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다수는 선(善)이고 다수당은 소도(蘇塗)인가
[시사칼럼] 다수는 선(善)이고 다수당은 소도(蘇塗)인가
  • 김백
  • 승인 2023.03.07 1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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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렙] 세상에는 두 개의 큰 기준이 있다. 하나는 옳은 것과 그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이다. 이 두 가지 기준을 조합하면 네 가지의 상황이 생겨난다. 옳으면서 이로운 것이 최상이고, 옳지만 해로운 것이 차상(次上)이고, 그릇되지만 이로운 것이 차악(次惡)이요, 최악이 그릇되면서 해로운 것이다.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사법 리스크는 가장 낮은 하급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재명 스스로가 그릇된 일을 했고, 그것을 민주당의 총력으로 감싸는 과정에서 당은 물론 국민에게 해롭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소도(蘇塗)’의 이재명 대표에게 퇴거 명령을 내려야

지난 27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이 된 직후,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독재정권이 하는 검사독재를 막기 위해 ....” “검찰의 체포동의안은 무리했음을 확인시켜 준 ....” 이라고 논평하면서 민주주의를 지켜냈다고까지 자평했다. 과연 그럴까. 한동훈 법무장관이 밝혔듯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범죄가 아닌 이재명 성남시장의 지역토착비리에 대해 윤정부의 독재정권 운운하는 것이나, 비록 체포동의안이 부결은 되었지만 표의 결과를 면밀히 따져보자면 가결과 다름없는 데도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정무적으로나 괴변에 불과하다. 거기다 동료 국회의원과 자당인 민주당에 대한 최소한의 미안함이나 겸손과 겸허는 어디에도 볼 수 없어 인간적 연민마저 자아내게 했다.

이재명은 당 대표로서 자격을 상실했다. 당 대표는 정치의 최고 양질을 다루거나 결과를 내어놔야 하는 지도자의 자리다. 그야말로 정치하는 자리다. 이번 체포동의안이 가결이든 부결이든 이는 분명히 정치적 행위이고 그 결과에 대한 소회를 묻는 것은 그에게 정치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기자들의 질문에 엉뚱하게도 민생을 운운하고 경제와 물가를 말한다. 동문서답이다. 이에 대한 민주당의 반응과 소위 개딸들의 반응은 어떤가. 민주당은 부결을 당론으로 했으나 자유 투표로 결정했다고 하는 모순된 발언도 모자라 찬성표와 기권표에 대해 비겁하다며 맹비난했다. 개딸들은 수위를 한층 높였다. 찬성과 기권에 표기한 의원들을 발본색원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며 청원은 물론 일일이 의원들로 하여금 고해성사를 강요했다.

많은 다수의 국민들이 국회가 갖는 체포동의안이라는 특권을 내려놓으라고 하며 특히 이번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기를 원했지만 민주당은 결국 부결시켰다. 『삼국지』 위서(魏書) 한전(韓傳)에 “... 도망자가 그 속에 들어가면 모두 돌려보내지 않아 도둑질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이 소도(蘇塗)를 세운 뜻은 마치 부도(浮屠)를 세운 것과 같으나 그 행해진 바의 선악은 달랐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소도란 역사적으로 삼한 시대에 천신(天神)에게 제사를 지내던 성지로 이곳으로 죄인이 달아나 들어오면 잡아가지 못했다. 마치 지금의 민주당이 고대 삼한 시대의 소도와 같아 보인다. 소도의 의미는, 첫째, 그곳에는 당시 공권력의 힘이 미치지 못했다. 둘째, 그러다 보니 그곳이 범죄자들의 소굴이 되었다. 민주당은 검찰의 정당한 수사와 기소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법원으로부터 판단을 받아보라는 것조차도 응할 수 없다는 가히 소도와 같은 치외법권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난번 노웅래 체포동의안도 부결된 터라 범죄 혐의가 있는 자들의 집단처럼 보이며 당 안팎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현대에도 종교 기관이 소도와 비슷한 역할을 해왔다. 독재 시절 시위대의 피난지와 은신처가 되었던 명동성당, 조계사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소도와 달리 이곳 종교시설은 시위대 측이 너무 막 나가면 퇴거를 요청한다. 실제 2015년 11월 14일 집시법 위반으로 수배 중이던 민노총 한상균 위원장은 조계사 측에서 퇴거를 요청해 경찰서로 자진 출두하였다. 민주당이 반문명적 비민주적 현대판 소도가 되지 않으려면, 이재명 사법 리스크로부터 자유로우려면, 나아가 추락하는 지지율을 멈추려면 이제 이재명에게 퇴거를 명령해야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서 처리해야 할 산적한 개혁 과제들도, 또 정부의 여러 가지 정책에 대한 건전한 비판도 모두 이재명 당 대표 한 사람의 방탄으로 가려지고 정치는 온데 간데 없다. 가히 정치 실종이다. 지금 여의도에는 정치는 없고 오로지 정쟁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을 예견했기에 이재명 사법 리스크라는 말로 그토록 국민들과 여러 언론들이 지적하고 만류를 했음에도 이재명은 계양을에 출마했고, 당 대표에까지 이르러 이런 국가적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을 놔주어야 할 때이다. 이제 이재명 대표도 민주당도 서로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할 때다. 더 이상 실기(失機)해서는 안된다. 인생, 타이밍이라 하지 않든가.

민주주의 탈선의 가드레일로서의 ‘제도적 자제’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 의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의 입법독재가 상습화하고 있다. 다수 의석에 더하여 꼼수를 통한 전횡이 도를 넘고 있다. 지난해 4월 국회 법사위에서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안건조정위 구성 때 자당 소속 민형배 의원을 위장 탈당시켜 무소속으로 만들어 4대 2로 강행 처리한 전력이 있는 민주당이 최근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안건조정위 구성에서도 무소속 윤미향 의원을 포함시켰다. 선진 의회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법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절차적 정당성’이다. 이것이 담보되지 않으면 제정된 법은 원천적으로 무효다. 하나의 법이 제정되면 모든 이들이 다 만족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한쪽이 원하면 다른 한쪽이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절차적으로 정당해야 만이 논란과 분란을 막을 수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지난달 8일에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헌정 사상 장관이 국회에서 탄핵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당과 국민적 우려에도 불구하고 헌법을 무시하면서까지 민주당은 강행 처리했다. 헌법 65조 1항에서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핵을 한 것은 최종 심판 때까지 이 장관의 권한과 직무를 정지시켜 국정 공백을 유도하겠다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언제든지 탄핵 카드로 정권을 흔들 수 있다는 겁박을 노골화한 것이다. 야당으로서 할 수 있는 견제를 넘어 국정을 원활히 할 수 없게 만드는 방해이며 건전한 삼권분립의 정신을 무참히 짓밟은 민주주의의 퇴행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책임 있는 공당으로서의 소명을 스스로 포기하며 오로지 수적 우세의 완력으로만 밀어붙이고 있다. 민주당이 보여준 꼼수, 편법, 힘의 남용 등의 해괴한 형태는 민주주의의 소중한 규범들을 훼손하면서 민주주의 근본은 물론 의회민주주의까지 파괴하고 있다. 민주당은 다음에 또 체포동의안이 오면 아예 회의 자체를 보이콧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과 같은 전통적인 민주주의조차도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깨달은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그들의 명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제도적 자제 institutional forbearance’를 민주주의를 지키는 중요한 규범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자제’란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를 일컬으며, 민주주의가 오랫동안 건강하게 기능하는 국가의 경우,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 성문화된 헌법을 지속적으로 강화한다고 역설한다.

즉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해도 기존 체제를 위태롭게 만들 위험이 있으면 그 제도적 특권을 최대한 활용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제도적 자제의 좋은 예로 미국의 대통령 임기 제한을 든다. 조지 워싱턴이 1797년에 두 번의 임기를 마치고 자리에서 내려온 이후 그 선례를 따라 미국의 대통령은 재선까지만 그 자리를 허용한다. 제퍼슨, 앤드류 잭슨, 율리시스 그랜트 같은 야심 있고 인기 높은 대통령조차도 선례에 도전하지 않았다.

아무리 제도나 법이 있다 하더라도 자제할 줄 모르는 힘은 견제에서 벗어나고 균형을 잃어 결국 국민에게 해악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라고 하는 무척 불안정한 정치 체제가 그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안전하게 굴러가기 위해서는 그 탈선을 막아줄 수 있는 가드레일로써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은 필수적이며, 그 근간의 규범으로써 제도적 자제는 매우 중요하다. 비록 우리 시대에 민주주의가 당연시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인간의 경험과 역사에서 가장 낯설고, 가장 부서지기 쉬운 구조물 중 하나다. 2천 년 이상 민주주의는 그것에 반대하는 강력한 적들은 많았지만 지지자들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불안정한 것으로 보았고, 18세기까지 별다른 이의 없이 그대로 이어져 서구 사상을 지배했다. 아테네에서조차 민주주의는 2세기를 버티지 못했다. 우리에게 진정한 민주주의의 역사가 있는가. 민주주의를 제대로 운영한 적이 있기는 하나. 이제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더불어민주당의 최근의 행태로 말미암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극단적인 정치 분열은 민주주의 정체를 부정할 수도

국회에서의 의석수가 결코 정의의 잣대가 될 수 없다. 수적 우위가 마냥 선일 수 없다.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이다. 이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아무리 주어진 권한이 법적 테두리 안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 힘의 사용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정답을 찾아가는 매우 곤란한 과정이지 다수결 자체가 민주주의는 아니다. 그래서 협상과 타협이라는 수단이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고, 늘 그 결과는 어느 한쪽에서 볼 때는 더러 미진하고 아쉬운 것이다.

5년마다 있는 대선이나 4년마다 있는 총선 모두 일상적인 정치 과정의 일부다. 다수 의석을 차지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정권을 내어줄 수도 있고 찾아올 수도 있다. 이러한 과정들이 자연스럽고 기다릴 줄 알게 될 때 비로소 그 사회는 민주주의라고 하는 정체를 향유할 수 있게 된다.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듯한 극단적인 정치 분열이 만연하게 되면 결국에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전면 부정하는 반체제 집단이 등장할 수도 있음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유영백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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