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 병인양요 당시 강화군 내 무기 및 물자 현황을 알려주는 자료가 부처님 일대기를 다룬 <팔상록> 뒷면에서 발견됐다.
동국대 불교학술원(원장 인환)은 11일 본관 로터스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ABC) 사업 수행 중 평창 지암정사(주지 대석) 소장 170책을 조사하던 중 1854년 필사된 언해본 <팔상록>(1ㆍ4책본) 이면에 군수물자 내역을 담은 관문서가 정연한 글씨체로 적혀 있었다”고 발표했다.
평창 지암정사는 조계종 총무원장 등을 역임했던 이종욱 스님의 손상좌 대석 스님이 주지로 있는 사찰로 이 책들은 이종욱 스님이 소장하던 것들이다.
동국대가 발견한 관문서는 ‘강화부 부상각진보상각돈대상 각양군기잡물수목(江華府 府上各鎭堡上各墩臺上 各樣軍器雜物數目, 이하 강화군기수목)’으로 1854년 2월 13일 현재, 강화부 각 진보 및 돈대 등 각종 군기 현황을 강화유수 책임 아래 정리한 것이다.
문서에는 화약 소총 장총 활ㆍ화살 궁노(기계활) 불랑기(대포) 등 종류별 수량이 적혀 있고, 전등사 등 강화군내 사찰과 암자의 솥 개수도 파악돼 있다. 이에 의하면 당시 강화부 전체의 보유 화약은 모두 6만 6천 400여근에 달하는 막대한 양이었다.
노영구 교수(국방대학원)는 “강화군기수목을 통해 19세기 중반 병인양요 직전 강화부의 방어 태세 전반을 살필 수 있다”며 “19세기 본격적인 해안 방어론 등장 직전 강화를 중심으로 한 조선의 군사 수준과 외세에 대한 방어능력을 살펴볼 수 있는 군사사적으로 매우 귀중한 사료”라고 설명했다.
강화군기수목의 다른 면에는 <팔상록>이 쓰여 있다. 이는 최성엽이 우봉 최씨 일가의 극락왕생과 안녕수복을 기원하며 필사한 것으로 종이 질이 좋았던 관문서를 재활용했다.
이는 <팔상록> 권4에 해당하는 언해본으로서 ‘옥야부인견불수훈’ ‘신일독반견불생신’부터 ‘취녀승불위력개용’ ‘취아견불위능득도’까지 10개 항목이 수록돼 있다. 그 뒤에는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 <팔상록>과 전혀 다른 글씨체로 부기돼 있다. 책 말미에 ‘서울 관동정 5의 73 불교시보사’라고 적혀 있어 후대에 이를 필사해 팔상록 뒷부분에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
이종수 HK겸임교수(동국대 불교학술원)는 “외규장각이 있던 강화도의 군기수목을 이면지로 활용해 <팔상록>을 적은 것을 고려하면 <팔상록> 유통과 왕실 및 관인 층에서의 불교신앙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추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용태 HK전임교수(동국대 불교학술원)는 “다만 책 뒷면을 활용해 <팔상록>이 필사되고 이후 제책됐으므로 강화부 군기 고문서 내용에 일부 누락된 부분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문화재적 가치를 떨어뜨릴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종욱 원장(동국대 불교학술원 불교문화연구원)은 “본 자료의 발굴은 불교기록문화유산의 조사 및 정리 사업이 불교, 유교를 포함한 한국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아우르는 다방면의 문헌자료와 고문서를 새로 발굴, 소개할 수 있음을 입증시켜 줬다”며 “향후에도 전국적 규모의 기록문화유산 조사사업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학제적 연구에 이바지하고 한국의 역사전통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환기시킬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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