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얼인 이
어린이는 얼인 이
  • 변택주
  • 승인 2014.11.22 11: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 변택주의 <섬기는 리더가 여는 보살피아드>-97. 어린이


11월 20일 인천 석천초등학교에서 1, 2학년 400명, 3, 4학년 400명, 모두 800명을 만나 삶결 얘기를 나눴다. 어린이들과 얘기바람 일으키는 것이 오랜 소망, 막상 어린이들을 만날 날이 다가오니 ‘눈높이를 어찌 맞추지?’ 적잖이 고민됐다. 어린이 눈높이를 가늠할 책들을 훑고 초등학교 선생님들과 1,2,3학년 어린이를 둔 어머니들에게 귀동냥을 해 두근거리며 초등학교 문을 나온 지 쉰 해만에 어린이들과 눈 맞추고 입 맞춰 얘기꽃을 피워 말길을 텄다.
 
물 한 방울로는 물결을 이룰 수 없어

먼저 만난 1, 2학년 어린이 400명에게 “여러분, 여러분이 무슨 말이에요?” 물었다. 간단없이 돌아온 답 “여러 사람이란 말이죠.” 짝짝짝! “나는 말길을 터서 삶결을 열려는 사람”이라니까 말길이란 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눈길’, ‘손길’이라 받고, 삶결에는 숨결이라 받는다. “물방울 하나로 물결을 이룰 수 있나요?”라 물으니, 입 모아 ‘아니요’라고 한다. “그럼, 한 사람으로 삶결은 빚을 수 있으려나요?” 하니까 “없어요”한다. 들숨 하나 날숨 하나로 숨결을 이룰 수 없다는 말씀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삶결을 빚을 수 있냐니까 서로 어깨동무하고 사이좋게 지내야 한단다. 놀라워라! 과연 어린이, ‘얼인 이’ 얼인 분들이다. 어린이는 참 얼, 옹근 얼을 가진 분을 가리키는 낱말이라고 내 풀이를 알려드렸다.

그리고 토끼 그림을 보여주고 토끼는 뭘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다들 입 모아 “저요” “저요”를 외친다. 여자 어린이에게 마이크를 넘겼더니. “당근이요.”한다. 말이 끝나자 무섭게 또 여기저기서 “저요”를 외친다. 이번에는 남자어린이 “풀이요”, “채소요.” 주로 먹을거리 얘기가 쏟아진다. 먹이 얘기가 나올 줄 몰랐다. 달리기를 좋아한다던지 그런 말도 나오기를 바랐는데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아뿔싸! 사는데 으뜸이 먹는 것인데, 왜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수 없이 먹이를 잔뜩 먹고 배가 부르면 뭘 하고 싶을까? 물었더니 자고 싶을 거란다. 우문현답이다.

더 묻는 일이 딱하다 싶었지만 내친걸음이니 배불리 먹고 한숨 늘어지게 자고 난 토끼가 뭘 하고 싶을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그제야 깡충깡충 뛸 것이라고 한다. 원숭이가 좋아하는 것을 물으니 바나나, 야자열매하며 죽 읊는다. 까치는? 열매요. 감이요. 하고 줄줄이 꿰다가 나무 타기요. 날기요. 하는 짓을 가리키는 말은 아주 드문드문 이다. 그래서 날기를 즐기는 까치에게 뛰라고 하면 좋을까요? 물으니까, 입 모아 “아니요”하고 잘 뛰는 토끼에게 거북이처럼 기라고 하면? 토끼가 슬플 것이란다. “원숭이에게 날기를 가르치면 잘 날겠지요? 나무 사이를 휘휘 날아다니니까?” 했더니 “아니”란다. 그러면 날지 못하는 원숭이가 불행할까요? 했더니 “아니”란다. 그럼, 엉금엉금 기는 거북이는 뭐가 좋을까요? 하고 물었더니 느릿느릿 걸으니 힘들지 않을 것이란다. 맞는 말씀이다. 하늘을 나는 까치나 뛰어가는 토끼는 꽃향기를 맡을 겨를도 고운 꽃을 누릴 겨를도 없지만 느림보 거북이는 넉넉히 누릴 겨를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저마다 생긴 대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아야 하는데 여러분이 좋아하는 일은 뭐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이요” 하는 말이 가장 먼저 튀어나온다. 선생님들이 잘 해주나보다 싶어 물었다. “네” 대답이 우렁차다. 그런데 여러분,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같으면 너무 좋은데 만약에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다르면 어떤 일을 하고 싶어요? 하고 물었다. 잘하는 것을 하고 싶은 사람은 20퍼센트이고 나머지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단다.

먹고 자는 일을 하고 싶어요

잠시 쉬고 만난 3, 4학년 어린이 400명에게 “여러분, 공부는 왜 해요?”라고 물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묶으면 “잘 살려고요”였다. 무엇이 잘 사는 거냐니까? 맛있는 것 먹고, 노는 것이란다. 그래서 놀이가 뭐냐고 물었더니 ‘게임’이라고 나왔다. 삶이란 낱말을 꺼냈을 때 한 어린이가 ‘인생’이라고 받더니, 어린이는 보호받아야 하는 사람, 싸우면서 자란다는 얘기를 한다. 아까 어린이들과 한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데 어느새 어른 생각과 말투가 배었다. 그러면서도 다름과 닮음은 한 뿌리에서 나왔다고 했더니, 바로 닮은 것은 같은 걸 내세운 말이고 다른 것은 차이를 내세운 말이 아니냐고 한다. 싱그럽고 기특하다.

“아프리카 부족을 연구하던 인류학자 하나가 남아프리카 아이들을 모아 경주를 시켰어요. 나무 옆에 달콤한 과일과 초콜릿으로 가득 찬 바구니를 놔두고 가장 먼저 그곳으로 달려간 사람에게 모두 주겠다고 했지요. 어? 그런데 웬걸 아이들은 서로 손을 잡고 함께 달려가는 거예요. 왜 그랬을까요?” 여자 어린이가 손을 번쩍 든다. 마이크를 넘겼더니 “남은 동무들이 다 슬픈데 어떻게 나만 기분 좋을 수 있겠어요? 사이좋게 나눠먹어야지요.”한다. ‘우분투Ubuntu!’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뜻으로 너와 아낌없이 정을 가를 때 비로소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을 제대로 꿰고 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고 살아야 하느냐고 물었다. 번쩍 손을 든 남자 어린이는 앉아 있는 자리로 보아 4학년인 듯했다. “먹고 자는 일을 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왁자하게 웃는다. 내가 “저 어린이는 아주 거룩한 말을 했어요. 여기 먹지 않고 사는 사람 있나요?” 물었더니 “아니요.” 한다. “그러면 여기서 자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나요?” 하니까 “아니”란다. “보세요. 사람은 누구나 먹지 못하면 죽고, 자지 못하면 죽어요. 그렇기 때문에 먹고 자는 일, 거기에 하나 더 보태서 먹은 것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똥오줌 누는 일이 가장 거룩한 일이에요. 그런데 이 친구는 그 가운데 두 가지나 살리는 일을 하겠다니 얼마나 훌륭해요. 여러분, 저 친구에게 손뼉을 뜨겁게 쳐 주세요.” 너나들이 하고 싶은 일 얘기 하겠다면 손을 들어댄다. 가방 디자이너, 미생물학자를 비롯해 다양한 꿈을 펼친다. “오냐, 오냐, 그게 모두 너를 살리는 일이야” 

살림이 뭐나고 물으니, 엄마가 하는 것이라면서, 죽임 반대말이라니까 고개를 주억거리는 아이들, 살림살이는 “너를 살려야 내가 살 수 있다는 말이에요. 아빠나 엄마, 선생님을 비롯해 거리를 청소하는 분들까지 모두 살림살이를 하는 사람”이라고 했더니 뜨겁게 손뼉을 친다. “우리는 맹수나 사나운 날짐승처럼 딱딱한 이빨이나 날카로운 부리, 발톱 따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랑스런 사람들이니 서로 살갑고 도타워야 해요.” 이 한 마디에 앞으로 ‘나아갈 길은 너를 살려 내가 사는 길 찾기’란 걸 잘 아는 아이들. 
 


감씨앗은 고스라니 감이며 감나무

감씨앗에서 조금만 덜어내도 감 성질을 잃는다. 더할 것도 덜어내서도 안 되는 옹금. 그래서 감씨앗은 고스라니 감이며 감나무이다. 감씨앗이 떨어져 뿌리내려 움튼 감떡잎 또한 고스라니 감나무라고 말품을 팔아왔는데, 눈앞에서 얼인 예수님, 얼인 부처님들이 증명해 주셨다. 빚 갚으려고 갔다가 빚만 잔뜩 지고 돌아오다.
 
1학년 선생님이 나를 소개하면서 “이 선생님이 누군지 아는 사람?”하고 물었을 때 손을 번쩍 들고 “변택주 선생님이요.” 했던 1학년 7반 동혁이. 내가 말길을 터서 삶결을 열려는 ‘기연택주’라면서 앞에 붙은 기연은 내 아내 이름이에요. 지금 내 입고 온 셔츠도 다려주고 머플러도 다 아내가 매어줬어요. 아내가 없었으면 내가 이렇게 밖에 나와서 다니지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나는 내 이름을 기연택주라고 해요라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을 동혁이가 잊지 않고 담아뒀다가 집에 가서 엄마를 보기가 무섭게 “엄마, 엄마, 엄마 변택주선생님은 진짜가 아냐.” 그러더란다. 그럼 뭐가 진짜야 그러니까 “기연택주가 진짜야. 그러니까 아빠는 현주봉수지? 엄마는 봉수현주고. 음……, 그러니까 이제부터 나는 봉수현주모흠경식동혁이야.” 이름 앞에 식구 이름을 하나하나 붙여 부르더니, 나중에는 할머니, 이모, 고모 이름을 다붙여서 부르며 놀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학교가면서 “엄마, 봉수현주동혁이 학교 다녀오겠습니다.”했단다.

모든 어린이는 놀 권리가 있어

어린이들과 얘기바람을 마치고 어머니들과 얘기꽃을 피우는데, 3학년 6반 지안이가 왔다. 어땠느냐는 엄마 물음에 재밌었다고 기분을 맞춰주고는 내가 많이 부럽단다. 뭐가 부러우냐니까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게 부럽단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었던 내가 부럽다는 말이다. 그 대신 오년이나 앓았지 않았느냐? 했더니 입을 다물기에 끝난 줄 알았다. 그랬는데 한참있다가 얘기를 마치고 일어나면서 하는 말이 아무리 오년을 앓았더라도 선생님이 부럽단다. 아차, 싶었다. 그래서 얼른 내가 이 나이 먹도록 한 고생을 몰라서 그렇다. 노점상을 하며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던 적이 손꼽을 수 없을 만큼 많았다며 겁을 줘놨지만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조금만 아파도 대굴대굴 구르는 아이들이 오죽했으면 몇 해를 아프더라도 학교 가지 않은 것을 부러워하랴 싶었다. 그런 지안이가 집에 들어와서도 할 일을 내버려두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더란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선생님이 놀이는 손과 발 그리고 몸을 놀리는데서 왔다고 했어, 몸을 잘 놀려야 몸도 마음도 튼튼해진다고 했으니 잘 놀아야 한다면서 시위를 했단다. 그런데 오늘 아침밥을 한술이라도 더 먹이려는 엄마를 빤히 바라보며, “엄마 날, 살리려는 거지?”하더란다. 이 말씀에 눈이 무른 엄마는 그만 닭똥 같은 눈물을 주르륵.

2학년7반 준영이는 집에 와서 선생님과 꿈 얘길 나눴다면서 가장 머리에 남는 말이 잘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했다면서 “난 수영을 잘하지만 축구를 좋아하니까 축구를 더 배워야 하겠어. 공부는 잘하는 것 같기도 하고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니 조금 더 두고 볼래.”하면서 “삶결과 숨결이 고와야 해” 했단다. 
 
4학년 5반 연수는 용인 제일초등학교에서 벌어진 ‘꼴찌 없는 운동회’ 화면을 보여줬을 때, 손을 번쩍 들고 나와서 연골무형성증이라는 지체장애 6급 기국이가 해마다 달리기 꼴찌를 도맡아하는데 같은 반 친구들이 결승점 가까이 다 갔다가 돌아와 손을 잡고 달리는 장면이라고 의젓하게 말했다. “그래도 달리기인데 승부를 가려야 하지 않겠냐?”니까. 여리고 약한 친구를 보듬어 함께 가야 한다며 의견스러웠다. 그리 의젓하던 연수도 “선생님이 어린이는 놀아야 한다고 했다”며 과학실험도 빼먹고 실컷 놀다 해거름에야 들어왔단다.  
 
다름이 틀렸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줄 알고, 토닥이며 서로 부추겨줘야 한다는 걸 잘 아는 어린이들. 삶결은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어깨동무하고 어우렁더우렁 어울려야만 이룰 수 있는 작품이다, 일을 하는 까닭도 더불어 살려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나무가 죽으면 살 수 없다, 벼가 죽으면 살 수 없다, 물이 더럽혀지고 공기가 더럽혀지면 살 수 없다는 것을 꿰뚫어보는 어린이들.

1922년에 만들어진 ‘세계아동헌장’에는 모든 학교에서 놀이터를 갖추고 어린이가 학교를 마치고 난 다음에 놀이터에서 놀도록 해줘야 한다고 적바림해 놨다. 우리나라도 가입한 UN아동권리협약에서는, ‘어린이들이 쉬고 여가를 즐기며 또래에 맞는 놀이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날을 만들고 1923년 5월 1일 기념식을 처음 가지고 아동권리 공약을 발표했다. 그 얼거리 가운데 하나가 ‘어린이들에게 고요히 배우도록 하고 가정과 사회 시설에 놀만한 데를 만들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최근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로부터 ‘나라차원에서 어린이 놀이 전략을 세워 어린이를 놀리라’는 아주 드문 권고를 받았다. 유니세프와 한국아동권리학회가 함께 우리나라 어린이들 놀이를 조사한 결과를 보고 내놓은 낯 뜨거운 얘기이다. 우리는 우리 앞날에다 대고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인문학 강의를 하는 경영코치, ‘연구소통’ 소장으로 소통을 연구하며, 지금즉市 트區 들으面 열리里 웃길 79에 산다. 펴낸 책으로는 <법정스님 숨결>과 <법정, 나를 물들이다>, <가슴이 부르는 만남>이 있다.


[기사제보 cetana@gmail.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6 대형빌딩 402호
  • 대표전화 : 02-734-7336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 법인명 : 뉴스렙
  • 제호 : 뉴스렙
  • 등록번호 : 서울 아 00432
  • 등록일 : 2007-09-17
  • 발행일 : 2007-09-17
  • 발행인 : 이석만
  • 편집인 : 이석만
  • 뉴스렙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cetana@gmail.com
  • 뉴스렙「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조현성 02-734-7336 cetana@gmail.com
인터넷신문위원회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