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순
죽순
  • 현각 스님
  • 승인 2014.12.24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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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현각 스님의 <클릭! 마음의 두드림>- 78.

추위가 연일 맹위를 떨치고 있다. 조락의 겨울산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대나무를 계곡에 심어 놓은 것은 딱히 이런 상황을 대비했던 것은 아니다. 대나무의 특성을 살펴 계곡에 인접해 심었다. 특히 물을 좋아한다는 것을 감안한 일이다. 실은 인왕산은 골산이라 흙이 귀하기도 하다.

앙상한 가지가 쓱쓱 드러나는 때면 보란 듯이 푸르름을 드러내고 있는 대나무의 기상은 정신을 번뜩 나게 한다. 게다가 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흰 것과 푸르름의 조화가 산의 운치를 한껏 드러나게 하기도 한다.

죽순을 맹종죽(孟宗竹)이라고 한다. 죽(竹)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 용도가 다양하여 이참에 정리해 봤으면 한다. 여죽(女竹)은 여자가 쓰는 담뱃대이고, 객죽(客竹)은 손님을 위해 장만한 담뱃대이다. 고죽(苦竹)은 왕대를 이르는 말이고, 담죽(淡竹)은 솜대라 부른다. 수죽(修竹)은 가늘고 긴 대를 말하고, 서죽(筮竹)은 무속에서 점치는데 쓰는 댓개비이다. 그런가 하면 백죽(白竹)은 껍질을 벗긴 대나무이고, 해장죽(海藏竹)은 바닷가 제방에 방풍림으로 심은 대나무를 일컫는 말이다.

빼놓을 수 없는 대나무가 있다. 반죽(斑竹)이다. 순(舜)임금에게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라는 두 비가 있었다. 순이 창오(蒼梧) 들판에서 죽었다는 비보를 듣고 슬피 울다가 순임금의 뒤를 따랐다. 그때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 강가의 대나무에 뿌렸는데 피눈물이 되어 마디마디에 얼룩이 지더니 그때 부터 얼룩대[斑竹]가 되었다고 한다.

대죽(竹) 자가 들어갔다 하여 꼭 대나무와 관련 있다고 속단할 일은 아니다. 은죽(銀竹)은 몹시 퍼붓는 소나기를 이르는 말이다. 석죽(石竹)은 패랭이 꽃이고, 석죽색이라 하면 분홍색을 이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말이나 글은 선입관이 앞서다 보면 낭패를 입을 소지가 많다. 선입관이 어찌 말이나 글에만 국한될까. 사람을 보는 시각도 그렇다. 외형을 보고 그 사람의 내면세계까지 변별하려는 습성은 그릇된 타성 가운데서 비롯된 것이다.

‘눈 속에서 죽순을 구한 것은 맹종의 효도(雪裡求筍 孟宗之孝)’라는 말이 있다. 맹종은 삼국시대 오(吳)나라 사람이다. 그에게는 늙고 병든 어머니가 있었다. 추운 겨울날 어머니의 병환이 더욱 깊어만 갔다. 맹종은 어쩔 줄을 모르고 가슴만 타들어 갔다. 그런데 어머니는 가냘픈  음성으로 죽순을 먹고 싶다고 하였다.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하지만 추운 겨울에 어디서 죽순을 구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맹종은 죽순을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산천을 헤매었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죽순을 구할 수 없게 되자 맹종은 대나무 밭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한참을 흐느끼고 있는데 갑자기 땅 밑에서 죽순이 솟아나고 있었다. 맹종은 너무 놀라고 기뻐서 죽순을 가지고 돌아와 반찬으로 만들어 드렸다. 그러자 어머니는 신기하게도 병이 나았다. 아들의 효심이 하늘을 감동시킨 것이다.

군 복무 기간에 어머니 상을 듣고 견딜 수 없어 군령을 어기고 달려갔다. 나중에 자수하니 손권(孫權)이 형을 감해 주었다.

맹종의 효심이 시대를 초월하여 전승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는 잃어버린 것이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효가 아닐까 한다. 대가족 사회에서 효는 가정윤리와 덕목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했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가정은 핵분열 하듯 핵가족화 되었다. 이러한 가족 간에는 효의 대상이 상실되고 말았다.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맞벌이 가정에서 효가 자리 잡고 싹틀 기틀이 마련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화의 단절이 장벽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부모의 일에 지쳐 있고 아이들은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김득신의 작품<성하직리(盛夏織履)>를 감상하노라면 대가족 사회의 면면이 훈훈하게 드러나고 있다. 얼마나 더운지 할아버지, 아버지는 웃옷을 벗었다. 게다가 강아지는 길게 혀를 내밀고 헉헉거리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할아버지의 등을 긁어주고 있는 귀염둥이 손자가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마치 할아버지 허리춤에 매어 놓은 주머니에서 용돈 한 닢 내어 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눈치다. 아버지는 짚신 한 짝을 삼아 놓고 한 짝을 마저 삼느라 손과 발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대가족 제도가 세대를 아우르는 소통의 시대라면 핵가족 제도는 단절의 시대라 명명한들 누가 탓할 리 없다.

디지털 시대의 디지트(digit)는 ‘손을 구부려 센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손가락’이나 ‘아라비아 숫자’를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여기서 십진수를 이진수로 나타내는 등 한자리 수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숫자를 나누고 쪼개어 삶의 속도를 점점 빨라지게 한다. 속도야 말로 이 시대의 키워드가 되었다. 속도는 향수를 망각하게 하고 말았다. 조상이나 이웃을 살펴볼 여유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지근거리에 있는 이웃 간에 마주하는 날이면 섬서하기 그지없다. 우리의 범위는 축소 일로를 걷고 있다.

사람은 두 귀가 있다. 한 귀로 놓치기 쉬운 소리를 또 한 귀로 경청해 보라는 것이리라. 그래서 시인 김광균은 <설야(雪夜)>에서 눈이 오는 광경을 소리로 묘사하고 있다.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먼- 곳에 여인이 옷 벗는 소리

창가에 성에가 흘러내린다. 빠른 걸음으로 쓱 지나가는 행인의 걸음 같기도 하고 맹하에 문실문실 자라는 새순 같기도 하다. 이 광경에 취하지 말라는 경고인가. 눈발이 날린다. 설야의 정취에 취하고 만다. 그곳에는 순수가 있고 태고의 숨결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우리시대에 맹종의 효심은 실종된 것이냐. 아니면 드러나지 않은 것이냐. 자녀를 품에 안고 유아원에 데려가고 데려오는 손길이 보기만 해도 온기가 느껴진다. 초등학교 정문에서 자녀를 기다리는 부모님의 서성거림에서도 온정을 느낀다. 그 온정이 낳아 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에게까지 미친다면 참 훈훈한 세모가 되지 않겠는가.

   

속리산 법주사로 출가 수행정진했고, 동국대학교 석ㆍ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학교 선학과 교수, 미국 하버드대 세계종교연구센터 초청교수, 동국대 불교대학장, 정각원장, 한국선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겸 동국역경원장으로 불교학계 발전과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선학의 이해』, 『선어록 산책』, 『선문선답』, 『선문보장록』, 『선 사상론』, 『선 수행론』, 『한국선론』, 『벽암록의 세계』, 『한국을 빛 낸 선사들』, 『선심으로 보는 세상』 연보로 구성된 『최현각 선학전집』(전11권), 『내 사유의 속살들』, 『현각스님의 마음 두드림』등이 있고, 그 외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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