곳에 헤이 온 와이와 같은 헌책방 단지를 유치하는 것은 어떨까요? 출판 산업으로 이미지를 다져가고 있는 파주에 헌책방 업체들을 불러 모은다면 시너지 효과를 예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파주가 세계적인 책의 도시로 발전해 나가는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물론 헌책방들이 자발적으로 모일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앞서 언급했던 영국 웨일즈의 헤이 온 와이나 일본 도쿄의 간다 진보초의 성공 사례를 잘 연구해서 파주에 한국의 헌책방 문화 산업 단지를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파주시에는 헤이리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헤이리 마을 이름의 유래는 경기 파주 지역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래농요 ‘헤이리 소리’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1998년 창립총회를 시작으로 15만평 부지위에 미술인, 음악가, 작가, 건축가 등 380 여명의 예술인들이 회원으로 참여해 집과 작업실,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 공연장 등 문화ㆍ예술 공간을 짓고 있습니다. 출판도시단지와 헤이리의 문화예술 공간이 결합한다면 파주는 복합 문화 관광단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는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직지심체요절’ 그리고 얼마 전 ‘동의보감’ 까지 총 일곱 편의 우리 문화재가 등재되어 있습니다. 세계적 문화유산을 가진 한국만의 특색을 잘 살린다면, 이를 고서적ㆍ헌책방 시장과 연계하여 전 세계에 홍보하는 일도 가능할 것입니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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