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시민역량과 불교윤리] 3. 디지털 시대의 시민역량(2)
[디지털 시대의 시민역량과 불교윤리] 3. 디지털 시대의 시민역량(2)
  • 박병기/한국교원대학교 교수, 교육부 민주시민교육자문위원장
  • 승인 2021.12.13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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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체성과 관계성을 다시 묻다

(시민사회의 주인이자 자신의 삶의 주인이기도 한 시민은 자율성(自律性)을 근간으로 삼아 살아간다. 이 자율성의 기반은 자연과 자유의 차별성을 인간 존엄성의 근간으로 설정하고자 했던 임마누엘 칸트 같은 서구 근대의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마련되었고, 우리도 민주화 과정 속에서 받아들여 삶의 기본 원칙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 자율성은 현대 자유주의 및 자본주의와 만나면서 고립성과 이기성이라는 토대를 다시 설정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인간 존재의 근원을 이루는 관계성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계약의 산물로 내주는 현실적 오류를 노출시키게 되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21세기 초반 디지털을 기반으로 일상을 영위해가고 있는 한국시민들에게 먼저 요구되는 역량을 자율성이라기보다 주체성으로 설정해볼 수 있다. 물론 주체성 또한 자율성과 이론적 기반이 겹치는 개념이고, 오히려 서구 근대성이 식민지성과 동일시될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그것을 일본제국주의라는 왜곡을 통해 받아들여야만 했던 역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주체성이라는 개념을 다시 호출하는 이유는 21세기 초반 한국 시민사회에서 가장 요구되는 시민역량이 ‘개방된 마음을 전제로 하는 한국시민의 주체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외침(外侵)을 거치면서 균형 잡힌 성리학자의 자세를 상실하고 ‘소중화(小中華)’라는 소아병적 이념을 토대로 삼는 정신적 식민지를 자처하기 시작했던 역사에서, 그 중국이 일본(유럽)으로, 미국으로 바뀌기만 하는 ‘선진국병’을 앓으면서 20세기를 살아내야 했다. 우리 자신과 전통을 온전히 부정하는 전제 위에서 그들을 향한 맹목적이고 무조건적 추종이 산업화와 형식적인 민주화 달성이라는 목표를 가져다주었음을 경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내주어야 했던 정신적 상실은 부메랑이 되어 삶의 의미 상실과 지독한 물신주의(物神主義)에 사로잡힌 불완전한 시민사회로 이어져 21세기로 넘어왔다.

코로나19상황이 2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내주어야 했지만, 다른 한편 소중한 것들을 얻을 수도 있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두 가지가 가장 소중한 것인데, 하나는 인류 보편적인 차원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특히 우리 한국시민의 정신구조 차원의 것이다. 전자는 우리 삶이 다른 인간은 물론 모든 존재하는 것들과의 의존 속에서만 비로소 가능하다는 관계성의 인식 계기이고, 후자는 코로나19 대응에 관한 각국의 수준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는 디지털 상황과 오징어게임에서 방탄소년단, 미나리 등으로 이어진 한국문화의 세계성 확인 등을 통해 지닐 수 있게 된 주체성 회복이다. 물론 그 주체성은 다른 방향으로 잘못 확장되어 마치 우리가 모든 것에서 우월한 국가가 되어버린 듯한 이른바 ‘국뽕’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항상 ‘균형 잡힌 자신감’과 ‘열린 마음’이 함께 자리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이런 흐름들을 주시하면서 우리가 중심을 잘 잡고자 한다면, 이 위기는 진정한 기회로 다가올 수 있다. 관건은 우리 모두가 이런 맥락을 공유하면서 우리 시민사회와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하나씩 실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최근 대선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지켜보면 낙관하기 어렵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날 밤은 내게 환한 대낮이었다. 나는 시상식에 참여하기 위해 동료들의 환송을 받으며 미국을 떠나 교토에 막 도착해 있었다. 칼같이 나뉜 유권자들이 매우 불안했지만 혐오와 분노에 기반한 정치적 호소는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었다. 물론 선거 이후 분열된 미국인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어려운 일들이 많이 남아 있을 테지만 말이다. ....그날 밤은 걱정과 불안, 시차로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곰곰히 생각하니 이런 감정들에 대해 그간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 마음을 살펴보니 두려움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이며, 모호하고 다양한 형태의 두려움이 미국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 점차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미국 예일대학 법철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이 2016년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날 쓰기 시작했다는 책의 서문이다. 이 글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확인하게 된다. 하나는 이제 더 이상 미국이 우리 민주주의의 모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없겠구나 하는 안도감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우리 정치 상황이 오랜 관성으로 인해 미국에서 수입한 듯한 극단적인 분열과 그 분열에 기반한 혐오와 분노를 근간으로 삼아 전개되고 있다는 우려감이다. 이번 대선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후보들의 자질 중에서 도덕성은 이미 제외되었고, 그 중 유력 후보 두 사람은 어떤 점에서도 산뜻하지 않음에도 분열된 두 세력의 적극적인 지지를 기반으로 성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다.

이제 거친 의미의 진보와 보수 구분은 의미를 상실한 시대가 되었다. 그 구분 기준 자체가 문제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우리 현대 정치사 속에서 해낸 일들이 이미 구분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의미이다. 오히려 우리 ‘정의평화불교연대’ 같은 불교 시민단체들이 앞장서서 새롭게 대두된 관계성, 다시 말해 모든 존재자들이 서로 의존함으로써만 비로소 그 존재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불교의 진리를 기반으로 삼아 분열된 세력의 연결고리 확보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때이다. 이런 노력들이 디지털 시대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될 수 있고, 그 지향은 우리 불교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 시민사회의 관계성 회복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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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기 교수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윤리학과 도덕교육학을 전공했고, 불교원전전문학림 삼학원에서 불교철학과 계율을 공부했다. 전주교육대학교 교수, 한국교원대 대학원장,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생명윤리교육평가전문위원회 위원,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전문위원, 계간 <불교평론>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한국도덕윤리과교육학회장으로 2015 초· 중·고 도덕과 교육과정 개정 연구를 총괄했다. 주요 저서로 《윤리학과 도덕교육 1·2》(공저)《우리 시대의 문화와 사회윤리》, 《직업과 윤리》. 《아동인격교육론》, 《도덕심리학의 전통과 새로운 동향》, 《동양 도덕교육론의 현대적 해석》(문광부우수학술도서),《의미의 시대와 불교윤리》《딸과 함께 철학자의 길을 걷다》,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등이 있다. 역서로 《철학의 과업》(공역), 《도덕철학과 도덕심리학》(공역), 《보살의 뇌》(공역), 《윤리적 자연주의》(공역), 《도덕적 감정과 직관》(공역) 등이 있다.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교수이자 종합교육연수원장을 맡고 있으며, 정의평화불교연대 고문이자 교육부 민주시민교육자문위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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