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력 없음이란?
유위적인 노력을 통한 수행을 해나가다가 보면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위(노력없음)의 수행으로 진입한다. 저절로 수행이 진행되는 단계인데, 이를테면 보살지위중 제8지 부동지이다. 이어서 9지 10지로 나아가 등각과 묘각으로 진행된다.
때문에 '노력없음'을 깨달음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깨달음은 존재의 실상을 분명하게 증득하는가?에 달려있다. 결국, 생사일여가 되어야 한다. 생사일여는 죽어서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생(生)이라고 할 것도 없고, 사(死)라 할 것도 없음이 분명한 가운데 생도 생이고 사도 사임이 분명한 것이다. 즉 무생법인을 증득해야 한다. 스스로 분명한지는 스스로가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속을 수도 있음이 이 공부이다.
확인하고 점검하는 공부가 필요하다!
(2) 명명백백한 것이 깨달음이다
견성(見性)이라는 것은? 참성품이 참성품(진여) 스스로를 분명하게 본 것을 말한다.
주관이 객관을 보는 방식이 아니다. 주관과 객관이 생겨나는 근원(진여)이 스스로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것을 제8아뢰야식도 넘어서야 한다.
참본성을 깨닫게 되면(드러나면) 그제서야, 존재의 실상이 무엇인지가 명명백백해 진다. 오직 이것 뿐이다.
형상이 생겨나기 이전의 순수한 진여자체를 분명하게 깨달은 것을 견성이라 한다.
삼라만상과 내면의 생각 느낌 감정도... 모두가 이것(순수진여)이다.
눈앞의 대상이 환(꿈)이라고 아는 정도는 아직 아니다. 눈앞의 대상이 진여라고 아는 정도도 아직 아니다. 모든 존재의 실상(근원)이 이!것!(순수진여=성품=본래면목)임을 분명하게 증득해야 한다. 그것도 한번 본 것만으로는 안된다.
언제나 분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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